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로 상품권을 받았다. 신세계 상품권이라서 근처 마트로 데이트하러 갔다. 이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대형할인점에 가는 경우는 연중행사나 다름이 없다. 새로운 것은 설렘을 준다. 혼자서는 대형할인점에 가본 일이 없다. 백화점은 혼자 간 적이 더러 있었다. 그것도 사고 싶은 물건만 딱 사 들고 바로 나온다, 여자들은 층층이 매장을 돌면서 눈으로 쇼핑을 하는 것도 즐기는데 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옷도 내가 좋아하는 매장 하나를 정해놓고 매장에서 추천하는 것으로 사거나 직접 고르는 일도 있다. 친구랑 같이 쇼핑하는 것 보다는 혼자 가는 편이다. 함께 다녀도 내가 필요한 것이 없으면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도 성격 탓인 것 같다.
함께 사는 남자랑 모처럼 이마트에서 데이트했다. 각자 자기 관심 분야가 다르다 보니 한 사람은 캠핑코너에서 재미있게 보내고 한사람은 예의상 지루한 내색을 최대한 감추고 가끔 호응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통일되는 코너는 식품 판매대다. 공짜처럼 생긴 상품권으로 한우나 먹자고 우스갯소리 해가면서 장바구니에 한우를 우리 가족이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만큼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도 사고 고소한 빵도 골고루 사서 바구니에 넣었다. 저녁에 한우 파티를 할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를 위해서 초밥을 두 팩이나 사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장바구니가 처리 철철 넘는다.’ 도라지 타령 부르며 매장을 돌아다녔다.
속옷 판매장을 지나가노라니 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속옷을 꼭 끼이게 입는 성향이 아닌데 집에 있는 속옷 치수가 판매장에서 치수를 재워준 크기로 샀더니 여우가 없다. 내 크기는 맞는데 한 치수 위로 입는 것이 편하니까 새로 사고 싶었다. 새로 사자니 많고, 많지만 입을 때마다 불편해서 사야지 하면서 벼르게 된다.
마침 판매장에 왔으니 마음 내서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장바구니가 처리 철철 넘쳐나도 어찌하리오. 크기를 판매장 언니가 재어보더니 역시나 집에 있는 사이즈로 권한다. 이래저래 사정을 말하니까 그러면 한 치수를 높여서 입으라고 친절하게 권한다. 색상은 검붉은 모란꽃 색깔로 했다. 연두색과 빨강 장미색과 검붉은 모란꽃 색깔을 펼쳐놓고 어느 색이 더 섹시하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모란꽃을 선택했다.
얼마 전까지도 속옷 매장은 근처에도 부끄러워서 가지도 못했던 남자가 이제는 부끄러워도 안 하고 오히려 농담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넉살까지 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럼 많고 숫기 없는 순수 청년이었는데 이제는 아내 속옷 사주면서 ‘이제는 작아졌다’라는 농담까지 하는 통에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내 것만 사기에는 그래서 커플로 남편 것도 샀다. 색상이 마음에 들어서 욕심 같아서는 두 벌을 사고 싶었는데 아무리 선물로 받은 상품권이지만 과소비는 말자는 생각에 한 벌씩만 사서 냉정하게 돌아섰다.
저녁에 소고기 파티하면서 맥주와 함께 가을을 초대해서 신나게 놀았다. 소고기에 초밥까지 상품권 덕분에 행복한 밤을 보냈다. 무엇보다 모란꽃 속옷은 올가을 최고로 핫한 이벤트다. 뜨거운 물에 가볍게 세탁해서 건조대에 널어놓은 모란꽃을 바라보니 너무 행복했다. 얼른 말려서 입어 보고 싶었다. 커플로 산 모란꽃 속옷 덕분에 로맨틱한 데이트가 되었다. 이 남자는 무덤덤하니, 어쩌면 좋을까? - 2022년 9월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