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과 한글마루지: 한글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한 정책 대안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한글학회 이사)
서울시가 추진 중인 광화문광장 재조성 및 한글마루지 사업에 대해 다수의 한글 단체들이 역사적 정체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광화문 일대의 한글 문화유산 보존과 세종대왕 업적의 올바른 계승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사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기존 한글 역사 유적지의 보존과 발전,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가치 강화, 그리고 한글 및 세종대왕 업적의 지속 가능한 문화·교육적 활용 방안입니다.
1. 기존 한글 역사 유적지의 보존 및 발전 방안
광화문 주변에는 이미 다수의 한글 관련 역사 유적과 기념물이 존재합니다. 이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대표적으로 광화문 세종대왕상 인근 세종로공원의 한글 글자마당과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은 한글의 과학성과 독립운동기 학자들의 헌신을 기리는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서울시가 편의시설 설치를 위해 이전 계획을 세우자 한글학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한글과 광화문 광장의 역사성을 무시한 행위"라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특히 한글글자마당은 2011년 11,172명의 시민이 직접 작성한 글자를 돌에 새긴 공간으로, 세종대왕 동상이 보이는 현재 위치에서만 그 교육적 가치가 제대로 발휘됩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 대안을 제안합니다.
1) 현 위치 보존 및 개선
한글글자마당과 순국선열 추모탑을 현 위치에 존치시키고, 필요한 편의시설은 다른 부지나 지하 공간을 활용합니다. 이를 통해 편의성을 높이면서도 문화유산의 맥락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시설 주변에 안내 표지와 휴게공간을 정비하여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한글 조형물을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합니다.
2) 한글 유적 연결 동선
광화문 일대의 한글 관련 역사 자원을 하나의 문화 탐방로로 통합합니다. 세종로 한글글자마당과 추모탑,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및 '세종이야기' 전시관, 나아가 세종대왕 탄생지인 통인동 일대를 잇는 "한글 역사 산책로"를 조성합니다. 현재 표지석만 있는 통인동 세종대왕 생가터에는 미뤄둔 기념관 건립 사업을 재개해야 합니다.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더라도 조선시대 주택 양식으로 상징적 생가 공간을 복원하거나 소규모 한글기념관을 설립하여, 세종 탄생지를 제대로 기리고 시민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기존 한글 시설 개선
광화문 인근의 세종이야기 상설전시관, 국립한글박물관(용산) 등과 연계하여 콘텐츠를 교류합니다. 세종로공원 한글글자마당에 AR(증강현실) 안내나 QR 코드를 도입하여 관람객이 각 글자의 의미와 제작과정을 즉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추모탑에는 조선어학회 사건과 한글 학자들의 희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를 설치합니다. 이러한 디지털 안내 시스템을 통해 현장 교육 효과를 높이고, 한글 유적지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2. 광화문광장의 역사적 가치 강화를 위한 접근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큰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공간이며, 특히 세종대왕 동상과 훈민정음 창제 기념 요소들로 인해 한글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따라서 광장 재구성 과정에서 한글 관련 역사적 가치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광화문 현판의 한글 표기 문제입니다. 현재 광화문 정문 현판은 한자로 되어 있어, 광화문광장을 한글문화 특구로 만들겠다는 취지와 모순됩니다. "온통 한글이 꽃핀 한글특구에서" 광장 뒤편 광화문의 '門化光'(문화광) 한자 현판을 본 외국인들은 종종 그 의미를 물어보는 실정입니다. 이는 관광객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과도 어울리지 않아 역사적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한글단체들은 오래전부터 광화문 현판의 한글 교체를 주장해왔습니다. 경복궁은 훈민정음이 탄생하고 반포된 곳이며, '광화문'이라는 이름 자체도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것인 만큼 현판을 한글로 교체하는 것이 세종의 뜻을 이어받는 길이라는 논리입니다. 더욱이 현재 걸린 한자 현판도 고증에 논란이 있는 디지털 복제품에 불과하여 원형 가치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으로 다음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1) 광화문 한글 현판 추진
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광화문 한글 현판 교체를 공식 의제로 공론화합니다.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하여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신과 문화가 반영된 현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체나 한글 서예 대가의 글씨 등 다양한 대안을 투명하게 논의하여 최적의 디자인을 선정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는 한글마루지 사업 성공의 핵심 과제이며, 이를 통해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국격과 정체성의 상징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2) 기존 상징물의 한글화와 안내 개선
광장 내 기존 역사 상징물들도 한글과 연계하여 재조명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의 비문이나 이름표에 한자가 있다면 한글 병기를 확대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전시된 앙부일구(해시계)의 시간 표시도 한글 설명판이나 12간지 그림 등을 추가하여 외국인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세부적인 부분까지 한글 중심으로 정비하면 광화문광장 전체가 조화로운 한글 역사 테마공원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3) 역사성을 강조한 공간 디자인
