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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3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장 14절-17절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
한 남성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 이 말을 각종 패러디에 쓰이는 등 남다른 인기를 구가했던 문구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누군가의 냄새를 다른 사람에게서 맡을 수 있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MBC ‘실험 쇼 진짜? 진짜!’ 에서 재미있는 실험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방송에선 먼저 ‘실험 쇼’의 제작진은 남자 7명과 여자 7명으로 구성된 실험대상을 모집하고 1박 2일 동안 합숙을 하면서 셔츠에 땀 냄새가 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 입었던 옷을 벗게 하고, 섞어 놓은 뒤 냄새만으로 자신의 옷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결과는 남성은 절반이 자신의 옷을 냄새로 알아냈고, 여성의 경우는 모두가 정확하게 자신의 옷을 집어냈습니다.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으며, 후각으로 구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어서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실험은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여성 실험 대상자들에게 남성 실험자들의 체취를 맡게 하고 호감 도를 측정하였습니다. 맥박과 뇌파를 측정하면서 관찰해 보니 땀 냄새가 심하게 풍기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호감 도는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쾌한 냄새에 대해 몸은 맥박이 빨라지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고, 좋은 향기를 가미했을 때는 다시 마음이 안정되면서 두뇌에서 자연스럽게 알파파가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이성과의 첫 대면에서 외모뿐만이 아니라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는가? 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명백하게 보여주는 결론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냄새를 바꿔라”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화장품에서 나는 향기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는데, 과연 어떤 향기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고 계십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떤 향기를 나타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향기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승리를 로마 군대의 승리의 행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승전한 로마 군대와 병사들은 향을 피워 거리에 온통 향내를 퍼뜨리면서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 시가지로 행진하여 들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우리도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우리가 각처에서 나타내야 할 것을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어떤 것일까요?
사탄의 권세와 싸워 승리하고 난 후, 개선하면서 피우는 승리의 향기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한 후에 피우는 감사의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냄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향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향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강아지도 퇴근하는 주인의 냄새를 멀리서도 맡고 그토록 기뻐하며 빙빙 돌면서 반기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날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강아지가 주인을 사랑하는 것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벌써 잊었는지? 정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되었는지? 별로 감동이 없고, 무덤덤하고, 시큰둥하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41절에서 44절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후,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문안하러 찾아왔습니다. 그때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던 세례요한이 너무 기뻐서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증거 합니다.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우리도 하나님을 생각만 하여도 너무나 좋아서 기뻐 뛰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고, 별로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간절한 모습을 우리를 통해서 볼 수 없다면 누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도 기뻐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만 해도 감격하여 눈물 흘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기 전보다 예수님을 만나 후에는 더욱 밝고 아름다운 모습, 평안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모습과 변화된 인격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이웃을 사랑하는 향기가 풍겨야 할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말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나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나 공히 그리스도의 구원의 향기를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만 뭉쳐 다니며, 희희낙락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만 구원의 기쁨에 젖어 있거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북경 찬양의 교회를 섬길 때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2년 동안을 함께 신앙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신 하태복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한국 국제학교의 미술 선생님이었습니다. 하 집사님은 너무나 자상하고, 온유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늘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에 관심이 많지 않은 학생이 작은 실수를 하여 선생님 앞에 불려가 섰습니다. 평소에 크고 작은 말썽을 피우는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선생님 앞에 왔으니 많이 혼이 날 줄 알고 바짝 긴장해서 선생님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혼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학생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어리둥절한 학생은 집에 와서 부모님께 이 일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미술 시간이 좋아졌습니다. 하 선생님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꾸중을 듣기는 고사하고,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신 선생님을 그 학생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김미정 집사는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불쑥 학원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김 집사가 덩치가 커다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놈 나이가 몇 살입니까?” “일곱 살이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큰 놈을 품에 안고 계세요?” “이 아이 어머니께서 전화가 하셨는데요. 멀리 계셔서 바로 오지 못한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졸리다 해서 그동안 재워 주려고요.”
커다란 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는 김 집사에게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가 풍겼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한 번도 주님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의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서로 사랑하는 향기가 풍겨야 할 것입니다.
12절에서 13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대하여 열렸으니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드로아에 가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에 관한 소식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교회 소식이 궁금하여 전도의 기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해 마케도냐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아주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익산 신광교회의 담임목사이신 안경운 목사님께서 부목사이신 이연길 목사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후계자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부목사들이 시기하므로 담임목사님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목사님은 담임목사님을 위해서 이 교회를 사임하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목사님은 서울 동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서울로 가셨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은 이 목사님을 너무나 사랑한지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청빙한 교회가 아주 좋은 교회이고, 이 목사님의 장래를 생각해서 할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습니다. 몇 번이나 이 목사님을 뵈러 서울에 가려 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목사님은 세미나 때문에 이 목사님이 공부를 했던 미국의 루이빌 신학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목사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얼른 세미나를 끝내고 강의실 앞의 잔디에 앉아서 눈물 흘리면 잔디를 쓰다듬었습니다. “사랑하는 이 목사님이 이곳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나를 생각하며 고국을 향하여 기도했겠지!”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유일하게 남들이 인정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이며, 성도의 모습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향기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35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 향기를 피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이 되십시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강하게 났습니다.
나그네가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라고 물었습니다.
진흙은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그네가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라고 묻자,
“그것도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너는 뭐냐?”라고 묻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그네는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진흙이 대답합니다.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분을 우리들 몸과 마음과 영혼에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십년을 심었던 우리는 지금 어떤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향기는커녕 악취가 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손가락질 받는 그런 사람이라면 주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원주 교도소의 한 자매를 접견하려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35분 가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내려 경부선 터미널로 올라가는데 한 빵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맛있게 구운 빵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갑자기 입에 침이 돌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빵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에서는 “후와링카”라고 하는 껌과 캔디가 있습니다, 가격은 126엔(한화로 1300원)입니다.
이 껌을 씹고 난 후 1-2시간, 그리고 캔디를 먹고 난 후 3-4시간 동안 몸에서 딸기 향과 바닐라 향이 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까? 작은 예수가 되려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려면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향기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 향기를 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향기를 발하게 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만방에 퍼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몇 달, 몇 년,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향기는커녕 악취만 난다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냄새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로 자신을 가꾸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얼굴과 이름보다도 자신만의 향기로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 향기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원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그 향기의 유효기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입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하나님의 용사라 불리는 글로벌 찬양의 교회 형제자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