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칠 줄 모르고 뿌려댑니다만 보슬보슬 정도라서 두 세시까지는 우산없이 맞으며 걷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스카이워터쇼(워터서커스)를 갔다가 세화오일장에 놀러가려 계획을 세웠는데 스카이워터쇼 공연시간이 잘 맞질 않아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연장 바로 옆에 성불오름이 있어서 날만 좋으면 한바탕 올라갔다 내려와서 쇼관람하면 딱이겠는데, 비때문에 오름행은 무리입니다.
차를 돌려 세화오일장으로 갔더니 어찌나 차가 많은지 주차할 곳이 없어 세화해수욕장 초입 주차장까지 갔습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좀 걸었습니다. 우리는 방파제 위를 걷는데 준이는 여전히 완강히 거부...
세화오일장에 오니 태균이 떡볶이먹을 생각에 살짝 흥분하며 동생들 데리고 장터 초입 분식집으로 들어갑니다. 세 녀석들 정말 잘 먹습니다. 이 집 떡볶이맛이 태균이 입맛에 잘 맞는지 꽤 좋아합니다.
신나게 먹고는 시장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생선도 좀 사고... 같이 장보면서 세 녀석들 조금이라도 이것저것 눈에 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가까운 곳에 만장굴이 있으니 거길가면 딱이겠는데 2025년까지는 폐쇄입니다. 개발보다는 휴식년을 갖기를 바라며 제주도 특유의 동굴지형 또한 세계유산감입니다.
만장굴 대신 선택한 것은 레일바이크. 오후부터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 안개도 자욱해서 레일바이크 타면서 용눈이 오름과 주변 목장의 시원한 풍경을 제대로 못보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녀석들, 레일바이크의 의미는 열심히 바이크페달 돌리는 것이라 진이의 열성적인 페달돌리기는 상장감입니다.
레일바이크 타면서 안전벨트를 꼭 하라고 했는데 태균이가 안했길래 그거 채워주려다가 (배를 다 커버하지 못해 못한 것이었는데) 그만 휴대폰이 떨어지면서 철로로 떨어져 버리는 사태발생. 그것도 모른 채 사진찍어 주려다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는 눈 앞이 캄캄!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신용카드까지 끼워져 있으니 큰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잽싸게 대략 잃어버린 구간을 설명하며 신고하자 얼마 후 연락이 왔습니다. 잘 찾았노라고... 그 때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시라도 서두른 흔적이 있으면 이렇게 일이 벌어지니 서둘지 말 것!이 오늘의 교훈입니다.
레일바이크 안에는 조그만 동물원이 있어 아이들 보여주기 딱인데 속절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일부만 돌아보고... 동물이라면 기겁하는 준이는 그럼 비 안맞게 안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싫어만 연발하면서 비를 맞고 있으니, 이럴 때 준이 대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디를 가든, 가자고 하면 일단 따라나서고 보는 태균이와 진이가 아주 고맙죠.
비는 내려도 기념사진 남기기는 해야 되겠지요. 카메라만 들이대면 알아서 척척 폼잡는 진이는 사진모델 달인입니다.
간만에 찾은 바닷가. 진이에게 바다를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고 하니 맑은 바다보기는 다음 주로 미뤄야 될 듯 합니다. 빗줄기 속 바다풍경과 방파제에 부딪쳐 멈춰있는 차 속의 우리를 향해 거세게 뿌려대는 파도의 잔재들이 기분좋은 거침을 느끼게 해줍니다.
진이녀석 내일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기대하는 듯 합니다. 진이는 늘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고, 그리고 해야할 행동을 일일이 지시해 주어야 할만큼 자기확신이 아직 약한 상태입니다. 시각처리 문제가 비슷함에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고 자기고집과 주관으로 똘똘 뭉친 준이와는 타고난 성정이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준이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거니와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그리고 마음을 주지도 않지만 (주는 방법을 모른다는 게 적확합니다), 진이는 불안하고 둘 곳없는 마음에다 태균이라는 커다란 신뢰상대를 하나 새긴 듯 합니다. 태균이가 하려는 것, 하고 있는 것 모두 진이는 하고 싶어합니다.
태균이가 베트남 왕복 비행기를 타고나서는 아무래도 중력감에 이상이 생겨, 돌아와서는 며칠 락킹rocking 몸을 좌우 혹은 앞뒤로 흔드는 증세가 심했는데 진이가 이것도 똑같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대략 중력감이 맞추어졌는지 락킹행동이 거의 보이질 않으니 진이도 전혀 하질 않습니다. 준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진이가 눈여겨 보지 않으나 태균이는 진이에게 자기 감정을 주고싶은 절대적 친근자이자 인플루언서인 듯 합니다.
밤에 둘이 이층에 올려보내서 재우니 방에 놓인 침대는 진이가, 거실 매트리스에서는 태균이가 자는데, 잠들기 전 진이가 태균이 옆에 붙어서 하염없이 만지다 침대로 가곤 합니다. 태균이로 인해 진이가 마음깊숙이 들어가있는 불안감과 위축감을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깊어지는 밤에 더욱 심해지는 빗줄기에다 계속 멈추질 않는 천둥소리가 아련하게 계속됩니다. 머리를 아파하면서도 계속 꺽꺽거리는 웃음소리를 여기저기 흘리면서 나좀 봐주세요 하던 준이마저 조용해지니 아련한 천둥소리만이 남습니다. 바람에 세차게 뿌려대는 빗줄기 소리이겠지만... 꼭 천둥소리같습니다. 밤조차 아까운 제주도에서의 시간들입니다.
첫댓글 휴대폰 분실 깜놀입니다. 다시 찾을 때 까지의 불안이 느껴집니다.
진이는 태균씨와 오랫동안 같이 있을 수 있음 좋겠네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여행합니다.🍒👍🤠
대표님의 글을 보고있노라면 굉장한 바쁨 속에서도 여유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건장한 세 친구들 건사하는 것이 한없이 힘들것 같은데도 너무나 여유로워 보입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여유의 분량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 중이라 볼 때마다 그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