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대해서 보통은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4세의 무능, 부패한 문벌귀족, 떠난 민심 같은 것을 꼽을 수 있는데 이것들은 본질적인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분명히 프리드리히 4세의 치세는 문제가 많았고 그의 치세는 엉망이었고 귀족들의 전횡도 심했지만 적어도 그가 살아이는 동안에는 큰 탈이 일어나지 않았고 민심도 분명 좋지 않긴 했지만 그들을 이끌어줄 존재도 동기도 없어 제국을 향한 대규모 항쟁은 기대하기 힘든 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는 제국 고위층에서 찾아야 합니다. 많은 나라의 멸망은 국가 고위층에서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한국사에서도 고조선,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이 이에 해당) 골덴바움 왕조 말기는 마치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부르봉 왕조 하 프랑스 왕국의 구조와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기 직전,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혼란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주요 권력계층이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당시 프랑스의 권력은 왕족, 성직자, 귀족이 쥐었다(대충 제1 계급, 제2 계급) 정도로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먼저 왕족의 경우 당시 왕가는 루이 15세의 직계인 현임 왕이었던 루이 16세, 그리고 그 동생들로 구성된 부르봉 왕가와 루이 16세의 고조부인 루이 13세 때 갈라진 '오를레앙 가문'이 대립중이었는데 오를레앙 가문은 프랑스 왕위를 탐내고 있었고 이 때문에 비밀리에 반 왕실 행위를 지원해주고 있었고 부르봉 왕가 내에서도 루이 16세의 동생들도 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이 사람들이 뒷날 왕정복고 후 각각 루이 18세와 샤를 10세가 됩니다.)
귀족의 경우 먼저 '대검귀족'과 '법복귀족'이라고 하여 전자는 말 그대로 혈통으로 이어져오는 전통있는 귀족이며 후자는 부르주아 출신으로서 관료나 법관이 되어 귀족 작위을 얻은 이들로 출신이 상이하게 다르다 보니 대립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귀족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이들 내에서도 상위 귀족과 하위 귀족이 있어 상위 귀족이야 우리가 생각할 귀족의 특권을 누렸지만 하위 귀족은 말만 귀족이고 귀족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크지 않은 경우가 않았고 따라서 상위 귀족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이 갈등은 성직자로도 옮겨붙어 성직자도 대주교 같은 고위직은 귀족이, 일반 성직자 같은 하위직은 하급귀족이나 평민 출신이 맡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대혁명 당시 평민, 부르주아 뿐 아니라 일부 귀족과 성직자도 이들 편에 서는 이유가 됩니다.
골덴바움 왕조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OVA 기준으로 골덴바움 왕조의 근간은 3가지, 관료, 군대, 귀족으로 루돌프 사후의 골덴바움 왕조의 역사를 다루는 파트에서 루돌프 사후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데 루돌프가 생전에 구축한 이 삼위일체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골덴바움 왕조에서 맡은 역할을 상상해보자면 관료는 국가의 국정을 맡은 이들로서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황제 1명이 모든 일을 할 순 없는 노릇이므로 관료들은 황제가 국정을 돌보는데 돕고 관료조직으로 지방까지 황제의 명령이 통하게 하며 또한 치안(경찰조직)과 첩보(비밀경찰)을 담당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을 것입니다.
군대는 골덴바움 왕조의 무력수단으로서 평상시에는 반란 억제력을 제공하고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를 찍어누를 수단이 됩니다.(지구통일정부 시절의 지구군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그 외엔 군대의 존재로 국가가 엄청난 무력수단을 가져야 할 이유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문벌귀족은 골덴바움 왕조의 주요 지지층으로 황제 다음가는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그 근거는 골덴바움 왕조가 부여해주었으므로 막대한 부와 권력으로 사회를 장악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존립의 근거는 골덴바움 왕조의 존속에 있으므로 왕조의 골수 지지층이 되어 골덴바움 왕조는 무리할 정도로 왕조 스스로가 국가의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 하지 않고도 충분히 국가를 장악할 수 있고 단일 존재로서 고립되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매커니즘은 프리드리히 4세 치세엔 완전히 깨져 있었습니다. 관료들은 라인하르트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자기들 대빵인 리히텐라데를 잔혹하게 숙청하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는 점이나 상서는 갈아야 했다는데서 관료들의 경우 상서급의 고위관료와 그 이후 중견, 하위 관료들이 생각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립슈타트 전역때 이들이 두쪽으로 갈라진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족도 마찬가지로 립슈타트 전역때 그들은 연합파에 가담하거나 추축파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중립을 선택하거나 셋 중 하나로 결론적으로 귀족의 힘이 단결되지 못한 채 분산되었고 또 귀족들 스스로도 본질적으로 문벌귀족과 하급귀족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자는 권력에서 밀려나지 않은 경우라면 몰라도 후자는 평상시라도 왕조에 대한 충성심은 그리 크지는 않은 것처럼 나옵니다.
라인하르트는 이 분열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가 천재라도 저 셋이 모두 단합해 골덴바움 왕조 수호를 외친다면 아무리 그가 천재라도 그는 개인일 뿐이므로 잘해봐야 왕조 내의 실권자로 끝나고 말았겠지만(아니면 어거지로 찬탈했다 반발맞고 죽든가) 이렇게나 분열되었으니 그는 왕조 수호의 도구를 반대로 왕조 전복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관료조직의 경우 상층부만 조금 물갈이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이들을 기용했고 이렇게 상층부가 물갈이된 관료조직은 라인하르트의 의사에 따라 그의 개혁정책을 실행하는 도구가 된 채 결과적으로 라인하르트의 찬탈에 기여했습니다.
군대의 경우에도 라인하르트는 애초에 군인으로 시작해 올라왔고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동조하는 고위 장성들을 통해 라인하르트 원수부라는 합법적인 형태로 사실상의 사조직을 형성했으며 립슈타트 전역에서 그 두가지 성질을 모두 드러내 합법적으로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쓸어버렸고 불법적으로 리히텐라데 후작까지 보내버립니다.
이후로는 라인하르트가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는데 공헌을 하여 라인하르트의 찬탈을 도왔으며 마지막에는 군부의 수장격인 미터마이어가 국무상서가 됨으로서 라인하르트 사후까지도 로엔그람 왕조를 지킬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귀족의 경우는 귀족체제를 혐오하는 라인하르트 특성상 별 역할을 못 맡았지만 어찌되었든 일부 귀족이 라인하르트 편에 서거나 중립을 선언함으로서 문벌귀족들로 구성된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애초에 귀족 전체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는 했습니다.
즉 골덴바움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저들 지배층의 내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시대적 혹은 순간순간의 운을 능력으로 잘 활용해 먹으며 그와 무관한 부분에서도 자기능력을 드러내며 찬탈에 성공했다고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