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딱 한 번….
石溪 尹幸遠
내 평생에 딱 한 번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사기사건이 너무나 많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기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남에게 사기를 쳐서 먹고 살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약 26년 전 일이다.
주위의 일이고 창피한 일이기에 글로 남기지 않으려고 침묵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어떤 줄거리를 정리할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해서 오늘 펜을 든 것이다.
몇 십년동안 내왕도 없든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친구가 대구에서 찾아왔다.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지만 그리 친한 친구도 아니었다.
고향 사람이라 반가운 마음에 나름대로 성의껏 대접을 했다.
그 후로 얼마간 자주 왔다 갔다 하던 끝에 하루는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커틴과 타올을 납품하는 사업을 하는데
주문은 받았지만 재료를 살 돈이 없어 납품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조그만 사업을 하는 처지라 이해가 되었다. 친구의 사정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요구한대로 일천만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때의 그 돈은 지금과 비교하면 나름대로 제법 큰 돈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대구에서 온 친구가 커피 한잔도 먹지를 않고 바쁘다면서 금방 가 버렸다.
가고 난 뒤에 조금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엔 어려운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무심히 넘겼다.
가져갈 때 은행이자는 매달 주겠다고 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지라 내가 대구로 내려갔다.
집에 가 보니 친구는 없었다.
우선 등기소에 가서 등기를 때어봤더니 온통 빚 투성이였다.
새로 지었다는 4층 빌딩을 팔아도 한참 모자라는 계산이 나왔다.
집에 와서 일층에 세든 상점 주인을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한 결론은 자기도 전세금(5천만원) 받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층에 있는 셋집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즉각적으로 모든 사태를 파악했다.
친구한테 전화를 하니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지금 사업차 제주도에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내 돈으로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는 도피자금으로 사용한 것 같았다.
5만원 정도의 한달치의 은행 이자도 보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예 갚을 생각도 없었고 원금을 갚을 능력도 없는 것 같았다.
가끔 그를 찾아도 피하기만 하지 미안하다는 말도, 어느 날 갚겠다는 말도 없이 약 2년이 지났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고향 친구의 돈을 떼먹은 꼴이라 두고두고 그가 불명예스러울 것 같아서
그럼 빌려준 돈 일천만원은 포기할 테니 이백만원을 고향 합천신문사에 찬조금 형식으로 그것도 자기 이름으로
하면 모두 받은 걸로 하고 깨끗하게 완전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때 고향 합천신문사 에서는 불우 이웃돕기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유지들로 부터 찬조금을 접수 하고 있을 때였다.
나도 거의 해마다 조금씩 도네이션(성금)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후 어느 날, 대구 여러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한 후에 가까운 고향 친구 'ㅇ도' 와 그리고 그와 함께 셋이 걸어오면서
'ㅇ도' 에게 매달 일십만 원씩 20개월 합쳐 이백 만원을 주면 모두 갚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단돈 일십 만원도 갚은 적이 없어 그것도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옛날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고향에서 온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국가 공무원을 하다가 신병(身病)으로 사직을 하고 거기다 상처(喪妻)를 하고 어렵게 사는 고향친구(ㅇ도)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고향신문 독자 투고란에다 대문짝 만하게(...) 글을 올린 것이다.
(前文 생략)
나는 몇 년 전 대구 가톨릭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수술실에서 죽느냐 사느냐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을 무렵 석계 친구는 평택에서 대구까지 불원천리하고 문병을 와 주었다. 문병을 왔으면 됐지 그것도 부족한지 거액의 병원비 까지 놓고 갔다. 작년 연말 연시에도 시외 전화로 “너 절대 오해하면 안 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하더니 상식을 뛰어 넘는 거금을 내 통장에 입금시켜 놓은 것이다. 또 한 번은 생활용품을 마대에다 가득 채워서는 어깨에 메고 왔는데 “홀아비 살림 살라카면 필요할 것 같아서...” 하며 내려 놓는 것이다. 이런 예가 하도 여러 번이라 일일이 언급하기도 불가하다. 이 친구는 평택서 대구까지 왔으면 대구 친구들로부터 접대를 받고 가야 당연지사일 텐데 도리어 대구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는 자기가 한턱을 내고 간다.
-중얼중얼 후략-
김용도/ 합천신문 독자 투고(2010년 4월 22일)
그럭저럭 2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전화 번호도 바꾸고 피하기만 하는 그 친구의 세월이었다.
이런저런 소식을 들으니 그동안 꽤나 고생을 한 것 같았다. 고향 초등학교 종동창회에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순순히 받아 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받을 가망이 없는 돈이라면 그대로 두는 것 보다 그 친구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 대차(貸借)관계를
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리 그 돈을 그 친구에게 기부(donation) 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도 후련하고
나도 후련할 것 같았다. 그동안 잠재돼 있던 둘 사이에 있던 '응어리' 가 풀릴 것 같았다.
나는 그 친구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김XX' 가 이번 고향에서 가지는 총동창회에 참석을 하면 내가 받아야 할 돈은 모두 포기를 하고
그 대신 용돈으로 일백만원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 소식을 들었는지 몇 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나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이미 故人이 된 'ㅇ도' 친구에게 주라고 했던 돈.
단 일십만원이라도 주었다면 백만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주겠지만
그렇지는 못해서 미리 준비 한 백만원 봉투에서 오십 만원을 빼고 그날 동창회에 참석한 그에게
"가는 차비에 보태라." 하면서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그 일은 깔끔히 잊어버리기로 했다.
2023년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