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세대에게는 두 가지의 트라우마가 있다.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
송요훈님
전쟁이 나면 평생 모으고 쌓은 걸 한순간에 모두 뺏기고 날린다. 부모 형제와 헤어질 수도 있다. 보릿고개가 되면 쌀이 떨어져 멀건 죽이나 감자 한두 알로 점심을 때우거나 그마저 없으면 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은 추억이나 향수가 아닌 끔찍한 트라우마다.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거나 능력은 없는데 탐욕은 왕성한 정권이거나 부정과 비리로 후사가 불안한 정권은 전쟁과 가난의 트라우마를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나 하면 전쟁이 나는 게 아닐까 불안하고, 노조가 파업을 하면 생산에 차질이 생겨 수출이 줄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다시 가난해지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나이 든 세대의 그러한 불안심리는 전쟁과 가난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수구 정치집단과 족벌 언론이 결합한 패거리 카르텔은 불안심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정적에게는 빨갱이 낙인을 찍고 친북, 종북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투사한다. 주입식 반복 학습과 세뇌 교육으로 사고구조를 단순화하여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기계적인 반응을 하도록 뇌 구조를 바꾼다.
TV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문재인 xx 때문에 민주당 xx들 때문에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흥분한다면, 그는 오랜 세월에 걸친 반복 학습으로 세뇌된 사람이다. 김대중 xx가 노무현 xx로 문재인 xx로 이재명 xx로 바뀌었을 뿐, 자기합리화의 강화와 확증편향의 심리적 작용으로 뇌 구조는 더욱 극우로 진화하였을 것이다.
확신범으로 추정되는 60대의 남자가 야당 대표를 죽이겠다고 칼로 찌르는 테러를 저질렀다. 단독 범행인지 배후가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노조와 시민단체와 운동권과 민주당과 민주화 운동 집단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악마라는 편집증적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야당 대표에게 테러를 가한 가해자인 동시에 수구 정치집단과 언론에 세뇌된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가 운영하던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조선일보가 잔뜩 쌓여 있었고, 임대료는 몇 달째 밀려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겨 가난해진 거라는 선동의 유세를 했었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표를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하여 수술한 것이 엄청난 특혜이고 부정한 행위라도 되는 듯이 스피커 볼륨을 올려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그러니까 더 수상하다. 누가 혹은 무엇이 60대 노인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는지, 그 뿌리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걸까? 조선일보는 그 노인에게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였던데, 테러가 낭만인가?
조선일보의 기사는 의심이라는 여과지로 독소를 걸러내야 한다. 안 그러면 혹세무민의 대중심리전에 넘어가 세뇌를 당하기 십상이다. 기자로 살아온 내 눈에 조선일보는 수구 기득권 패거리 카르텔의 심리전 사령부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해악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