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FE
우리들의 이야기
수정삭제앱으로보기
자료2007
작성자창훈|작성시간25.09.14|조회수38목록댓글 0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CAFE
우리들의 이야기
삭제앱으로보기
신들의 수학
작성자창훈|작성시간11.08.03|조회수20
목록댓글 0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천국을 뒤흔들어 놓을 사건의 진실
신자들이 바라는 천국은 빛나고 거룩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사들의 우두머리가 악으로 변신을 했다고 한다.
악이 없는 곳에 악이 발생한다는 것은 천지가 진동하고 남을 일이다.
그러나 천사는 변신하고 여자와 아담이 그의 유혹에 빠져서 먹지 말라던 열매를 먹은 죄로 벌을 받는다는 것인데, 인간들은 죄를 벗어나기 급급하여 전후를 살피지 못하였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천사의 변신은 천국을 뒤흔들어 놓을 일’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중대한 일이 벌어졌는데 하나님도 모르고 비상벨도 조용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모두들 천사가 변신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지 비상이 걸려 발각된다는 것에는 무심했다.
신자들은 ‘먹지 말았어야 지요’라는 말만 되 뇌이므로 신학교수를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만나주지를 않으며 목사후보생들과의 만남도 차단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결국 하나님도 변신한 천사와 싸운다는 것인데, 변신할 시점에는 뭐하시다가 이제 와서 뒷북을 크게 울리실까? 싸우려면 유혹을 하기 전에 제압을 하였어야 맞다는 것이다.
악마가 하나님의 권능 앞에 대항할 수 없다는 말을 타락하기 전에 적용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생각하면서 성경을 기록했는지 또 설교하면서 생각은 해보았는지가 궁금하다.
하나님은 왜 천사의 변신을 즉시 제압하지 않으셨을까?
인간이 타락해야만 사랑과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일까?
성경은 하나님을 나쁜 신으로 그려내고 있으므로 저는 성경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왜 성경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구원과 예수님의 대속을 부정하는 사단의 일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의 변신을 즉시 제압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된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이 동의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뜻은 깊고 오묘하여 인간의 두뇌로는 헤아리기 어렵다구요?
쉽게 질문한다면, 어차피 제거할 악마라면 왜 인간과 접촉하도록 놔두었다가 일이 벌어진 후에 제거하느냐는 것이지요
2007. 2. 10
종교병원 -창훈- 심규성
혹자들이 타락의 필연성을 들어 성경과 하나님을 변호하려면 사단과 유다. 지옥은 없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종교병원을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인간의 시작과 종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
(아담은 5-6세에 해당하는 자유의지를 부여받음)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생각은 변하게 되고, 이에대한 대안은 [신들의 수학]에 있습니다.
우선 아담에게 부여되었다는 자유의지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뒤집어진 이해를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신자들은 오늘의 자신을 기준으로 자유의지를 생각하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의(창2:17, 3:5) 내용이다. 시간적으로도 순서는 바뀔 수 없으므로 이러한 순수의지가 이끌어내는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와 비슷한 정신연령으로 나타는데 이는 그들이 벌거벗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워 아니 하였다고(창2:25) 기록하고 있으므로 타락이전의 자유의지를 5-6세에 준함이 무리하지 않다고 본다. 혹자들이 5-6세 이상이라고 항변한다면 7세의 유치원생들도 속옷을 입으려고 한다는 것을 확인해보라고 권하렵니다.
이제 아담의 정신연령이 정해졌으므로 의지에 대한 신자들의 뒤집어진 오해는 목회자들의 부분적인 논리에 의한 설교가 문제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신자들의 비판부족이 문제이다. 그러나 신학교수들은 자유의지에 관한 대답을 회피하는 길을 택하면서 원죄로 반론하여 현실적인 인간을 설득하려 한다.
이처럼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둔한 5-6세의 아담과 여자의 곁에 위험한 열매를 놔둔다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유혹의 소리가 접근하도록 허용한 부분을 어찌 받아들여야 되겠는가? 이 상황은 두 가지로 설명되는데 1) 허용한 경우라면 어린아이를 상대로 죽음의 게임을 하는 신이라는 오명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마음에서 기록한 것이지 실제 하나님은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2)돌발상황이라면 늑대의 침입을 예지하여 방어하지 못한 목자의 책임이지 늑대를 보고 도망치지 못한 양의 잘못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목자는 자기의 책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목자가 양에게 벌을 내렸다고 했으니 이는 목자의 의도와는 다른 기록이다.
