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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짜리 '소주폭탄'과 강금실·김태희의 관계 [장원준의 빨간펜]
장원준 사회부 기자·‘갈아만든 이슈’ PD
입력 : 2005.05.30 17:09 45' / 수정 : 2005.05.30 19:19 40'
맥주 1인자 하이트가 소주 1인자 진로 합병에 나선 게 그겁니다. 인수 가격이 3조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두 회사 매출액을 합해도 얼추 3조원 언저리가 됩니다. 거대한 맥주에 거대한 소주를 풍덩 담그는 이 합병이, 과연 한국 술 시장에 어떤 파도를 몰고 올 지에 대해 지금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술 시장에 그야말로 전운이 감돌고 있는데요, 주인공들이 일단 거물급입니다. 영화로 치면 장동건, 송강호, 이미연, 이영애, 전지현급이 나오는 셈이죠.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회사들 면면만 봐도, 롯데, 씨제이, 두산, 동원, 대상, 대한전선, 제이피모건, 등등 초호화진용이죠. 국내외 40여개 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관측입니다. 특히 주인공들이 거물입니다. 우선 하이트!! 이번에 진로 인수의 우선협상자인데요, 현재 한국 맥주업계의 절대 강자입니다. 작년 매출액이 2조원에 가깝고, 시장 점유율도 무려 58% 정도입니다. 나이드신 주당들은 아마도 전통의 맥주 OB와 크라운의 역전극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실 OB야 말로 한국 맥주의 대명사였죠. 한때 시장 점유율이 70%를 웃돌았으니까요. 제가 86학번입니만, 사실 1980년대, 아니 1990년대 초반까지만 누가 크라운 맥주 먹었습니까? 크라운 만들던 조선맥주가 당대 최고 가수 조용필씨를 투입해 ‘너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너가 있다’(어법에는 좀 안 맞죠?) 암튼 이런 노래로 CF까지 만들었지만, OB한테는 못당했어요. 솔직히 냄새난다, 이러면서 크라운 맥주는 찬밥 신세였고, 다들 “OB, OB”였죠. 그런데 150미터 천연암반수, 그 기억하시죠 암석 사이로 물이 차오르는 그 광고, 그 광고와 함께 1993년 혜성처럼 등장한 조선맥주의 ‘하이트’에게 일격을 당한 겁니다. OB가 어어 하는 사이에 역전이 됐고, 1996년부터 하이트는 부동의 1등 맥주가 됐습니다. 크라운은 아예 조선맥주라는 모기업 이름까지 버리고, 하이트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죠. 이 역전극은, 정말 대한민국 마케팅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로 기록됩니다. 한마디로 ‘하이트 대첩’입니다. 축구로 치면, 1976년인가요 77년인가요 박대통령컵 축구대회에서 차범근 선수가 종료 7분 남기고 3골 넣어서 말레이시아와 4대4로 비겼던 경기만큼이나 유명합니다. 이외에 마케팅사에 길이 남을 역전극으로는 ‘미원’을 따라잡았던 ‘다시다’가 있을테고, ‘삼양라면’을 2등으로 밀어내버린 ‘농심라면’이 있지요. 현재 진행형 사안으로는 기능성 음료 시장의 지존 자리를 40년 지켜온 동아제약 ‘박카스’가 요사이 광동제약의 ‘비타 500’에게 밀리고 있는데, 정말 역전을 허용한다면, 또 하나의 역사적 사례가 되겠죠. 각설하고, 주류업계에서는 그 즈음의 ‘페놀 사건’도 하이트 역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분석합니다. OB맥주 생산업체인 두산의 계열사,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을 버리다 적발된 것으로 흔히 기억되는 1991년의 페놀 파동 기억하십니까? ‘OB맥주를 만드는 기업이 물을 더럽혀?’라는 이미지가 하이트의 ‘깨끗한 물’ 컨셉트와 중첩되면서 역전극이 일어났다는 거죠. 하지만 페놀 사건은 결국 두산이나 OB 입장에서는 억울합니다. 법원 판결로 페놀 사건은 고의로 오수를 버린 게 아니라, 사고였다고 결론이 났거든요. 결국 OB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1996년 이후 2등 브랜드가 됐고, 이후에 두산에서 떨어져나와 외국계인 인터브루, 요사이는 인베브입니다만, 인터브루로 주인이 바뀌면서 계속 절치부심, 와신상담만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카스와 OB 두 브랜드로 하이트를 공격 중이지만, 둘 합쳐도 점유율이 50%에 못미칩니다. 야구팬들은 아시겠지만,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꾼 것도, OB 맥주와 두산이 사실상 분리됐기 때문이죠. 또 하나의 주인공은 진로!! 진로입니다. 진로는 정말 소주 업계의 절대 강자입니다. 국내 소주 시장 규모가 2조6000억원쯤 되는데, 진로의 점유율이 56%쯤 됩니다. 절반을 넘죠. 특히 수도권 점유율은 90%가 넘습니다. 진로의 히트상품 참이슬은 1998년 출시 이후 70억병 이상 팔렸습니다. 진로가 어려워지자,(지금 법정관리 중이죠) 영업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는데도, 매출액이나 시장 점유율은 계속 늘었습니다. 일종의 주당들 의리 때문입니다. 국민 소주 진로가 망한다는데, 더 마셔주자 뭐 이런 거죠. 인기 배우 손예진을 동원해 두산이 ‘소주이동성제도’라는 이름의 대대적인 광고전에 나섰지만, 별 무소득이었습니다. 진로도 김태희라는 특급 탤런트로 반격했지만, 아무리 손예진 좋아하는 주당도 의리는 버리지 않았거든요. 