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내가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었다. 바울의 행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감리사님은 이태리 남부로 들어와 로마로 들어가는 행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셨다. 갖고 있던 이탈리아 지도를 펼치면서 성경의 지명과 오늘날의 지명을 비교하며 찾아보셨다. 나는 내가 갖고 있던 NIV성경으로 사도행전을 읽어보았다.
행28:11-15절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1 After three months we put out to sea in a ship that had wintered in the island. It was an Alexandrian ship with the figurehead of the twin gods Castor and Pollux. 12 We put in at Syracuse and stayed there three days. 13 From there we set sail and arrived at Rhegium. The next day the south wind came up, and on the following day we reached Puteoli. 14 There we found some brothers who invited us to spend a week with them. And so we came to Rome. 15 The brothers there had heard that we were coming, and they traveled as far as the Forum of Appius and the Three Taverns to meet us. At the sight of these men Paul thanked God and was encouraged.
바울 일행은 수라구사 오늘의 시라쿠사(Syracusa)이다. 이곳은 당시 그리스에서 오는 모든 선박이 정박했던 항구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카타콤에 바울이 3일 머무는 동안 제단을 쌓고 복음을 전파했다는 장소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보디올은 오늘의 ‘보쪼올리(Pozzuoli)'로서 샘물, 온천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유황가스와 160도에 이르는 뜨거운 증기가 솟아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압비오 저자(Foro Appio)는 전에 말한대로 압비아 가도 가운데 있는 어떤 장터나 광장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압비아 가도는 고대로마의 도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로로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기원이 된 도로이다. 현재도 이 도로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삼관(Tre Taverne)인데 삼관은 세 개의 여관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Taverne라는 지역명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성경안에서 바울의 행로를 읽으면서 그가 걸었던 길이 우리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바울의 선교현장 가까이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울의 행로를 더듬어 가면서 생각해보니 바울의 참수터에서도 놓친 것들이 있었는데, 우선 우리가 걸어서 들어갔던 길을 이름하여 ‘생명수 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걸었던 바울의 일생을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입구 옆에 서 있던 동상은 성 베네딕트의 동상이라고 한다. 성 베네딕트의 동상 아래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AUSCULTA O FILI OBEDIENTIA SINE MORA ORA ET LABORA
들어라 내 아들아 주저하지 말고 순종하여라 기도하고 일하라
순교기념교회의 입구가 아치형태였는데 이 문은 카를로 대제의 아치문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바울의 참수터를 나오면서 약간 오른쪽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가 있었다. 가이드는 그 교회를 ‘천국계단 교회’(Chiesa, Scala Coeli)로서 그전에는 사형수들을 가두는 장소라고 했다. 이 교회를 세우게 된 배경이 있는데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로마에 잡혀오게 된다. 그들은 당시 건축중이던 콜로세움 공사에 동원이 되고, 악조건 때문에 가사상태에 빠지고 로마당국은 그들 10,203명을 이곳에 매장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약13세기경) 한 수도사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게 되고 환상속에서 많은 별들이 하늘에 오르는 광경을 본후 이곳에 기념교회를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 가운데 천장에는 별들이 그려져 있고, 그 별은 죽은 영혼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별의 숫자가 10,203개라고 하니 다음에 가면 확인해 봐야지!
어제 그제 이렇게 빼뜨린 이야기를 더하면서 나중에 우리의 여행기를 사진과 함께 작은 책자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로마를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이날 아침 짐을 챙기느라고 결국 우리 부부는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이목사님은 여지없이 벌금형을 선고 하셨고, 눈물의(?) 10유로를 드렸다.
다시는 지각하지 말아야지, 벌금을 낼때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나 한사람 때문에 30명의 사람들이 5분을 기다렸다면 사실 10유로는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때, 선배 목사님들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독일까지 갈 기사와 버스가 결정이 되었다. 왜 그 기사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까? 아무튼 그는 우리와 함께 여행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는 가이드를 하고 싶어한다는 딸을 데리고 함께 탑승했고, 우리들은 너그러운 한국인의 인심을 보여주며 그렇게 하라고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로마를 빠져 나가면서 우리는 오스티아라는 지명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지명은 옛날 로마의 황궁터가 남아 있는 유적지라고 했다. 아마 한 10년쯤 후에 우리가 로마를 다시 찾는다면 오스티아의 황궁터는 유적지로 개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유적지의 특징은 도로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유적을 덮은 흙을 걷어내야 유적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가면 성지가 현재의 길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는데, 세월이 덮은 것들을 사람들은 찾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나무 가로수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길가에는 위에만 가지가 무성한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 도심을 빠져 나가면서 대우의 마티즈와 칼로스 자동차를 보기도 했고, 현대 자동차가 2004년 EUFA컵 공식 파트너라는 간판도 볼 수 있었다.