이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나쁘게 기록하였고 이에 대한 대안은 일전에 제시한 신들의 수학. 해설. 종교의 합리성으로 삼겠습니다.
2007. 2. 7
종교병원 -창훈- 심규성
인터넷에서 종교병원을 검색하시면 자료가 나옵니다.
신들의 수학
1 이타신(利他神)
2 이기신(利己神)
1나누면 커지는 게 생명의 기쁨이라는
취지에서 나누어줄 자녀를 탄생시킴.
2나누면 적어진다고 여기므로 무심.
1자녀로부터 고마움이 들려옴.
2상대적인 고독이 생겨남.
1이타적 공간의 기쁨을 누림.
2수평유지를 위한 이기적virus 살포.
1이타가 이기적인 공간이 됨.
2저급 신으로의 격하를 사전감수 함.
이타신(利他神)의 선언
(인간에게 선택권부여)
1.이기적인 행동 속에서도 이타에 소망을 두면 원천으로 회귀되리라는
모순에 소망을 거는 자는 이기적virus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2.양심을 버릴 수 없기에 모순을 수용할 수 없는 자는 이기적virus로 부터
벗어날 이유가 없다.
이러므로 인간은 생로병사. 희노애락을 품고 선택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이기적virus로 부터 벗어나야할 이유가 당신에게 있습니까?
모순 가운데 찾아낸 소망이 고단한 삶을 잘 견디게 하며, 병에 대한
치료의 효과를 가져 오리라고 여기십니까?
양심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성이
포함된 것이므로 원천으로의 회귀에는 미흡한 방편입니다.
2007. 1. 26
종교병원 -창훈- 심규성
신들의 수학 (해설)
지금까지 자료를 검토하며 생각해보았으나 종교 간의 이견을 감당하며 중심이론이 번복되지 않을 해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양심의 소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 이론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이 이론은 모든 인간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입니다.
흔히 역으로 올라가며 풀어냄이 정석이지만, 4차원에 관한 것에서는 하향식으로 풀어놓고 점검하는 것도 방법가운데 하나이므로 이 방식으로 헤쳐 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유에서 시작이 가능하므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지요?
처음에 이타적인 신과(이하 이타신) 이기적인 신이(이하 이기신)같은 공간에 비서진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보며 이기적인 것이 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쁜 것이 아니므로 선과 악의 중간에 머문 신이 바로 이기신에 해당된다고 봐야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던 중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기쁨을 더 많은 생명들이 참여하여 기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타신의 마음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이 전생의 인간이 태어나게 된 동기가 된단 것입니다. 전생의 인간이 태어난 이유는 이타신의 성품과 연관됩니다.
이렇게 출발하여 자손이 번창하니 그들이 모두 생명의 기쁨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한 이타신에게 고맙다는 말(言)을 쉬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행복할 때, 이기신의 마음은 기쁨을 나누기 싫었으므로 자녀를 두는데 무심하였으며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기쁨에 만족하며 살아가다가, 이타신을 향한 무리들의 고마움에 상대적인 궁핍이 생겨나게 되었으나 무심한 자신의 마음으로는 해결 못할(자녀두기싫음) 일이므로 상대적인 고독이 더욱 커져갔습니다. 저들의 자녀가 늘어날수록 이기신이 초라해짐은 피할 수가 없었기에 이대로 가면 입지가 흔들리므로 최후의 수단인 수평조절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는데 그 유혹이란, 아무리 신이라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저급의 신으로 추락하게 되는(이기심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악이 되어버림) 최후의 길에 스스로 빠져드는 것인데 그는 이기적virus를 살포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살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생의 인간들에게 이기적인 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름이 부끄러운 신으로 조용히 살아갈 것이라고 유추된다. 그는 저급의 신이라는 소리보다 부끄러운 신이 더 나은 길이라는 걸 수용하기 싫어서 결국에는 저급의 악신으로 변한 것이며 혼란은 일어났습니다.
바이러스의 침투로 이기심에 빠진 전생의 인간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려고 시간이 존재하는 곳에 다시 태어나게 하며, 그들이 생로병사와 희노애락 속에서 판단력과 양심을 갖고 스스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이타신이 선언한 것이다.
