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단어로 사람 죽이는 법; 마스터키워드 >
단어 하나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있다. 손끝 하나 안 대고 사람을 발작하게 만들기도 하고 생각을 정지시켜 좀비처럼 만들 수 있다. 단어 하나로 사람의 혼을 빼내고, 영혼 없는 육체들을 광장으로 끌고 나가 좀비처럼 몰려다니게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마스터키워드(Master key word)라고 말하고 싶다. 만능열쇠를 말하는 ‘마스터 키(Master key)’와 어떤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말을 뜻하는 ‘키 워드(Key word)’를 합성한 말이다. 마스터키워드는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 언어이고 종교 언어다. 정치와 종교의 공통점은 각자 자기의 마스터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정치 마스터키워드
2차대전 중 나치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인종주의를 수단으로 삼았다.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인종주의는 파시즘으로 흘렀다. 나치즘은 인종주의와 파시즘이 결합된 사상이다. 히틀러는 나치즘을 실현하고 인종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유대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치 치는 ‘유대인’을 불가촉천민처럼 취급했다. 의복에 유대인을 표식하는 다윗의 별을 달고 다니도록 했고, 게토라는 유대인 구역에 격리시켰으며 홀로코스트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은 단 하나의 단어였다. 히틀러는 한 민족을 박멸시킬 수 있는 기술을 한 단어로 만들었다. ‘유대인’은 히틀러의 마스터키워드였다.
1950년대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내에 암약하고 있는 소련의 간첩들이 많이 있다고 선포했다. 그는 의회에서 페이퍼를 흔들며 이것이 간첩의 명단이라고 떠들었다. 그 후로 미국에는 ‘공산주의’와 ‘간첩’이라는 단어만 들이대면 혐의가 없어도 과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추방하거나 공직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매카시가 말한 것은 거짓이었고 그가 흔들었던 페이퍼는 백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카시가 던진 하나의 단어 ‘간첩’은 그 어떤 지성인이나 기자들조차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반지성적이고 반인륜적인 파시즘의 형태를 매카시즘이라 부르게 됐다. 매카시는 많은 무기를 사용한 게 아니라 오직 하나의 단어만 사용했다. 매카시는 한 단어로 그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간첩’은 매카시의 마스터키워드였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때마다 보수 진영에서 진보 진영을 향해 던지 하나의 단어가 있다. ‘빨갱이’라는 단어다. 이 말은 간혹 ‘종북’, ‘좌파’, ‘퍼주기’ 등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동일한 기의를 갖는다. 보수는 이 한 단어로 정치를 효과적으로 즐긴다. 가성비가 매우 좋은 단어다. 이 단어 하나면 노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모이게 할 수 있고 투표장으로 몰려나오게 할 수 있다. 한 단어면 된다. 한 단어로 생각을 정지시키고 좀비처럼 몰려다니게 할 수 있다. 윤석열도 그렇게 대통령을 만들었다. 한 단어였다. 윤석열의 능력이 아니라 이재명에 대해 ‘형수 욕설’, ‘전과 4범’, ‘대장동’ 같은 단순한 단어들이었다. 이것들은 국민의힘이 공들여 만들고, 언론이라 부르는 도적떼가 퍼뜨린 마스터키워드였다.
# 종교 마스터키워드;
목사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단어가 하나 있다. ‘이단’이라는 것이다. 종교가 보수화된 사회에서는 유난히 이단 시비가 많다. 한국 개신교회가 그렇다. 이런 풍토에서는 소위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교단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이단’의 혐의를 받게 된다. 그래서 신학교 교수들은 자기의 학문을 자유롭게 강의하거나 저술하지 못한다. 교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1992년에 감신대의 변선환 교수가 교단 정치에 의해 파문당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자기검열에 게으를 수 없었다. ‘이단’의 혐의를 받지 않으려면 말조심해야 한다. 특히 목사들이 설교할 때, 삼위일체를 의심하게 하거나, 동성애를 긍정하거나, 진보 정치를 옹호하는, 낌새라도 보이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했다. 신학자와 목사의 학문과 신앙 양심을 죽이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단 하나의 단어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이단’이다.
50대의 남자 집사 한 분이 우리교회에 왔다. 그는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다. 교회 문제 때문이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60대의 여성인데 식당을 경영하다 흰돌산기도원에서 은혜를 받고 신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대전의 아무개 정규 신학대학을 나왔다고 한단다. 내가 그 신학교를 나와서 그녀가 신학교를 다녔다는 해의 전후를 따져 여럿에게 물어보니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장로교 계통의 비인가 신학교를 나온 것 같다. 교회는 장로교 간판인데 교인들이 물으면 윤석전 목사 교단(침례교)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성 목사가 과도하게 헌금을 강요하여 교인들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 교인에게 개인택시를 팔아 헌금하도록 강요하며 아파트를 팔기를 종용하여 그것으로 헌금을 강제하는가 하면 교인들의 자녀들이 학원을 보내는 것조차 담임목사의 허락을 받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대상에서 불호령을 내려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이다. 그 여성 목사는 교인들의 영혼과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이혼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부인 집사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담임 목사를 믿고 있었다. 완전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에 의하면 그 여성 목사의 모든 목회적 행위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부인 집사는 자기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가 구원해야 할 영혼 중에는 고통받고 있는 남편의 영혼은 없었다. 담임 목사의 영혼 구원에 관한 목회에 반감을 가진 남편은 사탄일 뿐이었다. 그 여성 목사가 교인들을 지배하는 데 많은 도구나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단어였다. ‘영혼 구원’이라는.
# 미개한 사회일수록 마스터키워드에 잘 열린다
누군가를 사로잡는 마스터키워드, 그것은 사람을 살해하는 아주 강력한 도구다. 나는 그런 살인 도구를 자주 본다. 그런데 그것들은 정의와 평등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일테면 페미니즘(여성), 소수자, 인권, 반려동물 같은 것들이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것들이 중심이 되고 목적이 되어 다른 가치들을 파괴해도 된다는 논리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은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혐의나 증거도 없이 심증이나 느낌만으로 누군가를 범죄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인권이나 평등이 아니라 ‘여성’을 마스터키워드로 만드는 것이다. 인권을 위해 인권을 짓밟아도 된다는 논리나,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보편적인 가치를 도외시해도 된다는 논리, 반려동물을 위해 이웃의 삶을 방해하거나 혐오를 가져다주는 행위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 이것들이 사용하는 가장 큰 무기는 마스터키워드다.
미개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마스터키워드에 잘 열린다. 그래서 조중동과 대형교회 목사들은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쏟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