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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순종하라 AG : 여자 신앙인들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순종의 미덕으로 사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기질, 특징
나라와 민족에 따라 독특한 특징, 기질이 있다.
같은 극동아시아이지만 중국인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각각 다른 기질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K-POP, K-문화, K-뷰티, K-Fashion, K-FOOD, K-드라마, K-영화, K-스포츠, K-산업기술, K- 치안과 안전, K-교통인프라, K-방산에 이르기까지 최첨단의 IT강국으로서 아주 다양한 한류 바람이 전 세계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대한민국, 한국에 대하여 아주 좋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여권만 가지고 있어도 비자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190여 나라가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여권이 가지고 있는 파워는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보다도 더 강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래서 지구촌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한국인을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잘 모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나라이고, 70년 전에 전쟁을 치른 나라이고, 아직도 남북한이 언제 다시 전쟁할지 모르는 휴전 중에 있는 불안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극동 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처럼 똑같지 않겠나? 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막상 대한민국에 여행을 와서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부터 현재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한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중국인과 일본인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 다녀온 외국인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더 놀라고 신기해 한다.
중국인과 일본인과 한국인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데, 이렇게 작은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경상도와 전라도와 충청도와 강원도와 서울 경기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기질과 특성이 있다.
5000년 역사를 지닌 한민족이 가진 특징과 기질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서울에는 전국 팔도민들이 다 모여서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전라도 출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 따로 있고, 경상도 출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몇 년 전에 전라도에 계시는 절친인 동기 목사님께 전라도에 가서 목회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저에게 “한 목사님은 전라도 사람이랑 맞지 않아도 너무 안 맞아서 전라도에서 목회 못 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작은 나라 안에도 이렇게 그 지역만이 가진 독특한 기질과 특성이 있는데, 이런 특징과 기질은 좀처럼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독특한 기질과 특징은 이젠 바뀔 만도 한데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신앙인들만이 가진 외골수적인 기질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어떨까?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수용하고 이해하고 넓은 아량으로 품으려고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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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변하지 않는 특징과 기질은 성경에 등장하는 지역들도 마찬가지이다.
소아시아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고린도, 로마, 데살로니가,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빌라델피아 등등 그 지역이 가진 특징과 기질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도 그 지역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 특징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그 지역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기질을 그대로 표출되어 성경에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지구촌 세계 각처에는 여신을 섬기는 예식들이 많다.
그리스 아테네에 가면 파르테논(Parthenon)신전이 있고, 그 신전 안에는 아테나(Athena)여신상이 있다. 아테나 여신은 전쟁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Athens)라는 도시는 바로 아테나 여신에게서 유래한 도시 이름이다.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에 있는 신전에서 채화된다.
성화 채화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엘리스(Elis)지방에 있는 헤라 신전(Heraion)에서 여신으로 분장한 여인들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성화가 채화되어 그 성화를 지구촌 곳곳을 달린 후에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로 옮겨와서 올림픽 대운동장에 성화 봉화식을 거행하면서 본격으로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다.
이 성화는 올림픽 경기가 끝날 때까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른다.
신들 중에 왕이라 불리는 제우스(Zeus)신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해서 성화의 불은 꺼져서는 안 된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진행된다.
전국체전이 진행되기 전에 강화도 마니산에서 여신으로 분장한 여인들에 의해서 성화가 채화되어 그 성화를 봉송하여 경기장에 만들어진 성화대에 붙여지면서 전국체전을 시작한다.
그러면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에베소교회가 있는 에베소 지역은 어떨까?
에베소 지역만이 가진 기질과 특징은 에베소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을까?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을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해 주신 말씀이 오늘날 신앙인들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어떻게 살라는 말씀일까?
D4.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 지역에 일곱 교회가 있다.
일곱 교회 중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이다.
오늘날 튀르키예에는 에베소라는 도시가 있다.
에베소지역을 여행하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초대교회 시절의 많은 유산들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의 수세식 화장실, 도서관, 공설대공연장 등등 많은 유산들을 볼 수 있다.
에베소유적지를 들어가기 전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인 누가의 묘가 가묘로 세워져 있다.