이제 남은숙제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처음의 기쁜 곳 그 깨끗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모순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냐이다. 이미 쏟아진 물이라는 것과 똑 같은데 바보가 아닌 이상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다. 고로 문제를 풀기위해서 과거로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이기심의 오염을 유추한다면 모순을 극복할 도구가 된다. 또 양심을 외면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이기신의 행적을 되집어서 양심이 아닌 피해자의 몫을 발견하여 양심의 거리낌이 조금이라도 없기를 바라며 그 양심은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이다. 양심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일의 경우를 바로 따진다면 상황이 역전되어 당신이 양심을 버리는 게 아니라 잘못 된 상황을 밝힘으로 양심이 지켜진다는 것이다. 상황판단이 잘못되면 양심도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걸 일찍 밝혀봐야 좋습니다.
종교의 합리성
대표적인 종교로는 무신론의 불교와 유신론의 기독교가 있다. 불교에서는 내세를 인정하면서도 그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다는 반이성적인 이유 때문에 신을 배제하면서 윤회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이면서 인간이 신이라는 것인데 물론 인간이 신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무신론이 되기에는 문제가 남는 것이니 ‘시작도 끝도 없음’이 아닌 ‘시작과 끝을 모름’이 옳은 것이다. 불가에서 인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나타내며 윤회를 기회로 삼았지만,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맞을 경우에는 무너지게 된다. 결국 모른 다는 것은 50%짜리 해답이다. 오늘의 불가는 바른 말하기를 회피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을 제거하므로 50%의 확률을 높이며 설법의 권위를 세우려는 노력은 애처로운 인간의 몸부림에 종교라는 옷을 입히는 것이기에 심히 질타하지는 않으렵니다. 오늘도 높은 산을 오르며 극락왕생을 꿈꾸는 노모님들의 마음을 무너뜨림이 상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절망을 주지 않으려고 끝이 없다고 함이 중생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종교의 당위성이 아닌 필요성의 일부에 포함된다. 신이 없이 인간이 이루어 가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걸림이 없다. 그렇다면 산을 오르는 노모님의 옥황상제님은 신이 아니었던가 ? 이것은 불교가 수입되면서 민족의 산신신앙을 수용한 결과로서 곁가지에 불과하다. 어쩌면 노모의 마음은 신을 찾는 것이지 깨닳음을 따르는 건 아닐지도 모른는데 이를 발설하면 신도들의 상처가 깊으므로 대안이 알려기기까지 놔둘 뿐입니다.
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산신각을 수용하는 불가의 휴머니즘을 깊숙이 나무란다면 냉정한 인간이란 원성만이 저의 귀를 때리겠지요 이제 대안 없이는 비판을 아니 하리라는 마음을 따라 대안을 보급하렵니다.
불교가 인간의 한계성과 무신론을 들어 위로하려고 하였다면 기독교에서는 신의 대속을 앞세워서 위로를 삼았습니다만 죄의 근원을 파헤치는데 확연치못한 점을 인간의 양심을 앞세워 설명하는 것에 그치므로 역시 50%짜리 해답에 불과하며 늘 의심하다가도 제거한다는 것에 맞추다보니 의심을 뒤로하고 50%의 확률을 높이기에 힘쓰며 불가처럼 애처로운 종교에 머무는 것입니다.
종교와 유신론이 무신론의 반론에 얼마나 맞서는가를 본다면 봐야하겠지요 과연 신이 없다는 게 가능할까요 과학은 무에서 시작될 수 있느냐를 물어본다면 무신론의 당위성과 유신론의 당위성은 반/반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과학이 유신론에게 절반의 지분을 남겨두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아니라는 반론으로서 수많은 결과물을 내놓겠지만 처음의 시작을 논한다면 승패는 안납니다. 누군가가 ‘너의 신을 내놓아라!’친다면 ‘과학이 인간의 시작을 해명하느냐!’는 되물음을 줘야겠지요 고로 과학은 신에 대하여 중립이랍니다. 그러고 나니 당신의 이성이 잡아당기십니까 그 이성은 과학을 제거한 감성을 필두로한 이성 이겠군요 반쪽짜리 이성이 아니고서야 시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종교를 이용하는 무리들이 역겹다고 한다는 건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신을 부정하는 것과 신자들의 잘못된 것으로 인한 부정성을 구별치 않은 비판이나 부정은 구별되어야 하며 자신이 추종하는 종교를 위한 부정이라면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하로는 불교와 기독교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며 유신론을 인정하는 조건하에 쓰여짐을 밝혀둡니다.
