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구차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구차苟且’란 말이 있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
‘떳떳하지 못하고 답답하고
좀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구저苟菹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菹, 채소 절임 저)의 자에서
‘풀 초’가 빠지고.
차(且, 버금 차)로 바뀐 것이라 한다.
‘구저’란 신발바닥에 까는
지푸라기를 말하는 것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는
의인을 살리기 위해
천리길을 가는 그의 신발이 닮아서
발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나 애처로워
볏짚을 모아 그의 신발에 깔아주었다.
이 일을 보고,
사람들은 모멸을 감수하고
적은 동정을 받는다 뜻으로,
“구저 구저苟菹”하다가, 세월이 흘러
‘구차苟且’가 되었다는 것이다.
“재물 앞에 놓였을 때
올바른 방법이 아니면
구차하게 얻지 말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마라.
다투게 되어도 이기려 하지 말고,
재물을 나누어도 많이 얻으려 하지 말라.”
『예기禮記』
나의 모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힘들게 살자
또 하나는 돈을 전제호 하지 말자.
나는 당장 굶어 죽어도
구차하게는 안 살기로 맹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회는 구차함이
너무나 당당하다.
자신을 잘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선동을 하고, 심지어
이간질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 한 세상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돈이 없으면,
김치 하나라도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맛있는 음식은, 돈이 들지만,
맛있게 먹으면 돈없어도 할 수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차하게 살아가지 않으려면,
고개를 숙이거나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