물건을 수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가이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그는 이탈리아를 3가지가 특징인 나라라고 소개했다. 그 중에 하나는 만자레의 나라 즉 음식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섞어 먹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했다.
자식들, 비빔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지, 게다가 잡탕찌게, 아무튼 음식은 한국이 최고여!
그 다음에 깐따레의 나라, 즉 음악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모레의 나라, 즉 사랑이 넘치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코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바람 끼가 많다던데...
도로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 우리는 고속도로에 있는 우리나라 휴게소와 비교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주유소와 마트가 함께 있는 곳에 들러 화장실과 마트를 이용하곤 했다. 물론 화장실마다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라도 그냥 나가려고 하면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그때마다 이우정 장로님은 전부 내가 낼테니까 그냥 나가게 하라고 했고, 신기하게도 한국말인데도 그 사람들은 다 알아 들었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짬짬이 생존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얼마입니까?’‘관또 꼬스따’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나는 한국인입니다. ’소노 꼬레아노‘ 이건 정말 중요한 말이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은 ’곤니찌와, 니하우 그리고 그 다음에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왜 우리가 3등이란 말인가? 열받게!
3년전 루브루 박물관에 갔을때 정말 화가 난 것은 안내서에 일어, 중국어는 있는데 한국어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갖다 쓰는데도 이것들이 무시를 해도 분수가 있지! 우리 아이들이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게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영어의 You're welcome에 해당하는 ‘프레고’를 배웠다. 숫자도 양념으로 배웠는데 ‘우노 두에,트레,꽈트로’까지 배웠다. ‘햐 이쯤되면 이탈리아에 머무를 이 해버려?’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산 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이유를 듣게 되었다. 이런 전통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가이드는 소개했다. 전에 기록한 대로 로마가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서 세워진 다음 한때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는 BC7세기 초부터 BC 509년 로마에서 쫓겨날 때까지 200여년에 가까운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산위에 마을을 형성한 이유는 자연의 재해난 적들의 침공을 대비하였던 것 같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산 중턱 위로 집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산위에 있는 집이 더 비싸다고 했다. 하긴 산위에 길 내고, 물끌어 올리고 하려면 돈이 더 들테니까 당연하겠지...
그리고 열심히 고속도로를 달려 피사에 도착했다. 도착 한 곳은 버스 스태이션처럼 큰 광장이었는데 수많은 버스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내려서 사탑까지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흑인들이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선글래스나 시계등을 팔았는데 물건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가이드는 그들이 주로 프랑스 국적의 흑인들이며, 간혹 집시들이 섞여 있는데 이들은 국적도, 이름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 법을 어겨도 나라에서 추방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매치기나 강도 같은 일을 벌이고 잡혀도 추방할 수 없다니 참 국가로서도 답답한 일이겠다 싶었다.
드디어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5분여를 갔을까?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걸어서 사탑을 향해 갔다. 사탑을 향해서 가는 동안 늘어선 노점에는 주로 흑인들이 자기들의 토산품처럼 보이는 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이드는 그들 가운데는 소매치기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피사의 사탑으로 들어갔다. .
피사는 토스카나 주에 속한 도시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도시정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두오모(Duomo)가 위치하게 된 것은 오래전에 이곳이 교통의 중심지(해안이 가까웠다.)요, 문예의 중심지로 번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 치면 돔(Dome)의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로 두오모는 반구형의 둥근 천장을 가진 성당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이 둥근지붕의 천장을 가진 성당을 주교좌 성당, 즉 그 성당에는 주교가 있었던 성당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이기에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에 가장 큰 성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피렌체의 두오모가 유명하다.
우리가 찾아간 피사의 사탑도 알고보면 피사 대성당(Duomo di pisa)의 부속건물로서 종탑의 역할을 햇던 건물이었다. 이 성당안 뜰에서 보면 3개의 건물이 보이는 데 하나가 대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당 그리고 사탑은 종탑으로서 종을 치는 건물이었다.
