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는 자녀문제가 부쩍 세론(世論)에 많이 오르내린다. 친자식 학대와 버림, 양자(養子) 버리기 등등의 비인간적인 일들이 언론을 통해서 오르내릴 때 이를 듣고 보는 우리 세대 사람들은 놀랍고 한편 나라 장래가 걱정이 된다.
나라라는 것은 국민이 있어야 존속되고 장래가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고, 성인(成人)들이 소년들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기른다면 이들이 성장하여 올바른 국가관과 민족관을 가지고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모두 누구의 책임인가?
직시하고 성인들이 올바른 길로 잘 이끌 수 있게 정신을 차리자.
학교교육이 병들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퇴계께서 성균관 대제학(大提學)으로 계실 때, 사학(四學)의 선생과 학생들에게 유시(諭示)하는 글(諭四學師生文)을 보면 우리나라 잘못된 교육 풍조를 읽을 수 있다.
교육의 중심인 학교란 어떤 곳인가?
“학교는 풍속과 교화의 본원이고 선(善)을 솔선하는 곳(學校는 風化之原ㅣ오 首善之地ㅣ라)”
이며 거기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곧
“예의(禮義)의 종주(宗主)이고 원기(元氣)가 깃든 자(而士子는 禮義之宗ㅣ오 元氣之寓也ㅣ니라)”
들이란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학교를 설립하여 선비를 양성하는 것은 그 뜻이 매우 크니, 선비가 입학하여 자기를 수양함에 있어서 구차스럽게 천하고 더럽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더욱 마땅히 예의를 앞세워 스승은 엄하고 제자(弟子)는 공경하여 각자 그 도리를 다해야 한다.(國家設學而養士는 其意甚隆하니 士子ㅣ 入學以自養에서 寧可苟爲是淺衊哉아 而況師生之間에는 尤當以禮義相先하야 師嚴生敬하야 各盡其道하니라)”
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엄하다’고 하면, 지금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생각에는 으레 ‘야단도 심하게 치고 말 안 들으면 두들겨 패고 심하면 버리기 까지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풍조가 만연하여 ’아동학대‘가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하다’는 것은 사납게 대하는 것이 아니고, ‘공경한다’는 것은 굴욕을 받는 것이 아니며, 모두 예(禮)를 위주로 하는 것(其嚴은 非相厲也ㅣ오 其敬은 非受屈也ㅣ며 而皆主於禮니라)이다. 예를 실행하는 것은, 의관을 격식에 맞게 차려입고 매무시를 바르게 하고, 음식을 절도에 맞게 먹으며,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섬에는 법도에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함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예를 하루도 폐할 수 없이 중요함을 알고, ‘예를 한 번 잃으면 이적(夷賊)이 되고, 두 번 잃으면 금수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를 실천하는 삶을 가졌던 것이다.
그 당시 학교모습은
“가만히 오늘날의 학교를 보면, 스승과 나이 많은 어른이 되든 생도가 되든 간에 혹 서로 그 도리를 잃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단 학규(學規)만 강명(講明)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학교 명령[學令]까지도 크게 무너져서 스승은 엄하지 못하고, 생도는 공경하지 못하여 도리어 서로 폐해를 입히고 있다. 국학(國學)에 있어서도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사학(四學 : 서울에 中學, 東學, 西學, 南學)은 더욱 심하다.(竊觀今之學校하면 爲師長爲士子ㅣ 或未免胥失其道하니라 非但學規不講이며 竝與學令而大壞하야 不嚴不敬하야 反相爲瘉하니라 其在國學에도 不可謂無此하며 而四學尤甚하니라)”
라고 할 정도로 엉망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례로 ‘사학의 유생(儒生)들이 사장(師長) 보기를 길가는 사람처럼 여기고,’ ‘성균관(成均館 : 學宮) 보기를 여관방처럼 여기며,’ ‘평상시에 예복(禮服)을 갖춘 자가 열에 두세 사람도 없고,’ ‘흰옷과 검은 갓 차림으로 멋대로 오가며,’ ‘사장(師長)이 학궁(學宮)에 들어오면 읍(揖)하는 예를 행하는 것까지 꺼리며 부끄럽게 여기며’, ‘서재(書齋) 안에 번듯이 누워서 흘겨보고 나오지도 않는다.’다고 했다.
그 뿐이랴.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예복이 없다.”고 한단다.
사장(師長) 가운데 이 폐습(弊習)을 바로잡으려는 이가 있어서 며칠을 연달아 읍례(揖禮)를 받으면, 떼를 지어 비난하고 무리로 욕하며, 혹은 옷을 떨쳐입고 떠나며 말하기를,
“이는 우리들을 건드려 떠나게 하고서, 양식을 착복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은 건드려서 소요를 일으키게 함(侵撓)을 견딜 수 없으니 의당 서재(書齋)를 비우고 흩어져 가야 한다.” 라는 폭언을 하면서 사장(師長)을 위협하니, 일찍이 도리를 알고 예로써 몸을 다스린다는 사람들이 ‘차마 이런 행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하고 탄식을 하셨다.
이러한 이유가 어디에 잇는가를 살핀 퇴계께서는
“여러 생도들(諸生)들을 이렇게 만든 까닭은 실로 사장(師長)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에서 연유된다. 지금 사학(四學)의 관원들은 스스로 처신하는 것이 매우 졸렬하여 부지런히 출근(仕進)하지 않아 학사(學舍)가 항상 비어서 서원(書院)과 다름이 없고, 간혹 관리가 규정된 시간에 출근[仕進]을 하더라도 그냥저냥 시간만 때우며 읍례(揖禮)도 행하지 않고 가르침을 일삼지도 않는다.”
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처사가 도리를 잃은 것이 많다 보니 새로 입학한 소년들이 의리에 깊지 못하여 사제지간의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경시하는 마음을 품어 안일에 빠지고 나쁜 버릇을 익혀 점점 오만하고 사납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치료방법은,
“사장들이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인습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를 고수하여 고칠 길을 생각하지 않으며, 삼가고 부지런히 힘쓰지 않는다면 국가에는 상벌에 대한 규정이 있으니, 관리자(僚長)가 일시적으로라도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이니, 각자 노력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其師長ㅣ 萬一因陋守舊하야 不圖改轍하며 不謹不勤하면 則國有黜陟之典하니 固非僚長一時之所敢私也ㅣ니 各宜勉力毋忽하라)”
라고 하셨다. 즉 지도자의 잘못이란 것이다.
이 말을 오늘날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흡사 사진을 찍어 놓은듯하다. 이 현실의 잘못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니 스스로 잘 판단할 줄 안다.
그렇다면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올바르고 아름다운 예절은 누가 부흥시켜 세계에 우리 얼굴을 드러나게 해야 할 것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