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 대영박물관 도서관과 영국국립도서관 위대한 문학가와 혁명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 British Museum Library&British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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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24. 21:16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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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대영박물관 도서관과 영국국립도서관
위대한 문학가와 혁명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
[ British Museum Library&British Library ]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열람실은 옅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둥글고 높은 돔(rotunda) 천장을 가진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방이었다. 도서관은 이제 떠났지만, 이 원형 열람실은 지금도 대영박물관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cc) Eneas at commons.wikimedia.org>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보낸 나의 런던 생활
1982년 여름에 나는 프랑스에서 페리와 기차를 갈아타는 여정 끝에 런던 채링크로스 역(Charing Cross Station)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영국사를 전공하던 나는 박사 학위 논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1년간 런던에 체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미국 사회과학연구재단에서 주는 연구비를 손에 쥔 나는 우선 파운드화를 바꾸기 위해 역에 있는 환전소를 찾았다. 그곳 직원은 내 여권을 보더니 “‘메이드-인-코리아’ 나이프와 포크는 봤어도 ‘메이드-인-코리아’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한국의 존재가 그때 막 수출되기 시작한 저가 공산품으로 조금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인의 존재는 거의 모르던 시절이었다.
1년간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막막했다. 런던은 교통비가 몹시 비싸다. 외곽으로 나가면 집값은 싸지만 대신 교통비가 비싸진다. 내 판단에는 어차피 매일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연구를 해야 하니 교통비와 시간을 절약하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간신히 대영박물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토트넘 코트 가(Tottenham Court Road)라는 곳에 아파트를 구했고, 나는 런던 생활의 거의 매일을 대영박물관 안에 있는 열람실, 곧 영국국립도서관의 전신에서 보내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
대영박물관 열람실. 19세기 에칭화.
영국국립도서관은 원래 대영박물관 도서관(British Museum Library)으로 불렸는데, 1973년에 영국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으로 개명되어 독립하였다. . 이미 20세기 초부터 장소가 협소하여 증축이 구상되었지만 대영박물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증축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1998년에 대영박물관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유스턴 가(Euston Street)에 새 건물을 짓고 여왕이 개관함으로써 대영박물관을 떠나 새 장소에서 새 역사를 시작하였다. 내가 런던에 머물던 1982~83년에는 국립도서관으로 모습을 갖췄지만 여전히 대영박물관 내에 위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은 1753년에 박물관이 창립되었을 때 ‘인쇄과’로 시작되었다. 그 후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개인 수집품이나 왕실 소장품을 기증받아 큰 규모로 발전하였다. 게다가 1911년에는 영국에서 출간되거나 유통되는 모든 인쇄물이 반드시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납본되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성장하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은 미국의회도서관이다. 현재 영국국립도서관 소장품의 수는 1억 5천 만 점에 달하며 단행본만도 1,400만 권이 넘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다.
원형 천장 아래에서 느끼는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열람실은 옅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둥글고 높은 돔(rotunda) 천장을 가진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방이었다. 이 원형 열람실은 시드니 스머크(Sydney Smirke)의 설계로 1854년에 공사를 시작해 3년 후에 완공되었는데 직경이 43미터나 된다. 런던에는 둥근 원형 돔을 가진 유명한 건물이 또 한 채 있는데, 이 두 번째 건물인 성 폴 대성당 돔의 직경은 대영박물관 열람실보다 9미터 짧은 34미터다. 도서관은 이제 떠났지만 이 원형 열람실은 지금도 대영박물관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공개되며 특별 행사에 사용된다.
웅장한 원형 천장 아래 책을 읽으면서 그곳을 찾았던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느끼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가죽 입힌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들의 혼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특히 강한 자극이 되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이용한 유명 인사 목록은 영국 역사와 세계사에 빛나는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영문학의 여신이 대영박물관 열람실에 군림했다는 말이 있듯이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1854~1900),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등은 물론 19세기 영국의 가장 위대한 수상이라 간주되는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 1809~1898)도 그곳을 즐겨 찾았다. 뿐만 아니라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간디,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 등 대륙에서 온 혁명가들도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원형 천장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
아서 코넌 도일 경(왼쪽)과 조지 버나드 쇼(오른쪽).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이용한 유명 인사 목록은 영국 역사와 세계사에 빛나는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웅장한 원형 천장 아래 책을 읽으면서 그곳을 찾았던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느끼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감동이다.
칼라일의 명작인 [프랑스 혁명]과 [영웅숭배론]은 대영박물관 도서관이 소장한 무궁무진한 자료 덕분에 집필될 수 있었다.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은 1891년에 대영박물관 도서관 열람증을 신청하였다. 이미 [셜록 홈스]로 유명 작가가 되어 있었지만 신청서에는 직업을 ‘의사’라고 적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청년 조지 버나드 쇼는 오후 시간을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보내면서 공부를 하거나 소설을 썼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쇼는 그곳을 ‘최상의 공산주의 기관’이라고 불렀는데, 훗날 런던 문단에서 크게 성공한 그는 유산의 3분의 1을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대륙에서 온 혁명가 마르크스와 레닌
한편 딱히 갈 곳 없던 해외 망명객들에게 대영박물관 열람실은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마르크스는 40년을 거의 매일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출근(?)하였다.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다 입장한 첫 번째 사람이었고 문을 닫을 때까지 가장 늦게 남아 있었다. 때로 도서관 측은 마르크스를 강제로 쫓아내야 했다. 책과 담배에 파묻혀 살던 마르크스는 때로는 열람실에서 실신하기도 했는데 도서관 측이 들것으로 실어 날랐다. 그는 매일 똑같은 좌석에 앉아 집필했는데, 확인되지는 않지만 좌석 번호가 G7이었다고 한다. 나도 호기심으로 그 좌석에 앉아본 기억이 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열람실. 마르크스와 레닌도 이곳 어딘가에 앉아 책을 읽고 집필을 했을 것이다. <출처: (cc) ceridwen at commons.wikimedia.org>
레닌이 제이콥 리히터(Jacob Richter)라는 가명으로 서명한 이용자 카드도 남아 있다. 레닌은 1902년 4월에 런던에 도착했는데 며칠 후에 열람증을 신청할 정도로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사용하는 데 열성이었다. 그는 러시아 차르 정부를 혼동시키기 위하여 가명으로 열람증을 신청하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영국에 올 때마다 레닌은 그곳을 찾았는데, 마지막으로 1911년 11월에 열람실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레닌은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놀라운 기관이다. 대영박물관 도서관보다 더 나은 도서관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찬양하였다. 그는 주로 좌석 L13에 앉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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