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
손 창 섭
제1화
또 총소리가 얽히기 시작했다. 전투가 재개되는 모양이었다. 푱푱 하는 소리를 내며, 총탄이 연신 지붕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색이나 송장고개 가까이 유엔군이 다가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화대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괴뢰군의 주력 부대는 맹렬한 반격을 시도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군대가 잠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군인의 모양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건만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송장고개 쪽에서도 괴뢰군에 못지않게 각종 탄환이 수없이 날아왔다. 양쪽 산골짜기에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 민가는 완전히 공포 속에 잠겨 있었다. 총탄은 반드시 지붕 위만 스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푹 하고 바람벽에 와 꽂히기도 했다. 벽을 뚫고 들어온 탄환이 방 안에 툭 떨어져 펄펄 타기도 했다. 거기에 뺑뺑 하고, 박격포탄 터지는 소리도 섞이기 시작했다. 불시에 퓽퓽퓽 하는 소리가 나다가는 빵 하고 터지는 것이었다. 소총이나 기관총은 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던 재성(在聖)은, 차츰 오금이 떨려서 견딜 수 없었다. 일어서서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허리를 꼬부리고 콩밭 사이로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양이 보였다. 하수도 속으로 피신을 가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아침 전투 때에도 동네 사람들은 온통 하수도 속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살았다. 재성(在聖)이도 미처 그 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총포 소리가 뜸해져서야 기어나왔던 것이다. 아침 겸 점심을 한술 끓여 먹고 그는 미처 그릇도 치우지 못한 참이었다. 겁쟁이 주인아주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여태 하수도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박격포탄 터지는 소리가 더욱 잦아갔다. 언제 이 집 지붕 꼭대기에도 포탄이 떨어질 지 알 수 없었다. 재성 (在聖)은 잠시도 더 엎드려 배길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니 더 겁이 났다. 그는 마침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문밖으로 나섰다. 쌩쌩 하고 총알이 귀밑을 스치고 흘러갔다. 재성(在聖)은 극도로 긴장한 얼굴로 담 모퉁이에 딱 붙어 섰다. 튀어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콩밭을 가로질러 하수도까지 가자면 백미터 가까이 되었다. 불시에 쨍 하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며, 흙연기로 해서 눈앞이 뽀얘졌다. 재성(在聖)은 얼떨결에 방으로 도로 뛰어 들어오고 말았다. 그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방바닥에 엎드려버렸다. 하수도까지 가다가는 도중에서 죽을 것만 같았다. 소총, 기관총, 박격포는 미친 듯이 더 심하게 양쪽에서 서로 퍼부었다. 그밖에 또 어떤 무기가 사용되고 있는지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약간 총포 소리가 멈칫하는 듯싶었다. 재성(在聖)은 벌떡 일어났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담벼락에 잠깐 몸을 붙이고 섰다가 그는 콩밭 사이로 내달았다. 굴러 떨어지듯이 뻥 뚫려 있는 하수도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서야 재성(在聖)은 인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수도 속에서는 여러 가지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 속은 저 아래까지, 동네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키가 작은 사람은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하수도였다. 밑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넓이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 위에다 판자쪽 같은 것을 건너놓고 앉아들 있는 것이다. 우선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각양각종의 먹을 것과 어린애 기저귀에서 풍기는 똥오줌 냄새가 사람의 온기와 땀내에 버무려 베차게¹ 고약했다. 출입구 밑에는 비비고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재성(在聖)은 할 수 없이 컴컴한 속을 위쪽으로 더듬어 올라갔다. 가까이서 신음 소리가 났다. 몇 걸음 더 올라가 보았다. 촛불이 켜 있고, 반장네 가족이 모여 있었다.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바로 반장의 여동생 수옥(秀玉)이었다. 가족들의 얼굴이 얼빠진 사람 같았다. 수옥(秀玉)의 모친이 재성(在聖)을 보자 딸에게 일렀다.
“얘야, 홍(洪) 선생이 오셨다!”
조금 전에 수옥(秀玉)은 재성(在聖)을 찾았다는 것이다. 수옥(秀玉)의 배에는 헝겊이 여러 겹 감겨 있었다. 한쪽에는 피가 번져 있었다. 이상하게 역한 냄새도 났다. 희미한 불빛에도 수옥(秀玉)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희게 보였다. 어찌된 일이냐고 놀라 묻는 재성(在聖)을 수옥(秀玉)은 기운 없는 눈으로 애원하듯 쳐다보았다. 수옥(秀玉)의 복부는 박격포탄의 파편에 끔찍하게 갈라졌다는 것이다. 피와 함께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걸 간신히 도로 밀어 넣고, 저렇게 헝겊으로 동여 놓았다고 귓속말을 하고 난 수옥(秀玉)의 오빠는 눈을 서뻑거리며² 외면을 했다.