목차
2008. 유일신 사상의 문제점
2009. 이타신의 선언
2010. 기독교가 풀어야할 단회적인 윤회에 관하여
2011. 인간의 타락을 허용했다는 신이란
2012. 질문과 답변
2013. 첨부: 신들의 수학(해설)
2014. 첨부: 신들의 수학
1.유일신 사상의 문제점
유일사상은 악의 근원이나 출처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끈이 이어지므로 그 잘못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헤쳐 나간다지만 이에 앞서 신의 전지성이 무너지는 점이 복병으로 남아 늘 괴롭힌다. 대안이 없어서 택하는 건 모르지만 대안이 알려지면 그 배로 옮겨가서 괴롭힘이 없는 항해를 택해야하며 단 한나의 고민만을 품고가야 하는데 그 고민이란 유무신론의 확률이 반/반이라는 과학의 선물이다. 고로 더 이상의 종교적인 갈등은 해서도 아니되며 해야할 이유도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학자 중에는 인간의 타락을 전지(前知)하므로 구원을 준비했다고도 하나 이는 선악과가 없어야 성립되는 난관에 봉착케 하며 어쩌면 인간의 타락이 당연한 것이라는 귀결을 일으킨다. 이는 신의 전지성을 뒤로하며 인간의 구원에 급급한 부분적인 변론에 불과하지만 성경을 깊숙이 모르는 성도들에게는 통용되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과연 악의 출처는 어디일까? 그러나 처음부터 악신이 존재했다고 한다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선신과 악신이 교류하지 않고서야 어찌 인간에게로 접근하여 바이러스적인 침투가 가능했느냐는 점이 발하므로 처음에 두 신이 있었다면 이타신과 악신이 아닌 이타신과 이기신(선도 악도 아닌)이어야 접근의 가능성이 열려지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해본다면 이타신은 혼자만이 아닌 남에게 좋은 것 나누어주려는 마음의 신인데 그는 생명으로 존재함의 기쁨을 나누어서 많이들 기뻐하게 하고자 자녀를 탄생시키는데 수학적이 정의로는 나누면 적어지는 것이지만 결과는 여럿이 기쁨을 누리면서 그 고마움의 메아리는 널리 가득하게 된 것이다. 이타신의 마음이 전생의 인간을 태어나게 만든 동기가 되었으며 이타신의 계산법과 성품은 전생의 인간탄생과 연관이 된다.
이때 이기신은 자신의 기쁨에 만족하며 고마움을 받으려는 마음도 없으려니와 이타신의 계산방식에도 무심하였다고 유추해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고마움의 함성은 이기신을 상대적인 궁핍으로 몰아가므로 당황케 하였으나 이기신의 성품에는 자녀를 두기 싫으므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것이 저급신으로의 추락을 감수하더라도 절반의 지지자를 득하는 것이 이대로 가서 인간들에게 이기적인 신이라는 소리를 듣는 부끄러운 것보다 지지를 받음이 덜 초라하리라는 계산하에 최후의 수단인 수평조절의 길을 택한 것으로 유추된다. 이기적인 것으로는 악이 아니지만 타인에게 행하여지면 악이 되는 것이므로 이기바이러스를 살포하는 순간 이기신은 악한 신으로의 추락을 스스로 택한 것이다. 이로부터 두 신들의 사이에는 선이 그어지게 된다. 이로부터 기쁨의 공간은 혼란에 빠져드는데 이미 숙주가 된게 사실이므로 해결의 실마리는 바이러스가운데 풀어가야 하는 난제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한정되 시간이 인간에게 주어지면서 숙주로 인한 병과 죽음, 분노와 슬픔을 포함하여 삶을 부여받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공간이 인생이며 매우 슬프면 위로를 삼으라고 쾌락을 조금만 허용하였고 병이 고통스러우면 감소하게 만드라고 의료지식을 허락하며 길고도 짧은 인생을 유지하면서 그 선택을 인간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이타신의 좋은 마음이 상대신에게 초라함을 안기므로 그 피조물이 질투를 받았는데 숙주가 되었으므로 자신으로부터 혼란을 제거하기 힘들게 되어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케 된 것이다. 하여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과거로의 여행이 불가피한데 숙주로서 자의가 아닌 타의적인 오염을 받아들이기가 모순되고 양심에도 거부되지만 이를 극복할 방편은 전생여행을 통한 피해자의 몫을 발견하는 것 외에는 없다. 고로 양심을 앞에 놓고 답을 찾는다거나 모순을 버리면서 찾는다는 건 마치 찾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양심과 모순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왜 숙주가 되었느냐를 살피자는 것입니다. 그냥 숙주니까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살겠다는 반론이 돌아온다면 어리석게 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서 죄인인가를 따져보지 않으며 살겠다면 말릴 수는 없겠지만 숙주는 결코 혼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도 눈을 감으시렵니까? 기존의 종교조직은 탄탄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영생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라면 옳고그름을 떠나 지키는 게 전제로 세워져야만 그다음을 따져볼 여유가 생기는 것인지요 사실 인간도 초라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대상이 신일지라도 따져볼 건 따져봐야 확실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015. 이타신의 선언(인간에게 선택권부여)
