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부산수필문학작가상 -노장현
가족에 대한 사랑, 온고이지신 사상
작가상 심사평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노장현 수필가는 2012년 <죽림사지>라는 수필작품으로 에세이문예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와 지금은 수필과 시를 쓰면서 문단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분이다. <하얀 모시수건>이란 수필집을 펴낸 바 있고, 시집도 네 권이나 내었다. 부산문인협회,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산수필문학협회. 효원수필문학회,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원으로 있으면서, 부산진구 구민작품공모전 2회 우수상(산문), 백호문학대상(수필), 부산문학인협회 특별상 수상한 바 있다. 이 수필의 발단은 아버지가 삼베를 찌는 일을 하면, 어머니가 삼베롤 짜고, 할머니가 삼베옷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고, 삼베옷에 얽힌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큰 울림을 주는 사건이 되어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글이다. “그날 만약 내가 함께였다면 아버지께서 필사의 용기를 내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겠나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 같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삼베 홑이불은 총구멍이 났지만 덕분에 아버지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사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하는 삼베에 얽힌 이야기는 어린 작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한편의 한국적 수필이 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노장현의 이 수필은 한국적 수필로서 전통 미학이 돋보인다. 우리 조상들의 솜씨가 묻어나는 베틀에서 손맛을 우려내기 때문이다. 삼베에 관련된 이야기가 발단부에서 전개부까지 수놓아져 있다. ‘손때 묻은 일제 싱가 재봉틀은 세월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지만 여름이 되면 우리는 변함없이 삼베옷 가족이 되었다.’고 한 부분은 삼베가 삼대 가족에게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가를 잘 나타낸다. 수필은 이 장을 보아도, 저 장을 보아도 주제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수필 구성도 이런 차원에서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 수필은 이런 측면에서 하나의 제재로 일관되게 주제가 전개되고 있다.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밤이 깊도록 골방을 울리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는 가족 사랑을 엮어 가는 노동요이다.”라고 하는 의미화에 있으며, “창문 너머로 새어 드는 밝은 달빛은 호롱불과 반죽되어 골방을 밝히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족에 대한 잔잔한 사랑과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나 조상의 숨결이 담긴 우리의 베틀도 이제는 전설의 고향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라고 하는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삼베 짜는 소리가 사라진 데 대한 노장현 작가의 아쉬움이 온고이지신 사상으로 우리에게 소롯이 잘 전달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삼베옷
삼베옷은 재질이 까슬까슬하여 청량감이 느껴진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절로 통풍이 되어 마음까지 살랑거리게 한다. 옷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껴입고 있는 듯하다. 삼은 칠월에 수확하는 한해 식물로 속껍질을 이용해 옷감을 만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와 이집트, 북 남미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애용해왔다는 기록이 있을 만치 역사가 길다.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한복도 처음에는 삼베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에게서 잊혀 가고 있지만 삼국시대의 복식사에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삼은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섬유 작물 중하나이다. 베를 짜는 일은 농경과 더불어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길쌈 기술은 가내공업으로 더욱 발전되었다.
삼베는 서민에서부터 다양한 궁중의 옷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어 왔다. 고려 말 문익점에 의해 목화가 들어오기 이전까지는 삼베가 대중적으로 입혔다. 여름에는 시원한 삼베옷을 입고 겨울에는 따뜻한 무명옷을 입었다. 노출이 심한 옷이라고 해서 시원한 것은 아니다. 개성을 빙자한 노출은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 제공이 아니겠는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더위를 물리치는 것은 통풍이 잘되고 항균성이 있으며 견고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삼베옷이 위생적이고 경제성이 높다 하겠다. 여름에 입는 삼베옷이야말로 시원한 것을 물론이고 옷 속이 살짝 엇비치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며 개성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감각적 패션의 원조가 아닐까.
호주의 원주민이 신성화하는 울루루 바위와 같이 우리 집 삼밭은 넓은 들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대같이 자란 삼 숲은 비단 같은 양풍凉風에 살래살래 흔들리며 추수할 주인을 기다리곤 했다. 여름이 되면 아버지께서 부업으로 삼 찌는 일을 하셨다. 도단으로 만들어진 큰 삼 솥을 개울가 언덕 위에 걸어 놓고 삼을 쪄냈다.
만삭이 된 배와 같이 삼을 가득 채운 솥에 불을 지핀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도 일손을 거들고 나섰다. 솔잎가지를 넣고 긴 막대 지팡이로 아귀 입 같은 아궁이를 뒤적이면 불꽃은 춤을 추듯 신명나게 타올랐다. 내 마음의 불꽃도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한여름 열기까지 더해서 부자의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얼굴로 흘러내린다. 중간 중간 벌겋게 익은 얼굴로 나무그늘에서 숨고르기를 해야 할 만치 뜨거운 기운과 씨름을 해야 하는 일이다.