이 에베소에는 유방이 18개와 소들의 고환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다산과 풍요의 여왕으로 알려진 아데미(Artemis)여신상이 세워져 있는 도시이다.
아데미여신, 아르테미스 여신은 젖가슴이 18개를 가지고 있는 여신이기 때문에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고, 그 많은 자식들로 인하여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농경시대의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데미 여신의 신전에 있는 돌을 옮겨 와서 요한기념 교회당을 건축했다고 전해진다.
313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칙령을 내리고 기독교를 공인하고 325년에 니케아종교회의에서 기독교를 로마국교로 확정하게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백성들은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메르 문화권에 속한 중동지역과 유럽에는 바벨론 전통종교인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을 각각 자기 민족의 신앙으로 형상화하면서 자기 민족만의 가진 고유한 신앙체계를 세워나가게 된다.
창세기11장에 등장하는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니므롯의 부인 세미라미스를 달신으로, 세미라미스가 유복자로 낳은 담무스가 별신이 되었다는 것이 바벨론의 전통종교의 기본적인 형식이다.
이 형식은 민족에 따라서 약간씩 변화시켜서 자기 민족에 맞는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만들어놓고 그 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바알신, 아세라여신, 아스다롯여신과 담무스라는 별신, 곧 일월성신이 등장한다.
바알신은 가나안의 태양신이고 아세라와 아스다롯여신은 가나안의 달신이고, 담무스는 가나안의 별신들이다.
이런 모습은 로마제국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를 로마국가의 종교로 만들기 위해서 바벨론 전통종교를 그리스도교와 혼합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로마카토릭교회이다.
로마카토릭교회는 정상적인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바벨론 전통종교와 혼합하여 그리스도교와 전혀 다른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다.
로마카토릭교회는 여신인 달신의 주인공인 세미라미스를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로, 세미라미스가 낳은 담무스를 마리아가 낳은 예수님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마리아는 세미라미스의 환생이고, 예수님은 담무스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세미라미스의 로마어로 마돈나(Madona)로 부르면서 마리아를 마돈나(Madona)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세미라미스가 낳아서 품에 안고 있는 담무스를 마치 마리아가 예수님을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형상화하게 되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지역을 방문하여 전도하면서 세워진 교회이다.
그런데 에베소 지역에는 많은 유방을 가지고 있어서 다산의 여신인 아데미(Artemis)여신을 섬기는 큰 신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남성의 파워보다 여성의 파워가 센 지역이다.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고 여성의 파워가 센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입김이 에베소교회에도 남성보다 더 세게 드러나는 교회가 되었다.
젊은 디모데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는데, 여성들이 남성들, 남편들 위에 군림하면서 마치 자기 집에 있는 하인들, 종들을 다루는 것처럼, 남성들, 남편들을 다루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에 따라 마리아를 모셨는데, 사도요한이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마리아를 에베소에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당하면서 에베소에서 마리아가 죽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살던 집터에 “마리아 기념교회당”을 세웠는데, 이 교회에서 AD 431년 제3차 종교회의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세계교회사에 있어서 1-4차 종교회의가 모두 튀르키에에서 개최되었는데 이곳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개최된 제3차 종교회의에서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논쟁을 다루게 된다.
이 마리아기념교회당에서 개최된 431년 에베소종교회의에서 공식으로 마리아 숭배사상이 채택되면서 점점 더 마리아를 신격화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451년 칼케톤회의에서 마리아 성모설이 공식화되고, 마리아에게 기도하기, 마리아중보설, 마리아종신처녀설, 19세기에 이르러 마리아 무죄잉태설, 마리아 계속 무죄설, 마리아부활승천설, 마리아성부아내설, 성부, 성자, 성령, 성모 이렇게 4위일체설, 여기에 교황무오설까지 주장하면서 각종 이단적인 가설들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로마카토릭교회의 기본을 형성하게 된 지역이 바로 에베소라는 지역이다.
에베소지역은 대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권위가 더 높고 강했던 지역이다.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긴다.
에베소교회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젊은 디모데에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기 위하여 편지를 써서 보낸다.
