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사람 괴통(蒯通)이 한신을 찾아와 말하였다.
“저는 일찍이 사람의 운세를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귀하고 천한 것은 골법(骨法)에 있고 근심하고 기뻐하는 것은 얼굴빛에 있으며,
인생의 성패는 결단(決斷)에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상을 보면 만의 하나도 실수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 나의 관상은 어떠하오?”
한신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였다.
“잠깐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한신은 괴통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관상으로 보면 제후의 직위가 고작입니다. 그나마도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등을 보면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한신은 괴통의 말을 괴이쩍게 생각하였다.
“지금 초나라 항왕과 한나라 한왕의 운명은 바로 장군에게 달려 있습니다.
장군이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천하를 얻을 것이고,
초나라를 위하게 되면 초나라가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속마음을 터놓고 제 계책을 말씀드리고자 하나, 장군이 쓰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대체 무슨 계책인데 그러시오? 어서 말해 보십시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양분하여 독립하고
거기에 장군까지 가세하여 따로 독립을 하게 되면 마치 솥 밑에 달린 세 개의 발처럼 천하는 삼분됩니다.
이런 형세는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어느 한 나라를 치기 어려운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하늘이 주는 것을 갖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으며,
때가 왔을 때 감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좋은 판단 있으시기 바랍니다.”
괴통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한신이 말하였다.
“한왕은 나를 매우 후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내가 듣기로 ‘남의 수레에 타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몸처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려 한왕을 배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장이와 진여는 벼슬이 없던 시절에 서로 목을 바쳐도 후회가 없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지만,
벼슬이 올라가면서 적이 되어 서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장이는 진여를 저수 남쪽에서 죽였습니다.
두 사람의 친교 관계는 천하제일이라 소문이 났었는데,
결국 나중에는 서로 잡아먹으려고 싸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우환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충성을 다하여 한왕과 친하려 하나, 그 친함은 장이와 진여보다 결코 견고하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런 쪽으로만 바라보시오?”
“장군께서 지금 ‘한왕은 결코 나를 위태롭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신데,
그 맹목적인 믿음이 더 위태롭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할 만큼 뛰어난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을 만 한 자는 받을 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장군께선 황하를 건너 위왕을 사로잡았고, 정형에서는 성안군을 주살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나라․연나라를 위협하고 나서 용저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제나라를 평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신하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지닌데다 명성 또한 천하를 덮을 만큼 드높으니,
저는 지금 장군을 위해 위험천만이란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괴통의 말은 한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좀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한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본 괴통은 더욱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였다.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일의 성패를 가름하는 첫 번째 조건이며,
계략의 좋고 나쁨은 일의 성패를 이룩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한두 섬의 봉록을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재상의 자리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을 시작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계략을 밝히는데 구애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지혜로써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결단치 않으면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호랑이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공적을 거두기 어려우며,
천리를 달리는 준마도 주춤거리기만 하면 뒤뚱거리는 망아지만도 못한 법입니다.”
괴통의 말은 청산유수와도 같이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한신은 거듭 생각한 끝에 일단 괴통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며칠을 두고 번민한 끝에 한신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설마 공로가 많은 나를 한 왕이 치지는 않겠지.”
-《인물로 읽는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