이 사탑이 건축된 것은 오래전 도시국가이던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의 함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이 사탑 전체는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상상을 해보라, 그 사탑 전체가 대리석이라니) 꼭대기 종루를 포함해서 모두 8층의 건물이다. 지상으로부터의 높이는 55.8미터, 탑 전체의 무게는 무려14,500톤으로 알려져 있다. 탑 내부는 나선형으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모두294개의 계단을 올라가 종루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현재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을 가진 7개의 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탑을 보면서 놀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탑으로 알았던 사탑에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쓰러지면 어쩌려고, 하긴 우리나라 광고에 보면 이가탄 먹고도 바로 세우드만...
가이드는 한번에 30명씩 시간을 정하여 정해진 시간안에 사탑에 오른후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올라가 보자고 했더니 가이드는 지금 예약을 하면 몇일 뒤에는 올라갈 수 있다면서, 우리가 예약을 하면 자신이 대신 올라가겠노라고 농담을 했다.
1064년도에 보라노 피사노이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도를 따라 지어가던 중 3층을 쌓아올렸을때 한쪽 지반이 붕괴되고 있었고, 보나노는 한층을 올릴 때마다 기울어진 쪽을 더 높이 만들었지만 건물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고, 결국 기울어진 채로 1350년에 사탑은 완성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사탑은 1년에 약 1mm씩 기울어졌고 사탑이 5미터 정도 기울어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했을때 사탑을 고정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정부는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사탑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탑의 기초를 강철 케이블로 묶어두고 콘크리이트로 기초를 보강하면서 반대편에는 무거운 납덩어리를 쌓아두는 방법을 이용해서 5cm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가이드는 사탑의 기울이가 36도라고 했는데 내가 살펴본 바로는 10도를 약간 넘는 것으로 보였다. 가이드는 이 사탑의 기초가 되는 땅이 다른 땅에 비해서 사탑을 붙잡고 있는 어떤 힘이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 탑을 보고 있노라니 자꾸 내 인생이 돌아다 보아졌다. 저 사탑만 기울어져 있겠는가? 나를 포함해서 멀쩡하게 생긴 모든 사람의 인생이 저 사탑처럼 기울어져 곧 쓰러질 것 같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금까지 자기 혼자 선 줄 알고 살아왔는데 기울어진 탑을 보는 순간 ‘아 내가 혼자 살아 온게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신비한 손길이 탑을 붙잡고 있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붙들어 주었기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던 ‘내가 내 삶의 자리에 굳굳하게 서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탑 아래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했다. 시편 73:23절이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 그렇구나, 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 내가 무너져 버림받지 않는 이유, 나를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손이 있기 때문이로구나, 내가 주를 생각하는 그 한순간을 기뻐하시고, 내가 주를 의지하는 그 한순간을 받으시는 그 분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나의 연약함이 연약함이 아니라, 강함이 되고, 나의 부족함이 나의 풍성함이 되는 이유, 그 분이 붙드심이로구나. 사탑 아래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사탑을 돌아보고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닭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점심을 먹었다. 이제 이탈리아 음식에도 우리 일행은 잘 적응하고 있었다.
식후에 자유시간을 가지면서 사탑을 둘러보았는데 한쪽 길가에는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처럼 노점이 크게 줄지어 있었고, 사탑 앞쪽에는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기울어진 사탑을 받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해서 사진으로 찍으면 좋은 기념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해보았는데 왜 사진을 안주는 거지?
자유시간 동안 두오모 내부를 둘러보려고 했지만 티켓을 사야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두오모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다. 사탑과 두오모가 있는 앞 광장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수학여행을 온 친구들이 누워서 쉬고, 놀이를 하고 책을 읽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은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광지기보다는 산책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탑을 빠져 나오면서 만약 누군가 저 기울어진 사탑을 바로 잡는다면 이곳에 관광객들이 찾아올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사람들이 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바로 잡은 사탑은 별로 신기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벽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기울어진 대로 살기에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기어이 자기의 힘으로 바로 잡는다면 교만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절) 아 일생동안 바울의 이 고백을 내 고백으로 간직하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피사를 나오면서 감리사님은 소매치기를 당할 뻔 하셨다. 주머니 속에 다른 손이 들어와 있었다고 하셨다. 하긴 소매치기들에게 남의 주머니는 곧 나의 주머니일 테니까 말이다. 얘들은 손끼리 부딪쳐도 그저 웃음으로 모든 것을 때운다. 도망가는 법도 없다. 앞에 말했듯이 경찰도 골치가 아파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셔틀 버스를 타고 다시 정류장으로 내려와서 베네치아를 향해서 긴 여정을 시작했다. 피사에서 베네치아까지는 거리가 꽤 먼 여정이었다. 나에게 거리를 킬로미터로 환산하라는 요청은 지나친 요구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도가 없기 때문에...
