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세계 병자의 날)
교회는 해마다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하였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셨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이 병자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시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쁜 생각이 그 사람을 더럽히고 망치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았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0,1-10
그 무렵 1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2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3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그가 몰라서 여왕에게 답변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4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5 또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신하들이 앉은 모습,
시종들이 시중드는 모습과 그들의 복장, 헌작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6 여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임금님의 업적과 지혜에 관하여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은 과연 사실이군요.
7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직접 보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8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9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여왕은
금 백이십 탈렌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음, 마음, 참으로 기묘하구나. 넓을 때에는 온 세상을 품을 듯하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세울 틈이 없으니 …….” 이는 선종의 한 승려가 우리 마음보를 두고 읊었다는 시입니다. 실제로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고는 합니다. 기분이 좋다가도 길을 걷다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불쾌해지고, 뭔가 수가 틀리면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조차 심드렁하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바깥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5)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의 불의와 악행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고, 그 분노가 때로는 우리를 불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 시대에도 세상에 지금처럼 불의가 만연하였지만, 그것이 우리 죄에 대한 완전한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주님을 닮은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의 스바 여왕처럼 참된 지혜를 얻고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당장 눈앞에 변화가 없더라도, 주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는 삶이 곧 지혜이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복음 환호송).(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상대방이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동창 신부님이 달라스에 왔습니다. 저는 주로 걸어 다니기에 차를 쓰도록 했습니다. 신부님은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운전하였습니다. 차에 핸드폰 거치대가 없었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차의 내비게이션과 블루투스로 연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어려워했습니다. 차분하게 차를 세우고 블루투스를 연결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차량의 내비게이션과 핸드폰의 내비게이션이 연동되었고, 신부님은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았으면 여전히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낯선 곳에서 운전할 뻔했습니다. 공항에서도 그랬습니다. 나올 때 북쪽으로 나오면 사제관 오기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그냥 내비게이션만 보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공항이 복잡하여서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도 좋지만 북쪽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는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서 나올 때 조금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늘 당부하였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늘 공손하게 대하세요. 술을 적당히 마시세요. 어디 다녀오면 발을 꼭 씻고 자야 합니다.” 당연한 말인데 잔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하느님 품으로 가셔서 더 이상 제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전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동창 신부님이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준비에 대해서도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휴가왔으면 조용히 머물다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친구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교우들이 잘 알아서 할 거라면 에둘러서 불편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상대방이 잘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을 이루려는 욕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다음으로 훌륭했던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하느님을 위한 성전을 건설하였습니다. 다윗이 통일했던 왕국을 굳건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던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뜻대로 잘 다스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지혜를 발휘하여 거짓된 엄마와 진짜 엄마를 구별하여 아이가 진짜 엄마의 품으로 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나온 것처럼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탐복하였습니다. 소문으로 듣던 솔로몬의 지혜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감탄하였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많은 선물을 솔로몬 왕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로몬의 말년을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근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마음에는 교만과 허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인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망각하고, 자신의 지혜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솔로몬의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만과 허영이라는 마음에서 솔로몬의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 시기, 질투, 원망, 분노, 탐욕이 나오고,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넘어지는 인간의 역사를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아담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믿었습니다. 카인은 하느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질투와 분노를 키워 결국 형제를 죽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불평과 원망으로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인간은 언제나 길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겉을 꾸미는 데서 멈추지 말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살피라고 하십니다. 참된 지혜는 많은 정보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기와 질투 대신 감사로, 원망과 분노 대신 인내로, 욕심 대신 절제로, 무례함 대신 친절로, 자기중심 대신 나눔과 겸손으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우리의 걸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님, 제 귀를 열어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제 마음을 비워 교만이 아니라 겸손을 담게 하소서. 제 삶이 말이 아니라 열매로 복음을 증언하게 하소서.”
<내가 그러하다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5)
불신은 없다
내가 믿음이라면
믿음은 없다
내가 불신이라면
절망은 없다
내가 희망이라면
희망은 없다
내가 절망이라면
미움은 없다
내가 사랑이라면
사랑은 없다
내가 미움이라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속에서 끌어 나오는 것이 바로 ‘화’, ‘분노’입니다. 사실 분노가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곧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누가 인간의 존엄성을 박해하는 불의한 행위를 한다고 했을 때는 분노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외의 분노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도 습관적으로 자신의 화를 못 이겨 분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분노는 신체 기관에 해를 입히기 쉬운데, 첫 번째가 바로 심장이라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자주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한 사람에 비해 동맥경화에 걸릴 확률이 거의 3배나 높다고 합니다. 감정이 격렬하게 일어날 때, 우리의 혈압은 빠르게 상승하고, 혈소판이 뭉쳐져, 동맥경화에 걸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분노는 식욕 저하를 초래하여 소화기 계통에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분노는 간에 영향을 끼쳐 간을 불편하게 하고 간과 쓸개의 불화를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쩌면 분노는 남에게도 해를 입힐 수 있지만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먼저 정말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라면 그것은 병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고, 그 이외의 경우는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더불어 기도생활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도우심에 힘입어 분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파스칼 1세 (Paschal 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824년
같은이름 : 파스칼리스 파스깔리스 빠스칼리스 빠스깔리스
로마(Roma) 사람 보노수스(Bonosus)의 아들인 성 파스칼(Paschalis)은 라테라노(Laterano) 학교에서 수학한 후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 6월 12일)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 인근 성 스테파누스 수도원의 아빠스로 있던 817년 1월 24일 교황 스테파누스 4세(Stephanus IV)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Pius)는 조약을 통해 교황의 관할권을 존중하였지만, 그의 아들 로타리우스(Lotharius)가 즉위하면서부터 교황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윽고 로타리우스는 교황의 관할권과 이탈리아 내에서의 정치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는 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였고, 동방 교회에서 벌어지는 레오 5세 황제의 성화상 파괴 정책을 끝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로마의 여러 성당을 재건하거나 신축하였고 많은 유해들을 카타콤바에서 성전으로 옮겼다.
그의 이름은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다.
성 다티보 Dativu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비티나(Abitina)
활동연도 :^+304년
같은이름 : 다티부스, 다띠보, 다띠부스
성 사투르니노 (Saturninu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비티나(Abitina)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사투르니누스, 사뚜르니노, 사뚜르니누스
성 암펠리오 (Ampeliu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비티나(Abitina)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암펠리우스, 암뻴리오, 암뻴리우스
성 펠릭스 (Felix)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비티나(Abitina)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뻴릭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
(Saturninus) 사제와 성 다티부스(또는 다티보),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Felix)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성 그레고리오 2세(Gregory I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731년
같은이름 :그레고리우스
669년 로마(Roma)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젊어서부터 교회 일에 종사하며 두각을 나타내 차부제 때 이미 교황청 재정을 관리했다.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9월 8일) 교황 때에는 도서관장직을 맡는 등 주요 직책을 맡아 그의 학덕과 지혜가 널리 알려졌다.
그 후 그는 710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교황을 수행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에게 행한 그의 대답으로 더욱 유명해졌으며, 이때 그는 황제로 하여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715년 5월 19일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성직자들의 규율 정비와 이단 배척이었다.
그는 사라센의 침략을 대비하여 로마 주변에 성곽 복원사업을 시작하였고, 교회와 병원 그리고 몬테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포함하여 수많은 수도원의 재건사업을 펼쳤다.
또한 독일인들에게 선교사를 파견하고, 황제가 교회에 간섭치 말도록 조처하는 등 교황권 확립에도 큰 공을 남겼다.
727년에는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고, 레오 3세 황제의 지원을 받던 성화상 공경 금지를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