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 중인데 사흘째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아침에 집을 나선다. 22일 일요일엔 제두봉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기념오찬회를 시내 제일 오피스텔 19층에서 하였다. 자녀가 잘 자랐고, 동기들의 정이 따스해 보였다. 다른 사람 번거롭게 않으시며 당신의 하고 싶은 말씀은 하신 깔끔한 자리였다. 직원들 나중에 나오며 차 마시러 올라가는 걸 그냥 먼저 오고 말았다. 어제 월요일엔 연수원에 신규교사 직무연수의 생활지도 강의를 두 시간씩 두 번 했다. 75명씩이 한 교실과 100강당에 앉아있는데, 이건 상담 사례 중심의 이야기를 하라하는 요구와는 다르게 완전히 원맨 쇼 강의를 하라는 거였다. 어렵다. 인사와 소개, 시간 운영 계획 안내, 생활지도의 개념 이해, 초등학교 학급에서 볼 수 있는 문제 행동 유형 이야기, 학생관, 반대합일애 등의 메모가 있다. 네 시간 끝나고 구내 식당에 갈까하다가 그냥 나와서 내려오다가 소쇄원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올라갔다. 비 온 맑은 물이 소리내며 흐른다. 보기도 듣기도 좋다. 한참을 가부좌하고 앉아있다가 물가에 있다가 사진을 찍어보다가 내려온다. 제월당 광풍각을 본다. ‘애양단’도 돌에 새겨 담에 쌓았다. 여기는 햇빛을 만나는 곳, 여기는 바람을 만나는 곳, 여기는 달을 만나는 곳 정해 놓고 놀다가 심심하면 하인 보내 친구를 청해 놓고 대봉대에서 친구 들으라고 거문고를 켰을까? 대숲길 올라오는 친구는 그 소리만 듣고도 벗의 마음을 헤아렸(지음)을까? 교대 건너가는 계림동 옛 철길가의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집에 오다. 오늘은 영광 대마초의 지아신 교장 정년퇴임식에 망설임 끝에 갔다. 사람노릇 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교육전문직에도 7년여를 계셨다지만 정년을 학교에서 하시니, 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아기자기한 퇴임식이었다. 오병인, 신춘자, 박영민, 윤이중 등의 교육장과 박갑석, 조두정 전 교육장님도 왔다. 영광 관내에서 퇴임하신 교장 선생님들도 오셨다. 인사는 어색하다. 정년 퇴임식의 조건을 다시 생각 해 본다. 건강, 가정의 화목, 자녀의 바른 성장, 적당한 지위와 이력, 알아주는 벗과 선후배, 옛 제자 --- 김종진과 임점숙 등은 사무실에 들르라고 한다. 옛 군남 선생님들과 앉아 점심을 먹고 얼른 나온다. 깃재 너머에서 고성산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오른다. 시멘트 길은 바로 끝나고 풀이 우거진다. 한참을 쿵쾅대며 오르다 약수터 부근에서 차를 멈추고 옷을 갈아입고 걷는다. 1시 20분 쯤. 길은 보이는데 복분자인지 산딸기인지 가시 넝쿨이 살을 긁는다. 참나무 숲이 좋다. 10여분 오르니 작은 묘지가 나타나며 눈이 트인다. 조금 더 오르자 고창과 영광의 너른 들이 찌푸린 하늘아래 펼쳐져 있다.
삼계 농공단지와 저수지 너머로 멀리 광주도 아스라이 구름 속에 가물하다. 깃대봉 정상은 543미터인가? 머무르기 어려워 조금 더 지나가 매봉인가 매암인가 바위위에 한참을 앉아있다. 내려오다 부부 산행객을 만나고 바위솔과 구슬붕이 같은 꽃을 찍으며 긁히며 차 있는 곳까지 오니 2시 40분 쯤이다. 가을 맑은 날 다시 서해와 저 고창 대산의 붉은 밭을 보러오기로 하며 고개를 내려온다.
사창에서 임곡 쪽 포기하고 장성으로 길을 잡았다. 황룡중학교 앞을 지나 하얀 죽창으로 서있는 동학 전적 기념물은 그냥 지나쳐, 필암서원에 간다. 확연루를 본다. 확연대광이라던가? 확연무성(휑하니 비어있어 아예 성스러울것조차 없소)이라던가? 빙 둘러보다가 ‘선조의 숨결을 찾아서’라는 답사문집을 하나 줍는다.
마을을 나와 축령산휴양림을 찾아간다. 헤매이다가 추암 관광농원 지나 영화마을 넘어가는 쪽 고개에 차를 세운다. 3시 45분, 조림자인 춘원임종국의 기념비를 본다. 의지의 사나이다. 무덤 쪽으로 올라 조림 성공지를 찾는데 한참을 올라가도 조림지의 보행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산 꼭대기까지 올랐다. 거센 풀과 가시덤불 때문에 항복을 하며 정상에 닿았다. 산불 감시초소가 크다. 감시초소 안테나 옆 풀 숲에 노랑 상사화가 소박하다.
문수산 621미터다. 4시 5분. 뭐야 20분에 올라온 거야. 내려오며 현석이와 모레 백운산행을 약속한다. 내려와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들을 더 볼 수 있게 길이 보인다. 차를 끌고 영화마을 쪽을 보고 숲으로 들어선다. 삼나무와 편백이 하늘을 찌른다.
다시 걸으러 오자고 다짐한다. 그의 노고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지만 정말 그는 행복했을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나 알아주는 친구나 뭐 이런 것에 초연했을까? 통나무 집 산림욕장 쪽으로 내려오다. 서삼 소재지에서 캔 맥주 하나를 사 마시며 운전하다. 2004. 8. 24. |
첫댓글 산행기 고맙습니다. 드뎌 우리 회원중 산행기 제대로 쓰신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자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