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nurijar/20024144054
본글의 저자는 전쟁사를 통해서 동양역사와 서양역사의 차이점을 인식한것 같군요.
그리고 상당한 필력으로 글을 시원시원하게 쓴것같습니다.
본글을 쓴 저자의 역사인식이 모두 맞다고 할수는 없을겁니다만,
대략적인 동,서양의 역사적인 차이점들을, 비교적 쉽고 간결하게 정리한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역사적인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수도 있지안을까.. 생각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비교
먼저 재미난 사실을 하나만 알려드리죠.
유럽 전체 면적을 합쳐도 현재 중국, 한 개 국가의 면적보다도 작습니다.
물론 인구도 중국이 더 많습니다.
그 이야기는 옛날에도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아실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전 취미로 전사(戰史)를 보는 사람이라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1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전체 전력을 다 합쳐도
중국 1개 국가의 전력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니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간단한 예로 1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몽골군이 유럽 동부를 휩쓸고 있었으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14세기전까지 유럽이 전세계 역사에서 얼마나 후진 지역이었는가를 설명해드리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문명(미케네 문명)이 자랑창 청동기 문화를 꽃 피울 때, 고 옆에 소아시아에는 철기 문명이었습니다.
물론 중국, 인도도 철기죠.
그리고 그러한 이오니아 문명은 그들이 그렇게 바르바로이라면서 야만족으로 비유하던 마케도니아 지역의 철기 문명을 가진 도리아인이 남하하면서 끝장납니다.
뭐 말이 좋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 제국 어쩌구 하는데, 로마 제국 최대 강성기의 면적을 다 합쳐도 진시황의 제국보다 작습니다.
문화는 더 말할 것도 없죠.
과학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던 서기 5세기까지 유럽에는 그 간단한 등좌도 없어서 전부 경 기병뿐이 없었던 반면, 동양에서는 최소 기원전 2세기에 중갑기병이 등장합니다. (우리 고구려 벽화를 보세요.)
백년 전쟁이 일어나던 14세기에 프랑스 기사대를 혼쭐내줬다는 영국 대궁병의 존재가 단순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죠.
뭐 동양에서는 최소 기원전 4세기 이전에 안감과 겉감을 달리한 복합궁인 단궁이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었습니다. 뭐 서기 9~10세기에는 화약도 실용화 하죠.
유럽사를 조금만 공부하신 분들은 금방 이해하시겠지만, 로마 제국 멸망후 유럽국가들간의 전쟁 배상금 혹은 포로에 대한 교환자금이 금은등 순수광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제대로된 기축통화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로마 제국 시절에는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그나마 로마제국 시절에도 전세계 역사에서 후진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던 유럽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중세 암흑기에 빠지게 되자 무려 700년 이상 발전은 커녕 퇴보를 면치 못했으니 말을
더 해 뭘하겠습니까?
단순한 과학기술이나 전력지수만이 아닙니다. 문화도 형평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서양의 유명한 예술가 이름을 쭉 열거해보세요.
철학자여도 상관없습니다.
아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 빼고는 전부 르네상스 이후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마 철학과만 아니라면 이럴공산이 크죠.)
바로 15세기 르네상스가 전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인간들이 깨어난 시기입니다.
뭐 과학기술적인 면에서는 15세기의 유럽인들이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인들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보다 나을 수는 있겠지만, 형편없는 종교적 도그마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원시 샤머니즘의 형태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여자는 마녀라고 잡아죽이고, 갈릴레이를 지구가 돈다는 소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태워죽이려고 하고 (뭐 그 갈릴레이가 교황청에 의해서 해금된지는 20년도 안된 일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맞아죽을까봐 지동설을 자신이 죽은 다음에 발표하게 만든 유럽인들이 미개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있어 더 미개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러나 유럽인들이 종교적 도그마에서 탈출하게 되자 무섭게 발전합니다.
무려 700년 이상 긴 잠에 빠져있던 유렵 사회에서 그것이 다소나마 해소되자 그 동안 쌓여있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열정을 막을 것이 거의 없어진 것이 그들에게는 행운이였습니다.
14세기에 이르러 르네상스와 함께 찾아온 대항해시대라는 탐험러쉬도 유럽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단 신대륙에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유입되자 유럽 사회는 이러한 광물을 통해서 지난 700년간 상실했던 기축통화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상업 경제가 발전하게 되니 이가 바로 '상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이 아닙니다.^^)
뭐 300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강대한 신대륙의 잉카제국을 몰락시킨 것은 천운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여기에는 잉카의 전설이 큰 역할을 했는데 그건 언제 시간이 나면 설명하도록 하죠)
르네상스는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변화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특히나 신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기존 구교가 가지고 있던 종교적 도그마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유럽 제국간의 정쟁이 잦았던 것도 유럽의 과학 기술 발전에 일조를 하게 됩니다.
원래 전쟁과 과학기술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거든요.
그리고 유럽과 동양과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30년 전쟁을 지나고 나서는 완전히 역전됩니다.
