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언론 및 팬들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부분은 지금도 ING 이지만...
[출처] 후추 사이트
"너가 없어야 우리 나라가 산다...", "제발 이제 사라져다오..." "나가 죽어라..."
한동안 스포츠 언론에서, PC 통신 냄비에서, 일부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마구 들끓
었던 말들이다. 이런 욕을 바가지로 들어야만 했던 대상은 우리 나라를 지금 이 꼴로
아작을 낸 원조 독재 박모 씨도 아니고, 무식해서 용감했던 빡빡이도 아니고, 보통사
람 보다 아이큐 미달이었던 노씨도 아니고, 이미 쓰러져 가는 나라에 학실한(?) KO
펀치를 날렸던 영삼돌이도 아니었다.
이 수준 이하의 욕을 실컷 먹었던 사람은 지금 이웃 나라 일본에 가서 돈으로 쳐 발
라 수준이 높아진 J-League에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스포츠 스타 황선홍이다.
황선홍...
정말 그가 '나가 죽어라'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죽을 죄를 지었는가? 90년대부터
10년이 넘도록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그가 국민들에게 받았던 보상은 그저
이런 수준 이하의 욕뿐이었다. 어쩌다 잘하면 '그 봐라. 진작 좀 그렇게 하지…' 정
도의, 빚쟁이가 빚 받았을 때 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말뿐이었다. 왜 그럴까? 왜 우
리 스포츠 팬들은, 아니 일반 국민들은, 이렇게 비난은 넘치고 칭찬에 모자랄까. 좀
떴다 하는 스포츠 스타들이라고 하면 자기네 집 똥파리 잡듯이 파리채질을 해 대려고
할까?
어찌 보면 우리 나라엔 이런 심한 욕지거리를 매일 아침 자명시계 종소리처럼 들려
줘도 모자랄 괘씸, 한심한 정치 경제 스타들이 수두룩한데, 우리 언론들은 그 사람
들에게는 돌멩이 하나 던지는 것도 눈치 보면서 쩍하면 애꿎은 스포츠 스타들만 걸고
넘어지기에 바쁘다.
이런 기자들을 데리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삼류 스포츠 미디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신문사의 저간의 속사정을 보아 너그러이 눈감아 주고 싶기도 하지만, 나라를 위해
공헌한 국민 한 사람을 난도질한 이들의 행동이 인권 유린 수준의 만행이라 그들에게
후추를 뿌리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아니, 이들에게 후추 뿌리기에 앞서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언론에 난도질당한 또 일부 자격 미달의 스포츠 팬들에게 배신당한 우리 스
포츠 스타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료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평가의 기회를 주는 것
이다.90년대 우리 나라 대외 경쟁력에 이바지한 위인이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박철언? 김봉남(하긴, '앙드레'는 이바지했지…)? 신문에
뻔질나게 나고 뉴스에도 뻔질나게 나는 이런 사람들 보다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하
면서 나라에 공헌한 외로운 스포츠 스타들을 더 인정하고 싶은 것이 명예의 전당을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후추의 일관된 입장이다.
왜 황선홍이냐고?
한국 축구. 한국은 축구판이 (달동네) 경제판이나 (패륜아) 정치판 보다 분명 한 수
준 위다. 이 축구판을 수십 년 넘도록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온 사람들은 축
구 협회 사무실에서 장기판이나 두드렸던 협회 어르신들이 아니고, 월드컵 때면 한국
축구의 앞날을 눈물로 걱정하는 우리 스포츠 언론도 아니고, 때만 되면 인생의 목표
가 한국 축구의 승리라도 되는 양 호들갑 떠는 냄비 팬들도 물론 아니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주인공들은 다름이 아닌, 인조 잔디에서 허벅지에 상처입고 맨
땅에서 무릎 깨지면서, 승부만 가르치는 감독들에게 훈장 맡긴 채 빠따(?) 맞아가면
서, 묵묵히 노력과 인내로 견뎌온 선수들 이다.황무지에서 태어나 스스로 경작하는
법을 배워서 고향을 떠나 한국 축구의 밭을 일궈온 고독한 영웅 차범근 이후에도 우
리 축구는 수십 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아시아 정상권을 지키고 있다. 차범근 이후에
최순호, 이태호가 계보를 이었던 대표팀 스트라이커는 황선홍에서 확실한 틀을 잡게
되었다. 90년대에 10년이 넘도록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해 온 선수가 황선
홍이다.
그가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동안 우리는 월드컵 4회 연속 진출을 하면서 아
시아 정상이라는 부동의 위치를 굳혔다. 우리 나라에 축구 선수가 그 밖에 없었던 것
도 아니지만, 수많은 대표팀 감독이 바뀌면서도 황선홍은 부동의 스트라이커 위치를
지켜왔다. 남의 나라에서는 브라질 유학이다, 유명 감독 초청이다 넘치는 축복을 받
으며 축구 판을 키워 왔지만 우리 나라 축구는 축구 배워오겠다고 스스로 떠나는 선
수들까지 발목이나 잡아왔다. 이러한 척박한 축구 판에서 그 잘난 부자 팀 상대 감독
을 쫄게 했던 선수가 바로 황선홍 이다.이런 선수를 실수 한 번하면 마치 방전된 배
터리 버리듯 내팽개치던 우리 언론과 팬들. 무지의 소치라기 보다는 다분히 파쇼적이
고 치졸하다. 이만하면 그의 재평가에 관한 역사적(?) 당위성은 충분하리라 여기며
이제 그의 기량을 살펴보자.
"막말로 니들 황선홍 보다 축구 잘 해?"
막말이다. 막말임은 인정하지만, 정말 어떨 땐 '신문선 ...', '김의진 ...' 그리고…
음냐? '송재익 ...' 이런 인간들에게 꼭 한번 면전에서 되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니들 다 십자 인대 두 번씩 아작나고, 통산 재활 기간 족히 3-4년이나 되게 썩어 가
면서 그리고도 나이 서른 둘에 양놈들 상대로 뻥뻥 골질 할 수 있냐고오???" '파리목
숨' 국. 대 감독들이 머리에 쥐나서 번번이 황선홍 대표팀에 복귀시킬까?? 감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모가지 날라 가는 판국에 유독 왜 그 '발야구 선수 황선홍'은 자꾸
불러 들이냐고? 기자들 아니 팬들만큼 그 감독들이 볼 덜 차 봐서?? 감독들은 그들
에 비해 '4-4-2' '오버랩' '투톱', '윙백' 이런 축구 용어 몰라서?? 답은 딱 하나다.
아직은 황선홍 만한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동네 축구 또는 조기 축구 몇 번 차 본 우리 '통신 해설 위원들', 그나마
그것도 못 해보고 겜방에서 FIFA'99 나 좀 두드리면서 마치 축구에 대한 무지막지한
전문성이나 터득한 것처럼 '기술적 논평'하기 좋아하는 <선데이서울>스포츠 기자들이
여. 그래 그럼 우리 기술적 얘기 좀 해 봅시다 스트라이커 황선홍에 대한 기술적 얘
기 좀 해 보자구요. 후추의 축구 칼럼 '빽 태클'의 작가, 00mymy 님의 '기술적' 평가
다, 함 들어보시라.
황선홍, 그는 정밀한 슈팅력과 결정력, 몸싸움 능력, 헤딩력, 두뇌, 개인기, 그리고
순간순간의 센스와 감각까지! 한국팀의 스트라이커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갖
춘 유일한선수라 말하고 싶다. 수비수들을 앞에 둔 상태에서 공을 몰고 그 숲을 돌파
하여 골을 터뜨리거나 어시스트를 올릴 수 있는 스트라이커 황선홍 말고 우리 땅에
또 누가 있단 말인가? 또한 우리보다 강한 팀을 상대로 위협적인 문전 플레이를 펼치
고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을 꼭 따라 붙게 만드는 유일한 선수다.
황선홍을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가 가지는 다른 스트라이커와의 가장 큰 차이점
으로 폭 넓은 움직임과 공간 활용 능력을 꼽는다. 그냥 동료의 패스를 받아서 골을
잡아내는 슛쟁이에 그치지 않고 동료 선수들이 공격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 주면서
상대 문전을 분주하게 위협한다. 단순히 위치 선정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골 넣기
좋은 위치를 잘 찾는 스트라이커의 능력을 흔히 '위치 선정'이라고 말하는데,황선홍
의 경우 단순한 위치 선정에 그치지 않고 적진에서 적절하고 활발하게 움직임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 동료들의 득점 위치확보에 많은 공헌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대개의 경우 적진에 홀로 떨어진 고독한 스트라이커임에도 우리의 공격은 활기
를 띠고 적잖은 찬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세계적 강호를 만났을 때 황선홍이 득점을 못 올린다고 비아냥
거리지만… 황선홍이 없으면 그러한 득점 찬스조차 제대로 만들어 질 수 없는 우리
축구의 현 수준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90년 월드컵 예선 당시 홍명보와 함께 유일한 대학생으로 출전하여 소중한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티켓을 우리에게 선물했던 그 화려한 시기의 황선홍을 기억하는가?
'96 아틀란타 올림픽 예선 첫 경기!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상대로 올림픽 출전 사
상 첫승을 올릴 수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황선홍이었음을 기억하는가?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던 가나의 수비진 속에서 홀로 상대를 유린하며 공격 루트를 개
척했으며, 그 경기의 결승골이 된 페널티 킥을 유도하여 소중한 올림픽 첫승의 기쁨
을 준 선수가 바로 황선홍이다. 그리고, 지난 3월 28일 월드 랭킹 넘버원인 브라질
을 꺾던 날 최강 브라질의 공격에 맞서 수비와 미드필드 장악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한국팀. 그리고… 하프라인 건너편 브라질 진영에서 4명의 브라질 수비수 무리에 묻
혀 있던 하나의 붉은 점! 그 날의 스타는 기념비적인 골을 성공시킨 김도훈과 수 차
례의 실점 위기를 막아낸 김병지였지만, 최고의 플레이로 브라질을 당황케 만든 장본
인은 바로 4명의 브라질 수비수 속에 우뚝 선 황선홍이었다. 홀로 최전방에 있으면서
직접 공을 몰고 적진을 뚫고 전진하던 황선홍, 수비수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면서 동
료에게 공간과 찬스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공을 몰고 적당한 공간으로 수비수를 빼낸
후 미드필드에서 뛰어 들어오는 동료와 합작하여 브라질 수비를 와해시키던 멋진 모
습, 그리고 몇 차례의 그림 같은 슈팅까지!
그러한 그가 있었기에 철옹성으로만 알았던 브라질의 수비가 무너질 수 있었으며 그
렇게 홀로 적진에서 공격을 주관할 수 있는 황선홍이 있었기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
었다. 왜 우리는 '94년 월드컵 대 볼리비아전의 실수만을 가슴에 담은 채, 그 이후에
발생한 모든 그의 실수마다 격려보다는 원죄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실력보다 더 위대한 인간 황선홍
황선홍을 위대한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력보다 더 빛나는 속이 꽉 찬 멋진
남자로서의 인간적인 매력 또한 매우 크다. 부단히 자신을 계발했던 그의 성실함과
매너. 치명적인 부상 속에서도 꿋꿋이 재기했던 모진 인내와 자기 관리. 그리고 무엇
보다도 화려한 찬사만이 아니라 혹독한 질타로 한 선수를 극도로 매도하는 잔혹한 팬
과 언론의 폭력 속에서도 언제나 넘버원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그였기에 축구 팬들
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생각하는 것이다.