이 서신은 단순하게 디모데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처럼 보이지만, 에베소교회가 가지고 있는 잡다한 문제들은 단순하게 에베소교회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상에 세워지는 모든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공통적인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에 보내는 목회서신이 되는 것이다.
① 자신에게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에 충성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바울은 디모데전서 2:11-12에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고 말씀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시는 말씀이 마치 여성들이 교회에서 사역자로 세워져서는 안 되는 말씀처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 말씀이 여자는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일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한 문자와 언어와 글자를 그대로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왜 그런 문자와 언어와 글자를 사용하여 말씀하였을까?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이유와 처지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를 찾아내지 못하면 얼마든지 곡해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바울이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 조용하라. 남자에게 배워라. 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씀할 수밖에 없었을까? 진정 바울이 가슴으로 외치고 싶었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찾아내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이유라도 있었을까?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 곁에 주님의 교회를 잘 섬긴 여성들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물론 바울처럼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세움을 입은 여인은 없지만, 바울의 곁에는 주님의 교회를 잘 섬긴 여성들이 상당히 많다.
교회들마다 사도 바울을 도와서 협력하는 여인들이 많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고린도교회에 가보면 현관에 4명의 초상화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두 사람이 여성이다.
브리스길라와 뵈뵈라는 여인의 초상화가 붙여져 있다.
브리스길라와 뵈뵈 여인은 고린도교회를 잘 섬기면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간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교회 현관에 초상화를 그려서 전시하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뵈뵈라는 여인뿐만 아니라 로마서에서도 보면 여러 여인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빌립보교회를 세우는 데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주장사 루디아 여인 외에도 여러 명의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빌립보에는 바울이 루디아 여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곳에 루디아기념교회당이 세워져 있다.
사도행전에는 보면 빌립집사의 딸이라고 소개하는 아가보(Agabus)여선지자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처럼 얼마든지 여성들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역자로, 사명자로 세움을 입을 수 있고, 헌신할 수 있다.
그 여인들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한 여인들이다.
어떤 여인들은 자신의 집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여인들도 많다.
그런데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조용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여자들에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항상 무엇보다도 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이다.
복음서에서나 사도행전에서나 각종 서신서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겸손하게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귀한 복음의 사역을, 구원의 사역을 감당한 여인들이다.
여성이 사역자로, 사명자로 세워졌다고 해서 남자들 위에 군림하거나 업신여기거나 하대하거나 마치 자기 하인이나 몸종에게 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혹 여성들이 사역자가 되었다고, 사명자가 되었다고 남자들 위해서 군림하려는 자세가 있다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여성들이 주님의 거룩한 사명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남자들을 업신여기고 남자들 위해서 군림하려는 자세를 가졌다면, 그런 권위 의식에 사로잡힌 여자라면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고 하신 말씀처럼 차라리 사명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자들에게 군림하려는 자세, 교만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으로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여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역들은 매우 다양하다.
꼭 여자의 몸으로 목사가 되어야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자도 목사가 될 수 있다.
현대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목회자로 세움을 입는 경우가 아주 많다.
육신에 다양한 지체들, 기관들이 각자가 감당해야 할 분야를 잘 감당해야만 건강하고 온전한 육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다양한 사역의 파트들이 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목사나 강도사나 전도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사와 같은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기 위해서 각 지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때 온전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직분일 뿐이다.
목사도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고 강도사나 전도사도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고, 장로도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고, 권사도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고, 집사도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고, 교사도, 성가대원도, 주차요원들도, 식사대원들도, 청소하는 분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사명자라는 사실이다.
흔히 주님의 일, 주님의 사명자, 주님의 사역자라고 주장하면서 목회자만 사명자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
모든 직분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세워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명자라는 사실이다.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위치와 처지가 다를 뿐이다.
신앙인들 자체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이다.
그래서 사명자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오직 주님만을 높여드리고, 겸손해야 하고, 조용해야 하는 것이다.
