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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언젠가, 봄은. 二
서기 153년. 겨울이었다. 온 천지가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나무에는 형형색색의 풍성한 나뭇잎으로 가지를 한껏 치장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흰 눈송이만 쌓여가고 있었다.
활발히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던 동물들은 어느 샌가 모두들 숨어 버리고 있지 아니하였다.
한 여인이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걷고 있었다. 무릎 바로 밑까지 쌓인 눈 때문에 만삭인 몸으로
걸음을 떼는데 조금 버거운 듯 보이는 그녀였지만, 여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처럼 흰 저고리와 색이 바 랜 연 하늘빛 치마. 수수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가녀린 여인의 몸에서는 일국의 황후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 기품이 뿜어져 나왔다.
우아하게 틀어 올린 남색 머리카락, 우윳빛 얼굴과 맑은 눈동자. 그리고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
화장기가 전혀 없는 맨 얼굴이었지만 가히 경국지색이라 할 만큼 월등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매섭게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한기가 느껴지는 듯 여인은 몸을 움츠렸다. 작은 어깨가 떨려왔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이 쌓이지 않은 바위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모정이 듬뿍 느껴지는 손길로 배를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아가야…못난 어미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미안해.”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녀의 큰 눈에 이슬이 맺히었다.
순간, 움찔하며 그녀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뱃속에서 조그마한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배에 대고 있는 그녀의 손에 작은 생명체의 무언가와 맞닿았다. 그녀의 입가가 곡선을 그리었다.
슬픈 빛을 띠었던 눈빛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었다.
“아가, 널 강한 아이로 키워낼게. 이 어미처럼 약하지 않도록….
너 만큼은, 어미가 겪은 시련을 겪지 않게 해줄 거야.”
여인은 확고한 표정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기나긴 여운이 느껴진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미래. 그리고 아이의 미래.
앞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운명이 닥칠 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어느새 태양이 서쪽너머로 져가고 있었다.
붉은 노을빛이 유난히 찬란한 오후 한때였다.
.
.
“아직도 찾지 못하였단 말이냐!”
윤후국(潤煦國)의 황궁.
그 중앙에 위치한 대전에서는 누군가의 노기 띤 음성이 밖까지 흘러나왔다.
용상에 앉은 천해황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팔 받침대에 놓은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서있던 윤 내관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분노의 오로라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목소리 또한 떨려왔다.
“소, 송구 하옵니다‥폐하.”
“하아…벌써 1년이다. 1년이 다 되어서도 찾지를 못한다니.
그 가녀린 여인 한 명을, 찾지 못한다니….”
천해(天海)황제. 휘(이름), 천 화 용. 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화용의 기분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대전 안의 궁녀와 내관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참의 정적. 그가 무거운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장군 있는가.”
“예, 폐하.”
화용의 부름에 조금은 걸걸한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 대장군, 기륜이 그의 앞에 섰다.
그는 30대 초반 쯤으로 추정되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장신이 돋보였다.
걸을 때마다 들리는 육중한 갑옷의 쇳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벌벌 떨게 할 정도였다.
“……무현 이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것이더냐.”
순간, 기륜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 하고 떨렸다.
허나, 화용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기륜은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소인이 찾고 있는 중이오나….”
화용은 말끝을 흐리는 기륜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이 무슨 연유로 벌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답답하여 가슴을 움켜쥘 뿐이었다.
화용은 팔 받침대에 팔꿈치를 대고는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모두 나가라.”
기륜은 대전을 나와 어딘가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눈빛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슬프게 반짝였다.
‘불쌍하신 폐하. 폐하께서는, 이 사건의 내막을 전혀 모르시는 것을.
혹여, 후에라도 알게 되신다면 그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크시겠는가.’
기륜은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들고 있던 검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는 심란한 표정으로 걸음을 떼었고, 대전은 점점 멀어져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보이는 기품이 느껴지는 병풍과 책상,
그리고 의자가 놓여있는 걸로 보아, 그의 집무실 인 듯싶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병법 이라는 서책을 꺼내들었다.
몇 분간 책장을 넘기며 독서에 열중하던 그가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누군가 오는군. 혹시, 그 인가.’
그는 뚫어지게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누군가의 그림자가 문에 비쳤다.
