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정치는 크게 민주정치와 독재정치로 구분하고 군주국인데 민주정치를 하거나 독재국가인데 공화정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기에 공화제는 민주공화제로 묶여서 나오는 경우가 많을겁니다.(애초에 '민주주의'를 더 많이 들어봤을지 '공화주의'를 더 많이 들어봤을지만 생각해봐도...) 하지만 과거에는 정 반대였다고 보면 좋습니다.
현대 공화주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는 그 시절 지중해와 서아시아 문명권에서 흔치 않게도 공화제가 많이 보이던 지역으로 이들 역시도 과거에는 왕정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 많은 폴리스들이 공화정으로 전환했습니다.(예외적으로 스파르타는 이중왕 체제가 유지됨)
그리고 공화제 하 폴리스들은 '참주'라고 하여 왕은 아니나 왕이나 다름없는 자가 나타나는 것을 경계했고 고대의 공화정 국가로 유명한 공화정 시기의 로마 역시도 정적을 숙청할 때 '저 자는 왕이 되려 한다'는 좋은 레퍼토리였습니다.(오늘날로 치면 빨갱이, 토착왜구, 적폐의 위상쯤?) 이 참주가 출현하면 공화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므로 참주의 출현을 막기 위한 여러 제도적 방안이 모색되곤 했는데 그래서 고대 아테네에서는 도편추방제가 스파르타는 그 스스로의 꽤 고도로 발달된 정치시스템이 출현했습니다.
특히나 어차피 여기서 '왕정', '민주정', '공화정', '참주정' 등으로 구분해서 불렀지만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의 경우 참주정과 민주정을 몇번이나 왔다갔다 할 정도로 정치체제의 변동은 꽤 쉬웠고 아테네 역시도 왕정, 귀족 공화정, 민주정, 과두정, 민주정 식으로 왔다갔다 한만큼 참주의 출현 같은건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담론에서 고대에는 민주정보다는 공화정이 더 우세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민주정의 경우 고대의 민주정은 무조건 다수결이라서 다수의 결정은 옳지 않더라도 무조건 밀어붙여지고 다수가 누군가를 장기적으로 지지한다면 그는 제한없이 통치할 수 있어서 아테네의 민주정을 대표하는 페리클레스가 민주정과 도편추방제를 활용해 30년이나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공화정은 비록 다수가 원한다 할 지라도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고 심지어 민주정은 고대 아테네를 끝으로 명맥이 끊겼지만 공화정은 로마 공화국에서 명맥을 이어갔고 로마가 제정이 된 후 한동안 없어졌지만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 다시 부활함으로서 그 담론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이탈리아까지 공화정 하 유럽에서는 정치체제로는 크게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있고 모두 좋은 체제이나 각각 참주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타락할 위험이 있기에 이 셋의 모든 장단점을 딴 체제인 공화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공화정 모델은 스파르타의 것으로 스파르타는 진작에 민주정적 요소가 있는 민회, 귀족정 요소가 있는 원로원, 그리고 왕정 요소가 있는 이중왕 체제로 참주의 등장을 막음, 특권층의 정치참여 강화, 그러면서도 일반 시민들의 정치참여도 보장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바 있었습니다.(그리고 이걸 펠로폰네소스 전쟁때까지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실제로도 고대 아테네의 경우 도편추방제, 중우정 등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했고 민주정을 회복하긴 했으나 그 후에 특별한 후속대책이나 아테네를 뒤를 이은 국가가 그것을 보완하지 못한 반면 스파르타는 체제의 문제점으로 쇠망했으나 로마 공화정이 스파르타와 비슷하게 집정관, 원로원, 민회로 구성된 모델로 수백년간 국가를 운영했기에 민주정 모델은 아주 오래전에나 실행했다가 그 뒤로 보완된 적도 쓰인적도 없는 구식 모델인데 비해 공화정은 그래도 나름대로 오래 써본적이 있고 그만큼 연구도 정치적 담론도 꽤 이루어진 정치모델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시대가 바뀌어도 민주주의의 부활보다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부활이 먼저 이루어집니다. 사실 여기에는 다른 문제도 있는데 이 시대에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들의 출신은 대게 '부르주아'라 불리는 귀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반 평민과는 격이 다른 집단으로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기존의 최고 특권층인 왕과 귀족의 특권을 가지기 위함이었고 또한 당시 대부분의 평민들은 자유주의나 공화주의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기존의 왕정을 관성적으로 지지했으므로 혁명가들은 민중에게 권력을 주기 꺼려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난 예시가 부르봉 왕정복고 후 프랑스인데 의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주는 문제를 두고 왕당파와 자유주의자들의 대립에서 왕당파는 투표권 확대를 주장한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일정 자격을 가진 이들로 한정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만일 왕당파의 주장대로 투표권이 확대된다면 사상적으로 구시대적인 대다수의 평민들은 왕을 지지하므로 왕당파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왕당파는 투표권이 확대되길 원했고 자유주의자는 꺼린 것이었습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공화주의는 결국 권력을 누군가 독점하는 것을 꺼렸는데 그러다 보니 현대의 권력분립 아이디어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쪽에서 먼저 나와서 로마 공화국이 먼저 원시적인 통치자(집정관), 의회(원로원), 법원(시민법정, 민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후 자유주의자인 존 로크가 행정과 입법을 분리한 이권분립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공화주의자인 몽테스키외가 정식으로 삼권분립이라는 아이디어로 완성시킵니다.
사실 실제적으로도 오늘날의 삼권분립 시스템은 집정관이 대통령으로 변하고 원로원이 의회로 바뀌고(아얘 미국에서 상원의원을 지칭하는 ' senate'가 로마의 원로원에서 온 말) 민회(시민법정)이 법원으로 바뀌었으며 원로원에서 의회로 바뀌며 귀족정적 요소가 민주정적 요소로 바뀌고 민회가 법원으로 바뀌며 민주정적 요소가 귀족정저 요소로 바뀐걸 빼면 상당히 유사합니다.
즉 오늘날 민주정의 뼈대로 여겨지는 제도들 몇몇들을 따지고 보면 민주정 고유의 제도라기보다는 공화정을 위해 고안된 제도들이고 민주정에도 적용되기 좋다보니(그게 제대로 안 되어 나온 히틀러라는 사례가 있으니...) 스무스하게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실 또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도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서 융화된 것이지 실제로는 과거에는 세 사상이 대립하는 일도 많아서 자유주의=민주주의=공화주의인 것은 아닙니다.)
첫댓글 잘 정리해 주셨네요.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