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산’을 다시 찾다 웨스트버트레스 루트 따르며 데날리의 미소 재발견
웨스트버트리스 등반법
캐시 앤드 캐리 방식으로 캠프 이동
‘위대한 산’이라는 의미의 데날리(Denali)라는 원래 이름과 함께 미국 제25대 대통령의 이름인 매킨리(Mckinley)로 불리고 있는 북미 최고봉은 경비행기를 타고 데날리 국립공원의 명봉들을 바라보면서 설원에 내려앉아 등반을 시작한다는 점, 거대한 설원과 반짝이는 설봉이 자아내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여기에다 크레바스, 설벽, 설릉 등 고산이 갖추고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짐을 등반객 스스로 옮기면서 등반하기에 여느 고산보다 더욱 뜨거운 성취감까지도 누릴 수 있다는 점 등이 매력인 고산이다.
▲ 탈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35분만에 닿은 랜딩포인트. 날씨가 허락한다면 매킨리뿐 아니라 헌터(앞봉), 포레이커 등 데날리 3대 봉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7대륙 최고봉 등정 붐이 일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등반객은 급속도로 늘어나 매년 등반시즌인 5~6월 두 달간 1,500명에 이를 만큼 많은 산악인들이 도전하기에 이르자 데날리 국립공원측에서는 산이 오염될 것을 염려해 한 시즌 등반인원을 1,000명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렇지만 실상 대다수 산악인들이 등로로 삼는 웨스트버트레스(West Buttress)를 비롯한 여러 루트의 등정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데날리 국립공원측의 통계다. 또한 위험한 구간마다 고정로프가 깔려 있거나 확보물이 박혀 있고, 전진베이스캠프인 매킨리시티(4,300m)와 마지막 캠프인 데날리빌리지(5,250m)에 레인저가 상주하고 있음에도 해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산이다. 탈키트나 산악인 묘지에 적혀 있는 사망자 수만 해도 150명 가까이 된다.
한국 산악인의 경우 79년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고상돈씨가 이일교씨와 함께 추락사하는가 하면 92년 3명, 94년 2명, 그리고 2006년 1명 등 여러 차례의 인명사고가 일어나 한동안 악명 높은 산으로 인식돼 왔다. 올해의 경우 5월 중순 일본 산악인 2명이 캐신리지 등반 중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 (왼쪽) 매킨리시티에 설치한 이탈리아 팀 캠프. 텐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담을 높이 쌓고, 주방까지 꾸며놓았다. / (오른쪽) 데날리빌리지에 설치된 렌치. 1,000m 아래 매킨리시티까지 사고자를 내리는 데 사용된다.
이는 아마추어가 많이 찾는 까닭과 더불어 매킨리만이 지닌 자연적인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매킨리는 북극권에 위치(북극점에서 약 322km)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산으로 꼽히고 있으며, 공기 중 산소가 희박해 해발 6,194m 높이의 산이지만 7,000m급에 준하는 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베링해협과 알래스카만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눈보라와 함께 급습하는 화이트아웃이 등반대를 애를 먹이곤 한다.
이번 등반 때도 C2(2,900m)에서 C3(3,400m)로 오를 때는 화이트아웃에 길을 찾느라 고생해야 했고, 윈디코너를 향할 때는 추위와 강풍 때문에 긴장할 정도였다. 매킨리시티에 머무는 1주일간 동상환자 수송을 위해 세 차례나 헬리콥터가 올라왔다. 대부분 등정 후 하산한 이들로, 레인저들은 헬리콥터로 후송된 이들 대부분 동상부위를 절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해 주었다.
매킨리 등반 중 가장 애를 먹는 게 짐이다. 적어도 50kg가 넘는 짐을 한 번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스키나 설피를 신고 배낭과 썰매를 이용해 캐시 앤드 캐리(cache & carry) 방식에 준해 짐을 옮긴다(현지에서는 우리 산악인들이 짐을 올려놓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데포’라는 말 대신 캐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캠프 구간을 두 차례씩 짐을 나누어 옮기기도 하고, C3(3,400m)까지는 하루에 하나씩 캠프를 올린 다음 경사가 가파르고 청빙구간이 나타나는 모터사이클힐 아래 C3에 스키와 설피 외에 예비 식량과 불필요한 장비를 데포시킨 뒤 매킨리시티(4,300m)까지는 두 차례에 나누어 짐을 옮기기도 한다. 이 경우 첫날 윈디코너 너머 설원에 짐 일부를 옮긴 뒤 C3로 내려와 하룻밤 자고 이튿날 나머지 짐을 가지고 매킨리시티로 향한다.
매킨리시티까지 오르는 사이 썰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산악인들이 많이 있다. 안전벨트나 배낭에 끈으로 연결시켜 놓은 무거운 썰매를 끌고 올라가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인데 좁은 설릉이나 설사면을 오를 때면 옆으로 쏠리는 일이 생겨 짜증스럽게 하고, 하산길에는 앞으로 쏠리거나 뒤집히면서 성가시게 한다. 썰매에 짐을 실을 때는 무게 중심을 가능한 한 낮게 하고, 등반자 뒷줄을 썰매 위쪽에 걸어놓은 카라비나에 통과시키는가 하면, 하산할 때는 스키폴로 연결시켜 밀면서 내려가는 것도 요령이다.