직분자, 사명자가 높아지고 교만해지면 저절로 우리 주님께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신앙인들은 주님 홀로 모든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수 있도록 주님만을 높여드리고, 신앙인들은, 인간들은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루시퍼 천사장처럼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교만하고 거만해지려면 안 되는 것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파위가 센 에베소 지역에서 주님의 몸된 에베소교회에서조차도 여자들의 권위가 남자들보다 더 앞세우고 강해지려고 하는 경향 때문에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조용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4:34-35절의 말씀을 통해서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여자들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특히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은 남자 신앙인보다는 여자 신앙인들이 좀 더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남자 신앙인들보다 여자 신앙인들에게 좀 더 강하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강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여자들이 남자들을 업신여기려는 태도가 고린도교회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 남자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여성들도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사명, 은사를 감당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섬기되, 결코 교만하거나 거만하거나 우쭐대면서 남성이나 남편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악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각자 우리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면서 섬기면 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서 겸손하게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아데미 여신을 최고의 여신을 섬기는 에베소 지역의 아내들은 아데미 여신을 따라서 마치 아내들은 얼마든지 남편을 업신여기고 마치 자기 하인이나 몸종에게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풍조가 팽배해 있었다.
에베소 지역의 여인들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성도가 되고, 일꾼이 된 것이다.
은연중에 에베소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나 특성을 따라서 교회와 가정에서도 지역 사회에서처럼 행세하려는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잠잠하고 조용해야 할 이유를 바로 창조 질서에서 찾고 있다.
디모데전서2:13-15절에서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서 여자들은 남자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5:22-24절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아내들이 바로 디모데에게 편지하는 바로 그 여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여인들, 아내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시키면서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여인들, 아내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서 잠잠하게, 조용하게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1에서도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베드로가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한글성경에서 에베소서에서는 복종하라고 번역하고 있고, 베드로전서에서는 순종하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미의 말씀인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복종이 되었든, 순종이 되었든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고, 거룩하신 분이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치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피조물의 위치에 있는 것이 거룩한 것이다.
남자의 위치가 있고, 여자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부모의 위치가 있고, 자녀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치가 있고, 무리들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여자 목사님들 중에는 남편의 신앙이 탁월하여 아내의 목회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경우가 많다.
남편이 아예 신앙이 없는 불신자인 경우도 있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다른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고 미덕을 보여줄 정도의 수준이 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랬을 때 아내들이 남편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우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을 향하여 악담을 퍼붓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여 목회자들이 많다.
아내들이 남편의 권위를 세워 드리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행위를 남자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정불화,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아내가 믿음이 좋아서 전도사님이 되고, 목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되고 권사님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 드리고 높여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사명을 맡은 자의 인격, 품격, 신격이 살아나는 것이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살았던 흔적이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인이라면 아무리 자기가 여자 목사가 되었더라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사는 여인이 되는 것이다.
남편의 권위와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주고 순종하는 여자 목회자가 될 때 그의 인격과 신격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들에게 잠잠하라. 조용하라.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본래 세우신 그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드리는 것을 겸손하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거룩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본래 세우신 그 위치를 거역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고 다 함께 멸망의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깨뜨리려는 마음의 자세가 교만한 자세이다.
주님을 믿는 신앙인들로서는 절대로 가져서는 안 돠는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여성들, 특히 아내들에게 아주 엄격하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에도 여자들 중에 성령의 은사를 좀 더 많이 받았다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남자들을 업신여기고 마치 자기 하인이나 몸종에게 하는 것처럼 하려는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가정에서 잠잠하라고, 남자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불신자들처럼 교만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답게 겸손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③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여인을 인정하시고 칭찬해 주시고 상급을 주시는 주님.
성경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이다.
성경시대에는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는 존재로 인식되던 시대이다.
여자로 태어나면 아버지에게, 자라서 혼인하면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던 시대에서 당당하게 여성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내세울 수 있고, 교회의 일원으로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주님께서 여성들에게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생명책에 당당하게 구원받은 자로서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다.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우리 주님과 모든 영광과 기쁨과 면류관을 함께 누린다는 의미이다.
신앙의 여인들에게 영광의 면류관, 구원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의 상급으로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천국에서 안식과 평강을 누리는 축복을 입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인정해 주시는 은혜를 입는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믿음의 여인으로, 믿음과 지혜의 여인으로, 사랑받는 여인과 아내로 세움을 입게 된다.
현숙한 여인, 지혜로운 여인, 슬기로운 여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으로 하늘의 신령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면류관의 영광으로 씌어주신다.
