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손 원
집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을 때 가끔 수제비 생각이 난다. 수제비 특유의 차질고 매끄러운 것이 입맛을 끈다. 특히 춥거나 비가 오는 날 으스스할 때면 수제비 생각이 간절하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심하는 아내에게 제의하면 아내는 기꺼이 들어 준다. 내가 수제비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냉장고를 뒤져 애호박 하나를 꺼내고 이내 밀가루 반죽을 한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에 걸쭉한 반죽을 손으로 조금씩 뜯어 넣고 애호박을 썰어 넣으면 된다. 거기에 다진마늘과 청량고추를 넣어 뚝배기에 퍼 주면 나에게는 더 없는 별미가 된다. 두 그릇 정도로 잡고 끓인 것이 곱은 되는 양이지만 혼자 두 그릇을 비우다 보면 다 먹게 된다. 배가 거뜬해 지고 몸도 더워진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수제비를 별미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은 수제비 말만들어도 질린다고 하는 이도 있다. 같은 세대지만 나는 수제비를 좋아한다. 내가 수제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마 추억의 음식쯤으로 각인 되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5남매는 수제비를 자주 먹었다. 양식이 부족했던 시절 수제비는 한 끼 식사로도 훌륭했다. 쌀독이 바닥을 보일즈음 수제비만 몇 끼 먹어도 쌀은 떨어지지 않고 며칠을 버텨 주기도 했다. 그 사이 도정을 해서 쌀독을 채우기도 했다. 당시 수제비나 국새기는 부족한 쌀을 대신하는 것으로 끼니를 위한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어머니께서는 국시기만 많이 먹어도 양식 걱정은 훨씬 덜 수가 있다고 하셨다.
당시 어머니가 끓인 수제비는 거무스레하고 텁텁했다. 직접 수확한 밀를 구식 기계로 빻아서 인지 밀기울이 다소 섞였기에 밀가루 자체가 다소 거칠고 검은 빛을 띄었다. 십 리 길 물방앗간까지 밀포대를 지고가서 빻은 한 포대의 밀가루를 가지고 어머니는 갖은 별식을 만드셨다. 늦가을 비라도 와서 냉기로 으스스해 지는 날이면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하셨다. 수제비나 칼국수를 하셨지만 일곱식구가 먹을만큼 반죽하고 가끔 칼국수까지 할려면 힘도 들고 재료마련도 쉽지가 않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남새밭에 애호박 하나 딸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감자가 있으면 충분했다. 그 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어머니는 호박잎을 따다 부벼서 썰어 넣고 끓였다. 무쇠솥에 솔가지를 태워 끓여 낸 수제비로 식구 모두는 든든히 배를 채웠다. 수재비가 지겹지 않도록 어머니는 힘이 더 들더라도 손칼국수를 하시기도 했다. 우리밀로 찧고 빻은 거무스레한 밀가루로 한 수제비는 다소 시큼하면서도 고소해서 나는 그 맛에 적응한 것 같다. 그 때 그 맛을 그리며 지금도 수제비를 별미로 여긴다.
지금의 수제비는 어머니표 수제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갖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는 까닭을 나름대로 생각 해 보았다. 요즘 슈퍼에 판매되는 밀가루는 대부분 외국산 수입 밀가루다. 밀기울이 섞이지 않아 눈 처럼 하얗다. 증류수가 맛이 없듯이 적당히 미네랄이 섞어야 물맛도 좋다. 예전의 국산 밀가루는 물레방아로 서서히 빻고 밀기울도 적당히 섞여 다소 검기도 하고 고소했다. 고소하고 시큼한 검은 빛이나는 수제비가 제맛인 것 같다. 다음으로는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다. 당시 보릿고개시절은 맛 없는 음식이 없었다. 그 때의 모든 음식이 꿀맛이라면 지금의 음식은 딩겨맛이라고나 할까? 먹거리가 넘쳐나는 것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과 함께 배고픔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릿고개를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제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의 뿌리는 가난이다. 힘들었던 시절의 상징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끼니를 잇게해준 음식이 수제비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원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를 반죽해 끓인 수제비로 힘든 시기를 넘겼다. 그래서 질리도록 먹은 수제비기에 지금도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층에게는 특히 그렇다. 수제비에는 밀반죽을 손으로 뚝뚝 떼어내 끓는 국물에 넣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우리들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짜장면이 싫다”고 말씀하시던 분이다. 자식한테는 싫다는 짜장면을 먹이고 당신께서는 수제비를 드셨다.
옛날 수제비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대충 만들어 먹던 음식이 아니었다. 양반들의 잔칫상에도 올랐던 고급 요리였다.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양반집에서는 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가 흔치 않던 지역에서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 잔칫상에도 올렸다고 한다.
요즘 수제비를 미역국에 넣어 먹기도 한다. 소고기 미역국에 수제비를 넣어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추어탕에 넣어 먹으면 특별식이 된다. 추어탕 잘 하는 식당에 가면 적당량의 수제비를 넣은 추어탕이 나오기도 한다. 추어탕 고유의 맛에 쫄깃한 수제비 맛을 더한 것이 일품이다.
수제비는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그리움과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다. 수제비에는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된장찌개가 일상식으로 애용되고 있듯이 수제비도 그에 못지 않지만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늘도 수제비 한 그릇 하고싶다. 수제비를 들 때마다 지난 날 추억이 떠 오른다. 수제비 한 그릇에 마음이 편안해 지고 속도 든든해진다. (2022. 1. 2.)
첫댓글 수제비는 어렵던 어린시절 추억의 먹거리로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밀가루 수제비는 그래도 고급이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보리가루 수제비를 잊지못합니다.
보리쌀을 도정할때 나오는 속 단가루와 밀가루를 썩어만든 수제비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이 텁텁 꺼끌 거립니다. 그때 그시절을 생각하면 모두가 만석꾼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으니,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손으로 빚어주는 수제비의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집에서 아내에게 수제비를 가끔 주문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패스트푸드 보다 더 몸에 이로운데 자꾸 서양 음식만 좋아하니 딱합니다. 물론 그들도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을 선호하리라 생각됩니다.
뚝배기에 가득 담긴 뜨끈한 수제비가 눈 앞에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수제비에 얽힌 가족의 모습과 애환, 음식으로서의 역사까지도 글을 읽고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