항상 예전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대표팀 초창기의 황선홍은 단지 문전
에서 골을 뽑는 선수였고, 그 다음에는 폭넓은 움직임으로 골 찬스를 만들 줄 아는 선
수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전체적인 우리 팀의 공격
을 리드할 줄 아는 선수가 되었고, 지금은 혼자서도 상대팀의 수비 라인을 와해시키
고 위협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
독일에서의 선수 생활 이후 그의 무릎은 언제 꺾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지만,
수 차례의 치명적인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재기했으며 재기한 후에는 늘 그
렇듯이 우리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선 선수이다. 그의 활약 여하에 따라 우리 팀의 승
패가 좌우되며 그의 부진은 곧 우리 팀의 부진을 가져오기에 항상 찬사와 함께 비난
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 그였지만, 언제나 그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이기고 어김없이
우리에게 시원한 골과 꿀 맛 같은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무려 10년 동안 그는 모진 악조건 속에서도 변함 없는 에이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최용수와 이동국
기술적인 모든 것을 갖춘 황선홍이지만, 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지는 않은 모양이
다. 첫째는 강하고 질긴 무릎을 주지 않아서 항상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으며 그 자신
에게도 불운을 가져다 주었고, 둘째는 성실함과 매너, 화려한 세기는 주었지만 독기
와 깡다구, 욕심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바로 이 두 번째 이유가 황
선홍이 그의 역량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자는 그를 복싱의 교과서라 불리던 알렉시스 아르게요에 비유한다. 기술적인 모든
부분을 교과서처럼 갖추었지만 상대방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강펀치를 갖지 못했던
전설적인 복서 아르게요.
팬들은 차분하게 정돈된 교과서보다는 시험 막판에 한 큐 잡게 만들어 준 쪽집게 과외
서와 족보를 더 간직하듯이… 황선홍은 화려한 세기와 감각을 가졌으나 강인한 파괴
력을 가진 저돌적인 스트라이커로 기억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신이 황선홍에게 선물하지 못한 것을 가진 선수가 최용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황선홍이 가진 세련된 플레이 스타일과 정교함, 부족함 없는 다방면의 기량은 최용수
에게서 찾을 수 없지만, 분명 그는 황선홍이 보여주지 못했던 독기와 무대뽀 정신,
냅따 갈겨 버리는 강력한 슈팅, 공이 흐르는 상황에서의 주저 없는 슈팅, 골키퍼와
의 일대일 상황에서도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갈겨버리는 터프함, 부상을 불사하는 강
한 몸놀림과 헤딩, 최용수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쩌면, 최용수의 이런 시원 시원한 플레이가 보다 더 '한국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용수의 '구력'은 아직 황선홍의 그것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황선홍이 수 많은 국제 대회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은 '감정 콘트롤'
또는 '리더쉽' 측면에서 동료들에게 탄탄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용수의 실력이나 잠재력이 과소평가 되는 것은 황선홍 본인도 원치 않는다. 황선홍
은 21세기 한국 축구를 짊어질 스트라이커 3명중에 최용수의 이름을 빼놓지 않기 때문
이다. 다만, 최용수 앞에는 아직도 많은 축구가 남아있다... 라는 사실이 잊혀져선 안
된다는 뜻일 뿐이다.
이동국. 아직 제대로 자기를 완성한 선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좀 애매하다.
100미터를 12초에 끊는다는 스피드가 믿어지지 않는 거북 걸음, 덩치에 비해 허약해
보이는 몸싸움, 큰 키가 무색한 헤딩력, 유연한 몸놀림이 어울리지 않는 크고 어설
픈 개인기, 독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마치 그의 외모 같은) 연약한 이미지… 황선
홍이나 최용수와 비교한다면 아직은 이런 모습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과 자신감이
있고 짧은 순간이지만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선수다. 거북이 같지만 순간적인
판단과 동작이 빠르다. 자세와 거리, 각도에 상관없이 가장 빠른 타이밍으로 슈팅을
날릴 수 있으며 강도와 정확도 또한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동국 자신이 가장 좋아한 선수가 황선홍이란다. 그가 황선홍의 화려한 세기와 겸허
한 인간성을 갖춘다면… 10년 후 그는 분명히 황선홍을 뛰어 넘는 위대한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인간 황선홍 The Bio
황선홍은 1968년생, 잔나비 띠다. 태어난 곳은 충남 예산군 응봉면 입촌2리. 하지만
그가 이 곳 예산에서 뒹군 시간은 불과 5, 6년. 꼬맹이 시절 황선홍은 서울-예산을 오
가며 '정들만하면 옮겨가는 철새' 생활을 해야만 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불안정한 생활, 그리고 여덟 살 때 갑작스레 닥친 어머님의 '가출' 때문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볼'을 차기 시작한 것은 용문 중, 고에 진학하면서다. 고등 학교 시절
한두 차례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전통적인 '축구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황선
홍은 그의 당시 희망과는 달리, 건국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건국대 재학 시절 그는
첫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황새'의 근원지를 찾아 헤매던 필자는 이 별명이 1988년 즈음에 지상에 처음 공개
된 사실을 알고 엄청 놀랐다. 1988년 11월 7일, 대표팀에 첫 발탁 된 황선홍을 보고
'180cm 넘는 키에 야윌 대로 야윈 그의 모습 때문에 더 길어 보이는 기형적 롱다리'
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몬주익의 영웅', '7전8기', 또는 '헐크' 만큼이나 스포츠
계에서 생명력 있게 따라 다니는 이 별명은 바로 그의 용문고 축구부 선배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성이 '황'씨인데다 다리가 엄청 길다고 말이다. (인터뷰 참조)
그의 국가 대표 신고식은 1988년 12월에 열렸던 제9회 아시안 컵. 그의 첫 상대??
후후 다름 아닌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전에 유독 강한 황선홍은 아마도 일본 애들
상대로는 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첫 경기부터 그는 1골, 1어시스
트라는 상큼한 성적을 내었으니 말이다. 이를 시작으로 약 5, 6개월 동안 황선홍은
정말 미친 듯 골을 넣어 댔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그를 향한 우
리 언론과 축구 팬 모두의 심정은 아마도 이랬지 않았나 싶다. '나이는 어려도 황선
홍이 쟤 결정적인 찬스 때 한 방 넣어 줄 거야. 1986년 멕시코에서 한 골 넣고 경험
쌓았으니, 이태리 가선 16강도 잘~하면' 그리곤 항상 국제 대회 끝날 때마다 나오는
말들, '세계의 벽은 높았다'아멘...
이탈리아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황선홍에게 봉착한 가장 큰 이슈(issue)는 바로
'프로리그 드래프트 반발'이 아니었나 싶다. 유일한 대학생 월드컵 팀 멤버였던 홍명
보와 더불어 연봉 3천만 원에 몸을 팔아야 했던 당시 리그 규정에 '생활인 황선홍'은
"잣까~!" 를 외친 셈이다. 말은 '프로'였지만, 대우는 '아마'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게
당시 우리 축구의 현실이었다. 요즘 잘 나가는 축구 선수들에게 "실력이고 지명도고
다 집어치우고 신인들은 일률적으로 연봉 지급한다!" 라고 그랬더라면 요즘 선수들
뭐라고 했을까? 아니, 이런 예견된 선수들의 반발은 이듬해 또 다시 표출되었다. 정
재권, 강철 등 대졸 유망주들이 또 다시 드래프트 거부를 단행 한 것이다.
' 골 넣고 이기는 역할'이 전부였던 당시 우리 축구 선수들의 제한된 가치, 축구 시장
으로서의 성숙도, 그리고 일방적으로 '까라면 까'야 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엄청난 파문이었다. 그리고 황선홍이 얻은 것은 쓸쓸한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
는 것이었다. 언제 고국 무대에 '컴백 홈'할지도, 독일에 가서 얼마만큼 성공할 지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말이다.
황선홍의 간략한 일대기를 쓰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상'이
다. 국가 대표 생활 10년 이상 한 선수치고 황선홍 만큼 몸에다 '칼질'을 많이 한 선
수가 또 있을까? 요추, 발목, 허벅지, 무릎 십자 인대, 멀쩡한 곳이 없다. 그에겐 그
런 악몽 같은 부상들이었지만, 한편으론 '생명의 은인'이 바로 그 부상이기도 하다.
그의 '천년배필' 정지원 씨를 그놈의 부상 때문에 만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덕성여대 독문과를 다니던 독일 어학 연수생 정지원 씨를 황선홍은 유학 시절에 처음
만나고 한눈에 '뻑' 간다. 당시 2부 리그 부퍼탈 소속이던 황선홍은 하루가 멀다 하
고 독일 본으로 정씨를 만나러 다녔고, 그럴 무렵, 한 연습 경기 중 '십자 인대 파
열'이란 듣기만 해도 살벌한 부상으로 5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다. 피붙이 한 명 없는
이국 땅 병원 안에서 5개월 동안 황선홍은 몹시 외롭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정지원 씨의 따뜻한 보살핌, 그리고 변함없는 응원
덕분에 황선홍은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첫째, 고향 앞으로! 그리고 둘째, 내
아기를 낳아 줄 사람 정지원."
그의 결혼식은 1993년 크리스마스 날로 잡았다. 보기보다 로맨틱한 부분이 있는 남자
다. 물론 합숙이다, 전훈이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기에 날짜를 그 날로 잡았겠지
만, 혹시 필자의 꿈인 '선물 하나로 크리스마스 & 결혼 기념일을 한 큐에 후다닥~~ '
할 저의는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후 황선홍의 축구 인생은 정말 경기도 용인의 어느 놀이기구 만큼이나, 아니 요즘
우리 주식 시장의 주가 변동만큼 들쑥날쑥 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대 볼리비
아 전을 시작으로,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대 일본전 결승골, 코리아 컵 음주 파
문, 프로 축구 8게임 연속 득점, 애틀란타 올림픽 팀 선발, 무릎 부상, 화려한 국대
복귀, 프랑스 벤치 신세, PK 실축, 그리고 다시 J-League 득점 선두까지 말이다. 199
4년 미국 월드컵 이후 그의 기록이나 '인생사'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웬만한 축구 팬이라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테니까 말이다.
