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4TBa0Ml4xqs?si=tXvevDQZfByectPy
Mozart, Symphony No. 36 in C major, K.425 "Linz" Carlos Kleiber. 1988 비너 필하모니커
독일 태생의 오스트리아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는 오랜 리허설로 유명했는데 뮌헨에서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공연할 때는 34번의 리허설을(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가 1925년 초연 지휘), 코벤트 가든에서 <라 보엠>을 연주할 때는 17번의 리허설을 거쳤다고 합니다. 1989년 카라얀이 베를린 필 총감독직을 사임하자 그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죠. 클라이버는 평생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카라얀은 클라이버를 가리켜 “냉장고가 빌 때만 지휘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경이로운 음악성에 대해서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오고 있지만, ‘작곡 속도’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린츠 교향곡’에 얽힌 일화가 으뜸으로 꼽히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1783년 11월 초, 고향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다가 빈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린츠(Linz,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에서 불과 엿새 사이에(혹은 나흘 만에) 이 교향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기록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이 두 대씩 포함된 2관 편성에 연주 시간이 30분에 달하는 4악장짜리 교향곡을 쓰면서 오케스트라 총보는 물론 파트보까지 준비했고, 나아가 리허설을 거쳐 연주회까지 성공리에 치러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일화는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절대적 음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었고, 그의 이미지에 신비감을 더하는 데에 확실한 일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모차르트라고 해도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신화의 한편에서는 이런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럴 만한 것이, 그의 재능만 따지면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육체적 능력과 물리적 여건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오늘날 ‘린츠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6번 C장조, K.425는 자필 총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니 이의 제기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쾨헬번호 444번(K.444)이었던 교향곡 37번이 ‘린츠 교향곡’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으로 밝혀졌고, 모차르트가 그 곡을 사보하는 데 사용한 오선지는 린츠를 거쳐 빈으로 돌아온 이후의 것으로 판명이 났다. 결국 현재로서는 교향곡 36번 C장조가 ‘린츠 교향곡’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봐야겠다.
▶모차르트는 불과 엿새 만에 이 교향곡을 완성하여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툰 백작 가문의 환대
한편, ‘린츠 교향곡’의 작곡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1783년 7월 말에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고향 잘츠부르크를 오랜만에 방문한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이 1780년 말이었고, 콘스탄체와의 결혼식이 1782년 8월이었음을 떠올리면 필요 이상으로 고향 방문이 지연된 셈인데, 사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아버지 레오폴트와 누이 나네를이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계속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가 자칫 다시 억류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도 그가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해고되었다는 증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 부분에 대한 확답을 듣고서야 귀향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 3개월 동안 머물며 지인들과 해후하는 한편 아버지와 누이로 하여금 자기 아내를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누이의 태도는 완고했다.
모차르트가 다시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은 10월 말이었다. 그리고 빈으로 돌아가는 길에 린츠에서 일주일 정도 체류했는데, 거기서 그는 툰 백작(Count Thun) 가문의 환대를 받게 된다. 툰 백작은 하인을 도시 입구까지 보내 모차르트 내외를 마중했고, 곧바로 자기 저택으로 데려와 짐을 풀게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에게 린츠에서 연주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날짜가 바로 11월 4일 화요일이었다. 당시에 연주회의 처음과 마지막은 교향곡이 장식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린츠에 도착했을 무렵 모차르트는 교향곡 악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목이 부러질 정도의 속도로’ 새 교향곡을 썼고, 공연을 무사히 치러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성숙미
‘린츠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빈 정착 후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첫 번째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전작인 ‘하프너 교향곡’이 (상대적으로 유희적 성격이 강한) 세레나데를 전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교향곡은 보다 진지하고 순도 높은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무엇보다 빈 정착 후 한층 더 심화된 모차르트의 음악성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비록 급하게 쓰인 탓에 하이든의 영향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완서악장에서의 관현악법과 양단악장에서의 화려한 발전부가 돋보이며, 우아함과 활력, 정열과 기품을 조화롭게 버무려낸 솜씨는 ‘역시 모차르트!’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첫 악장에 붙은 느린 서주는 하이든의 어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성숙미의 본보기로 간주되고 있다.
