♣ 우리들의 이야기: 마뜰 3년, 그리고 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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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떠나던
그 해 겨울,
그리고 30년.
이리 먼 길을 온 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 때 우리는,
10년 후쯤 너는 그리고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낭만어린 꿈을 안고 헤아려 보기는 했어도,
30년 뒤의 일은 도대체 생각이 닿지 않는 먼 미래였지요.
그 보이지 않던 미래가 현재가 되어 있고,
우리는 까마득한 30년의 길을 거슬러 와
이렇게 다시 만났습니다.
아득히 멀어진 나날이지만
함께 만나 기울였던 술잔 속에는
언제나 그 때가 오롯이 살아 있었습니다.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약속처럼 우리를 뜨겁게 달구던
마뜰 3년.
누군가는 서럽도록 아름답다던 그 청춘의 시간이
어느 땐 까맣게 잊혔다가 또 어느 땐 꿈결처럼 떠오르고,
문득 까까머리 여드름투성이 얼굴들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밀려오기도 한 세월,
50줄 중년 우리들의 아스라한 역사는
이렇게 우리 곁에 늘 살아 있었습니다.
그 때, 대도시 콧대 센 놈들이 뺑뺑이로 전락한 후
명문 안고의 이름은 우리로 인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그 해 입학하던 날 운동장에는
안동, 예천, 영주, 봉화, 청송, 의성
경북 북부의 시험 잘 본다는 놈들이 다 모였던 셈입니다.
높을 고자 반듯이 세운 모표 양 갈래로
흰 테를 뚜렷이 두른 교모를 멋있게 쓰고,
‘난 안고생이야’ 라며 은근히 폼 잡던 그런 시작이 있었지요.
3학년 되던 해
대구를 포함한 경북 전체 학력고사에서
일등이 우리 몫이었던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등교 길 법흥다리를 끝없이 이어가던 자전거 행렬은
차라리 학업을 향한 장엄한 대장정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다리 위에서 체인이라도 말릴 양이면
아! 그 잔인한 다리는 왜 그리 길던지.
4월이면 헐벗은 산등성이에 산산이 흩어져 구슬땀을 흘리던 나무심기 행사,
안동댐 일대를 뒤덮은 울창한 숲은 그 때 우리의 땀이 일군 작품이지요.
어느 해 여름방학이 끝난 후 선어대에서 헤엄치다 사고를 당한
후배들의 빈자리를 보는 아픔도 있었지요.
가을이면 해가 저물도록 반복되던 열병과 분열의 교련검열 준비,
마냥 밉기만 했던 쥐똥, 말똥 교관들,
병영의 현실에 울컥한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공설운동장에서의 교련검열대회는
여학생들을 곁눈질하는 야릇한 흥분으로 보상받기도 했지요.
혼분식 실천주간, 불조심강조주간, 저축 장려주간,
리어카 끌고, 삽 들고 뒷산 깍기와 운동장 고르기로 시작되던 체육시간 교련시간,
따지자면 ‘근대화’의 성공에는
노동자, 농민의 피땀에다 학창시절 우리들의 땀과 인내도 있었던 겁니다.
점심시간이면 젓가락 하나 달랑 들고 도시락을 누비던 강호의 거물들,
운동장 옆 과수원을 넘나드는 짜릿한 일탈,
교실에 비 샌다고 줄줄이 가방 싸서
비 내리는 운동장을 처연히 나서던 이과 어느 반의 설익은 저항정신,
공설운동장이었던가, ‘해골’의 구타사건에 유난히 부풀었던 분노,
술자리의 안주로 영원히 살아남을 이 발칙한 도발의 전설들은
열정이 차단된 젊음들이
간간이 내뿜던 작은 숨통이었는지 모릅니다.