이쯤에서 '인간 황선홍'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 넘어 가야 할 것 같다. 브라운관 속에
서 보여지는 축구 선수 황선홍이 아닌,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인간으로서 말이다
우리 팬들은 아주 드럽게 고약한 버릇이 있다. '스포츠 스타도 엄연한 공인' 어쩌고
하면서 정작 팬들 스트레스 쌓일 때만 '공인 타령'하고 나선다. 옥상 위에 쓸쓸히 걸
려 있는 샌드백처럼 말이다. 우리는 술 퍼마시고 별의별 망측한 '홀딱쇼'를 해도 OK,
조카 뻘 나이도 안 되는 여중생들 불러다 놓고 '원조 교제'다 뭐다 해도 OK, 우리가
음주 운전 하면 '딱 한 잔밖에'고, 운동 선수가 음주 운전하면 생계를 아주 망쳐 놓
으려 하고, 우리가 겜방 가서 밤새고 '스타크' 하는 건 스트레스 해소, 운동 선수가
밥 먹고 한두 시간 빠찡꼬하는 건 얼 빠진 놈... 끝이 없다.>
공인 대접 제대로나 해주고 나서 그런 말하면 역겹지나 않지, 연예인들처럼 TV에 나
와서 "많이 사랑 해 주세용~~" 하는 것도 아닌 운동 선수들. 다 지들이 좋아서 따라
다니고 사인 받고 하는걸 가지고 공인 대접해줬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
다. 각설하고...
'오빠 부대의 우상', '무쓰 회사 영업 사원' 같이 보이는 '개성파' 신세대 선수들에
비해 황선홍은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는 항상 그렇게 믿어 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축구화 끈 매고 하자' 라고 말이다. 왜곡된 기사에 대한 그의 반응도 '내
가 최선을 다 했는데 더 이상 뭔 할 말이 있겠나.'라는 생각이었고, 그의 명성에 비
해 유난히 TV 출연이나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온 사실조차 부인하는 독자가 있다면.
요 대목에서 후추 뚜껑 덮어 주기 바란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조용히 운동만 하면
서 살아 온 황선홍이 요즘 일본 생활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
로 '알아보는 사람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한다 '외국에선 잘 해야
본전이다'라고. 그만큼 남들의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타겟이라는 걸 잘 아는 그이기
에 일본에선 더더욱 '짱 박혀서' 볼만 차고 있다 .
"그는 부산을 떨지 않는 선수입니다. 그 많은 부상을 당했어도 본인이야말로 사실 얼
마나 내심 조급하겠습니까? 이 치료, 저 치료를 다 받아 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잠깐
이라도 나가서 뛰어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실 조그마한 부상을 입고도 나 죽
네 사네 하는 선수들 많거든요. 큰소리 안 내는 고참 선수지만, 그런 그의 모범적이
고 우직한 자세가 후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고, 그가 부상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그를 수년간 옆에서 지켜 본 한 축구 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어릴 때는 술도 좋아하고 놀기도 좋아했던 황선홍이다. 황선홍의 주량은 대단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운동 선수 입에서 "한번 마시면 많이 마시죠." 라는 소리가 나올 정
도라면(이 사람 옆에서 누가 '타이타닉주' 만드는 건 좀 사양 해 줘요.) 요즘 들어 황
선홍이 고맙게 생각 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어릴 땐 술 마시고 노는 것에 대
한 콘트롤이 없었지만, 이젠 그게 되니까. 편하다." 그리고 그 공은 다 지극 정성
아내에게 돌린다. 황선홍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많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연륜', '성숙', '순수',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광끼' 까지 덧붙었다 하지만 황선홍
의 고독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어릴 적 하루아침에 훌쩍 떠나 버린 어머니, 평생을 외롭게 혼자서 '우리 아들 선홍
이'만 외치다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 그리고 운동 선수에게 가장 힘들고
혹독한 시간이라는 재활을 밥먹듯이 겪어 온 황선홍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
라는 답변엔 그 아무도 물음표를 달 수 없을 것이다. 따뜻하고 잔정이 많은 인간 황
선홍의 '인간적인 신임'을 얻기까지엔 아마도 긴 세월과 잦은 만남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황선홍 주변을 맴 도는 인물 중에서 축구 판 출신이 아닌 사람들
은 그리 많지 않은 듯 싶다. 하지만 그가 서슴없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고 말하는 유일한 '민간인' 그룹은 지난 수년 동안 그와 함께 동고 동락 해 온 그의
팬클럽 '황새'의 친구들인 것이다. 이들 역시 황선홍의 믿음을 얻기 까진 세월이 필
요했고,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런 '황새' 팬클럽 회원 십수 명이 지난 8월 중순 오사
카 원정 응원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고 젊은이들의 신선함과 그들을 밤늦게까지 끌
고 다니며 구석구석 구경 시켜 주고 군것질 거리를 나눠 먹었다는 황선홍의 따뜻함에
필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열댓 명의 동생들과 함께 오사카의 밤거리에서
만 자유롭고 평화롭게 날 수밖에 없는 황새 황선홍. 우리의 철없고 성급한 한두 마
디가 한 인간의 생활 패턴 그리고 성격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황선홍은 안 돼!
지금 이 순간에도 통신, 그리고 언론 지면상에는 황선홍에 대한 논란이 계속 되고 있
다. 잘 하면 잘 한다고 못 하면 못 한다고 말이다. 그가 국대 유니폼을 처음 입은 그
날부터 줄곧 황선홍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소줏집 안주'이자 '축구 판의 발닦이'였
다. 후추가 작정을 하고 다 뒤집어 까 봤다. 지난 몇 년간 통신 그리고 언론상에 오
른 '황선홍 죽이기의 일등 공신'. 그들이 왜 그리도 황선홍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지 대략 10가지의 유형별로 짚어 보았다, 그리고 명확히 후추의 입장도 밝힌다.
황선홍, 그는 큰 경기에 약하다.
개소리다 황선홍이 넣은 국제 대회 결승골이 도대체 몇 개인지 필자 역시 이 글을 준
비 하면서나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아주 단순 무식하게 표현하자면, 그가 지난 12
년 동안 태극마크 달고 뛴 3개의 월드컵 예선전에 터뜨린 결승골만 해도 여럿이다.
그 외 수도 없이 치뤄진 친선 경기에서의 결승골(승패와 무관한 골이 아닌)만 하더라
도 한일전, 통일 축구, WC 유치 기원 초청 경기 이런 경기에서 터뜨린 결승골이 어림
잡아 열댓 개다 도대체 '큰 경기'의 정의가 뭐냔 말이다. 월드컵만 큰 경기라고 하시
는 독자 역시 요 대목에서 후추 뚜껑 덮어 버리시길.
황선홍, 그는 똥볼을 찬다(개발이다, 헛발질을 한다,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 문전 처
리가 미숙하다)
그가 소위 '똥볼' 차서 경기 대세에 지장을 준 경기는 1994년 월드컵의 대 볼리비아
전 단 한 차례다 황선홍? 맞다. 똥볼 많이 찬다. 왜? 똥볼 찰 기회라도 그가 제일
자주 만드니까. 그리고 똥볼에 대해서 논하자면 '황선홍 = 똥볼' 문제가 아니다. '한
국 축구 = 똥볼' 이 더 냉정한 분석이다. 똥볼 안 차는 한국 스트라이커 있음 나와
보라고 해!! 한국 축구가 왜 '똥볼 축구'냐는 질문은 오늘 밤 세워 박 터지게 얘기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서울 신문로 한구석 6층 접견실에서 청와대 내다보
이는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에게 따져야 할 문제다. 황선홍한테 따지지 말고 말이다.
황선홍, 그는 실수를 많이 한다.
너나 잘 해. 너는 실수 없는 로보캅이냐?
황선홍, 그는 스피드가 딸린다.
최전방 포워드로서 황선홍이 스피드 딸려서 졸전한 경우는 없다. '에어로빅계의 거물'
장모씨의 아들 모재근님 스트라이커 시킵시다, 그럼... 베르캄프, 또는 호나우도보
다 더 빠른 수비 선수도 많다.
황선홍, 그는 키에 비해서 헤딩 능력이 떨어진다.
워낙들 주관적인 평가라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하기도 싫다. '후추가 보기엔 헤딩골도
심심찮게 넣더라'정도밖에. <180cm 이상 3경기당 헤딩골 1골>, <185cm 이상 2경기
당 헤딩골 1골>. 이런 '공격지침서'라도 있나, FIFA Rule에??
황선홍, 그는 우리 축구의 세대 교체에 걸림돌이다.
후추 입장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황선홍 선수를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집어넣어야
한다!!' 이거 아니다. 그의 체력, 경기력, 그리고 투지가 살아 있는 한, 대표팀에서
의 그의 역할과 가치는 분명히 있다 라는 말이다.
황선홍, 그는 운이 없다.
그가 겪은 부상만 놓고 보면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운 없는 사람들,
많이 봤다.
황선홍, 그는 조금 한다고 유명세, 겉멋이 들었다.>
자의 건 타의 건 간에 올스타 게임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선수도 있는 세상이다. 지
잘난 맛에 부모 형제도 죽이는 세상이다.
황선홍, 그는 원래 실력이 떨어진다.
당신 '세팍타크로' 팬이지?
황선홍, 그는 자신감이 없다.
자신감 생기도록 한동안 꾸준히 밀어나 주고 이런 말하자.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외
국에 나가 있는 선수, 감독마다 하는 말 '정신적으로는 편하게 살고 있다'.
이 말이 뭔 말인지 다 함께 한번 생각 해 보자.
FREESTYLE INTERVIEW
황선홍:황선홍입니다.
주방장:오랜 만입니다. 기억 나세요?
황선홍:글쎄요. 하도 오래 전이라 ...
(주방장이 황선홍을 처음 만난 자리는 지난 1998년 3월, 그가 대표팀에 복귀 한 직후
였지만, 워낙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 틈에서 만나 사이라 가물가물 했다.)
주방장:(비행기에서 들고 온 스포츠 신문을 건네주며) 여기서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이것 저것 그냥 좀 챙겨 왔어요.
황선홍:어휴, 뭘 이런걸. 야~ 정말 고맙습니다.(신문을 펼치자마자 축구 섹션부터 펼
치면서 하는 말) 아~~~ 정말 우리 축구 이래서 안 된다니까. 이걸 인정 해 줘야지.
주방장:뭐요? 안정환 연속 골 기록요?
황선홍:예에. 이걸... 어휴, 나 때도 경고 누적으로 한 번 못 나갔거든요. 근데 정환
이 골을 인정 해 주지 않으면 내 기록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건 해줘야지...
야구에는 이승엽 선수 홈런 기록으로 난리가 아닌데, 축구는 이런 이슈를 없어도, 만
들어서라도 무슨 관심거리를 만들어 줘야 할 판국에 있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요 대목에서 후추 주방장 조금 놀람. 사실 한국 축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도 아
니지만,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후추 주방장 앞에서 하는 황선홍의 첫 마디가 이
렇게 솔직하다니. 아!! 오늘 방송 재밌겠다.)
주방장:그 분(이반 스포츠 이영중 사장) 밑에 있는 선수들이 그렇게 다 믿는다면서요.
황선홍:매니저가 어떻게 따지면 직업이잖아요.
주방장:그게 밥줄이고...
황선홍:물론 직업적인 것도 있겠지만, 그런 걸 떠나서 선수 편에서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이 가니까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하는거죠.
선수한테 그 사람이 나를 이용하고 그런 건... 절대 없을거다. 그런 확신이 있으니
까... 그러니까 우리 매니저 계약을 맺고도 후배들이 물어보는 애들이 있다고....
누가 제일 괜찮냐고, 누구하고 매니저 맺어야 되냐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니까...
