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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마음의 캔버스-그림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스카이블루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채색 Synthetic polymer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30.5×30.5㎝ | 1986
후면 The Andy Wharhol Art Authentication Board stamp and numbered 'PO 40.008'
추정가: ₩2,700,000,000~3,000,000,000
낙찰가: ₩2,700,000,000 (2007년 09월 15일 서울옥션)
앤디 워홀의 자화상 시리즈 중 1986년 제작된 마지막 자화상 시리즈 중 하나이다.
그는 유명인들의 초상화들을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작업에 몰두 하였는데, 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자신도 스타가 되고 싶어했던 워홀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워홀은 세부묘사가 생략되고 강한 음영의 대비로 이루어진 자화상을 통해 마치 스타처럼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철저히 은폐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타가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웠으며 스스로 예술적 오브제가 되었다.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50.5×200.6㎝ | 1969
후면 Richter 1969
추정가: ₩3,000,000,000~3,500,000,000
낙찰가: ₩2,520,000,000 (2007년 09월 15일 서울옥션)
Provenance : Catalog raisonne 231-1
“그림은 어떤 이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이념이다…나는 어떠한 경계도 없고 특정한 의미를 결여한 끝없는 가능성에 대해 많은 희망을 걸고 있다….
나는 오로지 관람객이 내가 원하는 방식 이외의 방식으로는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는 나의 주장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에게 낯익은 어떤 대상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림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에서 무언가를 본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는 무언가와 비교를 한다. 그리고는 무엇과 연관이 있는지 찾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다. 이를테면 테이블이라든가 담요 등. 우리가 뭔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좌절하게 되고 끝내 지루해져서 등을 돌릴 때까지는 흥미를 가지고 뭔가를 찾아내려고 흥분한다. 추상회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작가노트 중)
-독일 표현주의 회화와 사진회화(Fotomalerei)의 대표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리히터(1954~ )는 뒤셀도르프(Dsseldorf) 아카데미를 수학(1961)하고 Junger Westen 상 수상(1967), 베니스 비엔날(1972), 카셀 도큐멘타(1972-1997) 참가, Arnold Bode 상(1981), Kokoschka 상(1985),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1996), Wexner 상(1998) 등을 수상 하였다.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20×100㎝ | 1987
후면 Richter1987
추정가: ₩1,800,000,000~2,000,000,000
낙찰가: ₩1,860,000,000(2007년 09월 15일 서울옥션)
리히터 회화의 회화의 ‘스타일’로 우리에게 알려진 <추상적인 그림>들은 대개 1977년 이후인 80년대 그려진 작품들이다. 80년대 중반까지 나무줄기나 파이프 기둥 같은 선적인 구성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중첩되면서 깊이의 일루전이 생겨나는데 비하면, 1987년 이후 최근까지의 작업에서는 개별적인 구성요소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액션페인팅에 비교될 격렬한 동작이 수직,수평 방향으로 물감들을 화면 위에 올리고 깎아내는 단순화된 동작으로 바뀌면서 마티에르와 색면의 효과가 강조된 화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채색 Synthetic polymer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30.5×25.4㎝ | 1973
후면 Andy Warhol
추정가: ₩2,000,000,000~2,500,000,000
낙찰가: ₩1,800,000,000(2007년 09월 15일 서울옥션)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과 정상회담을 갖자 워홀도 중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택동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정부가 선전용으로 사용하는 모택동의 사진을 드로잉하여 과거에 제작한 초상화들과 달리 좀더 회화적으로 제작했다. 워홀은 아크릴이 젖었을 떄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터치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직접 손으로 그린듯한 느낌을 주어 자신이 진지한 태도로 제작했다는 것을 구매자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작 품 명: Arachidyl Sulfate
작 가 명: 데미안 허스트
작품크기: 152.4 X 213.4 cm / 캔버스에 가정용페인트
제작년도: 2006
추 정 가: ₩900,000,000 - 1,400,000,000
낙 찰 가: ₩1,500,000,000 (2007년 09월 18일 K옥션)
Sarcosine Anhydride
캔버스에 하우스홀드 그로스 Household gloss on canvas
157.5×167.6㎝ | 2006
후면 stamped
추정가: ₩1,500,000,000~1,600,000,000
낙찰가: ₩1,500,000,000(2007년 12월 05일 서울옥션)
데미안 허스트는 1965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골드 스미스대학교 시절 1987년과 1988년 두 차례 현대 뉴욕미술전에 출품하였고 1989년 대학 졸업 후 1991년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여 큰 명성을 얻었으며 1995년에 Turner상을 수상했다. 현재까지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의 대표주자로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스타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종교, 사랑, 과학, 예술, 그리고 죽음에 관한 테마들의 작업을 하는데 충격적이고 예측 불허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Spot Painting’은 수천 가지의 약이 설치된 약장 시리즈 연작으로 일관된 간격과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점들은 약에 중독된 환각 상태를 표현해 주고 있다.
