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비용 - 송하중(경희대 행정대학원장)
바닥에 석장의 카드가 있고 그 중 한 장은 당첨이다. 내가 한 장을 골랐는데 아직 까보지는 않
았다. 딜러가 남은 두 장중 하나를 뒤집었는데 당첨 카드가 아니었다. 여기서 딜러가 제안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장을 바닥의 한 장과 바꾸고 싶다면 바꿔 주겠다는 것이다. 바꿀 것인가?
대학생, 신임 사무관, 공기업 직원 등 어느 그룹에게 이 질문을 던져도 결과는 비슷하였다. 대
략 80% 정도가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당첨될 확률이 같으니 이미 내가 선택한 카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겠다는 것이다. 만일 바꾼 뒤 까보았을 때 원래 가지고 있던 카드가 당첨이었다면, 처
음 것을 그냥 가지고 있다가 딜러의 카드가 당첨으로 드러난 경우보다 훨씬 더 억울할 것이라
고도 한다.
<변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사람들은 현재 상태와 그것을 변화시키는 대안이 있을 때 현 상태에 머무르려는 경향을 보인
다. 위의 카드 게임에서 두 카드의 당첨 가능성이 같다는 판단 하에 사람들은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게임이라면 바꿔야 한다. 바꾸면 확실히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의아
스럽게 생각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설정하고 열 번만 반복해 보면 알 수 있다. 수
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면 베이어스 정리로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관성의 법칙’은 모든 사물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본능적 혹은 경험적으
로 현재 상태가 탈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패턴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다
양한 개인적 행동과 선택, 판단 등에 녹아 있다. 따라서 변화 쪽 대안을 선택하게 하려면 변화
쪽이 현재 상태 보다 낫게 평가되어야 한다. 얼마나 더 나아야 되는가는 개인차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변화 쪽으로 이끌 긍정적 유인이 있어야 한다. 금전적인 것, 편리함, 감정적 요
소 등 유인의 형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조직 차원의 행태나 사회적 작동 과정에도 나타난다. 투표 결과 가부 동수이면
부결로 처리한다. 프로 복싱 세계 타이틀 메치에서 무승부가 나면 챔피언이 타이틀을 유지한
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예들은 일상적 관행에 수없이 많다.
개혁, 혁신, 변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화두이다. 어느 분야도 이를 피해 갈수는 없다. 문제
는 바꾸라는 요구가 개인이나 조직 차원에서 힘들고 거북스러운 주문으로 여겨지게 될 때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인정한다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안 쪽에 인
센티브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측이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
다. 그래서 변화를 주도하는 측에서는 상당한 자원을 확보하여 투입하여야 만 한다.
변화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변화가 정착되는 과정 자체에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
다. 즉 새로운 상황 설정에 소요되는 물적 자산, 노력 및 시간과 소속 인력들의 적응에 필요한
심리적 기제, 태도 변화, 기술 습득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바꾸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
라고 해대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
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변화 정착을 위한 가장 전형적인 수단은 교육 과정을 만들어 소속원들의 의식과 행태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매우 중요한 투자이다. 그러나 투자는 잘해야 한다. 잘못되면 본전을 건
지지 못할 뿐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 효과를 볼수 있는 잘 고안된
교육 과정과 자원 투입이 필요하다.
<개혁 한다고 조직구조만 바꿔서야>
조직 구조를 바꾸면 성과가 나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변화를 유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다. 조직 변화 과정에 자원 투입없이, 틀만 바꿔서 효과를 보려고 하는 전략은 통
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가 있는가. 외형상 조직 구조가 바뀌더라도 실제로는 그 내부의 사람
들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기대한 성과는 얻을 수 없다. 조직 변화와 함께 사람들을 바꾸는 데에
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한 비용을 물지 않고 원하는 대로 조직이 작동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조직 형태만 바꾸는 개혁은 항상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대를 앞서 가는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렇다면 변
화를 실천하는데 투입할 자원이 얼마나 있는가가 관건이다. 변화를 유도하는데 필요한 인센티
브나 변화를 정착 시키는데 필요한 유무형 자산은 변화 추진 페이스와 범위를 한정하는 요건이
되는 것이다. 만일 자원이 부족하다면 변화는 그만큼만 추진하여야 한다. 변화를 시도하여 그
대상자들로 하여금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게 하는 것은 다음 단계에 시도하는 변화의 비용을
높여서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가로 막기 때문이다
글쓴이 / 송하중
· 경희대 행정대학원장
· 美 하버드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
· 중앙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
· 저 서 <행정개혁의 신화와 논리>
<행정학의 주요이론>
<새천년의 한국정치와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