주방장:최용수 매니저도 그분이 하세요?
황선홍:그 분이 안 하죠.
주방장:그리고 구단에서는 왜 그렇게 선수들 외국으로 안 내보내요?
황선홍:구단에서는 많이 박대해요.
주방장:짜증나 진짜...
황선홍:지금 우리 같은 경우는 나와 있지만, 여기 나와 있는 선수가 전부 다 25 살
이후예요. 석주형 많이 먹으면 32살, 나 31살, 명보도 31살, 정윤이 28살, 성룡이가
제일 어리고, 상철이랑... 상철이 27살? 실컷 써먹다가 정말로 외국 가서 힘쓰고 이
럴 수 있을 때는 절대로 안 보내준다 해놓고, 다 써먹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까
닥까닥 이제 뭐 너 갈데 있으면 가라. 이적료 많이 챙기고 선수 연봉 덜 받게.
주방장:내가 솔직히 옛날부터 생각하는 게, 우리도 외국처럼 스포츠 선수 노조 좀 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법 공부 안한 게 후회가 된다고요.
황선홍:옛날 최순호 선배님, 그분 현역 때 노조 만들려고 하다가...
주방장:아, 그 때는 때가 아니었겠지. 지금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그거 생겨요. 스포
츠라도 결국은 종속 관계인데. 그리고 계약도 맺어 놓은 거 보면 말도 안 되는 계약
도 만들어놓고..
그런데 일본에 잘 오신 것 같애. 솔직히 일본 정도는 한국하고 그렇게 멀지도 않고
언어, 문화도 나름대로 비슷하고 유럽이다 이런데 가는 것보다는 편하잖아요? 물론
축구 선수로는 그런 쪽에 꿈이 분명히 있겠지만, 이 나이에 그래도 일본 정도 면 좋
잖아요?
황선홍:유럽 가긴 너무 늦었죠. 내가 월드컵 끝나고... 정말로 외국 나가서.... 정말
로 한국이 지겨워서, 하도 채여 가지고...
주방장:(황 선수의 갈기갈기 꿰맨 수술 자국을 보면서) 오른쪽 무릎 좀 보여주세요.
그게 십자 인대예요?
황선홍:후훗, 두 번. 근데 사실 십자 인대라는 데가 축구 선수한테는 치명적이에요.
내가 독일에 있을 때 1992년도에 끊어 졌어요. 근데 거기서 수술을 받고 체력 훈련을
하고 6개월 만에 운동장에 나갔어요. 최고 빨리 회복이 되어야 6개월만에 운동장에
나갈 수 있다고 그랬는데, 6개월 만에 제가 나갔어요 그 땐 나이도 어렸고, 그 운동
시키는 사람. 그 사람 말이 '법'이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6개월 만에 나왔어요.
근데 1997년도에 또 끊어졌잖아요. 수술이 잘못 됐나봐요. 아니, 수술이 그 때 당시
에는 잘 됐는데, 그게 인제 바뀐 거야. 이제, 더 안전한 방법이 나온 거야. 1997년에
그래서, 차 감독님 섭외를 받고 갔지. 월드컵 예선하기 전에 4월에?... 아마 5월에
수술했구나. 수술해서 지금도 가끔 안 좋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찍어
보면 그 십자 인대 수술은 아주 잘 됐대요. 그러더라구요~~.
주방장:근데 왜 다들 무릎 수술하려면 독일로 가는 거예요? 오늘 오후에 참, 고종수
선수도 무릎 때문에 독일 간 거 알죠?
황선홍:아, 독일 갔어요?? 오늘?? 아~~ 연골. 근데 나는 그 현지 사람들도 그러는
게... 그 의사들도 왜 시즌 중에 그렇게 모험을 하냐고... 근데 난 무슨 생각을 하냐
하면, '재활훈련'. 재활훈련 때문에 거기 가는 거죠. 난 진짜, 당시 한국에서 재활
훈련을 했다면 다시 공 못 찼을 수도 있어요. 왜냐? 혼자 다 해야 되거든. 그건 진짜
자기하고의 싸움이에요. 근데 어느 정도 한 번 그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도저히 한국에선 자신이 안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거기서 수
술 받은 다음에도 난 여기서 더 있어야 되겠다 했 죠.
주방장:혼자 갔어요, 그 때?
황선홍:와이프랑 다 같이 갔죠. 한 5개월 정도 거기서 재활을 하고 왔는데도 완전히
다 낳을 때 까진 한 1년 넘게 걸렸어요.
주방장:근데 그런 거 보면 신기한 게 일반인들 그런 십자 인대 나가고 그러면 병신되
는 거 아니에요? 근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씩 뛰는 운동 선수가 그거 두 번 끊어진
다음에 다시 공 차는 거 보면...
황선홍:하하 저도... 저도,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신기해.
주방장:그런 거 보면 사람 몸이 참 골 때리는 거예요, 네?
황선홍:제가 개인적으로 참 많이 생각하기를, 이게 다시 끊어지고 1998년도 3월에 아
디다스컵 개막전하면서 다시 복귀했는데, 다시 내가 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는 것 하
나로 '하늘에 감사하고, 하느님을 믿진 않지만,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겠다'라
고 생각했어요.
주방장:불교예요?
황선홍:아뇨, 종교는 없어요. 옛날에 잠깐 기독교를 믿긴 했지만...
주방장:근데 결혼 생활이나 애들 크면서 종교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 안 들어요?
황선홍:뭐 별로 그렇게 까진.
주방장:선홍 씨랑 동갑이지만, 결혼을 아직 안 해본 나로선. 남자가 행복한 결혼 생
활 유지하는 게 그 무슨 일 보다도 힘들지 않아요?
황선홍:다른 세계죠. 그거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랑 물론 결혼은 하지만, 그 결혼
생활이 정말로 핑크빛만은 아니고. 어떨 때는 구속이라고 느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정말 행복이라고 느낄 때도 있고, 그런거죠 뭐.
주방장:연애할 때랑은 다를 것 같아, 그죠?
황선홍:틀려요. 근데 이제 제가 생각하기에는 운동 선수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결
혼은 빨리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만약에 수술을 하고, 두 번 했는데, 그 때 만약
에 가족이 없었더라면, 그 때 나 못 버텼을 거야.
주방장:첫째는 그럼 지금 유치원 다녀요? 좋아해요? 살 만 하대요?
황선홍:친구가 많지가 않으니까.
주방장:근데, 애들은 어른보다 빨리 적응하겠지. 여기, 근데 조총련 그 쪽 애들은 없
어요? 조총련계 학교도 있다면서요?
황선홍:있어요.
주방장: 난 동경은 자주 가봤지만 오사카는 이번이 처음인데, 여기 일본은 올 때마다
좀 주눅 드는 거 있죠?? 애들이 워낙 깔끔하고 깨끗하고 상냥하고 그러니까... 질서
의식, 시민 정신 투철한 거 같고. 얘들은 진짜 선진국 같다는 그런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가?
황선홍:아니, 근데 난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거 잘 몰랐는데, 뉴스를 봐도... 여기
우리 집엔 뉴스가 나와요. 우리 집엔 'KNTV'라 그래 가지고 '뉴스데스크'가 1시간 늦
게 10시부터 나오는데, 뉴스는 꼭 봐요. 스포츠 뉴스도 보고.
주방장:스포츠 뉴스도 봐요?
황선홍:뉴스가 끝나고 스포츠 뉴스 하는 거 보고 그러지. 근데, 한국에 있을 땐 못
느꼈는데, 뉴스를 봐도 막, 그... 요새 뭐 '옷로비' 그래 가지고 청문회하고 그러니
까 옛날 같았으면 국회의원이... 다 뭐 우리보다 훨씬 나은 레벨의 사람들이구나 했
는데, 지금 여기 와서, 제3자의 입장에서 좀 떨어져서 딱 보면... '사람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물론 우린 운동하고 했기 때문
에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상식이 어느 선이라는 건 아는데, 저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그런 것도 엄청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런게 조금은 그
냥 싫지.
주방장:여긴 언제까지 있을 거죠? 계약이 언제까지죠?
황선홍:올해까지요, 올해.
주방장:올해 계약 끝나요?
황선홍:예, 1년 단위로 하니까.
주방장:어제 그저께 스포츠 신문 보니까 '황선홍, 내년 연봉 14억은 부른다' 그러면
서 '나카야마가 7억인가 8억을 받고, 황선홍이 이 정도로만 나가면 14억은 문제없다'
뭐 이렇게 나오던데, 기사에? 근데 지금 돈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
럼 이거 다음엔 뭐죠? 여기서 뼈를 묻을 거예요?
황선홍:아뇨, 전 한국 갈 거예요(웃으면서) 난 한국 가야 돼.
주방장:왜요?
황선홍: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인식을 다 바꾸고 은퇴 할라
구요. 그게 내가 해야 될 일 같애.
주방장:그럼 재계약 여기서 할 지 안 할 지 모르겠네.
황선홍:그거는 아직 모르죠. 근데 갈 생각도 있어요. 난 은퇴를 어차피 한국에서 하
고 싶어 하니까. 내가 나이 먹어서 정말 힘 없어서, 힘 떨어져서 돌아가서 추태 보이
는 거 보다는 내가 힘... 그러니까 팬들에게 좋은 경기 보여줄 수 있을 때 들어가서,
뭐 1년이고 2년이고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정말로 PC 통신엘 들어가도 정말로 많
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분들 다 나 좋아하게끔 한 후에 은퇴해야지. 그게
내가 할일 아니겠습니까?? (웃음)
주방장:몰라요. 그게 하루아침에 되겠어요.
황선홍:뭐, 근데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방법이 없잖아요?
주방장:맞는데, 봐요... 10게임 나가서 9게임 잘해도 한 게임 똥볼 차면, 다음 날 헤
드 라인에 결국 또 '황선홍, 똥볼 찬다'라고 나올 거 아니에요??
황선홍:그거야 뭐. 그렇게 가서 해도 그렇게 얘기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주방장:우리 후추도 사실 그런 쪽에서 좀 더 스포츠 여론을 좋고 성숙된 방향으로 선
도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하는 거지만.
황선홍:근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짧은 시간에 그런 걸 바꾸기에는.
주방장:그래도 누군가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그런 작은 변화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희망 사항이지요 뭐.
황선홍: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저도 생각을 하거든요. 바뀌어야 된다고는 생각을
해요. 뭐가 바뀌어야 하는 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는데, 바뀌어야 된다고는 생각을
해요. 근데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주방장:그거 누가 하겠냐구요? 4, 50대 축구 원로 아저씨들이 하겠어요, 아님 기자
들이 하겠어요? 아님 협회 아저씨들이 하겠어요? 아님 그렇다고 선수들이 하겠어요?
결국은 젊은 팬들이나 축구 아끼는 사람들이 하지 않겠어요? 누군가 한다면... 내가
지금 회사 때려치우고 이 일 한다고 이러고 있지만, 사실 나도 몰라요. 혹시라도 우
리 사이트가 '떠서' 인터넷에서 파문이 일어난다면, 나중에 '높으신' 어느 분한테 보
복당할지 알게 뭐에요?? 하지만 막말로 '죽이기야 하겠냐 ...' 하는 생각으로 하는
거죠.
