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보험설계사까지…‘워킹 시니어’ 190만
김경희, 서지원입력 2023. 5. 25. 00:03수정 2023. 5. 25. 05:36
국내 최고령 보험설계사로 알려진 김성길(97)씨가 3월 14일 롯데손해보험 경남사업본부에서 ‘평생직업 100세 시대 롤모델’로 선정된 후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롯데손보]
“100세까지 일하는 게 목표에요. 제 두 발이 움직일 때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경남 마산에서 롯데손해보험 전속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성길(97)씨는 매일 이런 다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김씨는 1979년 롯데손보의 전신인 대한화재 동마산 영업소장으로 입사해 45년째 영업 현장을 누비는 이른바 ‘워킹 시니어’(Working Senior)다. 국내 최고령 보험설계사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챙겨 먹는다. 회사로 출근하거나 고객을 만날 땐 양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가까운 거리는 최대한 걷기 위해서다. 김씨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처럼 밥이 보약”이라며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이 제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1926년 마산에서 태어나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마산 토박이’다. 1945년 학교 졸업 후 세무 공무원, 유원산업 경리과에서 근무하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험업에 발을 들였다. 김씨는 “예전에는 보험을 판다고 하면 선입견 때문에 무시하거나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한번 신뢰가 쌓인 고객은 놓치는 법이 없다. 김씨는 “3대에 걸쳐 고객의 자녀가 장성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삶의 낙”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 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한달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묻자 김씨는 “영업비밀”이라며 껄껄 웃었다. 김씨는 “보험계약을 하루에 42건 성사시킨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정도는 된다”며 “자식에게 용돈 타 쓰다 보면 짐이 되는 것 같아 주눅 들기 쉬운데 이 나이까지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21세에 ‘마산 대표팀’으로 선발돼 각종 전국 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 1호 야구인’이다. 김씨는 “선수 시절엔 100m를 12초대에 뛰었다”며 “야구로 다진 체력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롯데손보는 지난 3월 김씨를 ‘평생직업 100세 시대 롤모델’로 선정했다.
김씨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가족들은 ‘이제 좀 쉬라’고 만류하지만, 건강만 허락한다면 계속 일하고 싶다”며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이기 때문에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찾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희(古稀·70세)를 넘은 고령에도 김씨 같은 워킹 시니어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만 70세 이상 취업자는 187만8000명에 달했다. 70세 이상 취업자를 분류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지난해 10월(187만8000명)과 함께 또다시 역대 최대치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비중도 지난달 6.6%였다. 취업자 15명 중 한 명꼴이다. 경기도 양주시 한 아파트에서 3년차 경비원으로 일하는 유기성(75)씨는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생 손주들에게 등록금 200만원씩 보태줬다. 그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80세 넘어서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인구 구조 변화와 늘어난 취업 수요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우선 베이비붐(1955~1963년대생) 세대가 은퇴 인구로 진입하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나이가 들어도 노후 준비가 안 된 경우도 많다.
한국의 고령화 추이를 고려해 일자리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곧 70대에 진입할 베이비붐 세대 ‘욜드(YOLD·young old)’는 과거의 70대보다 학력이 높고,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생계비 벌이 외에도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비경제적 동기도 있다”고 짚었다.
김경희·서지원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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