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유래
[정의]
구멍의 숫자와 모양에 따라 패를 맞추는 전통적인 놀이 및 도박 도구. 강패(江牌)·아패(牙牌)·호패(號牌)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래]
골패의 역사적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백낙천(白樂天)이 하늘에 떠있는 27개의 별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설,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만들었다는 설 등이 있다. 『정자통(正字通)』에서는 1120년(宋 宣和 2) 송의 어느 신하가 아패(牙牌)와 계점(計點)을 만들어 별자리의 배열을 살펴볼 것을 청한 사실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골패의 유입에 대해서도 임진왜란 때 명(明)의 군사들에 의해서 전해졌다는 설과 이후 청(淸)에 의해 전해졌다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風俗篇)에서 “골패가 한 번 성립되어 그 수리적(數理的) 변화성으로 인하여 이용이 복잡하여 오락·도박의 양 방면으로 무수한 법식을 유발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록 중국에서 골패가 유입되었다고 하지만 골패의 놀이양식과 방법이 한국의 상황에 따라서 많이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종류, 놀이방법
[종류]
골패는 제조양식에 따라서 뼈로만 만든 것을 민패, 흰 뼈와 검은 대나무를 붙여서 만든 것을 사모패(紗帽牌)라고 한다. 패는 소·사슴 등 동물의 뼈를 나무에 덧붙여서 손가락의 마디 크기로 만든다. 그리고 대·중·소 원모양의 구멍을 판 뒤에 붉은색, 검은색(혹은 푸른색)을 칠하여 완성한다.
골패는 총 32개의 패가 있으며, 구멍수는 모두 227개이다. 구멍수에 따라 각기 별칭이 붙어 있다. 같은 패가 2개(짝패)인 것과 1개의 패(홀패)로 된 것이 있다. 32개의 패 중에서 우두머리는 ‘관이’이다. 관이는 패중지왕이라 하여 제일 어른 대접을 받는다. 각각 별칭과 구멍수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소(1·1, 짝패), 쥐코(1·2, 홀패), 소삼(1·3, 짝패),
백사(1·4, 홀패), 백오(1·5, 짝패), 백륙(1·6, 짝패),
진아(2·2, 짝패), 아삼(2·3, 홀패), 어사(2·4, 홀패),
관이(2·5, 홀패), 아륙(2·6, 홀패), 장삼(3·3, 짝패),
삼사(3·4, 홀패), 삼오(3·5, 홀패), 삼륙(3·6, 홀패),
직흥(4·4, 짝패), 사오(4·5, 홀패), 사륙(4·6, 짝패),
준오(5·5, 짝패), 오륙(5·6, 짝패), 주륙(6·6, 짝패).
가야금 병창으로 불렀던 골패타령에서는 이러한 별칭들이 잘 녹아들어 있다. “얼싸 오늘 하 심심하니 골패 짝패 하여 보자. 쌍준륙에 삼륙을 지르고 쌍준오에 삼오를 지르니 삼십삼천 이십팔수 북두칠성이 앵돌아졌구나. …… 청부동(靑不同) 백부동(白不同) 매화가되고 소삼관이 사륙하고 소삼어사 오륙하니 옥당쌍수가 뒤집어 지누다.”
[놀이방법]
골패의 놀이방법은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며 거의 8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일례로 충북 지역에서는 톡·밑달기(미골)·그대기·오관떼기·쑤시기 등의 많은 놀이방식이 있다. 톡은 가장 널리 즐기는 놀이로서 ‘톡을 모르면 양반이 못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톡은 카드방식과 비슷한데 처음에는 주로 5명이 하면서 6개의 골패를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타인이 내놓은 패를 집어가고 자신의 패를 내놓으면서 패를 맞추어 간다. 그러다가 제일 먼저 손을 털거나 남은 구멍의 숫자가 제일 적은 사람이 장원이 된다.
짝맞추기와 꼬리맞추기도 널리 즐기는 골패놀이 중의 하나이다. 짝맞추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먼저 선이 들고 온 패 중에서 짝이 맞는 패를 내려놓는다. 짝패가 없을 경우는 아무것이나 하나 내려놓는다. 다음 사람은 선이 내려놓은 패 중에서 맞는 패가 있으면 가져간다. 맞지 않을 경우에는 나머지 골패 중에서 하나를 가지고 와서 짝을 맞추어 본다. 이 또한 없을 경우에는 패 하나를 내려놓는다. 이렇게 놀이를 진행하다가 먼저 짝을 세 번 맞추어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꼬리맞추기는 상대방이 내려놓은 패의 아래쪽 숫자에 맞는 패를 짝지으면서 하는 놀이이다. 짝지을 패가 없으면 자신의 패 중 하나를 뒤집어 놓는다. 손에 든 패를 다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 진행한다. 뒤집어 있는 패의 숫자를 합하여 높은 사람이 지는 것이다.
내용
골패는 투전(鬪牋)·쌍륙(雙六)과 함께 도박성이 강한 놀이였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여러 가지 내기놀이 중에서도 심보가 나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며 가문과 친족들의 근심이 되게 하는 것은 투전이 첫째가 되고, 쌍륙·골패가 그 다음이다.”고 하였다. 골패는 주로 양반·기생 등이 즐겼던 놀이였다.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에서는 당시의 골패놀이 풍속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손님들이 기생집에서 모여 술상을 시켜놓고 기생과 골패를 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옛 신문을 살펴보면 양반들 혹은 부유층과 관련한 골패놀이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한매일신보 1908년 8월 9일자를 보면 “양반들이 골패짝잡기를 밥숟가락 붙잡기보다 좋아하여”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정의 인물 가운데 골패에 빠져든 이도 적지 않았다.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는 주일공사 조민희(趙民熙)를 도박 중에서도 골패를 생명처럼 여긴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주야로 저고리의 중단(中單)을 만지면서 골패를 하다가 중단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위에서 그를 ‘골귀(骨鬼)’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골패는 때로는 점술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골패를 일렬로 쭉 늘여놓고 패들을 뒤집어 본다. 패들을 맞추어 본 다음 패의 점수를 더해서 점괘를 보는 것이다. 패를 가지고 신수점을 보는 풍속은 중국에서도 널리 행해졌다. 중국에서도 골패는 매우 인기 있는 놀이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골패는 32개의 패가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골패에 뚫려 있는 구멍과 짝짓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패는 보통 흑단(黑檀)으로 만들어지며,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칠한 점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패의 상단에는 빨간 점이 새겨져 있다.
골패는 놀이방법이 많을 뿐더러 복잡하고 까다롭다. 복잡한 골패의 놀이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골보(骨譜)』라는 책자가 전해지기도 한다. 놀이방식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투전만큼 백성에게 쉽게 파고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골패에 한번 빠져들면 며칠씩을 골패판에서 지새울 정도로 도박성이 강하다고 한다. 골패는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화투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첫댓글 골패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사진까지..
참 잘올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