주방장:(역대 황선홍 관련 신문 헤드 라인 모음을 보여 주며) 그 중에 혹시 기억에
남는 기사 있어요?
황선홍:후~, 우리 와이프도 가끔은 그런 얘기를 하던데. "오빠는 정말 너무 극 과 극
을 달린다."고. 이번에도 그렇고. 내가 직접 통신 가서 보기도 했지만... 왜, 코리아
컵 때 PK 못 넣어 가지고. 그 때 팬들이 스트레스 받은 게 너무 크다 이거지. 물론
이해가 가요. 스트레스 준 건 사실이니까. 근데 뭐 내가 생각하기엔, 물론 잘 할 때
도 있고, 못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코리아컵 같은 경우나 브라질전 같은 경우나...
일본에 온 후로 내가 한국에 불려 가서 대표팀 경기를 뛸 때는 정말 한국에 소속되어
있을 때의 대표팀 경기 때 보다도 2배는 열심히 뛴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팬들이나 감독들의 지시를 왜 안 따랐나
한다면... 내가 판단하기엔, 나는 감독 지시 어긴 거 없어요.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전화도 오고 하지만, 해명 기사를 써주겠다고는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했
어요. 그건 얘기할 건덕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
각하기 때문에 뭐.
주방장:그 기사 쓴 기자도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세요?
황선홍:개인적으로는 모르죠.
주방장:댁에 애기 엄마는 동갑이세요?
황선홍:저보다 두 살 어려요.
주방장:일본 생활은 어떠시데요?
황선홍:옛날에 독일에도 혼자 있고 해봤으니까... 외국 생활이 그렇게 힘들진 않나봐요.
자리를 옮겨서 역시 나가이 전철역 근처에 있는 한 작은 커피숍으로 갔다. 마땅히 갈
곳을 못 찾아 헤매고 있던 중, "인터뷰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어디 가서 그냥 술이
나 한잔 할까요?" 하는 후추 주방장의 질문에, "에이, 술은 안 돼요. 모레, 글피에
원정 경기 있어서. 지금 밥 먹으면서 맥주 한 잔 마신 것도 어휴~, 안 될것 같아요."
주방장:이동국은 어때요? 다들 뭐 난리던데.
황선홍:어유~, 좋은 선수죠.
주방장:아, 그럼 이렇게 물어볼께. 본인이 이런 얘기 하기는 좀 뭐 하겠지만, 스트라
이커로서 '황선홍 대를 이을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의 실력만 놓고
본다면?? 스트라이커 꽤 있잖아요. 이동국, 최용수, 안정환, 김도훈?
황선홍:대답 못해, 대답 못해.
주방장:왜요? 미안해서??
황선홍:뭐, 그런 것도 있고.
주방장:OK!, 그럼 세 명을 뽑으라면? "이 세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황선홍:동국이, 용수, 은중이... 근데 은중인 볼 차는 건 내가 직접은 못 봤어요. 근
데 그누마가 자세히는 못 봤는데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직은 어린 선수니
까. 스피드나 파워는 없는데 골 넣고 하는 거 보면 feel이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그
파워나, 스피드나... 이런 건 성인이 되면 다 따라 온다는 얘기죠. 동국이 같은 경우
는... 지금 확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은중이랑 똑같이 갖고 있는데, 동국이는 파워나
이런 걸 더 갖고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동국이가 더 나타날 수 있는 것
같고, 아직은 모른다는 얘기죠. 지금부터가 정말이란 얘기죠. 내가 동국이한테 항상
그래요. 지금부터가 힘들고 정말 어려울 거라고. 우리 나라도 발굴하는 것 까진 좋은
데, 계~~속 가게 뒤에서 도와줘야죠.
주방장:장난은 아니었겠구나. 하긴 장난일 수가 있겠어요? 98골이나 넣었는데?
황선홍:그러니까 인정을 해 줘야 돼죠
.
주방장:맞아요. 이 질문은 대답 안해도 되는데, 포항이랑 더 이상 계약적으로 제약이
없다면 지금 한국에 있는 팀들을 보면서... '아, 저 팀에 가면 저 선수들이랑 같이
볼 차면 재미있겠다' 하는 팀 있어요?
황선홍:하하... 이거(녹음기) 끄면 내가 얘기 해 줄께요(녹음기 끔).
-생략-
황선홍: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그 팀을 편 드는게 아니라, 현대 스포츠는 돈
이라고 생각해요. 독일의 레베쿠젠 같은 경우는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아요. 근데
왜 그렇게 분데스리가에서 명문이 되고 유럽 축구에서도 명문이 되었냐 하면, 지금
계속 5위 안에 들어요. 그 팀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요. 좋은 선수를 사다가 놓으
면 그 팀이 좋은 팀이 되는 거에요 우리나라도 10개 팀이 있는데 차별이 있어야 된다
고 생각해요. 팀간에, 만약에... 포항 스틸러즈라는 팀이 독일의 레베쿠젠 처럼 가자
고 한다. 투자도 많이 한다... 그러면 당연히 한국에선 독보적인 클럽이 될 거 아닙
니까? 그럼 만약에 어린 프로 선수들이 프로 팀에,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겁니다,
좀 레벨이 낮은 팀에 있다가도 그 명문 팀에 가서 뛰어 보는 게 꿈이에요. 그런 클
럽이 나와야 되는데, 우린 10팀이 다 똑같아요. 누가 누구랑 붙어도 이건 예측할 수
가 없어요. 근데 일본은 그런 체계가 조금은 잡혀 있어요. 투자 많이 하고.
주방장:얘기 들어보니까 미국 NBA도 그렇고 일본 야구도 그렇고 정말 그런 '엘리트
팀'이 있긴 한 것 같네요.
황선홍:그리고 만들어야 되요. 그런 팀을. 하고자 하는 팀이 있으면 그건 밀어줘야
되고 만들어야 되요. 화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어느 독보적인 팀이 최하위 팀한테
물리는 경우도 있단 말이야. 그게 화제 거리지.
주방장:그게 스포츠의 매력이잖아요.
황선홍:맞아요. 근데 우리 나라는 10팀이 다 똑같애, 실력이.
주방장:그럼, 그런 사람들도 간혹 있어요. 돈이든 뭐든 다 투자를 해서 최고 선수들
만 집결시켜 놓은 팀의 감독이 우승을 한다면, 그건 과연 우수한 감독이라고 평가받
을 수 있어요?
황선홍:그럼요! 왜냐하면, 멤버가 좋다고 우승하는 거 아니예요. 원래 '바르셀로나'
이런 팀에 세계에서 볼 잘 차는 사람, 다 갖다 놓아도 우승 못 한다고. 그런 선수들
만 있으면 얼마나 그 팀이 튀겠어요? 그런 걸 콘트롤하고, 여유있게 팀을 잘 이끄느
냐... 그것도 상당히 큰 지도력이라고 봐요.
주방장:지금 삼성의 김호 감독 같은 경우는, 순수한 프로 성적으로만 보았을 때, 당
연히 대표팀 감독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하는 통신인들도 많아요.
황선홍:거기 비탈리나 사샤, 데니스, 올리... 외국 선수들, 우리 나라 프로축구에서
제일 괜찮다는 선수들 데려왔는데. 외국 선수들, 말 안 들어요. 김호 감독님 봐도,
"애들 말 안 듣는다" 이런 말씀하세요 좀 한다 싶으면 거들먹거리고. 그런 것 콘트롤
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죠. 그러니까, 좋은 감독이 되려면 그런 저런 것 다 갖추어야
된다는 얘기죠.
주방장:'제리 맥과이어' 란 영화 때문에 스포츠 에이전트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에
게 얘기해 주고 싶은 '에이전트의 필수요건'이란 거 있어요?
황선홍:물론 일 하는 건 그 사람 능력이겠지만, 성실, 신뢰... 그런 거 같아요. 정말
로 내가 누구를 매니저로 삼는다면 '이 사람 말은 곧 천하가 없어도 믿을 수 있는 사
람, 옳은 길을 나한테 선택 해 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으면. 선수 간에 금전적인
것도 확실하게 해줘야죠. 그런 사람이 드물겠지만...
주방장:'11살짜리 꿈나무'한테 기술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그 나이에는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놓고 이 훈련만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황선홍:하고 싶은 대로! 뛰는 운동 할 필요 없다! 정말로 볼 갖고 내가 막~~ 몇 명
제끼고. 그런 묘미가 있잖아요. 그런 상상도 막 해 보고... 근데 우리 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논스톱', '공 잡으면 빨리 패스',... 이게 아주 딱 머리에 박혀 있어요. 어
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물론 성적도 내고 그런 것도 해야겠지만,
골대 하나 만들어 놓고 'free touch'! 우리는 '논스톱', '투터치',... 그런 제한된
게임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건 성인되어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때로는 FREE! 니
네 하고 싶은 대로! 제끼고 싶으면 재끼고!... 난 정말 그런 게임 한번 해보고 싶어.
한두 명 제끼지 않으면 패스하기 없기! (하하) 난 그런 게임 좀 해 봤으면 좋겠어.
그런 게 다 자신감이라든지 기술이라든지, 그런 거랑 다 연관이 되는데. 너무 그런
걸 성적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한시키는 게... 뭐, '1번 누가 빠지고' 뭐... 때로
는 전술적으로 필요는 하겠지만,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쪽으로만 하다 보면 아까
얘기했듯이, 창의력이나 그런 게 좀 발전이 없거든.
주방장:난 이건 진짜 몰라서 물어 보는 건데, 미국 월드컵 나가서 우리가 TV로 보기에
도 정말 살벌하게 더워 보이던데. 그런 날씨가 정말 얼마나 경기력에 지장을 줘요??
우린 사실, 해설 위원들 한 얘기만 믿어야 하니까. 뭐 '찜통 더위', '수중전',...
황선홍:그분들 얘기하는 게 거의 비슷하게 맞죠. 근데 그건 너무 과학적인 거니까
(윽, 신모 위원의 '글리코겐과 포도당' 얘기??) 데이터를 얘기하는 거고. 인간의 몸
은 정신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과학적인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죠. 근데 뭐..
미국 월드컵 같은 경우는 우리가 많이 날씨 덕을 봤고. 독일 같은 애들은 망가졌고.
주방장:독일애들 정말 후반 되니까 맛이 가던가요? 그게 눈에 보여요??
황선홍:보여요, 완전히!...(잠시 쉬고) 시간 더 있었으면 우리 이겼어요, 정말. 또
우리 같은 경우는 그 때 완전히 궁지에 몰려 있었을 때고.
주방장:대표팀 생활 쭉 해 오면서, 정말 '홈팀 텃세' 제일 심한 나라가 어디에요?
황선홍: 하하하~!, 난 한 번도 안 당해 봤는데 태국이라고 생각을 해요. 태국, 거긴
들어가서 못 이겨요. 옛날부터 유명했죠.
주방장:하루 동안 선홍씨가 축구 협회 회장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하루 동안
딱 한 가지만 바꿀 수 있어.
황선홍:무조건?
주방장:무조건! 그럼 뭘 바꾸고 싶어요, 우리 나라 축구 관련해서?