▲ 탈키트나의 K2 항공사 부근의 산악인 묘에 있는 고상돈 추모비.
매킨리시티에 도착 이튿날은 푹 쉬면서 대열을 정비하고 세쨋날 짐의 일부를 헤드월(Head Wall·약 4,940m)과 엄지손가락바위(Washburns Thumb) 사이 설릉에 짐을 묻어둔다. 관리소측은 1m 이상 깊이로 눈을 파낸 다음 짐을 묻어두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까마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짐을 웨스트버트레스 능선 상에 올려놓고 내려온 다음에는 반드시 하루 이상 휴식을 취하고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Denali Village·5,250m)에 올라선 이후에도 역시 적어도 하루 이상 쉬면서 고소에 적응한 다음 등정길에 나서라는 게 레인저들의 충고다.
정상공격은 매킨리시티의 레인저캠프 칠판에 적혀 있는 일기예보에 준해야한다. 대개 하이캠프 이후의 날씨 1주일치가 적혀 있다. 풍속이 20m/h 이하인 날을 등정일로 잡도록 한다.
정상으로 향할 때 가장 위험한 구간은 하이캠프에서 데날리패스(Denali Pass·5,547m)로 이어지는 사면 트래버스. 매년 레인저들이 30m 안팎 거리로 스노바를 박아놓고 간간이 카라비나까지 걸어놓아 등반객의 경우 자일만 통과시키며 진행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오후 들어 하산길에는 눈길 폭이 넓어져 대부분 안자일렌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내려서곤 한다. 그러나 고산증이나 탈진상태에 이른 이들은 자일 확보 없이 내려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추락시 400~500m 아래 크레바스 지대까지 곧바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에 한 번씩 추락사고가 일어나 데날리 국립공원측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꼽고 있다.
데날리패스를 넘어선 이후 풋볼필드까지는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다. 단 해발 6,000m대의 대설원인 풋볼필드(Football Field)까지는 고소증세로 저하된 체력과 컨디션으로 올라야하고, 정상 능선에 올라서려면 수직고 150m의 가파른 설사면을 올려쳐야 한다. 정상 능선에 올라선 이후로는 설벽 상단을 가로지르거나 좁은 설릉을 따라야 하는데, 바람이 불 경우에는 매우 위험한 구간이다. 중간 중간 박혀 있는 스노바를 잘 이용하면 안전하게 북미 최고봉 정상에 설 수 있다.
▲ 탈키트나 사무소에서. 왼쪽부터 김덕환, 오갑복, 김병석, 로저 로빈슨, 기자.
장비는 동계 고산장비에 준해야 하며, 식량은 일정보다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등반을 마치고 탈키트나행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랜딩포인트로 돌아온 뒤에도 악천후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여러 날 머물러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랜딩포인트에도 2~3일분의 식량을 눈 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매끼 식사는 동결건조미보다는 압력밥솥을 이용하는 게 컨디션 유지에 좋다는 게 경험자들의 평이다.
데날리 국립공원 소속 탈키트나 레인저 사무소장인 로저 로빈슨씨(Roger Robinson)는 “쓰레기와 분뇨 처리에도 철저하게 신경써야 하지만 바람과 추위가 대단한 산이므로 특히 동상에 조심해야한다”며, “포레이커 정상에 버섯구름이 형성될 경우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안전지대로 피하라”고 당부했다. 로빈슨씨는 “하이캠프 이후 등정시간은 컨디션이 좋을 경우 8시간 이내에 가능하지만 18시간 이상도 걸린다”며 “모든 동상의 50% 이상, 모든 사고의 25% 이상, 모든 재난의 55% 이상이 등정 당일에 일어나므로 무리한 등정은 삼가라”고 덧붙였다.
앵커리지와 탈키트나 사이의 도시인 와실라에 거주하며 20년 동안 한국 산악인들의 매킨리 등반을 도와주고 있는 오갑복씨(www.denaliclub.com)는 “간혹 무모하게 등반하는 한국인들 때문에 황당한 경우를 겪을 적이 있다”며, “준비를 철저히 하고 여유를 가지고 등반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등반시즌은 5~6월 두 달간이지만 5월은 춥고 날씨 변화가 심하므로 6월 초나 중순을 등정시기로 잡고 일정을 짜는 게 바람직하다. 데날리 국립공원은 매킨리 등반객에 한해 1인당 120달러의 입산료를 받고 있다. 등반 두 달 전까지 탈키트나 사무소에 입산신청을 해야 하며, 한 달 전까지 팀당 대원 1명을 추가 신청할 수 있다. 문의 전화 탈키트나 사무소 001-907-733-2231. 원정대행 문의 강가딘여행사 02-737-9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