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과 페미니즘의 결혼
우리 백화점들이 '바겐세일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겐세일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수요 창출의 측면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1년에 4차례, 연간 60일을 한 해 동안 실시하게 돼 있는 바겐세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백화점은 하나도 없다. 모든 백화점들이 정기 세일 이후에는 특집전, 기획전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의 바겐세일을 1년 내내 실시하고 있다. 서울 시내 백화점들의 전체 매출액 중 바겐세일 매출액이 50 ~60%에 이르는 것도 그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터무니없이 비싼 외제 고가품을 팔아야겠는데, 뭔가 그럴듯한 포장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문화 교류'를 빙자한다. 롯데백화점의 '창립 15주년 기념 프랑스대전'이나 신세계백화점의 '창립 32주년 기념 영국명품대전'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것들은 해당국 대사관의 후원까지 얻은 문화 교류 행사로 소개되었지만, 사실은 수입품 특별 판촉전이었다. 7백만 원짜리 자전거에 4백만 원짜리 만찬용 그릇 세트를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해놓고 그걸 문화 교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말이 갑자기 바뀌는 것 같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무슨 시비를 걸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백화점이 무슨 방법을 동원했던 간에 여성 고객을 끔찍이 생각하고 아낀다는 것이다. 그거야 다 상품 팔아먹자고 그런 것 아니냐고 빈정댈 일이 아니다.
과거 그 어떤 상인이 여성 고객을 위해 문화 강좌를 개최한 적이 있는가? 과거 그 어떤 상인이 아이 키우는 어미의 마음을 그토록 헤아려 매장에 어린이 놀이방을 설치한 적이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주부바둑대회니 어머니 모창경연대회니 하는 여성 위주의 행사가 상시적으로 열리는 곳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디에서 장 담그는 법을 설명해 주는 '메주 바자회'를 구경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미시족'이라는 새로운 족속을 탄생시켜 여성의 '젊게 보일 권리'의 향상에 기여한 건 누구였던가? 가정에서 사회에서 늘 서비스를 베푸는 데에만 익숙해 있는 여성들에게 간이라도 빼줄 듯이 지극한 서비스를 베풀어주는 곳을 어디에 가서 찾을 수 있겠는가? 물론 백화점이 사기에 능한 건 사실이다. 진짜 사기 말이다. 사기 세일 단속에 걸려들지 않는 백화점이 거의 없다. 냉장 식품 가공일 변조를 저지르지 않은 백화점도 드물다. 방부제와 숙성제 등 유해물질이 다량 함유된 수입 농산물을 국산인 것처럼 위장 판매한 백화점들도 많다. 외제 상품을 파는 데에 혈안이 돼 있으면서도 향토 물산전을 수시로 개최하는 것도 사기라면 사기다. 백화점의 환경보호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의 지극한 여성 사랑이 매도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백화점 이외에 여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여성은 백화점의 사기에 놀아나고 있는 바보가 아니다. 백화점은 늘 여성을 노리고 있지만 그 노림수는 여성의 갈증과 욕구를 꿰뚫어보고 있다.
그래서 백화점이 아주 좋은 곳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일부러 일하려는 사람들이 백화점으로부터 배울 것이라는 걸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비장한 각오와 심각한 얼굴만으론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성 운동가와 보통 여성의 텍스트 독법은 크게 다르다. 미국의 여성 운동가들은 마돈나에 대해 길길이 날뛰었지만 보통 여성은 마돈나로부터 여성 해방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발견했다. 백화점은 텍스트인 동시에 살아 있는 세계다. 백화점에서 '쇼핑의 기쁨과 낭만'을 찾는 여성이 있다면, 그건 그녀가 처한 세계에서 그녀가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삶의 의미요 보람일 수 있다.
백화점은 말할 것도 없고 담배회사와 맥주회사들도 페미니즘을 팔아먹는 세상이다. 그걸 나쁘다고 꾸짖지 말자. 내 가족과 이야기가 통하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에게 은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건 배신도 배반도 아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게 된 내 가정을 먼저 탓할 일이다.
우리는 백화점에서 자본의 음모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기본이다. 백화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그것도 찾아내야 한다. 자본은 음모를 갖고 있는데, 자본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음모는커녕 계산도 없다. 모든 걸 투명하게 내걸고 덤벼든다. 누가 이기겠는가? 결과는 뻔하게 되어 있다.
페미니즘은 우리 나라에서 앞으로 당분간 성장 산업이다. 페미니즘은 모든 소비 자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비 자본은 페미니즘을 돈과 시간과 명분의 3요소가 결합된 최상의 마케팅 이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는 현실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 운동은 앞으로 어렵다. 그건 명망가 위주의 운동으로 전락하기가 십상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남성에게는 시간과 정열이 없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철저하게 한국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여성의 가려운 부위와 한국 여성의 가려운 부위가 다르다. 엉뚱한 곳을 자꾸 긁어봐야 소용이 없다. 백화점은 한국 여성의 가려운 곳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여성을 외면한 남성 위주의 사회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회 운동이 여성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건 인류의 파국을 향해 치달을 망정 문명사적 흐름으로 대두된 소비주의적 가치를 적어도 전술적으로나마 무조건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나'와 '아이'와 '가정'을 운동의 품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무의미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미리 말하기 전에, 운동은 꼭 성공하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법이라는 자기 기만을 먼저 내던질 필요가 있다.
(리뷰, 1995년 1월호,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