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5.
스위스 Thusis 지방의 캠핑장 TCS Camping. 알프스 산 속의 아침이다.
피톤치드가 몸에 좋다는데 소나무 숲속에서 하루를 잤다. 간만에 늦잠을 자버렸는데 좋은 효과인가 아인가는 아직 모르겠다.
하늘 사이로 소나무가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피톤치드의 안 좋은 영향이네. 말이 샌다.
...
오늘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루가노의 몬타뇰라(Montagnola)로 간다. 알프스를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로 넘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많은 터널이 있다. 터널과 터널사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 만년설. 호수. 폭포.
푸른 하늘. 초원과 초원 위의 유럽의 집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보이는 교회의 뾰족한 탑.
이런 것들이 말한다.
알프스다.
...
몬타뇰라에 들어선다.
몬타뇰라는 헤르만헤세가 고향인 칼브(Calw)를 떠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살다 간 곳이다
헤르만 헤세 박물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박물관은 헤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박물관은 헤세가 십년을 살았던 아파트 옆의 단독주택에 설립되었다. 박물관 직원에게 직접 물어봤으니 틀림이 없다.
그렇기는 해도 박물관은 헤세의 이미지에 어울리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박물관 입구. 테이블에는 헤세의 책이 놓여 있다.
...
이층에서는 헤세 독서회 모임이 막 시작된다.
헤세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입었던 옷.
주인 잃은 헤세의 지팡이.
그는 몬타뇰라에서 수채화 3,000점을 그렸다.
뒷 마당도 정갈하다.
박물관 앞 골목길.
요숙은 이 길을 그린 수채화를 샀다.
박물관 왼쪽 자동차 뒤로 헤세가 10년을 살았던 아파트가 보인다.
1931년 이후에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사를 가서 살았다.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으나 현재 주인이 공개를 거부해 알 수는 없다.
다시 박물관.
섬세한 헤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엽서와 그림 붓들.
물감과 파스텔.
그가 직접 그리고 타이핑해 보낸 엽서들.
한국에 헤세를 소개한 사람이 전혜린이다. 그녀도 헤세가 보낸 엽서를 받고 좋아했다 한다.
헤세의 지팡이.
낙엽 태우기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집은 여기쯤이었을까
...
헤세의 묘지를 찾아간다.
그의 묘가 있는 교회의 사이프러스가 만드는 정경이 숙연하고 정갈하다.
교회 뒤로 돌아가니 푸른 포도에 취할 듯하다.
헤세는 '예술은 영혼의 언어이며, 내면의 떨림을 표현하고 보존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맞은 편에 있는 교회의 공동묘지에 있었다.
입구.
교회 뒷편 벽면 아래 부인과 함께 잠들어 있다.
오후 늦게까지 햇빛을 받도록 누군가가 나서서 애를 쓴 것일까.
빗물이 고이게 만든 돌과 누구든 오래 앉아 쉴 수 있도록 의자처럼 만든 돌이 따뜻하다. 헤세를 깊이 이해하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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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사진과 같은 자리에서
무엇은 기억하고 무엇은 버린다.
멀리 루가노 호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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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6.
스위스 남부 국경지대인 산 조르조(Monte San Giorgio) 캠핑장의 아침.
캠핑장에는 아가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다. 귀여운 아기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기쁨이다.
그 다음으로는 하얀 은퇴부부들이 많다. 대개 이동하지 않고 붙박이로 지낸다. 잘 웃지만 그 외는 표정이 없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외부 관찰로 시간을 보낸다.
이 둘 사이에 있는 부류는 인생을 고민 중인 40~50대 외톨이들이다. 혼자 차를 세우고 혼자 먹고 자고 혼자 떠난다. 예의 바르지만 괴로움이 있어 보인다. 드물지만 여자 혼자도 눈에 뜨인다.
하도 여러 캠핑장을 다니다보이 자연히 알게 된 결과다.
어떤 삶을 살든 'What' 이 아닌 'How'다.
행복은 대상이 아닌 내 마음가짐의 문제다.
... 헤세의 말이다. 오래된 옛말이기도 하다.
밀라노 시내로 접어든다.