황선홍:으으~, 한 가지만? 아~아~, 딱 두 가지 바꾸면 되겠네.
주방장:뭐하고 뭐?
황선홍:프로팀 16개 만들고, 18개나. 잔디 경기하는 잔디 구장만이라도 프로축구 할
수 있는 잔디... 뭐 경기장이 전용 구장 이라든지, 뭐 그런 건 따지지 말고. 그 뛸
수 있는 잔디만이라도 프로급으로.
주방장:독일엔 잔디가 정말 융단 같아요?
황선홍:여기 일본도 만만치 안잖아요.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어웨이 경기를 나가
면, 몸 풀기기 전에 나가서 잔디를 본다구요. 근데 여기는 잔디를 볼 필요가 없어요.
나가서 보는 건 운동장이 딱딱한지 물렁한지 그걸 보러 나가는 거지. 여기선, 뭐 잔
디가 어디가 파이고, 이런 걸 보려고 나가는 게 없어요.
주방장:우리 나라 선수들 고질병이 '볼 트래핑 안 된다' 이거거든요?
황선홍:그거는 그래... 그거는 맞는 말이에요. 볼 트래핑 안 되는 건... 아휴~ 내가
정말... 끓는다, 이런 말하면 정말... (하하)
주방장:근데, 내가 보기엔 그래요. 평생 융단 같은 천연 잔디에서 어렸을 때부터 뛰
던 선수랑 우리 같이 맨땅이나 인조 잔디에서 뛰던 선수랑 같을 수는 없는 거 아녜요?
황선홍:프로를 예를 들어 줄께요. 내가 일본에서 경기를 딱 해요. 정말로 내가 자랑
을 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수비가 바짝 붙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잔디가 좋으니
까... 다음 동작이 다 머리 속에 그릴 수가 있어요. 볼 트래핑 하기 전에 미리, 뭐..
'돌파를 한다든가, 오른쪽으로 패스를 한다든가',... 그런 게 다 구상이 되는데...
한국은 안돼요! 왜냐하면, '볼 간수'를 먼저 해야 돼요. 내가 이 플레이를 하려고 마
음을 먹었어... '트래핑을 한 번 한 다음에, 옆으로 돌려주고 뛰려고' 마음을 먹었는
데, 트래핑을 딱 해놓고, 다음에 딱 할라고 하면... 통~ 튕겨 가지고 연결 동작이 안
나와요. 그러다가 뒤에서 태클 들어오면 부상입고, 핑계 같지만 정말로 그래요. 잔디
가 좋으면 수비가 굉장히 불리하게 되어 있어요. 붙지를 못해요. 근데 우리 나라는 같
이 막 가다가, 쓸어!. 근데 그게 티가 않나. 흙, 먼지 날리면서 같이 갔다가, 태클
들어오면서 쓸어 버리니까, 긴가 민가 하는 거야, 심판들도. 여기서 태클 날리면 금
방 티가 나요 .바로 카드 딱 나와요. 파란 잔디에서 하니까, 좀 볼썽 사납게 태클 들
어간다 하면 다 보여요, 관중이나 심판이나. 그런 장면이 안 나와요. 같이 엉겨서 쓸
고 넘어지는 그런 장면이, 일본 축구에선... 근데 어떻게 보면 "얘들은 거칠지도 않
고...하는 구나" 싶은데, 그런 게 너무 눈에 확 들어오니까... 근데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봄에나, 이런 데서 하면, 잔디 누런 데서 하다 보면, 흙, 먼지 좀 날리고 하
면, 공이 쓰러졌는지 사람이 쓰러졌는지... 그냥 넘어 가는 거지... 그러다 보면 부
상당해서 경기 출장 못해... 뭐 인대 나가... 끝나는 거죠, 뭐.
주방장:지금 서른 하나죠? 만으로?
황선홍:예, 엄청 먹었죠? 하하~.
주방장:꼭 서른 넘어가면 만으로 얘기하더라, 나도 그렇지만. 한 30년쯤 있다가 환갑
때쯤.. 그 때 황선홍 선수가 잡지 커버에 딱 실렸다면 어떤 잡지 커버에 실렸으면 좋
겠어요??
황선홍:난 지도자 할 거예요. 하지만 잡지 커버 같은 데는 가족과 함께 나갔으면 좋
겠어요.
주방장:제일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았던 신문 기사 또는 헤드라인?
황선홍:AC 밀란전 다음에? 아마.
주방장:그럼 제일 우울했을 때는, 서운하고?
황선홍:흐~, 똥볼 얘기죠 뭐... 94년 끝나고.
주방장:그거, 이번 거 코리아컵 PK 실축 기사보다 더 했어요?
황선홍:이번에 그 기사는 내가 신경을 안 써요. 왜냐하면 그건 사실과 틀리고 내가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물론 미국 월드컵 때도 내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데, 조금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플레이에 만족을 못했고 그랬죠, 코리아컵 같은
때는 내가 최선을 정말 다 했기 때문에 신경 안 써요. 그 때 월드컵 때는 상처가 되
기도 되었고, 그 때 그런 말들이 팬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 속에도, 그냥 그렇게 굳
어 버린 거 같아요
주방장:2002년에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황선홍:그 때 선수 생활 할 거예요. 아마... 할라구요. 근데 난 뭐...'월드컵을 하겠
다...' 이게 아니고, 한국에서 하는 월드컵이니까 보고, 그리고 끝나고 공부하러 가
야죠.
주방장:내 개인적으론, 난 황 선수가 '조커'로라도 나와줬으면 해요.
황선홍:나도 가능하다고 생각은 해요. 결론은 '조커'를 하려면 파괴력이 있어야 하는
데, 그 때까지 파괴력이나, 점프나, 스피드나,..그런 걸 유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
고... 뭐,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나도 사람인데... 그치만 내가 그 때를 보고 하
겠다,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현실에 하루하루 충실하다 보면 그리고 기회가 온
다면 내가 한번 열심히 해보고. 안 온다고 해도 미련은 없다는 얘기죠.
주방장:황새라는 별명은 언제 처음?
황선홍:기자님이었을 건데... 88년 아시안컵 데뷔전에서 골 넣고, 나중에 인터뷰 하
는데... '별명이 뭐냐'고 해서 난 그냥 무심코 대답했는데, 고등 학교 선배들이 부
르던 별명이니까. 성도 내가 '황'이고, 내가 그 땐 삐쩍 말랐었다구요. 그리고 뛰는
것도 '껑충껑충' 했다구요. 그래서 형들이 그렇게 불렀는데....
주방장:그럼 제일 처음은 그 기자 아이디어가 아니네?
황선홍: 그렇죠.근데 언론에 처음 나오게 된 거는 그 때죠. '황새'라고 그러니까..
"어, 순호랑 또 같네?" 하시더라구요. 순호 형도 막 그런 별명을 갖고 있었나봐요.
주방장:그 때 기사를 보면 '다리가 기형적으로 길어서 황새' 라는 말이 있어요
황선홍:하체가 무지하게 길었어요, 그땐... 지금은 나이가 먹어서 다리가 휘고, 그땐
정말 '와리바시' 였어요. 우리 고등 학교 1학년 때 감독님이, 나 미스코리아 나가라
고 하셨다니까. 감독님이, "뒷모습이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라고 했어요.
주방장:브라질 애들 하긴 정말 잘 합디까?
황선홍:잘해요 유럽 축구가 거칠다고 하잖아요? 남미 애들도 보통이 아니에요. 브라
질 축구, 유럽보다 더하면 더했지 빠지지 않아요. DIRTY 하기도 하고, 거칠고 파울도
많이 하고, 안 보이는 파울도 많이 하고...옛날에 포항 스틸러즈 있을 때, 브라질로
전지 훈련을 갔는데, '보타보고' 라는 팀이 있어요, 5대0으로 졌는데, 정말 전 그 때
축구를 정말 하기 싫었어요. 챙피해서... 나는 축구 하면서 그런 기분이 든 적은 처
음이었어요. 슈팅 한 번 못 때리고, 플레이 한 번 못 해보고, 도대체 볼을 뺏을 수가
없었어요. 파울 아니면 뺏을 수가 없으니까. 내가 나중엔 하도 화가 나서, 디펜스가
태클을 해서 내가 걸려서 같이 넘어졌는데, 내가 걔 허벅지를 밟아 버렸어요. 내가
하도 성질이 나서. 퇴장을 먹었어요. 그래서 나와서 감독님한테 욕도 많이 먹고 했
죠." 니가, 간판이라고 하는 놈이 게임 안 된다고 퇴장 당해서 나오면 되겠느냐?"
등... 진짜 그 때 슬퍼지더라구요, 자존심도 상하고.
주방장:그런 거 보면 우리 나라 축구 많이 발전 한 거네?
황선홍:어유~ 많이 좋아졌죠.
주방장:잠재력에 비해서 인정받지 못한 선수.
황선홍:문식이...
주방장:왜?
황선홍:한국 축구에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우리 나라 축구는 또 미드필더들이 수비
를 많이 요구하잖아요. 윤정환이나 문식이나... 이런 애들은 배려를 좀 해줘야지. 그
선수들의 특징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근데, 그게 감독 입장에선 쉽지는 않죠. 우리
나라 축구는 아직까지 기술적인 것 보단 많이 뛰고 타이트하고... 노정윤이 같은 스타
일을 좋아할 수 있죠. 거기다가 정환이나 문식이 같은 능력까지 갖춘다면, 저기 스토
이코비치 같은 애들은 쨉도 안되는 선수가 되는 거지. 쟤는 수비 안해요. 공격만 하지.
근데 난 지난번 올스타전 뛰면서 참 재미있게 했어요. 그 유고 출신에 스토이코비치.
유명한 선수잖아요? 스토이코비치랑 처음 뛰어 보는데, 정말 딱 딱 알아서 패스를 찔
러 주는데, 정말 축구 하기 편하데요? 서로 손, 발 맞춰 본 것도 아닌데, 그냥 얘가
어디쯤에서 어디로 갈지 서로 아는 거야 정말 재밌고 쉽게 축구 했어요. 그때.
Interview Game ...only in hoochoo
황선홍과 함께 하는 '후추 단어 연상 게임'
88.11.7 (첫 태극마크 달던 날) "희망"
93.12.25 (그의 결혼식 날) "행복 시작"
94.6.24 (대 볼리비아 전) "망신살"
독일 본 (아내를 만난 곳) "아름다움"
90년 이탈리아 (첫 월드컵) "꿈"
독일 (축구 유학) "좌절"
94년 미국 (두 번째 월드컵) "오기"
98년 프랑스 (부상으로 구경만 했던 월드컵) "체념"
일본 (98년 8월) "마지막"
포항(국내 리그 '친정집') "추억"
부상 (무릎 수술만 2번 '달리는 종합 병원') "이골"
드래프트 (90년 사상 첫 반발) "없어져야 한다"
팬클럽 "황새" (그의 팬클럽) "소중함"
가족 "더블 소중함"
나승화 (초중고교 동기 동창) "벗"
이회택 (90년 월드컵 팀 감독) "하늘" ( 그 전에 이런 말을 한다 "길게해도 되여?