수옥(秀玉)은 재성(在聖)이더러 좀더 가까이 와 달라고 했다. 다가앉는 재성 (在聖)의 손을 수옥(秀玉)은 한 손으로 맥없이 잡으며, 자기가 죽을 때까지 옆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했다.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느냐고 나무라듯 하고 재성(在聖)은 빈말이나마 상처가 대단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천지를 뒤집을 듯한 총포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제2화
재성(在聖)이와 수옥(秀玉)은 같은 국민학교의 교사였다. 재성(在聖)의 하숙을 이 동네에 알선해준 것도 수옥(秀玉)이었다. 이북에서는 중학교 교원을 하다가 단신 탈출 월남한 재성(在聖)이었다. 그의 유하고 너그러운 성품이 수옥(秀玉)의 호감을 샀다. 이리로 하숙을 옮겨오고부터는 일요일마다 수옥(秀玉) 은 재성(在聖)의 내의 같은 것을 자청 해 빨아주었다. 아침 저녁 고개를 넘어,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그들은 무슨 이야기라도 실컷 나눌 수가 있었다. 수옥(秀玉)은 서슴지 않고 재성(在聖)을 사랑하노라고 했다. 그 말이 너무 간단하다고 했더니, 간단할수록 담박하고 솔직한 사랑의 고백이어서 진실미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단지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노죽스레¸ 장구한 시일을 두고 갖은 방법으로 은근히 암시만을 던지며 속을 태울 필요가 어딨냐고 했다. 그러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주느냐고 재성(在聖)이가 다지는 말에 수옥(秀玉)은 물론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 아예 결혼을 합시다.”
자신 있게 재성(在聖)이가 하는 말을,
“사랑한다구 꼭 결혼을 하게 되는 건 아니죠!”
하고 막아버렸다. 수옥(秀玉)은 좀 쓸쓸하게 웃고, 그 까닭을 설명하였던 것 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사랑한다면 곧 결혼하자는 의민 줄 아는 모양이에요.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그야 물론 사랑이 결혼의 첫째 요소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 외에 둘째, 셋째의 조건이 필요하거든요. 안 그래요. 사랑은 다만 결혼을 성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인 것뿐예요. 선생님은 그래 저와 결혼하실 조건을 다 갖추셨어요?”
“무슨 조건 말입니까? 둘째 조건이니 셋째 조건이니 하는 건 뭣을 뜻하는 말입니까?”
재성(在聖)도 짐작은 가지만 일부러 캐물었다.
“아, 뻔한 일 아녜요. 결혼을 하려면 우선 처자를 거느릴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 다음엔 어른들의 승낙이 필요하구요!”
“그러나 참되고 강렬한 사랑이라면, 여타의 조건쯤은 극복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결혼해가지구, 공동으루 생활 기반을 닦아나갈 수두 있구, 한편, 부모를 설복시키거나, 최악의 경우는 둘이 도망을 가서라두 부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라야 진실한 사랑이라구 볼 수 있다구 난 생각하는데요.”
“사랑이란―사랑 가운데서두 특히 연애란, 그렇게 절대적인 결론은 아닐 거예요. 여러 가지 악조건을 극복해가면서까지, 꼭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문 안 된다는 객관적 이유가 성립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현재는 틀림없이,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건 지금까지 제가 사귀어온 남성 가운데서 선생님이 제일 맘을 끌기 때문이에요. 허지만 좀더 많은 남성과 사귀었다면, 전 선생님이 아니구, 다른 남자를 사랑했을지두 몰라요. 선생님보다 더 제 맘에 드는 사람이 있을지두 모르니깐요.”
“허 ―-, 그렇다면 어디 그런 사람을 믿을 수 있겠소.”
“그렇다구 반드시 사랑의 분방성만을 꼬집눈 건 아네요. 사랑이란 일면 모랄 의식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구, 또 그래야 한다구 생각해요.”
수옥(秀玉)은 이렇듯 솔직하고 명쾌한 처녀였다. 수옥(秀玉)의 양친이나 오빠 역시, 재성 (在聖)의 인품에는 끌리는 모양이었지만, 생활 기반이 약하다는 이유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일이 년 더 두고 보자는 것이 수옥(秀玉)이나, 그 어른들의 심산이었다.
“제가 지금 스물셋이니까, 앞으루 이 년은 기다려두 좋아요. 저와 결혼하실 의향이 계시거든, 그동안에 두 가지만 실현해주세요. 첫째는 우리가 스위트 홈의 근거를 삼을 수 있는 주택을 장만하실 것. 물론 그건 우선 방 두 칸 부엌 한 칸 정도라두 좋아요. 그리구 둘째는 일류 중고등학교의 교사로 옮아앉으실 것. 이 년 내에 그 두 가지만 실현해주신다면, 저는 물론 주저 않고 선생님의 아내가 되겠어요.”
“만일 그 두 가지가 다 실현되지 않는 경우에는요?”