L4 & B4.
“평강공주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고구려 시대에 바보 온달을 신랑으로 맞이하게 된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무술훈련을 시켜서 고구려의 유명한 장군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강공주 신드롬에 따라서 자기 남편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혜로운 아내들은 온갖 정성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헌신하기도 한다.
남편들도 은연 중에 자기 아내가 평강공주와 같은 여인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인들이 평강공주처럼 살 수도 없고, 모든 아내들이 평강공주가 되어줄 수도 없다.
지금의 배우자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맺어준 가장 합당한 배우자로 인정하고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가정을 통하여 거룩한 신앙의 가계도를 세워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맺어주신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주님의 일을 맡은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작은 사명일지라도 충성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4: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 2;10절에서도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 므나 비유에서 충성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아주 귀하게 여기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겨주셔서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이라 믿고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며 충성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신앙인들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신앙의 의인들이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 조용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절대로 나대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거만하지 말고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겸손하게 낮아지는 삶, 다른 사람을 높이고 인정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자기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서 탁월하게 잘 나고 뛰어나고 유능하고 훌륭한 것처럼 보여도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잘나도 그만, 못나도 그만이다. 도찐개찐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누구 앞에서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겸손한 마음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겸손은 존귀의 앞장이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조건이 될 수 있지만, 교만하거나 거만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는커녕 징계와 저주와 심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앞장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십자가의 길, 보혈의 길, 순종의 길, 구원의 길을 걸어가셨듯이 신앙의 사람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겸손, 겸손, 겸손, 겸손, 또 겸손하면서 겸손의 미덕을 쌓아갈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미국 마이애미 롱비치 법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 이야기라고 한다.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키워가면서 정성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중년 미국 여성분이 있었다.
어느 날 아들 형제가 절벽이 낀 산속에서 죽창을 던지며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지역의 유명한 인사가 말을 타고 그곳을 산책하다가 하필 아들 형제가 던진 죽창에 말의 눈이 적중하였고, 이에 놀란 말이 펄쩍펄쩍 뛰는 바람에 말과 유명한 인사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말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문제였지만, 그 사람이 타고 있던 말의 가격도 자그마치 1000만불이 넘는 세계에서 몇 마리밖에 없는 엄청 비싼 명마였다는 것이다.
두 아들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가 형제들에게 누구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두 형제는 서로 자기가 쏜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청하는 것이다.
판사가 마음씨가 아름답고, 형제의 우애가 남다르기에 형제의 어머니를 재판장에 불러세워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부인, 한 아들만 사형에 처하면 되는데 형제가 서로 자기 죽창에 말의 눈을 찔렀다고 주장하니 부인이 한 아들을 정하도록 하십시오."
이제 여인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기도하더니, 기도가 끝난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은 아들을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
판사가 '왜 작은 아들입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여인은 "판사님, 큰아들은 전처의 소생이고, 작은 아들은 제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에 판사가
“아니 부인,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고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예, 판사님, 옳은 말씀입니다.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요.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서 배우고 익힌 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제가 큰아들을 죽게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재판정 안이 숙연해지고, 재판정이 쥐 죽은 듯 고요함 속에 묻혀 있을 때, 방청객들은 물론 여인의 말에 감동받은 판사가 근엄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인, 지금까지 30년 넘게 재판해 오면서 오늘과 같이 인간애로 감동받기는 처음입니다."
두 아들도 또 어머니도 미국 사회를 아름답게 선도할 모범적 가족이라고 판단한 판사는 힘주어 판결문을 낭독하는 것이다.
"내가 판사의 권한으로 두 아들을 무죄로 석방한다."
두 아들의 아름답고 기특한 정신, 또 숭고한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전처의 아들과 친자식을 함께 키우며 두 아들이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게끔 한 엄마의 인성교육, 인간성을 바로 세우도록 가정에서 교육한 어머니의 숭고한 모습이 오늘의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지 않았을까 싶다.
신앙인들은 겸손하게 순종의 미덕을 쌓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생업터전에서나 가정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교만하지 말고 거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오직 순종의 미덕을 쌓아 올리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