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4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나란히 형사 범죄의 수배자 목록에 올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경우, 오는 20일 공식적으로 임기가 끝난다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난 3월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계엄령으로 무기한 연기됐고, 이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도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4일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1978년 1월 25일 크리보이 로그에서 태어난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젤렌스키는 러시아 연방 형법 조항에 따라 수배 중'이라고 올렸다. 형사 사건으로 입건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뒤이어 포로셴코 전 대통령도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러시아 내무부 측은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입건 혐의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2014년~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지낸 포로셴코는 현재 자신이 이끄는 유럽연대당(포로셴코 블록의 후신)의 최고라다(의회) 의원이다. 지난해 10월 총선이 무산되면서 의원들의 임기도 자동 연장됐다.
그는 '유로 마이단'(반러 대규모 시위) 사건으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2014년 2월 말 러시아로 망명하고, 몇 달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쿠데타로 본다. 그의 집권에 반대하는 친러 세력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돈바스,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하자,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은 무력 진압을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유혈 분쟁의 시작이다.
러시아 수배자 명단에 오른 포로셴코 전대통령/사진출처:rbc
포로셴코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갈 계획이다. 친서방 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및 나토(NATO)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2019년 결선투표에서 포로셴코 대통령을 꺾고 당선된 젤렌스키의 대통령 공식 임기는 오는 20일 끝난다. 러시아는 이를 겨냥해 '젤렌스키 대통령 흔들기'의 일환으로 그를 수배자 명단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수배자 명단에 오른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rbc.ru
러시아의 '젤렌스키 흔들기'는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이미 여러차례 제기됐다. 대표적인 게 제 2의 유로마이단 계획이다. 러시아가 반(反) 젤렌스키 정치세력을 움직여 그의 임기 연장을 거부하고,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을 의회 의장에게 이양할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마이단 광장' 시위를 조직중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군사 전략을 놓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 경질된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지지 세력과 포로셴코 전 대통령 등 일부 야당 세력도 '공식 임기 종료후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제2의 유로마이단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들이 주축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딤 스키비츠키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 부국장(상황실장)도 2일 공개된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5월 위기설'을 제기하면서 "5월 20일로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는 젤렌스키의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러시아의 허위 정보 캠페인도 불안 요인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내부 불안 정세를 파악한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형사 범죄' 프레임을 덧씌워 '임기후 정통성'에 타격을 가하고, 반 젤레스키 세력에게 '퇴진 요구 명분'을 주려고 한 의도가 명백하게 엿보인다.
러시아 내무부는 대통령 두 사람 외에도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우크라이나 국방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와 알렉산드르 쉴라파크 전 재무장관, 스테판 쿠비바 전 중앙은행 총재를 3일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올레슈추크 우크라이나 공군사령관이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지난해 4월 말에는 모스크바 법원이 키릴 부다노프 군정보총국(GUR) 국장을 '테러 사건' 혐의로 궐석 체포한 바 있다. 2022년 가을 크림대교 폭파 사건을 배후 지휘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