인간의 시작을 인간이 관여하지 못했듯이,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 선택권의 부여이다. 나는 필요 없다는 혹자가 있겠으나 인간의 거부권이란 부여된 것에의 선택권한이지 부여되는 그 자체를 거부하지 못할 분더러 그러함이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사실이라는 것을 부인한다고 되겠는가, 당신에게 주어진 생에서 선택하는 권한이므로 인간은 아무리 잘났어도 피조물이라함의 이유가 위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이타.이기 두 신이 서로 상반된 길로 접어들면서 숙주를 향한 쟁탈전은 인간에게 고민과 함께 소망을 주므로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데 도움이 되며 기쁨과 소망이 병에 대한 저항력을 생산하므로 치료에 보탬을 주는 것이다. 병이 낫는다는 기적은 앞선 지식을 전해주므로 유용한 효과를 일으키며 그 지식의 차이가 충격으로 느껴져서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의술의 발전은 옛 기적을 의술의 발달로 매워가고 있는 중이다. 고로 기적은 없고 높은 지식의 충격파만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는 심리적인 소망이나 기쁨으로 인한 저항력증대와 기치료를 통한 놔하수체의 물질생성 및 생체활력으로 인한 인체의 자체면역성분에 의한 치병이 가능하다. 즉, 신의 기운이나 지식에 의한 효과를 바로 바라본다면 기적이 무의미한 것이거나 무가치한 게 아님을 알게 되는데 혹자들이 이를 흉내 낸다거나 지식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서 효과를 내려는 어리석음을 기적이나 능력으로 오인하여 사기기적을 펼쳐대는 것을 심심찮이 보게 된다. 고로 무엇이 기적이며 기의 작용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상대로 농락하거나 조직과 권위를 앞세워 조종하려는 과오는 자신을 속이는 것임을 깊이 뉘우쳐 알아야할 것이다. 작금의 세상은 과거와 달리 과학의 수준이 기적과 비슷하게 달하였거나 앞서있는 실정이다.
고로 종교는 과학의 기적을 경계하지 말고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집어 기적에 의존치 않고 인간을 신에게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기적이 신을 존재케 함은 옛일이고 신의 존재는 의술이나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것으로부터 찾아내는 지경까지 그 시야를 옮겨야할 때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신자에게 나타나는 기적을 그냥 바란다고 되어지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아직도 깊은 수렁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러함을 직시한다면 귀중한 선택권을 잘 행사할 수 있는 소득을 얻을 것인데 그저 선택권에만 매달린다면 아쉬움에 그칠 것이다. 선택권이 주어진 이유와 그 사용법을 알았다면 더 이상의 손해를 봄은 각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성에 어긋나지 않으려다가 신을 부정하였다. 신을 인정한다면 시작과 끝이 나타나야 하건만 그럴필요가 없는 무신론을 택한 것으로 유신론을 비웃고 있다. 하지만 무신론은 어디 완전한 것이던가? 50%짜리 버팀목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가부간의 경험을 죽음으로 치러봐야 한다는 조건을 남겨둔 것이다.
2016. 기독교가 풀어야할 단회적인 전생에 관하여
오늘 태어나는 아이의 영혼은, 만들어져 있었는지 아니면 즉시 만드는지를 답하라고 하면 묵묵부답이다. 만일 만들어져 있었다면 단회적인 전생를 인정하는 것이고 잉태되는 시점에 투입된다하면 아직 영혼의 창조가 완료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영혼의 원죄론에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잉태가 될때 영혼을 만든다면 아직도 창조가 일어난단 것이지만 만들어 놓은 것을 투입하므로 창조를 마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영혼이 어떠한 곳에 보관되어 있어서 창조와 무관하다면 이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그 영혼의 보관소는 전생이라는 장소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어긋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인간의 문제가 급급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이성을 어리석게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을 떠나서 이야기하면 당신이 신이냐는 것으로서 오류를 벗어나려고 할뿐 고집에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한다.
