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정평 상임위원 5 명을 포함 경북에서 80 명이 넘게 다녀왔습니다.
맨몸의 집회 참가자 1만여 명이 중무장한 경찰 병력 2만 명의 포위망을 뚫고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하기란 역부족이었습니다.
십리 밖에서 대절 버스에서 내려 농로를 따라 길고 긴 행렬이 꾸역꾸역 모여들었지만 미군부대 외곽 마을 본정리 어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한참 가면 대두리 또 거기서 한참 걸어야 대추리인데 우리는 멀찌감치 한데 모여 그야말로 비폭력 무저항의 반전평화 운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제 경찰 저지선을 피해 농로를 따라 미군 부대쪽으로 걸어가던 참가자들의 여러 갈래의 긴 행렬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안동 영주 예천에서 함께 간 40여 명의 동지들은 가고 오는 버스 안에서 미군기지 대추리 확장 이전과 한미 FTA, 지역 선거 등에 대한 교선, 참가자들의 결의와 소감 말하기, 다함께 노래 부르기를 하면서 알찬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모두 힘을 얻고 6월 집회에도 함께 가기로 결의했습니다.
참가하신 분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김창환
아래에 안동에서 평화 통일 일하시다 상주로 이사한 조영옥 선생이 쓰신 후기를 퍼왔습니다.
5월 14일 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범 국민적 집회를 가졌 다. 급박한 상황만큼 우리들의 마음도 다급해졌고 그래도 경북지부 통일위원회에서 대회참가 를 조직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버스를 두대 대절을 하여 한대는 안동쪽에서 그리고 한대는 구미쪽에서 조합원들을 태우 고 우리는 평택으로 향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잠도 설치면서 우리는 버스에 탔다.
처음의 계획은 대추리에 모여 집회를 하는 것이었으나 원천 봉쇄가 되고 엄청난 경찰이 투 입되어 있어 우리는 평택 시청앞에 집회신고를 해놨다고 들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본정리 농협 앞에서 집회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불투명한 것이 곳곳에 경찰이 막 고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버스가 어디서 막히느냐는 것에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들이 타고 가던 버스도 본정리에 가지 전, 경찰에 저지 되었다. 어딘지도 모르게 우리들은 내렸고 길을 따라 가는데 전투경찰이 우리들 옆에서 함께 보조 를 맞추었다. 그들이 길을 막으니 우리는 보도에서 차도로 밀려났고 곧 우리는 길 건너 마 을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 그들도 즉각 움직이며 우리들의 길을 막았다. 그런 과정에서 김현주선생이 경찰의 방패에 부딪쳐 넘어졌고 앞니가 부러졌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우리는 다시 언덕으로 오르는 시도를 했다. 재바르게 먼저 흩어져 언덕을 오른 사람들은 논 길을 걸어 들어갈 준비를 했는데 꼼짝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경찰에 포위된 선생님들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일단은 본정리에서 결합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빠져나온 사람들은 논둑을 걸어 걷기 시작했고 갇힌 사람들은 전경들의 포위 속에 버스 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곧 풀리는 즉시 논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다. 논길을 따라 걷다가 뭐가 보일라치면 산길을 접어들다가 마을이 보여 한 선생님이 혼자 먼 저 가서 본정리 쪽을 물어 보고는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본정리까지 가려면 4kM정 도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나 이쪽 마을들의 분위기는 대추 리나 도두리와는 다른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보이는 현수막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했다.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논 건너 저쪽 편에 많은 깃발과 사람들, 그런가하면 깃발 보다 더 많 은 전경차가 줄지어 있었다. 그곳이 본정리 쪽인 것 같았다. 우리는 이쪽 편에서 논 길을 따라 가장 앞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이쪽 저쪽 논길을 따라 걸어들어오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열에 합류를 하니 전교조 깃발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이 모여드니 전경들도 까맣게 모여들어 본정리 농협 가는 길을 겹겹이 막았 다. 우리들의 대열만큼 그들도 대열을 지어 막고 있으니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오랫만에 보는 여러 대학들의 깃발, 그리고 대경총련 , 부경총련, 남총련... 참 오랫만에 보 는 깃발들이었고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전교조도 여러 지역에서 왔지만 경북지부의 참석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특히 통일위원회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피켓을 들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던 우리 젊은 피 들, 싱그러운 교사들이 우리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여러 대학생들 앞에서 경북지부 노래패는 노래와 몸짓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각 부분 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속에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본정농협앞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지경에서 길을 트려던 우리 쪽 사람이 경찰에게 폭행 을 당해 119 구급대 차가 한대 나가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하늘에서는 경찰 헬기가 폭음을 날리며 연신 왔다갔다하더니 삐라를 뿌려댔다. 불법집회에 대한 경고, 시설 보호문제를 말하는데..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황당했다. 참! 피 작업을 하면 우리가 해야지 왜 쟤네들이 하는데....그러면서 웃었다.
시간이 자꾸 흘러가자 범대위 쪽에서는 그자리에서 대회를 하고 돌아가자는 계획을 세웠 고 1시 반이 넘어서 대회를 가졌다. 마이크 조차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의 연설이 진행되었으니 멀리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이 대회는 끝났다. 대회를 방해하는듯 헬기는 낮게 비행하면서 소리를 드높혔다
4시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돌아나왔다. 모여든 것처럼 다시 논길을 걸어 나갔다. 정말 평화적인 모임을 가졌는데..우리는 시위를하지도 않았고 서로 확인만 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처음 온 사람들은 평택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했고 들어가는 것이 막힌 것처럼 대추리 사람 들은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땅이 누구땅인지 우리는 물어야했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이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속으로 묻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우리들의 일정이 끝나니 경찰의 일정도 끝나는지 그들도 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명령 속에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젊은 경찰들, 우리를 막고 평택을 에워싼 그들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이 막고있는 우리들의 길은 멀다. 그러나 우리는 대추리 너른 들에 여전히 볍씨를 뿌려야하고 철조망을 걷어내야 하고 기지 확장을 막아야하고 이 땅이 미국 침략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하고 결국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야하는 첫걸음을 확인하였다.
 <이쪽편에서 걸어가는 우리들, 저쪽 편에 줄지어선 경찰버스들 대치가 극명하다> |
첫댓글 좋은글 올려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김창환 바오로, 배용한 이시도르, 김헌택 제준이냐시오, 피재현 프란치스코, 김영애 클라우디아님... 모두들 잘 다녀 오셨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평화를 위한 여러분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