가는 도중에 도로 위에서 휴식을 취해가면서 우리는 이탈리아 북부를 향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남부와는 달리 북쪽은 나무의 잎사귀들이 새롭게 피어나는 나무들도 보였고, 꽃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 나무들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자연을 거역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니겠는가? 이동하는 도중에 우리는 선물을 살 수 있는 매장에 들렀다.
들어가는데 이미 나오는 일행을 보니 한국인이었다. ‘여기가 한국인들이 들르는 하나의 코스로구나’ 생각했다. 모든 제품을 면세점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해서 잠깐 쇼핑을 했다. 둘러보니 가죽제품이 많았고, 기념품이 될만한 열쇠고리나 귀고리 같은 것들도 보였다. 집사람은 교사들(아가씨들) 줄 선물로 귀걸이를 5개를 구입하고는 할인된 가격에서 더 깍았다. 35유로를 주고 수정으로 만들어진 시원하게 생긴 귀걸이를 구입했다.
참 여기서도 화장실에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간 우리는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때는 어느덧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노벤타 호텔(Noventa Hotel)이었다. 이 호텔은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 호텔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중국 관광객 일행이 함께 도착을 해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 마무리 조경공사도 끝나지 않았지만 호텔은 깨끗하고 주변이 아주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이드는 호텔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호텔측에서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해주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키큰 이태리 청년과 함께 앞에서 가게 되었다. 그 친구 이름을 못물어 봤네 그려... 이 친구는 22살이라고 했고, 유리를 갈아끼우는(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때때로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알고 있다고 했다. 월드컵 얘기를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열받으면 안되니까 참고, 여자친구 얘기를 했다. 자기 애인은 전형적인 이태리 미인이란다. 검은 머리에 눈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 자식! 우리 마누라도 못지 않아!
그는 칼노바(Calnova)라는 마을을 자랑했다. 이 마을은 우선 아주 조용한 곳이고, 범죄가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보고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면서 계절마다 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그 친구 말을 듣고 보니 향기가 제법 풍겨왔다.
그렇게 10여분을 걸어서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한국인을 처음 받아 보는 식당, 우리는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자리를 잡고 서빙이 시작되었는데 아주 크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서빙을 했다. 웃음을 띠고 서빙을 하는 아가씨는(아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네 그려, 나는 왜 이렇게 사람 이름에 약하지?)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아가씨를 대표하는 듯 했다. 결국 김종호 전도사와 함께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해주었다.
항상 우리들로부터 이국적이라고, 전도사님이 이탈리아에 머무를 이 해야한다고 말을 들었던 김종호 전도사도 아가씨 옆에 서니까 한국인 같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전도사님과 사귀는 자매님이 본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이야기 하기가 어려웠다.)
그 사진을 전도사님이 지금 사귀고 있는 아가씨에게 공개했는지 교역자 회의에서 물어볼란다.
처음으로 나온 음식은 3가지 종류의 돼지고기를 절인 것을 썰어낸 것이었다.
하나는 삼겹살을 소금 통에 담궜다가 썰어 온 것 같았고, 하나는 순대같았고, 하나는 약간 단단했다. 그들에게는 이 음식이 최고의 것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는 도저히 맞지를 않았다.
겨우 빵에 싸서 한두번 먹는 시늉을 내자, 이 식당의 주인아저씨가 올라와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에게는 미안했지만 입에 안맞아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자기들은 가장 좋은 것을 내어 놓은 것 같았다.
두 번째 올라온 리조트(쌀을 치즈와 함께 끓여낸 것)는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마구마구 먹었다. 두 번,세번씩 덜어 먹자, 아저씨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그 분들은 모두가 친절했고, 먼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그렇게 차츰 저녁이 깊어갔고, 우리는 너무나 맛있고,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를 먹었다.
우리 일행이 식사를 한참 하고 있는 중에 한 떼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당을 찾아 들었고, 마침 그날이 그들에게는 작은 만남과 축제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가이드를 통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서로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를 하고는 먼저 이태리 노래를 흥겹게 불렀다.
우리도 노래를 하나 부르고 난 다음 다시 다른 노래를 듣고서는 월드컵 응원구호인 대한민국!으로 끝을 맺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중간에 식당앞 4거리에 분수가 있었는데 그 앞을 중심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방안으로 들어와 물위의 도시 ‘베네치아’의 꿈을 꾸면서 단잠에 빠져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