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異次頓)의 성씨는 박(朴)씨
국립경주박물관 본관 2층 전시실에 여섯 모나게 다듬은 돌 한 면에 그림이 새겨진 특이한
비석이 있으니 「이차돈 순교비」이다.
이 비는 이차돈이 순교한 지 290년이 지난 신라 41대 헌덕왕 9년(불기 1361,
서기817년)에 서라벌의 북쪽 (소)금강산 백률사에 세웠던 것이다.
그가 목숨 바쳐 신라 나라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라
누구나 다 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필자도 한 사람인데 '이차돈(異次頓)'이란 순교자(殉敎者)는
성이 이(異)이고 이름이 차돈(次頓)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비석의 그림을 보고 그리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깊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나로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었으니 감히 지면에 싣는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후손들을 위하여 자상하고도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으니
'원종(原宗)이 불교를 진흥시키고, 염촉(厭燭)이 몸을 희생하다'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차돈의 성(姓)은 박(朴)이요,
자(字)는 염촉(厭燭)이다.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이처(異處)라고도 하니 우리 말로 발음이 다를 뿐이요, 한문으로 번역하면 염(厭)으로
'싫다'는 뜻말이다. 촉(燭)은 돈(頓), 도(道), 도(覩), 독(獨) 등 다 글 쓰는 이의 편의에 따랐으니, 이는 뜻이 없는
어조사이다.
여기서 위의 글자만 한문 글자 염(厭)으로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으므로 염촉, 또는 염도 등으로 불렀다고
되어있다. 이에 필자의 소견을 피력해 본다. 이차(異次), 이처(異處)에서 '아'또는 '어'는 옛 글자 아래 '·'와 같은 소리일
것이다.
한문 염(厭)은 오늘날 '싫다'이니 끝의 '다'는 도, 돈, 촉(옛말은 톡, 독이다)으로도 표기했다. '싫다'의 'ㅅ'과
'차, 처'의 'ㅊ'은 잇소리이니 고어 '쭠'으로 보아진다. 입을 다물었다가 잇소리를 내면서 벌리면 이차, 이처로 발음된다.
그래서
이차돈을 한문으로 쓰면 '이차'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싫다'라는 뜻말인 염(厭)이란 한자와, 소리를 빌어 적은 도, 독과 비슷한 발음이 나는
촉(燭)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당시에 한글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여기서 한번 더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고충을 헤아려 창제하신
한글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차돈은 이처돈, 이차도, 이처도 등으로 불렀으니 성(姓)은 왕손인 박(朴)씨 였고, 한문으로
기록하자면 염촉(厭燭), 염도(厭道), 염도(厭覩), 염독(厭獨)으로 하였다.
이차돈이 순교한 사실은 『삼국사기』에 자세히 적혀있고, 또 『삼국유사』에는
지은이의 의견까지 곁들여 더 상세하게 적어 놓았는데, 연대는 1년이 차이 나고(사기-법흥왕 15년, 유사-법흥왕 14년), 그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거기다가 『삼국사기』는 김대문의 글에서 인용했다고 적었고,
삼국유사는 남간사 중 일념이 지은 촉향분예불결사문(염촉의 무덤에 불공하는 단체를
모은 취지문)에서 뽑아 쓰면서 『향전』도 인용하였다.
『삼국유사』 글 가운데 비석의 그림과 일치하는 부분을 골라 보면, 염촉이 왕의
명령이라고 하고 공사를 일으켜 절을 창건한다는 뜻을 전했더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말렸다.
왕이 노하여 염촉을 크게 꾸짖고 거짓
왕명(王命)을 전하였다 하여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죽음 앞에 선 이차돈이 발원 맹세를 하여 말하기를 "큰 성인이신 법왕님이 불교를
진흥시키고자 하시므로 저는 목숨을 돌보지 않겠사오니 한없이 오랜 세월 인연을 맺으시어 하늘은 상서로운 징조를 내려 두루 인간들에게 뵈어주소서."
하고 목을 쑥 내밀어 칼을 받았다.
옥 사정이 칼을 내리치자 그의 머리는 날아서 북쪽 금강산에 떨어졌고, 목에서는 젖빛 피가 솟아
나왔다.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해는 빛을 잃고, 땅은 진동하면서 빗방울이 꽃 모양이 되어 떨어졌다. 이 순간의 광경을 돌에 그림으로 새긴
것이 이차돈 순교비다.
관을 쓴 채로 떨어진 머리는 땅바닥에, 만족한 기분인 채 우러나는 즐거움이 담긴 모습으로 뉘어있다.
허리는 앞으로 숙이고, 가슴은 당당히 펴고, 두 손은 소매 속에 집어넣고,
엉덩이를 뒤로 쑥 빼어 꾸부정한 자세로 죽음, 어쩌면 새로운 영생의 길에 접어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 발은 모아서 손과 함께 최상의 공손한
몸가짐이다.
목에서는 젖빛 피가 한 길이나 솟아오르는 광경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 발 밑에는 땅이 흔들리는 모습을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표현했다. 하늘에는 비가 쏟아지다가 꽃으로 변해 하염없이 일렁이며 떨어지는 광경이다.
이 비석의 글씨는 마멸이
심하여 읽을 수 없지만 새겨진 그림만으로도 숭고한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위대한 왕이 있었기에 훌륭한 신하가 있었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본보기가 있었기에 신라는 뛰어났다.
끝으로 일연이 지은 시를
싣는다.
갸륵한 그의 지혜 만만년
계획이매,
구구한 여론들도 터럭 같은 비방일 뿐,
금륜을 몰아내고 법륜이 돌아가니
태평세월에 부처님 광명 빛나도다.
- 원종(법흥왕)을 위하여
대의 위한 희생만도 놀라운 일이거든
하늘 꽃과 흰 젖 기적 더욱 미쁘오이다.
칼날이
한번 번쩍 그 몸이 죽으시매
절마다 쇠북소리 새벌을 진동하네.
- 염촉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