교문을 나서던 그 해 가을,
박정희의 죽음이 있었고,
신군부의 쿠데타가 다시 이어지고,
지난 후에야 그 비참함에 몸서리쳤던 80년의 광주,
그리고 거대한 분노가 바다를 이루었던 87년 6월,
우리의 젊음을 옭죄고 비틀었던 가혹한 시간들이었지요.
우리는 그 역사의 질곡 사이사이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메워 왔습니다.
30대 후반, 경술국치에 비견되던 IMF관리 시기의 거센 한파에
전대미문의 위기와 고통을 견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를 우리는 다시 견디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이룬 것, 얻은 것은 서로 다를지라도
‘안동’과 ‘마뜰’은 우리 삶의 밑둥에 함께 자리한 것이었습니다.
병영사회의 엄혹한 통제, 입시준비와 교칙의 규율이 우리의 껍질을 짓눌렀지만
마뜰 3년은 수많은 꿈과 희망이 마그마로 끓던 시기였습니다.
그 울퉁불퉁한 꿈과 희망이 한 길로 나아가,
모양 나는 우리의 내력을 이룬 데에는
깊고 진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퇴계, 학봉, 서애의 철학과 석주의 민족애, 김원봉, 권오설의 인민을 향한 이상이
다 같이 안동을 뿌리로 우리를 일으키는 멀고 깊은 근원이었다면,
그 때 마뜰에서 우리를 이끈 은사들의 가르침은
우리들의 삶이 거침없이 나아가도록 만든 가깝고도 진한 현실적 힘이었습니다.
발군의 실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모여 명문 안고를 만드신 그 때 선생님들.
오늘 그 뜻을 다시 한 번 기려봅니다.
대양을 헤치듯
거침없이 열변을 토하시던 꽁치 선생님,
지독한 카리스마로 긴 목을 곧게 세우시고
학생들을 장악하시던 장닭 선생님.
학생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으로
어디든 헤집고 다니시던 (?)작대기 선생님.
정장의 스타일리스트,
복잡한 화학공식을 의연히 설파하시던 아보가드로 선생님.
한라산 드넓은 연못을 머리 위에 이고
언제나 푸근히 감싸시던 백록담 선생님.
교정을 뒤흔드는 가래침 소리로
한낮의 졸음을 날려주시던 오가래 선생님.
현란한 독설을 거침없이 쏟으시며
권력의 부조리를 알려주시던 욕쟁이 선생님.
뿔테 안경 치켜 올리시며
영문법 강의에 열의를 보이시던 쩝쩝이 선생님
우리들의 30년이 오직 선생님들의 큰 덕에 기대어 있습니다.
김연호 선생님! 최영록 선생님! 김우한 선생님! 정재성 선생님!
이재호 선생님! 윤주영 선생님! 오장환 선생님! 강태화 선생님!
그리고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윤봉근 선생님!
그 큰 은혜를 표현할 말을 감히 찾을 수 없기에 그저 깊이깊이 새길 따름입니다.
아! 마뜰 3년
그 후로 30년 그리고 오늘,
30년의 시간을 건너 선생님을 모시고 동학이 어울리니
이 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으리오.
사람의 일과 자연의 길, 하늘의 명도 조금은 알만하다는 지천명의 나이는
세상살이를 더 넓고 깊은 품으로 다시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지요.
오늘의 만남이 기꺼운 만큼
이제 여기서 우리의 역사는 새로운 막을 올립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은 세월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도록 함께 외쳐 봅니다.
‘안동고'의 이름으로 가자! 뛰자! 날자!’
우리들,
그리고 선생님,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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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좋아서 눈물이 흐를뻔 했다.마뜰인이 되고 28 동기가 되어 너무 좋았다.대엽이 글 너무 좋아 감사한다.이 기쁜 마음으로 현업에 서로 최선을 다해 안고인의 긍지를 살려 고향을 ,모교를 .친구를 위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 해본다.친구들아 힘내자 사랑한다...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눈물 훔쳣다. 대엽아 고맙다.
친구 추억의 글 오래도록 우리를 즐겁게 해줄것이네...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