이 감독님을 뭐라고... 나한테 이 감독님은 정말 하늘같은 존재지요. 그분의 감독으
로서 그런 건 몰라도 그분이 나한테 해주신 것들을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죠..라는 말을 덛붙였다)
차범근 "안타까움"
안정환 "잘 생겼다"
홍명보 나랑 축구에 대한 feel이 제일 가까운친구 문식이랑)
언론 "딱 하나가 떠오르긴 떠올랐는데 얘기는 못 하겠고. (하하) 클나요 (하하).
난 생각이 그래요.. 우 리나라 언론을 무시할 순 없어요 근데 많이 바뀌어야 되지요
정말로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신문 많이 파는것도 중요 하지만, 시청률 올리는것도
중요하지만
"후추" "아주 좋은 생각이죠..근데 내가 보기엔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이 되요..충분히 흥미를 끌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쉽지 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거 뭐 생각 않하신 건 아닐 거 아녜요?"
황선홍 그는 젠틀맨이자 겸손함을 단 1초도 잊지 않은 '스타'였다. 어쩜 저렇게 차분
하고 진실 되어 보이나 하고 주방장은 그 날 숙소로 돌아와서도 밤잠을 이루지 못했
다. 헤어지면서도 그는 염려스러워 했다 "여기까지 찾아 오셨는데 인터뷰가 잘 된 것
인지 모르겠다"며 말이다. 사실 우리 '후추' 같이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해 보려고 하
는 힘없고 빽 없는 인터넷 스포츠 잡지를 상대로 모든 걸 터놓고 얘기를 해 준 것만
으로도 필자는 흡족했다. 그가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
다. "한국 가서 언제 한번 보죠. 나, 꼭 한국 나가야 되요. 나에 대한 그런 인식 다
바뀌어 놓으려면.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 그를 제발 좀 내버려 두자!
(학교 다니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글을 썼더라면)
황선홍은 지금도 뛰고 있다. "이젠 정말 운동만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하는 황선홍이다. 운동 선수들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무쇠 팔 무쇠 다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한참 손아래 동생뻘 되는 친구들이 얼굴 안 보이는 통신상이라고 "죽일 눔 뒤질 눔" 해 대질 안나, 생판 듣도 보도 못 한 기자라고 전화 와서 한두 마디 유도 심문 하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눈 떠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찍찍~ 갈겨 놓고. 입만 열면 '개천'이 되어 버리는 일부 통신인들이 제일 하기 좋아하는 말. "그것도 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비난도 하는 것이다." 그런 상투적인 '땜빵용' 멘트에 식상한 일부 팬들의 카운터 펀치 '대안 없는 비판은 안 하니 못하다.' 잘 났다, 다들...
밉던 곱던 간에 우리 곁에 스포츠 스타가 없다면 미워 할 놈도 이뻐 할 놈도 없다. 그나마 뛰고 달리는 것 볼 만한 놈들은 죄다 외국으로 째고, 한국 스포츠는 머지 않아 '저질 언론이 세뇌시킨 냄비 팬들 앞에서 뛰는 B급 선수들만' 남아도는 그런 스포츠 판이 되어 버릴 것이다. 외국보다 돈을 많이 줘, 실력이 우수해, 아님 그렇다고 '모국'이라고 팬들이 따뜻하게 대해 줘? 잘 하는 선수들이 굳이 우리 앞에서 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자칭 '극우파' 독자들(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제' 없애야 한다고 죽어라고 떠들어대지만 가만히 얘기하는 거 들어 보면 좋다는 외화는 이미 다 본 사람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난 시사권이 왔길래" 외쳐대는). 일부가 들으면 또 "저시키 저거 나라 팔아먹을 놈이다" 하고 또 오버들 하겠지만, PK 못 넣어서 월드컵 우승컵도 코앞에서 날린 선수가 있고, 한 경기에 PK를 세 번씩이나 삽질해서 말아먹은 선수도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모국 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후추 해외축구 담당 azzuri님이 파 헤쳐 본다
로베르토 바지오.. 정말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축구 신동이다. 67년생이고, 15세 때부터 프로 축구 선수로의 인생을 시작한 선수다. 그리고 19세 때 피오렌티나에서 Serie A(이탈리아 1부리그) 데뷔전을 치루었고, 21세 때부터 골잡이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도 월드컵에서 아직도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체코전의 멋진 골을 성공시키면서, 전 세계인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명문팀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최고 선수로 당당하게 대접받기 시작했고, 93년 피파 선정 최우수 선수, 94년에는 유러피안 베스트 플레이어로 뽑히는 등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운명의 94 월드컵. 그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전술적 중심이었으나, 초반에 그의 부진과 더불어 팀이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대 나이지리아전 결승골... 등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그의 진가를 발휘하여, 결국 결승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입은 종아리 부상으로 결승전에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페널티를 허공으로 날려보내고.. 환호하는 브라질 선수들에 가려져...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그 실축을 비난하는 이탈리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없었다면, 그런 월드컵 결승까지의 진출 자체가 불가능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거의 교체 멤버로만 출장하면서 경기 감각을 잃어가면서... 예전의 명성은 간 곳 없이, 한물간 선수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이런 상황하에서, 그는 97년 볼로냐로 팀을 옮겼고... 아직도 그의 능력은 쇠퇴하지 않았기에(트레이드 마크인 말총머리를 깎아 버리는 등의 정신적인 재무장이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게 된다. 본래 그의 포지션인 포워드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로 전환하여, 리그 득점 3위를 기록했고, 팀의 상위 입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고... 그가 고대하던 '아주리' 유니폼을 다시 입게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최근의 월드컵 98에서도..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고, 현재는 인터밀란에서 단연코 세계 최강의 투톱인 비에리-호나우도를 뒤에서 받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한물 간 선수.. 과거에 반짝했던 선수.. 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의 축구를 보고 있으면, 예전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이제는 게임메이커로서, 경기를 지휘하는 중원의 사령관으로 원숙미를 보이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태리 애들... 우리보다 축구를 몰라서 이런 선수 그냥 '살려둔 것' 아니다.. 이런 선수가 그 동안 보여 줬던 실력 그리고 그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기 때문에 덮어주고 감싸주고 격려 해 주는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누가 먼저 선동해서 "이 인간 죽이자~앗!" 하고 나서면, 가만히 잘 있던 사람들도 "그래? 그럼 나도 한 마디 거들어 봐?" 그래서 우리가 매일 접하고 기대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운동하는 애들은 단순 무식해서 언론한테 호되게 두들겨 맞아야 다음 경기에 정신 차린다."는 논리는, '순간 땜빵용' 대안밖에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근시안적인 대안을 써먹어 온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기자실에 높으신 분들은 바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냐 말이다.
94년 대 볼리비아전, 본인도 말했듯이, 그 한 경기에 대한 평가가 평생 그를 따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쪽 팔리는 사실이다. 워낙 그 경기에서 그가 많은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12년 동안 그 어느 축구 선수보다도 꾸준히 변함없이 우리의 공격 라인을 진두지휘 해 온 선수는 아무도 없다. 태극 마크단 지 1-2년 된 선수도 아니고, 강산이 한 번도 넘게 변하고 와이프도 한,두 번 바뀜직한 그 긴 시간 동안, '대한 민국이 낳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우리 나라의 이름을 알리고 팬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 다 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황선홍은 '기립 박수 감'이다... '스타 띄우기'에만 급급하고 '스타 보호하기'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는 언론, 그리고 알면서도 동요되는 일부 팬들이여... 각성하자. 그러기에 얼마나 좋은 시점인가. 내일 모레면 개나 소나 울부짖는 'New Millenium'이라는데 말이다.
황선홍은 앞으로도 계속 '똥볼'을 찰 것이다. 박모 문체부 장관이 미친 척하고 대한 민국 초등 학교 운동장에 동시 다발적으로 쭈~~왁 잔디를 깔아 주지 않는 한, 우리 축구 선수들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똥볼'을 날려 댈 것이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황선홍은 고국으로 돌아 와서 은퇴하고 싶어한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간 그토록 그를 비난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젠 그를 날게 해주자. 두 번 다시 그의 날개를 꺾어서 외로운 이국 땅에서만 자유롭게 날게 하지 말고...
세레소 오사카 써포터즈 “VIVA” UNIT 오오타 회장 인터뷰
오사카행 대한항공 723편을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바다를 매립해서 오마오마하게 만들어 놓은 최첨단 국제공항)에 내렸다… 난생 처음 와 보는 오사카 라서 약간은 핵깔렸지만, ‘그래도 일본인데.. 손짓, 발짓,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좀 배워놓은 ‘니혼고’ 좀 땡기면 되겄지…’하고 일단 ‘INFO DESK’ 라는곳을 갔다…
물어 물어 결국엔 국철(JR) 을 두번 갈아타고 ‘뺑이’쳐 가며 도착한 오사카내 ‘나가이’ 역… 출구로 통하는 길에서부터 벌써, 일본말로 ‘세레소 오사카’에 대한 무슨 홍보 전단 같은 것들이 벽에 붙어 있다… “야~, 이눔들은 J-LEAGUE에 목숨 걸었네..?” 그리고, 역전에 계시는 아저씨 한명을 붙잡고, 써포터즈 회장을 만나기로 한 나가이 구장 가는길을 물었더니, 바로 손으로 만들어 놓은 ‘나가이구장 가는 약도’를 하나 꺼내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앞뒤로 일, 영어 하나씩... "이건 분명 JR측에서 준비한 건 아닐 테고… 써포터즈들이 미리 비치 시켜 놓은 게 분명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역에서 약 2분쯤 걸어서 커브를 확 트는 순간.. 저 멀리서 웅장하게 앉아 있는 경기장이 눈에 들어 왔다…. 요 대목에서 잡소리 한마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 봐도 항상 느끼는 것 이지만, 야구장이던, 축구장이던.. TV에서 보는 것이랑, 직접 들어 가 보는 것이랑은 그 스케일면에서 어마어마한 리얼리즘의 차이를 맛 볼 수 있다… 정말 오방 커 보이는 ‘장관’ 이기 때문에 일단은 구장 앞에서 ‘깨갱..’ 하게 되는 것이다… 가수들은 그런 말을 한다…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 때문에 자꾸 ‘컴백’하게 되고, 그 무대가 그리워 진다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운동선수들은 가수의 수 십배 정도 더 어마어마한 환호성 소리에 길들어져 있는 존재들임엔 분명하다… 조용필이 아니라 엘비스 아저씨도 3만 관중, 6만 관중.. 이런 규모의 관객 앞에서 그들의 소리침을 등에 업고, 공연해 본 적이 평생 몇번이나 되겠냐 말이다… 운동 선수들은 그 짓을 한 시즌에만 몇 번씩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위 ‘원로스타’들은 이제 그들 곁에서 멀어진 그 함성 소리가 얼마나 그립고 쓸쓸하게 느껴진다는 말인가…?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가이 구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내 자신이 쪽 팔린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구장 한두 번 가 본 놈도 아닌데 도대체 출구가 몇 개인 줄 알고 그 큰 나가이 구장 앞에서 약속을 잡아..?? 에유, 이 비~영신아~!…’ 다행히 어떤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아줌씨 한명이 나를 보고 “X상?? X상??” 하길래 바로 뛰어갔다… 만나기로 한 ‘오사카 세레소 쎄포터즈’의 회장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 질 것이라고… 그래서 본인이 대신 먼저 나왔다고….. ‘근데 아줌씨는 누구여?? 오오타 회장 집사람?? 아님 비서?…’ “싸포타쓰 입니다…” 라고 짤막하게 대답을 한 그 40대 초반의 뚱보 (?) 아줌마는 바로 ‘니시우에’ 라는 성을 가진 열렬 응원단의 한 사람….