1700년대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름다운 풍경.
https://youtu.be/HXk2te8m2-k?si=Xjiqgsxus4bJ9Ta5
Mozart - Symphony No. 36 in C major, K. 425, "Linz" Berliner Philharmoniker. Karl Böhm
제1악장: 아다지오 C장조, 3/4박자 – 알레그로 스피리토소 C장조, 4/4박자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의한 겹점 리듬 음형이 특징적인 아다지오의 서주로 출발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느린 서주가 붙은 것이 이것이 첫 사례인데, 여기서 모차르트는 풍부하면서도 교묘한 화성 변화를 통해서 청자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후기 음악세계로 인도한다. 알레그로의 주부는 부드럽고 우아한 선율과 탄력적이고 힘찬 리듬의 교대로 진행되는데, 그 절묘한 어우러짐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제2악장: 안단테 F장조, 6/8박자
시칠리아노 풍의 주제가 흐르는 이 악장에서 모차르트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 당시의 느린악장에서는 금관 파트가 침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상당히 독창적인 시도였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용법은 훗날 베토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제3악장: 미뉴에트 C장조, 3/4박자
전형적인 고전파 풍 미뉴에트 악장이다. 화려한 무도회를 연상케 하는 미뉴에트 중간에 같은 C장조의 트리오가 삽입되어 있는데, 트리오에서는 오보에와 파곳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4악장: 프레스토 C장조, 2/4박자
이 악장의 시작 부분에서 모차르트는 과거 ‘파리 교향곡’과 ‘하프너 교향곡’에서 사용했던 수법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즉 베이스를 뺀 현악기들로 여리게 출발한 다음 힘차게 상승하는 대목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에 기초한 선명한 다이내믹 대비 효과가 악장 전체에 걸쳐 두드러지는데, 모차르트는 음량뿐 아니라 음색 면에서도 절묘한 대비를 이끌어내면서 음악을 천의무봉의 솜씨로 엮어나간다. 유사 폴리포니 효과까지 가미된 이 다채롭고 쾌활하면서도 깊이 있는 악장은 눈부신 환희의 울림으로 마무리된다.
추천음반
1. 트레버 피노크(지휘)/더 잉글리시 콘서트 [Archiv]
2. 찰스 매케러스(지휘)/프라하 체임버 [Telarc]
3. 레너드 번스타인(지휘)/빈 필하모닉 [DG]
4. [DVD]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빈 필하모닉 [Decca]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글쓴이 : 대포(황혼이 머문자리는 아름답습니다)
9세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교향곡은 그 수가 50여 곡에 달한다. 작품 목록에 정식으로 자리잡은 41곡의 교향곡을 살펴보면 초기의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이나 전고전 시대의 J. C. 바흐의 교향곡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점차 만하임 악파와 빈 고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빈에 정착하기 이전인 1773년 말부터 1774년 초에 작곡된 G단조(K.183)와 A장조(K.201)에는 질풍노도 양식의 강한 감정표현이 나타난다. 주제의 통일과 형식의 확장은 이미 고전양식에 숙달되었음을 보여 준다. <파리>교향곡(K.297)과 잘츠부르크에서 쓴 C장조(K.338)는 잦은 여행을 통해 얻은 성과로 보여지며 이후 빈에 정착하면서 작곡한 6개의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의 걸작품들이다.
세레나데로 작곡된 곡을 교향곡으로 전용(轉用)한 <하프너>교향곡(K.385), 느린 서주부가 1악장에 삽입되어 하이든적(的)이라는 평을 받는 <린츠>교향곡(K.425), 서주부가 있는 3악장의 <프라하>교향곡(K.504), 그리고 모차르트 최후의 3대 교향곡 Eb장조(K.543), G단조(K.550), C장조(주피터, K.551) 등이 이 6개의 교향곡에 해당된다. 1788년, 불과 40여일 만에 작곡된 마지막 3대 교향곡은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교향곡일 뿐만 아니라 고전 시대 교향곡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777년 가을에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난 이후, 모차르트의 ‘구직 여행’은 독일의 만하임을 거쳐 프랑스의 파리로 이어졌다. 사실 모차르트는 사랑하는 알로이지아가 있는 만하임을 떠나기 싫었지만, 주된 목적인 구직 활동에서 별다른 소득 없이 고향으로부터 날아드는 아버지의 성화를 견뎌내기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그와 알로이지아의 관계를 심히 못마땅해했다. 레오폴트는 수차례 편지를 보내서 그에게 파리로 갈 것을 종용했고, 결국 그는 1778년 3월 중순에 만하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지루한 적이 없었던’ 9일여에 걸친 마차 여행 끝에 모차르트와 그의 어머니는 3월 23일 파리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6개월간 이어진 파리 체류기는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갖다 놓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누추한 숙소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얼마 후 집안의 오랜 친구인 그림 남작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정이 나아졌고, 만하임에서 사귄 친구들과 해후하는 등 한동안 희망적인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는 ‘신께서 주신 재능을 허비하는 것’으로 여겼고, 콩세르 스피리튀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플랫장조’의 공연은 연주용 악보의 미비로 무산되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4mOuBT7hrCs?si=YYBPa-HEj4DKMJVM
Mozart: Symphony No. 36 - Rotterdam Philharmonic Orchestra/Gergiev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