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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8일(금) 시편 10:1~18 ‘감찰하시는 하나님’ 새찬송가 400장(통 463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오늘은 본문 시편 10:1~18을 중심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시인은 교만하고 포악한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가련한 자를 잡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해주시고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시길 간청합니다. 또한 시인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왕이심을 확신하면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시인은 1~11절에서 ‘악인의 교만과 포악’을 고발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악인의 특징을 여러 가지 열거합니다. 특히 4절을 보시면,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삶 속에서 창조주시요, 구원주이신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가지지 않고 범죄하는 데 담대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그 존재 앞에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각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세상의 감독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판의 날은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가책은 보다 쉽게 무시됩니다. 그들의 거부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적 통제 없이 살고 싶은 욕망에 의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통제를 위반함으로써 오는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14:1과 시편 53:1 모두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의미는 “우둔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서 “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사악한 짓’이고, 하나님에 대한 부인은 종종 ‘사악한 생활 방식’을 동반합니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매우 똑똑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믿는 것을 거부하게끔 하는 것은 ‘지능이나 지능의 부족’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믿는 것을 거부하게끔 하는 것은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창조자가 당신의 일에만 신경 쓰고 자기들을 그저 내버려 두는 한, 창조자의 개념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피조물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창조자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과 싸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개념을 전적으로 거부합니다. 시편 14:1은 이런 유형의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교만이 악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운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 혹은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감찰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감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시139:1)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 중에서 특별히 우리를 감찰하시고, 주목하여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 2:25)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신다”는 이 말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신원할 일은 신원하시고, 심판할 이는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 44:2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생각까지 꿰뚫어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고, 또 아무리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도망간다 하더라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사람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싫어하며 외면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끝까지 지키시고 샅샅이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찰하신다는 말이 수없이 거듭 되풀이 합니다.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은 사라의 질투로 쫓겨나 광야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을 때 너무나 감격하여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창 16:13)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속인 외삼촌에게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셨다”(창 31:42)고 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렘 12:3)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시 10:13)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샅샅이 다 살피고 감찰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 또는 용서하심만을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앉고 섬을 아시고 먼데서도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순간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걸음을 감찰하시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욥 34:21, 22)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고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시 33:15)라면 사실 악인에게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한없이 불안한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순간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소원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찾고 즐거움과 쾌락을 찾아가곤 하는 마음의 충동을 언제나 억제당해야 할 것이므로 악인들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한없이 미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생활은 언제나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감시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길과 눕는 것을 아신다”거나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때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의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계신다’는 든든한 마음으로 그의 감찰하심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고 말했습니다. 악인은 주께서 감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특별히 성도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휩싸이는 내 속의 악을 다스려주시도록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주의 손으로 이루어질 악인에 대한 심판을 믿고 내 손으로 보복하고 그들에게 복수하려는 미워하는 것을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주께서 내 안팎의 악을 찾으시고 진멸하시기까지 주를 의지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주의 땅에 있는 이방 나라들이 멸망할 것을 기억하고 주의 땅에 합당하지 않는 자아숭배와 성공 신화의 이방 가치관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를 겸손하게 만들려고 주신 환경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적용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보심을 믿고 주를 의지하면서 기다리고 인내해야 할 것과 내가 겸손하게 행동해야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기도) 주님, 견고한 성공의 길을 걸어서 사람들을 멸시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악인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셔서 외로운 저를 붙잡아 주시고 끝까지 주를 의지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