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절/ 천양희
바람이 없는데도
지진 맞은 듯 흔들린다
꽃을 보던 마음이
다른 길을 옮긴다
길 건너 공원에는 안개가
최루탄 연기처럼 자욱하다
더듬거리며 연인들이
오리무중이야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 속으로 스며든다
설레야 할 심장이 마스크를 썼다
감동 없는 날을 베고 싶은 시간이다
신이 코로나를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다
오늘은 가까스로
“눈밭에서 길을 잃을 때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거야” 여자가 말한다
“어둠보다 더 두려운 건 권태인 거야” 남자가 말한다
두 사람의 쓴소리가 가까워진다
쐐기풀에 베인 듯 살갗이 따갑다
쓴소리하는 그들을 보다가
나도 한때 쓴소리꾼이었지,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다 세상 다 보낸 건 아닐까
우두커니 서서
환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달려가고 달려오는 불빛들
저것이 일상일까
우리에게도 일상이 있었나
수상한 시절이 계속된다
- 창작과 비평 2022 봄호에서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가 지난 2년 반 동안 전세계를 초토화시켰고, 아직도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엔데믹’이 아닌 ‘펜데믹’으로 그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나가사키나 히로시마를 초토화시켰던 원자폭탄보다도 더 피해가 크고, 모든 세계인들이 지난 2년 반 동안 마스크를 쓰고 격리 생활을 하다보니까 만성적인 우울증과 함께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천양희 시인처럼 [수상한 시절]을 살아가는 지옥 속의 원주민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부모형제와의 혈연관계도 끊어졌고, 존경하는 스승이나 사제들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오직 그토록 사악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들이대는 동료들과 상사들과 이웃들만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신이 코로나를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던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신은 왜, 그토록 화가 났고, 왜, 또한 코로나를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던 것일까? 지옥이란 무시무시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에 따라 처벌을 받는 곳을 말하고, 그 고통의 형벌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곳을 말한다. 인간은 그토록 자비롭고 친절한 신의 명령을 거역했고, 따라서 코로나는 그 형벌이고, 이 지구촌은 지옥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짓게 된 근본원인은 무엇 때문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만악의 근원인 탐욕 때문이었고,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즉, ‘불로장생의 꿈’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를 만연시키게 된 것이다.
‘철학의 시대’는 가고 ‘과학의 시대’가 왔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은 ‘악마의 말’이자 이 세상에서 ‘지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최초의 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자는 전인류의 스승이고,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을 논하며, 우리 인간들의 삶의 행복을 가르쳐 준다. 이에 반하여, 자연과학자는 더욱더 돈을 많이 벌고 그 부유함 속에서 ‘불로장생의 꿈’을 현실화시켜 준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돈이 있어야 병을 물리치고, 돈이 있어야 오래 살기 때문에, 자연과학자들은 그 모든 도덕과 윤리와 심지어는 모든 종교들마저도 대청소해 버렸던 것이다. 돈을 벌고 오래 살고 싶다는 꿈이 오늘날의 고령화 사회를 탄생시켰고,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수명연장 행위 때문에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가 발병하게 된 것이다.
자연과학은 너무나도 외설적이고 거침이 없으며, 그 어떤 반인륜적인 행위마저도 거침없이 저지르고 본다. 그토록 성스러운 신체를 해부하여 상업용(의학용)으로 분류해 놓았고, 불로장생의 꿈을 위하여 이종교배와 동물복제마저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 세상이 만물의 터전이라는 사실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지난 100여 년 동안 인간의 인구는 60억 명이 늘어났으며, 모든 만년설과 극북지방의 빙하들이 다 녹아내리게 되었다. 호랑이가, 코끼리가, 개미가, 나무와 풀이, 새와 개와 고양이가 불로장생의 꿈을 위하여 더욱더 탐욕스럽게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이종교배와 동물복제를 자행해왔단 말인가?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불로장생의 꿈이 온갖 산업공해와 자연의 재앙을 불러온 것은 물론, 온갖 의약품을 오, 남용하고 과잉생산해오지 않았단 말인가?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 온다. 천하는 만물의 터전이고, 어느 누구도 천하를 소유할 수는 없다. 이 윤회사상과 자연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역한 우리 인간들의 죄는 그야말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너무나도 가혹하고 혹독한 처벌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아직도 ‘지옥 속의 형벌’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하는 순간 더 큰 질병이 나타나고, 이 질병들이 우리 인간들의 ‘불로장생의 꿈’을 초토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없는데도 지진 맞은 듯 흔들리고, 꽃을 보던 마음이 다른 길로 옮겨간다. 길 건너 공원에는 최류탄 연기처럼 안개가 자욱하고, 모든 연인들이 더듬거리며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모두들 두근거리는 마음과 설레여야 할 심장도 없이 마스크를 썼고, 그 감동없는 날들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눈밭에서 길을 잃으면 뒤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어둠보다도 더 두려운 권태 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 권태----,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다 무너진 권태----. 사랑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권태는 쐐기풀처럼 따갑고 아프기만 하다. 오리무중의 안개 속의 권태----, 한때는 쓴소리가 그토록 싫고 역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애정과 믿음이 담긴 쓴소리조차도 할 수가 없다.
코로나 팬데믹----. 모든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가 파탄나고, 날이면 날마다 복면을 쓴 낯선 인간들과 유령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자연과학의 시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들은 자연과학자와 자본가들에게 살아야 할 권리와 죽어야 할 권리를 다 빼앗긴 채 요양병원의 상품으로 진열되어가야 할 유령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우두커니 서서 환한 거리를 내려다 보지만, 그 모든 것이 낯설고 부질없다.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우리 인간들도 없다. 모두들 다같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잃어버리고 마스크와 복면을 쓴 채, 오리무중의 안개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수상한 시절이 수상한 시절을 부르고, 수상한 시절이 수상한 시절을 부른다.
자연과학이 만악의 근원인 탐욕을 극대화시켰고, 우리 인간들의 ‘불로장생의 꿈’을 현실화시켜 나가고 있다. 자연의 법칙과 윤회사상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전복시킨 자연과학은 그러나 이 세상의 [수상한 시절]의 연출자가 되었다. 이상낙원은 지옥이 되었고, 오리무중의 안개 속의 권태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모두가 다같이 일상생활을 잃어버리고 부들부들 떨며 코로나 팬데믹, 즉, [수상한 세월]을 살아가게 되었다. 너와 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어떤 유대감이나 연결고리도 없고,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 팬데믹’의 주연배우로서 살아가게 된다.
전지전능한 신의 영원한 천벌을 받은 것이다.
첫댓글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천양희 시인처럼 [수상한 시절]을 살아가는 지옥 속의 원주민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부모형제와의 혈연관계도 끊어졌고, 존경하는 스승이나 사제들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오직 그토록 사악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들이대는 동료들과 상사들과 이웃들만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신이 코로나를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던 것이다.(반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