이내 그 그림자는 멈추었고 곧 한 남자의 음성이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대장군, 소인 서 군관입니다.”
“들 거라.”
기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을 여는 동시에, 붉은 석양빛이 그의 집무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기륜은 눈부신 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서 군관. 본명 한 명운. 명운은 한눈에 봐도 꽤 곱상한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무언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는 짧게 목례를 하더니 기륜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화운국의 군사제도는 황실호위대와 장군, 그리고 군관.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군관은 서, 대, 하, 정, 진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군관에서 능력이
인정이 되면 장군으로 승격을 했다. 한 명운. 그는 군관 중 최고 계급인 서 군관이었다.
기륜은 그가 자리에 앉자 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이리 부른 연유는, 2개월 전의 그 일에 대해서 당부할 것이 있어 부른 것이네.”
명운은 그와 눈빛을 마주했다.
“예, 짐작 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도, 송 무현 이라는 자를 잊지는 않았겠지.
화살에 맞고 도망 간 후로 생사를 알 수 없는 폐하의 전 호위대장을.”
“예.”
“나와 자네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 정빈마마는 그와 함께 도망을 치고 계셨고, 마마는‥수태 중이셨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명운은 그를 빤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기륜도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
그들의 표정은 조금 굳은 듯 보였다. 기륜이 입을 열었다.
“마마의 뱃속에 계시는 아기씨가 폐하의 핏줄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허나….”
“무엇을 염려하고 계신 건지 압니다.”
명운이 기륜이 잠시 주춤했던 그 마지막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혹여, 그 아기씨가 전 호위대장 무현의….”
“쉿! 목소리 낮추게!”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기륜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황급히 끝을 막았다.
그는 문을 흘낏 바라보더니 명운을 다시금 노려보았다.
그리고 살기가 느껴지는 낮은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다.
“자네, 지금 제정신 인가. 누군가 듣기라도 하면 뒷일을 어찌 감당하려고!”
“송구합니다.”
그는 곧 머리를 숙였다.
“지금 현재로선,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신께 바라는 수밖에 없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추더니 기륜은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명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그 봉투를 집어 들어 안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한 눈에 봐도 꽤 상당한 금액 이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기륜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지금부터 그 날에 있었던 일을 잊게. 호위대장 무현은, 정빈마마를
버리고 어디 론가로 가버려서 생사를 알 수 없다고 기억하는 거야. 알겠나?”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명운의 손이 다시 봉투를 기륜에게로 밀어냈다.
“꽤 많은 액수군요. 하지만, 전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장군께서도 짐작 하셨을 텐데요.”
순간, 기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비열한 놈.’
그는 더욱 낮은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서 군관, 자네가 이번 일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내가 자네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지 못하겠는가. 이를테면, 자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야망을 말일세.”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이 그의 입술이 포물선을 그리었다.
“역시 대장군이시군요. 그럼, 소인은 대장군을 믿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기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금 짧게 목례를 한 뒤 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러나 기륜은 그가 이미 사라진 그 자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한 명운. 널 보면 참 안쓰럽군. 잡을 수도 없는 위험한 야망에 굶주린 꼴이라니.
허나, 그 야망이 그대를 그 자리까지 끌어올린 것은 부정 할 수 없겠지만.
뭐든지 지나친 것은 해가 되는 것을.’
그는 픽, 하고 비웃음을 짓더니 다시 독서에 열중했다.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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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요오~~~! 하루 만에 컴백 했답니다~~~ㅋㅋ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이제껏 올린 소설들 중 조회수가 60이 넘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덕분에 힘이 불끈! 불끈 솟아나는게 느껴져요오! >_<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1편을 들고 왔답니당!!
재미있어야 할텐데...ㅠㅠ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효! 하트 뿅뿅! ♡♡
* * Thanks To * *
초승달의 아이 님, 푸르매 님, 로체스틴 님, 은루나 님, ZEST 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_____^~~~~!!!!
첫댓글 한명운은 뭔가 이산의 홍국영과 비슷한 ...ㄷㄷ
ㅋㅋ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보이시나요??^^;
읽고가요
황녀라고해서 너무 사극적으로 가지 않으셔도..
에헤헤.......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