광장의 조경과 디자인 요소에 한글과 세종 시대의 이미지를 융합합니다. 광장 바닥 일부에 훈민정음 서문을 돌 문양으로 새기거나, 한글 자모 형태를 본뜬 조형 벤치를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 훼손된 박금준 작가의 '그대를 기다림' 한글조형물처럼 예술작품을 곳곳에 배치하되, 관리와 내구성을 강화하여 상설 한글 조형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 제안을 반영해 광장 한편에 대형 '한글 탑'과 같은 상징 구조물 설치도 검토할 만합니다. "한국의 에펠탑은 한글탑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처럼, 한글 자모를 활용한 웅장한 탑이나 기념비를 세우면 광화문광장의 랜드마크로서 시각적 임팩트와 상징성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3. 한글 및 세종대왕 업적의 지속 가능한 문화·교육 활용
한글마루지 사업의 취지를 살리고 광화문광장을 생동감 있는 교육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시설 구축을 넘어 지속적인 문화·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필수적입니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한글의 가치를 일회성 전시가 아닌,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공유되는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정책적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중 상설 문화 프로그램
광화문광장을 한글문화의 장(場)으로 활용하여, 계절별·주기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합니다. 매년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로 한글문화축제를 열어 훈민정음 반포 행렬 재현, 세종대왕 퀴즈대회, 한글 서예 퍼포먼스 등을 진행합니다. 또한 매주 주말마다 광장 한켠에서 어린이·청소년 대상 한글 놀이 마당을 운영합니다. 전문가 지도 아래 전통 방식의 붓글씨 쓰기, 한글 활자 찍기, 한글 교구를 활용한 놀이 등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즐기는 가운데 한글의 우수성을 체감하는 학습 기회가 될 것입니다.
2) 관광자원 및 한류 연계
광화문광장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과 한류 팬들을 위한 다국어 한글 체험 콘텐츠를 마련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이 광화문을 찾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이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광장에 "내 이름 한글로 써보기" 부스를 상설 운영해 방문객에게 이름을 한글로 써주고 훈민정음 서체로 디자인된 기념 카드를 제공한다면 큰 호응을 얻을 것입니다. 또한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는 한글 역사 투어를 운영하여, 정해진 시간에 광장 일대를 돌며 세종대왕 일화와 한글 창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시·체험 공간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가 될 것이며, 광화문광장을 서울의 대표 관광지로 부각시킬 것입니다. 또한 한글을 소재로 한 새로운 문화 콘텐츠(한글 캘리그래피 전시, 한글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전시 등)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한류 열풍과 연계한 세계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3) 교육 및 연구 활동 지원
한글과 세종대왕 업적을 학술적으로 조명하고 교육자원으로 활용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광화문광장에서 국제 한글 학술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훈민정음 연구자와 언어학자들의 연구 성과 공유를 지원합니다. 과거 서울시가 추진했던 세종학술대회나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시상식 국내 유치 등을 재검토하여, 광화문광장에서 시상식이나 학술행사를 개최하면 전 세계에 한글의 가치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서울시와 한글단체가 협력하여 학생 현장학습 코스를 개발합니다. 초중등 학생들이 광화문 일대를 견학하며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훈민정음 서문을 낭독하거나, 한글글자마당에서 자음·모음의 원리를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정례화하면 생생한 역사 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과 과학적 창의성을 후대에 지속적으로 전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4. 결론
광화문광장 조성 및 한글마루지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한글 단체들의 정당한 우려를 존중하면서, 이를 창의적 정책 대안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글 역사 유적지들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서로 연계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살리고, 광화문광장의 디자인과 상징물은 한글과 세종대왕의 정신이 깃들도록 재구성해야 합니다.
나아가 한글 관련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여 광화문광장이 단순한 광장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한글문화 랜드마크로 기능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종합적 정책 접근은 광화문 일대를 세계 유일의 한글 역사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적 품격을 한층 높이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숭고한 뜻이 깃든 공간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때, 비로소 광화문광장은 이름에 걸맞게 빛이 온 누리에 미치는 진정한 국민광장으로 거듭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