유럽에서 제작된 화포와 총포가 동양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이죠.(30년 전쟁기에는 유럽인들이 동양에서 화포를산 흔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뭐 대항해시대로 캐러벌등의 원양 항해가 가능해진 함선에 이러한 신무기가 장착되었다면 상황은 뻔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황금의 땅인 엘도라도는 찾았는지 몰라도 또 다른 동방의 황금 제국 중국을 침략하지는 못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유럽이 대항해시대로 신대륙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향료제도를 장악해도 건드리지 못한 지역이 몇 군데 있죠?
일단 근처에 강성한 투르크 제국을 식민지화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와 동남부 유럽지역은 여전히 이슬람의 손에 떨어져 있었죠.
중국도 식민지화 할 생각을 한 것이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입니다.
그전에는 택도 없었죠.
조선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참고로 유럽 세력들이 대항해시대에 유일하게 강제 개항시킨 일본 역시 솔직히 강제 개항이라기 보다는 제한적이고 자발적인 양식의 개항이었습니다.
뭐 당시에 일본은 임진왜란 전의 전국시대였으니 화약이 필요했기에 개항한 것이니까요.(일본에 화약 기술을 전래한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아니라 포르투칼인들이었습니다.-화약 기술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극동에서 가지지 못한 최고급 기술이었으니까)
뭐 일본의 개항도 에도 시대에 오면 도쿠가와에 의해서 2개 항구에 제한적인 것으로 변하지만 말입니다. (에도 시대에 일본은 또 낮잠자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안 하려고 총과 칼로 불상따위를 만들고 있었으니 과학기술이 발전할 리 만무!)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의 과학기술 차이가 역전된 또 다른 이유인 동양의 정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극동 지역에서 국가간의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뿐입니다.
그것도 생각보다는 빨리 끝난 편이죠.
그 뒤로는 일본은 보수주의로 회귀하고 조선은 사회 변혁을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정이 불안에 시달렸고, 그나마 중국은 가장 많이 유럽의 변혁을 눈으로 실감하며 이러한 기술 역전을 느끼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의 전력이 앞선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에도 외국 문물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며 고래부터 있어왔던 육상과 해상을 통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는데에 만족했습니다.
뭐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금새 아시겠지만, 중국에서 기축 통화로 은전이라는 은이 사용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세요.
답은 명나라 때부터 자주 보입니다. 그리고 그건 유럽 대륙에 대규모로 신대륙의 은이 유입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동양이 비교적 평화로웠던 반면 유럽 대륙은 그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단 말씀입니다.
멀게는 투르크 위시한 이슬람세력과 맞서고 내부에서는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서 싸우고, 국가간의 영토싸움, 심지어는 국내에서 귀족파, 왕당파, 공화파로 나뉘어 내전 상태였으니, 군사력과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밖에 없죠. 유렵은 15세기 이후 하루도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단 말씀입니다.
또한 전쟁을 하려면 자원과 물자도 엄청나게 소모되죠?
그러니까 죽기살기로 식민지 개척해야 했고, 또 식민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군사력이 필요하게 되니 과학기술 발전하고...
물론 우리와 일본이 비교적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에 평화로웠던 반면, 중국은 끊임없이 주변 민족들과 소규모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력들이 과학기술 발전을 요구할 만큼 좋은 상대가 못되었더란 말씀입니다.
총 없이도 이기고, 포 없이도 이기는데 뭐하로 그런 것 개발하려고 하겠습니까?
중극의 주변 민족들에게 딱히 부숴야할 성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화포 기술을 발전할 필요도 없고, 중국 자체 넓이만 해도 유럽 대륙보다 큰데 더 영토 욕심 낼 필요도 없고...
뭐 그런 이유죠.
저는 앞서 말씀드린데로 전사학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라면 이것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기원전 3세기경에 쓰여진 '손자병법'과 19세기에 쓰여져 유럽 전술 서적의 효시가 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비교해보라고 하죠.
무려 2000년 이상 차이가 남에도 손자병법이 더 우수한 서적이라는데 이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첫댓글 유럽 문명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닐까요?
펜과 붓.
상형문자와 표음문자.
석조문명과 목조문명.
긴 빙하기 시대란 유럽의 빙하기 였는데 어찌된것인지...
역사는...
지리 ,지질,천문,언어,기후,인종,등등을 abc로 섭렵한 후에나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유럽의 고대문명은 하늘에서 떨어진것이 맞을겁니다.
우리민족은 천손민족 이구요.
빙하기에는 태평양(필리핀해에서 이스터섬까지)에 뮤(무)라는 대륙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상당히 발전된 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유물들이 있습니다.
부도지에서 설명하는 마고문명이, 아마도 뮤대륙일 겁니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우리는 서양세력의 지배를 받고있지요.
직,간접적인 서양세력의 지배를 먼저 벗어나는것이 중요하겠죠
저도 전쟁사에 관심이 아주 많은 편입니다 걸과론적으로 전쟁을 통해서 인류가 발전해왔다는게 아이러니합니다
온마루님의 "전쟁을 통해서 인류문명이 발전해왔다"는 전제에는 절대로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서 기술(잔재주)이 발전한것은 절대로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