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2023년의 새해가 밝았다.
간지로는 계묘년(癸卯年), 검은토끼의 해다.
한해가 지나니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됐다.
살아온 세월을 말 해도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서울대 주경철교수는 지금의 80대를
‘파란만장한 생애를
힘겹게 살아오신 어르신들’ 이라고 했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생활과 모든 일에서 여러 가지 곡절이 많고
변화가 심했다는 뜻이다.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소학교를 다녔고,
광복후에는 인민학교에서 김일성장군을 배웠으며
부모님을 따라 월남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이승만 박사를 배웠다.
중학생 때는
6.25전쟁으로 죽을 고생을 했고, 춥고 배고픈
자유당군대의 전방부대에서 사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제대후 대학에 복교하자 4.19가 터졌으며,
5.16과 5.18모두를 겪었다.
산업화 시대의 직장에서는
월차, 년차, 휴가도 없이 별을 보고 출,퇴근 하는
‘일’ 속에 파묻혀 조국산업화에 청춘을 불살랐다.
이는 지금도 자부심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동안에
풍속이나 풍습이 아주 많이 바뀌어서
딴 세상이 된것 같은 느낌을 이르는 말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가 일궈 낸 역사적인 성취는
‘수직상승’ 이라는 표현이 맞다.
성장률등 경제지표는 수백배 늘어났고
삶의 질도 급격히 향상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된 1962년 1만3천800원에서
2021년 4003만원으로 300배로 증가했다.
가계소득중 세금등을 제외한
1인당 실질처분 가능소득으로 따져보면
1970년도 23만1,000원에서
2021년 2,231만7,000원으로 증가했다.
100배정도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966년 5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대수는
2,437만대로480배 증가했다.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평균수명연장으로 이어졌다.
1970년 62,3세였던 평균수명은
2020년 83,5세로 늘어났다.
남자는 58,7세에서 80,5세로,
여자는 65,8세에서 86,5세로 늘었다.
소득이 늘면서
평균수명도 20세가량 높아진 것이다.
반대로 60여년동안 줄어든 지표도 있다.
경작면적의 경우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빠져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1970년 229만ha에 달했던 경작면적은
2021년 156만ha 까지 줄어들었다.
수출로 나라를 세운다는
‘수출입국’ 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던
1960년대 이후 우리수출은 3,860배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65년 연간수출액은 1억7,508만달러 였는데
2021년 수출액은 6,444억 36만 달러로 늘어났으니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세계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격세지감은
각종수치보다는 의,식,주의 생활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구체적이고 실감이 난다.
먼저 의(衣).
나는
중.고교시절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외투가 없이 지냈다.
지금은 모두가 다운자켓을 입고 있지만
그때는 외투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고
대신 내복을 껴입고 겨울을 지냈다.
30도 소주가 어는 날이 많았던 추위를
그렇게 견디며 지냈다.
대학4년 동안은
검게 염색한 미군의 군복을 입었고
신발도 검게 칠한 워카를 신고 다녔다.
대한졸업 후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
비로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단화를 신어 봤다.
다음이 식(食).
쌀밥은 일년에 세 번,
설, 추석, 그리고 생일날만 먹어 볼 수 있었다.
고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는 보리밥에 김치면 족했다.
간식은 물론 없었고 보리밥도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행복했다.
보리쌀까지 떨어지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단군이래 조선백성이
하루세끼 쌀밥을 마음껏 먹은게
1976년 박정희의 통일벼 덕분이었으며
이는 그분의 가장 큰 업적이다.
다음이 주(住).
그때는 아파트는 거의 없었고
모두가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주로 장작을 썼으며 초저녁에 군불을 때도
한밤중엔 냉기가 돌았다.
겨울철이면 머리맡에 떠다 놓은
자리끼(마시는 숭늉)가 얼었으며 이불은 덮었으나
잠자는 방의 온도가 영하였다는 얘기다.
지금은 모두가 수세식화장실을 쓰고있지만
그때는 마당 한구석에 있는
재래식 변소를 썼다.
밤에 자다가 변소까지 갈 수 없어
방안에 요강을 비치, 사용했으며
아침이면 각방의 요강을 비우고 씼는 일이
아녀자들의 큰 일거리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나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겐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모두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식당에서 쌀밥과 반찬을 남겨 버리는 것을 보면
하늘이 무섭다.
잘 살수록 더 감사하고,
절약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문화국민이다.
우리는 모든게 너무 낭비가 심하다.
교육이 잘못된 면도 크다.
이게 단지 나이 많은 늙은이의
노파심 때문데 하는 잔소리일까.
그렇지않다.
사람이 올바로 사는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음식을 버리면 하늘이 노한다.
ㅡ법정.
by/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