(나가이 구장으로 마중 나왔던 오사카세레소 써포터즈 니시우에 아줌마)
우여곡절 끝에 만난 오오타 회장과, 나가이 구장 근처에서 한국식당을 경영 하시면서 우리의 통역 역할을 해 주신 황 사장님, 그리고 니시우에 여사… 이렇게 다섯명은 ‘한일관’이라는 황 사장님의 식당으로 가서 본격적인 ‘썰나발’을 풀기 시작한다…. 다행히 오후 3시경 손님들이 없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일본 J-LEAGUE의 써포터즈는 참 재미있게 조직되어져 있었다.. ‘세레소 오사카 써포터즈’ 중에도 여러개의 ‘소 UNIT”로 나뉘어져서 한 UNIT당 1-2명의 회원들로 결성된 조직도 있고, 오오타 회장의 모임 ‘VIVA’ 처럼 수십명이 활동을 하는 UNIT도 있었지만, 경기장에서 응원을 할 때엔 이 수백개의 ‘소 UNIT’들이 다 같이 모여서 ‘세레소 오사카 써포터즈’ 라는 이름 하에 공동응원을 한다는 것이었다….
써포터즈 철학, 연역 및 활동 (회원수)?
“그냥 열심히 좋아서 응원하는 것이다.. 특별한 철학이나 비전은 없다….’VIVA’는 회원수가 약 50여명... 단일 UNIT 치고는 꽤 큰 편이고…. 오사카팀의 한국인 선수들 위주 (황선홍, 노정윤)로 응원을 하는 조직이다…. 사실 그런 방향의 시초는 고정운 선수가 오사카에서 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난 고정운 선수의 파워풀한 플레이와 인간적인 면에 완전히 매료 되어서 이 써포터즈를 만들게 되었다…. 사적으로도 자주 고선수를 만나서 많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진국’이다…”
J-League의 근황 및 건강은?
“재정난을 겪는 팀이 있어서 초창기 때 보단 많이 안 좋은 게 사실이다… 현재 16개팀중 2-3팀은 내년 시즌 해체 될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하다… 기업 스폰서 위주로 팀이 운영된다는 것이 조금은 불안 한 점이다.”
일본내의 야구 대 축구 인기?
“야구는 4-50대 아저씨들이 많이 좋아하고, 축구는 10-20대들이 많이 따르는 편이다… 지금은 아무래도, 다시 야구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아 졌다….”
한국 축구의 장, 단점?
“한국축구는 누가 뭐래도 ‘아시아 넘버 원’ 이다… 강하고 대단한 팀이다.”
일본 스포츠 언론의 오늘?
“일본 스포츠 신문 역시, 거짓말 많고 허풍이 많다… 믿을게 못 된다”
J-League의 한국인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빗셀고베’의 최성룡 선수는 감독을 잘못 만나서 제 기량 발휘가 안되는 것 같아 아쉽다…모든 공격 루트가 하석주-김도훈으로 이어지는 왼쪽라인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최성룡 선수 같은 경우는 희생되고 있는 듯 싶고…. 유상철 선수 역시 지금보다 더 잘 할수 있는 선수다…”
왜 한국엔 일본 선수가 없나?
“가도 안통하니까 못 가는거겠지… (하하) 연봉도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황선홍?
“잘 생겼다…. 멋있는 선수이고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이다,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아마 오사카 세레소가 J-LEAGUE에서 이길 수 있는 팀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플레이에 대해 (장단점)?
“물론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그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기 때문에 골 앞에서 슛을 좀 덜 쏴도 괜찮을 듯 싶다… 패스도 옆으로 좀 내주고…”
(오사카 세레소 써포터즈의 “VIVA UNIT” 오오타 회장)
J-League 경기 티켓과 일본 국대 경기 티켓 중 하나만 선택 하라면?
“당연히 세레소 경기 티켓을 택할 것이다… 대표팀은 가끔 한번씩 모여서 하는 팀이고 세 레소는 우리가 매일 같이 따라 다니며 보고 즐기는 팀이다… “
한국에서는, 한일전에 지는 날엔 온 국민이 난리가 난다.. 일본팬들이 보는 일한전의 의미는?
“다른 어느 경기와 그렇게 까지 다르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말레이시아나 태국…이런 나라들 보다는 워낙 강팀이니까 이길수 있다면 좋지만, 중국전이나 이란전과 특별히 다른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일본 축구의 간판, 유망주, '이 선수를 주목하라'?
“단연코 ‘오노 신지’ 선수다… 나카타 선수도 좋은 선수지만, 오노와는 패스에서부터 벌써 다르다… 나카다의 패스는 주로 강하고 빠르게 찔러 주는 패스지만, 오노의 패스는 완벽한 완급조절이 가능하고 정말 공격수의 발 앞에 얹어 놓는듯한 패스를 구사한다… 나카타보다 더 클 선수다…”
미우라
“‘J-LEAGUE 초창기부터, 엄청난 발전에 기여한 선수’라는 점은 인정 해줘야 한다.”
나카타
“좋은 선수다.”
죠 소지
“기복이 심한 선수다.”
외국인 일본 귀화에 대해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너무 싫다… 어머니쪽이나 아버지쪽으로 섞인 피도 아니고, 그저 브라질에선 대표팀 자격도 못되는 선수들이 일본에 와서 대표팀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 일본 선수들이 말레이시아 가서 대표팀 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 (오오타씨가 생각하는 ‘지구촌 최악의 축구 후진국’은 아마도 말레이시아 인 듯)”
차범근
“싫어한다, 고정운 선수 프랑스 월드컵에서 탈락시켜서... (하하) 그 외엔 그냥 잘 모른다…”
올림픽 예선 (한,일 전망)
“중국만 피해가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 (중국이 한국과 한조라는 사실을 알려주니까) 아, 그러면 일본은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한국이 좀 걱정이 되겠네…?”
일본 국가대표팀에 꼭 한명만 빌려다 놓고 싶은 한국 선수
“안정환이다…. 자세히는 못 봤지만 하이라이트를 보면 굉장히 무서운 선수 같다…. 이동국, 고종수 선수도 탐 나는 선수다…”
2002년 공동주최에 대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진 두 나라가 가까워 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10년 후의 일본 축구
“2002년 월드컵 끝난 뒤가 더 시급한 문제다… J-LEAGUE의 미래가 그때 결정날 테니까…”
일본의 클럽 시스템에 대하여?
“각 프로팀마다 ‘YOUTH TEAM’들이 육성되고 있지만, 재정 문제로 조금은 어렵다…”
'정신력' 대 '개인기'?
“일본축구가 정신력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고, 정신력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기술도 중요하다.”
주니치 3인방 & 조성민에 대해?
“그들이 활약하고 있는 건 안다. 이종범 선수는 요즘 좀 부진하지만… 선동렬은 역시 대단한 선수다.”
야구 드림팀 한일전 (시드니 예선전 전망)?
“일본은 프로팀들이 좋은 선수를 내보내주지 않았다…. 소속팀이 항상 최우선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대 감독 트루시에에 대하여 한마디
“마음에 안 든다… 여기가 아프리카도 아니고… 거기서는 통할지 몰라도.. 여기선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일본 국대감독으로 데리고 와야 할 사람은?
“지코….. 그는 일본 축구를 너무 잘 알고 자격도 충분하다…”
일본인 감독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무리다… 일본인 감독은 기껏해야 아시아 내에서 '반짝' 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레벨로 일본 축구가 도약하려면 무리가 있다…. ”
짧았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인터뷰였다… 일본인들이 바라보는 ‘지역연고 위주 팀’, ‘미래의 일본 축구’에 대한 걱정, ‘한국 축구에 대한 인정’ 등등….. 일반적으로 우리와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비록 한 개인의 의견이지만, 축구를 좋아해서 본업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하면서 살아 가는, 40줄을 바라보는 오오타 회장을 보면서 ‘젊음의 비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해 가져간 '한국 국대팀 사인볼’ 두개를 주고, 그 역시 준비해 온 황선홍, 노정윤 선수의 스포츠 카드를 받아 들고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주방장 Memory 2000. 8. 30
황선홍... 그를 만나기 위해 1년 전 1박2일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던 일이 꿈만 같다. 후추의 첫 간판을 달기 위해서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비난의 화살로 멍들었던 그의 축구 인생을 재조명 하기 위해서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떤 사람일까?',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인터뷰를 잘 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로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오사카 나가이의 비지니스 호텔 로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첫 인상? 검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새까맣게 탄 그의 얼굴과 반바지를 입고 나온 그의 종아리가 오부지게 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인 식당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며 나눈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그에겐 산전수전 다 겪은 노병의 모습이 배어 있었다. '오바'가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일본 땅에서 차분하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그를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선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는 말에 잠시 할말을 잊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그를 일본으로 몰아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내 구역에 왔는데 내가 내야지요' 하며 황선홍에게 얻어 먹었던 그 집 등심이 유난히 맛 있었다는 기억도 난다. 인터뷰 중에도 수원 삼성 구단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녹음기를 끄면 얘기하겠다.' 고 하던 구단이 바로 수원 삼성이었고, 그가 한국으로 복귀하면 아마도 수원이 되겠구나 하는 feel이 왔었다. 역대 명전 헌액자 중에서 가장 빨리 후추의 '단어 연상 게임'이란 인터뷰 코너를 이해하고 인상적인 답변을 해 준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황선홍일 것이다.
서른 두살 (당시) 동갑나기 남자들의 수다(?)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되었지만 11시가 다 되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황선홍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곳이 편하긴 편한가 보다. 지금도 가끔씩 TV에 황선홍의 모습이 나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꼭 고국 땅에서 근사한 모습으로 은퇴하겠다." 던 그의 말이 아직도 아른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황선홍은 후추에게 아니 필자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특별한 존재 임은 분명하다. 그가 있었기에 후추의 첫 대문을 활짝 열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후추의 첫 맛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추 명전 제1호 헌액자 황선홍을 취재하고 기사 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 그의 에이전트 이영중 사장, 오사카 세레소 써포터즈 회장, 그리고 그의 팬클럽 'You Will Never Fly Alone'의 친구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You Will Never Fly Alone... '황새' 황선홍을 아끼는 팬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이 말을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으리라 믿는다.
첫댓글 아유...우리나라 원톱은 최순호와 황선홍이 최고죠..아마 최순호가 쉐도우와 황선홍이 원톱이면 우리나라 최고 입니다....다들 진짜 아까운선수..거기에 오른쪽 윙포워드 차붐이면..ㅋㅋㅋ 덤비!!! 브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