여기서 잠깐 또 샛길로 빠지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로도 유명하지만, 술 문화가 독특한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진로 마셔주는 주당들 의리처럼 말이죠. 우선 위스키도 한국처럼 토종 브랜드가 많이 팔리는 나라가 없어요. 임페리얼이나 윈저가 대표적인데, 외국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한국이 엄청나게 위스키 먹어대는 나라인데, 자기네들에게 유명한 밸런타인이니 조니워커, 씨바스리걸, 로열살루트 등등은 선물용으로 주로 오가고 술집에서는 듣도 못한 윈저니 임페리얼을 마셔대니 말이죠. 그래서 기억하시겠습니다만, 밸런타인 만드는 얼라이드 도맥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밸런타인 마스터스라는 술을 사실상 한국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얼라이드 도맥의 블렌드 마스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론칭 행사도 한국룸살롱 마담들까지 초청하면서 한국 중심으로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거든요. 술 섞어 마시는 것도 유별나죠.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폭탄주는 정계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는 명대변인 출신 박희태 현 국회부의장이 1980년대 초반 춘천지검장 시절, 군인들과 폭탄주를 마시다가 민간에게 전파시켰다는 게 업계의 정설로 돼있습니다. 요사이는 ‘소’주와 ‘백’세주와 ‘산’사춘과 ‘맥’주를 섞어서 마신다는 소백산맥도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했다는 백세주와 소주를 섞은 오십세주가 이미 유명하죠. 제조사들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도 이용하기도 합니다. 두산은 자사제품인 설중매와 산 소주를 섞은 설산주, 진로는 역시 자사제품인 천국과 참이슬을 섞은 천국의 눈물, 등등을 은근히 시장에 유행시키려고 입소문을 냈죠. 위스키 임페리얼과 음료 자황도 그런 사례인데요, 두 제품 제조사의 최고위층들이 술을 마시다가, “다 황제와 관련된 이름이니 둘을 혼합한 술을 황제주라고 해서 마케팅해보자” 이렇게 즉석 합의해서 은근히 마케팅했었다는데 시장에서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지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런 초대형 거물급인 하이트와 진로가 합병하게 되면, 업계 영향력이 너무 강해진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합병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요지는 이런 겁니다. 소주와 맥주를 대체재로 볼 수 있느냐? 그러니까 소주값이 오르면 주당들의 맥주를 대체 상품으로 여겨서 맥주 소비량을 늘리느냐? 그게 관건인데요, 만약 대체재로 볼 수 있다면 결국 ‘같은 시장’이라는 얘기고, 하이트와 진로가 합치면 시장 영향력이 과도하게 큰 ‘독과점 공룡’이 탄생하는 거니 공정거래법상 이 합병은 곤란하다, 뭐 이런 식의 스토리로 흘러가는 겁니다. 또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주류 유통망을 장악할 수 있느냐 여부도 공정위 결정의 주요 관건입니다. 유통망이 너무 과도하게 장악되면, 그것도 불공정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 논쟁에도 스타가 등장합니다. 유력한 대권 후보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이 하이트 진영에 섰습니다. 물론 ‘합병해도 별 문제 없다’는 쪽이죠. 법무법인 바른법률과 태평양은 하이트와 대립각을 세운 OB맥주, 지방소주업체의 연합군을 돕고 있습니다. 당연히 ‘합병이 곤란하다’는 쪽입니다. 어쨌든, 하이트 진로 인수는 이제 법률가와 공무원과 업체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저희들은 굿이나 보면서 술이나 한잔 하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를 보면 여러가지 병에 시달리면서도 소주를 즐겨 드신 것으로 나옵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 쳐놓고 나쁜 사람 없다고, 주당들은 믿고 있죠. 하지만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든가, ‘전쟁·흉년·전염병, 이 세가지를 합쳐도 술의 해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경구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랬다죠? ‘잘못은 음주가 아니라 과음’이다. 과음하지 마십시오. 이상 이슈 빨간펜이었습니다. (앞의 글은 조선일보 동영상 ‘갈아만든 이슈’에서 새로 시작한 ‘이슈 빨간펜’ 코너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코너의 취지는 그 즈음의 각종 이슈를 편하게 설명해드려서, 시청자여러분께서 친구들 만나 술자리 하실 때 안주거리로 삼을 정도의 대화 소재를 제공해드린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주제도 술로 잡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