찐 삼을 찬물에 식혀 두꺼운 껍질과 백옥 같은 삼대를 분리하는 작업은 여자들의 몫이다. 어머니께서도 말려둔 삼 껍질을 벗기는 일을 하셨다. 왼손에 삼 껍질을 잡고 오른손으로 삼 톱을 잡아 끌어 벗겨낸 겉껍질을 다시 손톱으로 올올이 잘게 찢어 실을 만든다. 어머니의 손톱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이 비스듬하게 닳아 삼 째기에는 알맞게 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무릎은 피가 맺히고 굳은살이 앉을 정도로 삼을 비비고 또 비비어 삼 때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삼베는 인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삼매기가 끝난 실은 물레에 올려 타래를 만들고 날실 다발을 만든다. 베매기를 끝낸 날실은 도투마리에 감았다가 베틀이라고 하는 직기로 제직을 한다.
베 짜는 일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베틀에 앉은 어머니는 씨실 꾸러미가 든 북을 좌우 손으로 넣으며 씨실을 쳐서 쇠꼬리채를 올리고 내리어 바디로 쳐서 베올을 여물게 짠다. 바디집 치는 소리는 봉황이 제 짝을 잃고 우는 소리 같다는 비유적인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오른 발을 펴고 당기며 번갈아 가며 짜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이 희망을 품고 있다. 네 박자 인생의 노래와 같이 고된 줄을 모르고 손과 발이 장단을 맞추어 한 올 한 올 엮어 베를 짠다. 오로지 가족들의 입성을 위한 어머니의 베틀에서는 씨실 속에 시름을 담고 날실 속에 인생을 담고 용기와 희망 그리고 인내를 쏟아 부어야만 했으리라. 베를 짤 때 어머니는 지루함을 달래고 고달픔을 잊기 위해 베틀노래 대신 찬송을 부르시기도 했다. 어머니가 삼베를 짜는 일은 삶의 수단이요, 행사였다.
그뿐이겠는가? 할머니는 삼베옷과 무명옷 만드는 솜씨가 좋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부업으로 제법 재미를 쏠쏠하게 볼 수 있었다. 손때 묻은 일제 싱가 재봉틀은 세월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지만 여름이 되면 우리는 변함없이 삼베옷 가족이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해 여름 방학이었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외막에 가곤 했는데 그 무렵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요즘 같이 비닐하우스 속에서 재배하는 것과는 다르게 노지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인분으로 재배하였으므로 설탕같이 당도가 높은 수박을 따 주시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께서 혼자 외막으로 나가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삼베 홑이불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을 나선 것이다. 어슴푸레한 달빛을 받으며 마을 네거리를 지나는 순간, 등 뒤에서 느닷없이 공비들이 나타났다. 장총으로 등을 치며 “네가 누구 아니냐?” 하며 앞에서 길을 인도하라고 호통을 쳤다. 꼼짝 없이 앞장을 서서 걸으시던 아버지께서는 제법 공비들과 거리가 생기는 순간 삼베 홑이불을 마치 투망처럼 던지고 골목길 옆에 있는 싸리문을 박차고 콩밭 골로 달아났다. 장총소리는 저녁 밤을 진동시켰다. 도피한 아버지는 밤사이 콩밭 골에서 모기와 씨름을 하시다 이른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파출소의 전투경찰들이 총성을 듣고 윗마을의 길목에 잠복하였다가 그들과 교전을 치렀는데, 결국 총상을 입은 이웃마을 사람은 길에 쓰러져 있었고 몇 사람은 강을 건너 도주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삼베 홑이불은 총구멍이 나 있는 채 골목길에 나뒹굴어 있었다.
그날 만약 내가 함께였다면 아버지께서 필사의 용기를 내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겠나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 같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삼베 홑이불은 총구멍이 났지만 덕분에 아버지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사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밤이 깊도록 골방을 울리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는 가족 사랑을 엮어 가는 노동요이다. 창문 너머로 새어 드는 밝은 달빛은 호롱불과 반죽되어 골방을 밝히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족에 대한 잔잔한 사랑과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나 조상의 숨결이 담긴 우리의 베틀도 이제는 전설의 고향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진 베 짜는 소리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들창 밖으로 귀뚜라미들의 구슬픈 합창소리는 영원히 계속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