작 가 명: 유에 민준
작 품 명: 왕관 Hat
제작년도: 2004
작품크기: 82ⅹ82cm
작품재료: 캔버스에 유채
낙 찰 가: ₩1,080,000,000 (2007년 10월 26일 D옥션)
내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바보’같다. 그들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듯한 부자유스러움과 어색함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무 사고도 없이 누군가에게 조정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 이들은 곧 나의 초상이자 나의 친구들의 모습이며 나아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노트중)
‘웃음’으로 대표되는 유에 민준의 작품들에는 이념적 지향을 상실한 채 현실에 참여하지도 방관하지도 못하는 지식인의 무력감과 허탈감이 내재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1962년 헤이롱쟝 따칭에서 출생하였고 1985년 하북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다.
작 가 명: 마르크 샤갈 (1887~1984) Marc Chagall
작 품 명: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화가 Painter in Orange Vest
제작년도: 1973
작품크기: 64.5 x 48.2cm
작품재료: 종이위에 혼합재료
추 정 가: ₩780,000,000 ~ 1,000,000,000
낙 찰 가: ₩970,000,000 (2007년 09월 04일 D옥션)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에서 출생한 샤갈은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 드 파리 최대의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910년 파리로 나와 모딜리아니와 레제 등을 배출한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 기법을 익혔다. 1911년 앙데팡당전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1919년 모스크바의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1923년에는 파리로 귀환했다.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전에서 판화상을 받았으며, 유화·판화·벽화·스테인드글라스·조각·도기 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샤갈의 초기 작풍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겼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즐겨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작 품 명: 붉고 푸른 퀸텟
제작년도: 1948
작품크기: 33 x 40.8cm
작품재료: 캔버스 유채
추 정 가: ₩700,000,000~900,000,000
낙 찰 가: ₩860,000,000 ((2007년 09월 04일 D옥션)
화려한 색으로 그린 사치와 쾌락의 장면들은 다른 화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현대 미술, 특히 야수파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1900년에 파리로 가서 미술학교에 다녔는데, 판에 박힌 미술관의 그림에 혐오감을 느꼈고, 오히려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의 전형적 특징인 진동하는 듯한 색채 병치 효과에 매료되었다. 1907년경에 뒤피는 인상파의 불연속적인 색채 표현을 버리고, 야수파의 강렬한 색조를 추구했다. 1908~09년에 그는 조르주 브라크 및 에밀 오통 프리즈와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차분한 색조와 그들이 강조하는 형식적 구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한동안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대상을 개략적인 선으로 묘사하고 밝은 색채를 하얀 바탕 전체에 엷게 칠하는 것이 특징인 독특한 화풍을 개발했다. 그는 판화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었고 패션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와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직물에 무늬를 찍기 위한 목판화를 도안하게 되었고, 자신의 공장까지 세웠다. 1920년 뒤피는 자신이 만든 직물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에 용기를 얻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태피스트리에 손을 댔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그는 다시 그림에 몰두하여 유명한 니스(1927), 불로뉴 숲(1929), 도빌(1930) 등을 주제로 한 연작을 남겼다.
작 가 명: 르네 프랑수아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프랑스 조각가)
작 품 명: 입맞춤
제작년도: 1898-1918
작품크기: 높이25.5cm
작품재료: 청동
추 정 가: ₩700,000,000~1,000,000,000
낙 찰 가: ₩770,000,000 (2007년 09월 04일 D옥션)
19세기 후반 미술계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회화 분야에서 마네와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가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같은 시기, 조각 분야에서도 천재 예술가 한 명이 새롭게 근대 조각의 길을 열고 있었다. 미술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이지만, 미켈란젤로 이후 최고의 조각가로 꼽히는 로댕은 근대 미술에서 조각의 위상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그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레의 <만종>과 같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 미술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중세 프랑스 조각으로부터 많은 자극과 감화를 받았으나, 그가 추구한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은 18세기 이래 오랫동안 건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훌륭하게 성취시켜 회화의 인상파와 더불어 근대조각의 전개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 이후의 조각계는 직간접으로 모두 로댕을 출발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댕의 작품 가운데 《세 그림자》 《이브 흉상》 《영원한 청춘》 등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http://nalrari.tistory.com/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