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길을 선택했다. 식물은 자기 위치를 선택했다. 그냥 거기서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는다. 벌과 새들을 통해 길을 걷는다. 옆에 식물들은 천천히 걷지 않고선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보는 데에서 열린다. 굽이 돌아가는 강물처럼 천천히 흐름이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삿갓나물과 우산나물은 천천히 우산을 편다. 햇빛과 빗물을 가린다. 우산을 넓게 펼쳐 태양의 열을 많이 받아야 한다. 큰 나무들 밑에서 살기에 햇빛 보기가 힘들다. 자기 몸보다 잎을 넓게 하여 광합성을 만든다. 살기 위해선 유전인자가 유리한 쪽으로 발전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산길에서 야생화들이 많이 보인다. 산속 깊은 곳에선 잡나무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잡나무들을 제거하면 몇십 년 묵혔던 뿌리에서 새싹이 올라온다. 긴 시간 동안 잠을 자다가 햇빛이 비치면 잠을 깨운다. 우리가 보기에는 긴 시간이다. 그러나 식물들은 한나절도 안 된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빛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잘 듣고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가 된다. 길가에 식물과 이야기한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면 지나온 삶이 이해된다. 식물과 같이 걷는다. 동행하는 시간이다. 삿갓나물과 우산나물은 한데 모여 산다. 어느 날 갑자기 우산들이 펼쳐졌으니 보기에도 참 좋다. 이제 참나무들이 잎이 막 돋을 때다. 하늘의 공간이 약간 열려있어 지상에서 가장 낮은 우산 나물은 햇빛을 그런대로 볼 수 있다. 우산나물과 삿갓나물은 잎 모양이 비슷하나 잎 끝에서 약간 다르다. 잎끝이 뾰족한 것이 삿갓나물이고 두 갈래이면 우산나물이다. 삿갓나물은 독성이 있다고 한다. 연한 봄 산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태양의 빛이 지는 곳이 점점 서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식물 위에 빛이 도달하는 시간은 우리가 보는 시점과 같다. 현재의 순간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경험과 생각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착한 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기 환경에서 순응하고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쓸 뿐이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는다. 시절이 오면 벌과 새가 와서 씨앗을 나르고 시간이 멈춰선 그 자리에서 생명이 돋는다. 지구의 본성은 공유다. 하늘을 나는 새는 자기 땅이 없다. 그러나 자유롭다. 지상에서 서로 연결되는 생명들은 공유하고 있다. 생각과 이해를 뛰어넘어 지구의 본성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비로운 감각의 새순을 펼쳐놓았다. 아름다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굽이 돌아가는 강줄기처럼 시간이 보인다.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바다로 천천히 흐른다. 지구의 중력장이 보인다. 시간이 되면 우산이 펼쳐진 곳에 나의 눈빛이 있다. 내 안에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곳에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