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성공가도를 달리는 판사 이반 일리치. 그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가족을 비롯해 그의 주변은 모두 세속적인 사람들로 포진됐다.
그러던 그가 45세 되던 해 자기 집을 꾸미다가 창틀의 둥근 장식에 옆구리를 부딪쳐 옆구리에 멍이 든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입 냄새가 나고 통증이 심해지자 그는 이런저런 치료 방법을 찾다가
그것이 치명적 병임을 알게 된다. 병이 점점 중증으로 화하면서 이반 일리치의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다. 어떻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나 외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다만 오늘이냐 내일이냐 다음 주냐 하는 시간문제다. 전에는 희망이 있었다만 지금은 어두움뿐이다.
전에는 내가 여기 있었으나 이제는 저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나는 꾸준히 산을 오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이반 일리치는 자기 삶이 허위였다는 것을 깨닫고 죽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육체가 죽음에 접근할수록 정신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사람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허망한 짓을 계속하는 것이다.
<교훈>
위의 내용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 이후 정신적 위기를 겪고 9년 후 발표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라는 책의 내용이다.
세속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던 한 남자가 죽음에 직면하여 철학적 깨달음을 얻으면서 죽어간다는 이야기.
병이 나기 전의 이반 일리치는 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되풀이하는 인생 모습이다.
학위를 따고 사업을 번창시키고 경제적 부를 쌓고 유명인사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매진하는 사람들, 정상에 도달하면 낙원이 있을 것이라고 공상하는 사람들.
이반 일리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라고 하는 뼈저린 각성의 모델도 이반 일리치였다.
진실은 어떤 것인가? 그러던 이반 일리치 안에서 가치관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전쟁은 세속적 가치의 패배와 정신적 가치의 승리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 덜 중요한 것을 이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란 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인 것만이 영원하고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성공은 영적 성공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헛소리다, 무슨 놈의 영적 성공이냐, 그것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궁색한 논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애가 진주의 가치를 모르듯이 영적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대기업체를 하나 주겠다고 하면서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는가?
누군가 우리에게 한 도시를 주겠다고 하면서 대신 우리의 팔을 잘라가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는가?
누군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주겠다고 하면서 대신 한 달 후에 우리의 심장을 떼어가겠다고 하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과 우리의 영혼을 바꾸자고 하는데 영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혼은 아내나 남편보다 팔이나 심장보다 중요하다.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일이다.
사람이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 산다는 것 자체가 영혼을 팔아버리는 행위라고.
영적 가치관과 세속적 가치관, 이 두 가지는 조화될 수 없다.
아무리 번쩍거리는 명함을 가지고 아무리 눈부신 활동을 해도 세속적 기준에 따라 산 사람은 내려가는 사람이다.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 승승장구하는 것이 알고 보니 추락하는 길이었다는 것이 이반 일리치의 선언이다.
바로 이반 일리치가 빠져들었던 고뇌는 하나님 없는 성공 속에 도사린 허무였던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2011. 11. 24
이 호 혁
첫댓글 주님의 은혜와 사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