2017. 인간의 타락을 허용했다는 신이란
결국 기독교의 속죄론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악의 유혹에 속아 그 권리를 행사하여 타락한다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1)선악과를 세워놓고 2)악마의 유혹을 허용하며 3)자유의지를 주었다면, 신이 좌우로 흔들릴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인간 앞에 선악과를 펼쳐놓고 유혹의 소리가 접근하게 하였다는 것인데 만일 유혹이 없었다면 타락을 하였을까? 신은 왜서 유혹의 접근을 허용하였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신이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였다’하며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라고 한다. 그러나 자유의지만의 작용이 아닌 유혹의 소리가 포함되므로 허용론을 수용하여 성경과 속죄론을 수호하려고 한다. 신이 그 자비를 나타내려고 피조물의 타락을 허용한다는 건 온전한 신에게는 큰 모독이 됨을 간과한 얇은 처사에 빠진 것이 오늘의 기독교이다. 또한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실성과 상관이 없이 버려지며 이를 주장하는 자에게는 ‘자칭 하나님’이라는 오명을 안겨주므로 그 입술을 다물게 하고 조직의 안위를 지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요한1장) 이 외의 것을 말함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며 혹 누가 말한다는 건 인간으로서는 불가하단 것이다. 고로 현제로서는 악마의 유혹이 하나님의 피조물에게서 나왔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할지라도 성경이라는 보호막을 찢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안이 제시되어 있고 인간이 죄의 주체가 아닌 숙주로서 그 귀로의 선택이 확보된 상황에서 불완전한 보호막을 끝까지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갈아탈 배가 준비 되었다면 낡은 배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갈아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엄청난 파장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믿음이 부끄럽거나 조직이 흔들려서 이권에 문제가 일어남이 부담스러운 것인가 뭔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굴복하기 싫다는 권위자들의 욕심이 진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보여지므로 그 추종자들이 불쌍하게 된다.
2018. 질문과 답변
1. 모든 종교의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있나.
--> 불교의 무신론이나 유신론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정하는가
--> 성경이 하나님을 죄의 모토로 만드는 것을 수용할 수 없을 뿐이다.
3. 인간이란 자유의지를 가동한 주체적인 죄인이라고 생각하는가
--> 죄는 외부에서 투입되었고 신은 악마의 유혹에 눈감았다는 걸 부정한다.
4. 신들의 수학이 대안으로서 부족함이 없는가
--> 종교의 요소인 ‘인간변호’에 충분한 요건을 제시하였다.
2007. 2. 5
종교병원 -창훈- 심규성
잉태될 때 영혼을 만드는가 전생에서 오는거냐는 질문에는 선택을 못하면서 '하나님이 뜻'이라는 요술방망이를 보이더군요 기독교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갈아타실 배의 명칭은 [신들의 수학]입니다.
2007. 2. 8
http://blog.daum.net/openbook70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0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
우리들의 이야기 다른글
이전
현재페이지 1
다음
kamyo2000
신들의 수학
쉬어가는 길
인생을 바꾸는 작은습관
맨위로
로그아웃 전체보기 PC화면 카페앱 서비스 약관
청소년보호정책 카페 이용 약관 상거래피해구제신청 개인정보처리방침
© Kakao Corp.
카페 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0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
우리들의 이야기 다른글
이전현재페이지 1234다음
성도님들이 바라는 목사님들은
자료2007
선악을 모르는데 선악으로 처벌을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하나님의 공의는 열쇠입니다
행복의 길을 열었습니다
담장 그 너머에 살아가나요
대안이 있으면 좋은 해법입니다
영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간접으로 만나는 길은
기독교 다시 전진합니다
기독교는 성령으로 출발합니다
칼을 든 천사들이 지키는
인간의 선택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성경을 평생토록 배운 제사장은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차이점
죄의 기원을 추적하면
읽다가 소름돋는나의 미래 보러가기
맨위로
로그아웃
전체보기
PC화면
카페앱
서비스 약관
청소년보호정책
카페 이용 약관
상거래피해구제신청
개인정보처리방침
© Daum Corp.
카페 검색
답글 제목댓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