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1889년 6월 말, 캔버스에 유채
테오에게...
요즘은 더 많은 캔버스 작업을 하고 있다. 30호 캔버스로 거의 열두 점이 될 거야. 그 중 두 점은 사이프러스나무를 그린 것인데 다루기 힘든 암녹색 색조의 그림이다. 대지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 전경은 두터운 층을 이루게 그렸다.
난 이제 뭘 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일하든 다른 곳으로 가든 매한가지 같다. 그러니 여기 있는 게 가장 간단한 일이겠지. 이곳 소식은 네게 전할 새로운 소식이 없다. 그날이 그날 같은 날이거든. 난 밀밭이나 사이프러스나무를 가까이 가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에 다른 아무런 생각도 없다.
아주 노랗고 환한 밀밭 그림을 그렸는데, 아마 나의 그림 중 가장 밝은 작품이지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사이프러스나무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 그리고 그 푸름에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태양이 내리쬐는 풍경 속에 자리잡은 하나의 검은 점,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장 흥미로운 검은 색조들 중 하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해 내기란 참 어렵구나.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 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 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다룬 두 점에서 지금 스케치를 그려보내는 쪽이 더 훌륭한 그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속의 나무들은 아주 크고 육중하다. 전경은 가시나무와 관목덤불들이 낮게 자리잡고 있다. 보랏빛이 도는 언덕 너머에 초록색과 분홍색을 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다. 전경의 가시덤불은 노란색과 보라색, 초록색으로 아주 두껍게 칠했다.
188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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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