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제, 신분제라는 전근대적 사회제도가 존재하던 골덴바움 왕조에서는 결투라는 전근대적인 풍습도 존재했는데 주로 귀족층에서 즐기던 문화입니다. 규칙을 보면 서부시대 무법자들의 생사를 건 결투보다는 유렵식 결투에 가까웠는데 귀족들은 이 결투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곤 했으며 이 때문에 대귀족이 남의 재산을 빼앗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결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도 논란을 낳았듯 은영전의 결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비를 재판이 아닌 결투로 해결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체계가 아닌 사적 행위로 시비를 가리게 되는 것이므로 국가나 왕 입장에서는 곱게보일 행위가 아니고 때문에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왕권 강화를 노리고 결투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삼총사에서도 나오는 부분이며 실제로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 때문에 귀족들의 원한을 삽니다.)
그런데 골덴바움 왕조 멸망 후 들어선 로엔그람 왕조는 성립된 후 실행한 개혁의 방향. 특히 사법상서 브룩도르프가 법을 통해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싶어했다는 것을 보면 결투란 결국 구시대의 적폐로 찍혀 퇴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결투 자체가 현실에서건 은영전에서건 사회 최상류층의 문화인데(서부시대는 예외) 그 최상류층이 대거 갈려나간 로엔그람 왕조에서는 더이상 유지될 동력도 없는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