밀라노는 패션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로마가 이탈리아의 정치적 수도라면, 밀라노는 경제적 중심지로 이탈리아의 최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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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에 우측 뒷바퀴의 공기압이 낮다는 알람이 뜬다.
안그래도 냉장고며 온갖 무거운 것을 우측 뒤에만 실어서 처음부터 우려하던 일이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오토바이를 탄 두사람이 손가락으로 뒷바퀴를 가리킨다.
... Thank you. I know
하니 따라 오라는 수신호를 한다.
그러잖아도 차를 세우려 했으나 차 세울 공간이 없었다. 호의가 고맙다.
그렇지만 소매치기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아닌가. 요숙과 값 나가는 것을 몸에 챙긴다.
내려서 보니 타이어가 완전히 내려 앉았다. 이동할 형편이 아니다. 이태리 친구가 폰을 꺼내 머라머라 이태리어로 지껄이며 나를 자꾸 돌려 세운다.
... 썩은 냄새가 난다.
이넘이 뭐라고 하든 고개를 돌려보니 한놈이 운전석에 엎드려 작업 중이시다. 사태 파악.
이 넘을 끌어내고 요숙이 걱정되어 몇 걸음 되돌아 갔다가 다시 보니 또 그 친구가 늠늠하게 캐리어를 들고 길건너 맞은 편 길을 걷고 있다.
보소~ 그 캐리어 비싸 보이능교. 그 속에 전기 밥솥하고 밥그릇 뿐이다. 쫓아가서 뺏어 왔다.
돌아오면서 기가막혀 웃음이 절로 난다.
참 나도 별 수 없네.
나중에 보니 타이어 옆을 예리한 것으로 찔렀다. 차 뒤에서 작정한 불쌍한 인생들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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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교체에 2일이 걸리고 이태리법으로 2개를 같이 갈아야 한다는 상점 보스. 타이어 하나 가는데 대화가 서너 시간이나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가격을 결정하고 잠시 지나기로 했던 밀라노에 호텔 2박을 예약한다.
요숙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기한이 오늘로 마감인 심(SIM)을 사기 위해 또다시 소매치기로 유명한 밀라노 센트럴역으로 행차한다.
심을 갈아넣고 직원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모로코인이지만 자기는 이태리 태생이라며 훗날에 이탈리아를 여행으로 다시 오겠는가 물었다. 노노. 트라우마가 생겼나 전부 의심부터 생긴다고 했다.
이탈리아가 위험한 곳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 센트럴역만 벗어나면 괜찮다고 한다. 그 말은 지금 이 자리가 위험하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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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비합리. 비효율이 난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탈리아.
역경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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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 요숙 고생했네~ 공진단 한 알.
2019.8.27.
멋진 아침이다.
여행은 반전의 연속이다. 이틀 간의 대중교통 투어가 주어졌다. 음주 보행도 가능하다.
요숙. 가십시다. 세라발레 아울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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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센트럴역에 도착한다.
직원에게 세라발레행 표를 달라니 그런 기차는 없단다. 구글이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제. 이때 요숙이 멋진 멘트를 날린다.
... Then You have any other Solution?
따분한 직원에게 자부심을 갖게하고 친절심이 일어나게 하는 멘트다.
... 옆에서 듣고 있던 고참직원이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다가선다. 게임 끝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역 안내와 역에 내려서 타는 버스의 시간 간격까지 상세한 설명과 가는 표와 리턴표를 구분해서 스테플로 꼭 찍어준다.
뒷 사람들이야 기다리든지 말든지 찬찬히 두번 세번 반복해서 설명해준다.
돌아가는 뒷꼭지에다 Have a Nice Trip! 까지 보태준다. 땡큐탱큐 바~이. 행복하세요. 복받으시고요~
어떤 삶이든 삶의 대상은 'What' 이다. 그 'What'의 상황은 마음묵기 'How'에 따라 고생이 되기도 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도 한다.
천상병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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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도 식후경이다.
모짜렐라? 잘 모리지만 맥주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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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숍에서 언리미티드 쇼핑을 마친 상큼한 요숙이 미송을 서보소 하더니 한카트 찍어준다.(참고: 미송의 의상은 명품 매장 옆에서 구입)
이탈리아 첫 인사는 고약했지만
오늘도 어드벤처는 재미만 난다.
여행은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