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았던 시간
임 우 희
시간을 쉽게 쓸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한다. 살아보니 살아갈 만한 날들 많다. 아픔이준 선물일지 모르겠다. 겨울 날씨치고는 꽤 포근한 편이다. 아픔을 같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아픔도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몸과 같이 하던 내 차를 떠나보낸다. 15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했다. 내 차에 귀가 있었다면 무엇을 기억하고 갔을까?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아이들과 같이 북어도 달고 막걸리도 선물했었다. 부모님 하라는 대로 절도 온 식구 돌아가면서 했다. 다음으로는 참 많은 기억을 했겠다. 우리 딸 서울에 첫 취직을 했을 때는 아빠와 딸이 단둘이 가면서 했던 얘기도 들었겠다. 어머님이 갑자기 밤중에 고열이 날 때 병원으로 달리던 긴박한 시간에도 너와 같이 갔었지. 아들이 입대할 때도 애잔한 마음으로 같이 논산훈련소로 달릴 때도 있었다.
여름휴가에 캠핑 갔다가 배터리가 방전되어 산속에서 아이들과 셋이서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도 있었다. 미국 사돈이 처음으로 대구에 오시던 날 동대구역에서 첫 만남도 있었다. 짧은 영어로 결혼식 때 입을 한복을 맞추기 위해 갔다. 그때 아들 쪽에는 파란 계통이리 한복을 입고 딸 쪽인 나는 핑크계통의 한복을 맞추었지. 바깥사돈은 키가 190이 넘어 옷감이 많이 들어간다고 차 안에서 웃기도 했다. 한국의 특징인 불고기 잡채 청양고추 다진 양념도 미리 LA에 한인촌에서 맛보고 오셔셔 너무 좋아 했던 일도 있다. 내가 먼저 사위를 한국의 아들로 대우하겠다고 했을 때 너무 좋아했다. 몇 년 뒤 미국에 사돈집에 갔을 때 그 말이 제일 마음에 훅 들어왔다고 했다. 아들 사돈 첫 만남을 갈 때도 너는 기억했겠다. 그래도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을 다 기억하고 갔겠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오랫동안 함께 했던 시간은 참 소중하다. 이젠 또 다른 나의 차와 나머지 삶을 함께 하게 된다. 상황이 완전 다르다. 후반전이다. 활동 범위도좀 더 좁을 것이고, 생각도 조금씩 다르다. 격동적인 시간은없고 느긋하고 조용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다.
첫댓글
살면서 '꽤 괜찮았던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새차도 생겼으니 시승식 한 번 합시다!
회장님,
지나고 보니 그저 그리 생각됩니다..
넵!!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