“그러면 할 수 없죠, 뭐. 눈물을 머금고, 저는 선생님과의 결혼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어요!”
“거 참, 놀랍게 명확한 태도이시군요. 만일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실현된다면 그땐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런 경우에는 신중히 재고해보기로 해야겠죠!”
이처럼 재성(在聖)과 수옥(秀玉)은 조건부의 연애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재성(在聖)은 조금도 수옥(秀玉)이나 그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응당 그래야 하리라고 도리어 공감(共感)해온 것이었다.
제3화
이곳을 중심으로 한 격전은 벌써 사흘째나 계속되고 있었다. 국군이나 유엔군이 단박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려니 믿었던 이곳 주민들은 차츰 지치기 시작했다. 하루가 여삼추였다. 재성(在聖)이가 보기에도 전세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이 없기는 했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유엔군의 파죽지세를 괴뢰군이 당해낼 도리는 없었다. 그렇건만 괴뢰군은 얄밉게도 좀체 물러가질 않았다. 최후의 발악인 모양이었다. 전투는 대개 낮에만 있었다. 마치 공식이나처럼, 새벽녘에 두서너 시간, 점심 때쯤 두서너 시간, 저녁 무렵에 두서너 시간씩 맹렬히 전개되는 것이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양쪽 진영은 수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다. 그 틈을 타서 간신히 하수도 구멍에서 기어 나와, 밥을 지어먹곤 하는 주민들에게는 그 침묵이 도리어 무시무시했다. 그동안에도 전황을 살피는 유엔군 측 비행기는 공중에서 사라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늘도 아침 전투가 좀 머츰하자⁴ 하수도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 밖으로 기어 나왔다. 콩밭에들 숨어서 참았던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여인네들은 분주히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준비를 했다. 물론 식량이라고 제대로 남아 있는 집은 별로 없었
다. 보리밥이나 밀밥은 고급인 편이다. 옥수수 밀기울 따위로 용케 먹을 것을 만들어가지고 바삐 하수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재성(在聖)이도 겨우 마련해두었던 수수가루로 죽을 끓여 먹었다. 그러고는 콩을 좀 볶아 헝겊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분주히 하수도로 기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질식할 듯이 탁한 공기와 형언할 수없는 악취에 섞여, 무거운 신음 소리가 재성(在聖)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음하고 있는 것은 수옥(秀玉)이뿐이 아니었다. 총소리가 약간 뜸해진 틈을 타서, 뒤보러 나갔다가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중늙은이 남자가 있었다. 그밖에 한쪽 발목이 끊어져 나간 중학생이 있었다. 그의 집이 박격포탄에 날아가 버리는 것과 동시에, 다섯 식구 중에서 세 사람이 즉사하였고 중학생은 발목이 없어지고 십여 살 먹은 그의 여동생만이 무사하였다. 입술에 커다란 기미가 있는 소녀는 신음하는 오빠 옆에서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중학생은 간간 신음 소리를 멈추고, 여동생에게 부모님과 누이의 시체는 어찌 되었느냐고 묻기도 하고, 자기는 죽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도 하고, 싸움이 그치고 국군이 들어오면, 얼른 서대문에 사는 외갓집에 뛰어가서 알리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당장 죽을 것처럼 소란스레 구는 것은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중늙은이 사내였다. 그는 국군에 나간 아들을 못 보고 죽는 게 원통하다고 껑이껑이 울며 가족들을 들볶았다. 거기에 비하면 수옥(秀포)의 신음 소리는 극히 조용한 편이었다. 기운이 푹 빠져버린 소리였다. 그렇게 탐스럽고, 명쾌하던 수옥(秀玉)의 그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낯빛은 희다 못해 파랬다. 어찌 보면 꺼먼 것 같기도 했다. 반쪽이 된 얼굴에는 죽음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복부의 상처에서는 차츰 더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내장이 온통 썩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수옥(秀玉)의 모친은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가서 의사를 청해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 밖은 고사하고 이 하수도에서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없는 격전장이 아니냐. 뿐만 아니라 서울을 중심해서 그 주변이 온통 뒤집히는 판인데 어디 가 의사를 불러올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 외에, 아무에게도 딴 도리가 없었다. 수옥(秀玉)은 제 옆에서 재성 (在聖)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눈을 감은 채 기운 없는 그 손으로 재성(在聖)의 손을 살포시 쥐고 있었다. 가끔 눈을 뜨고 쳐다보며 재성(在聖)의 무릎을 안타
까이 쓸어 보기도 했다.
“내가 죽은 댐에 선생님은 딴 여자와 결혼하시겠지요?”
또는,
“죽어서는 다시 만날 수 없겠죠?”
그러기도 했다. 재성(在聖)은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나는 기어쿠 수옥(秀玉) 이와 결혼할 테요, 걱정 마우!”
재성(在聖)은 수옥(秀玉)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난 죽을 텐데 어떻게요?”
“그러문 나두 죽지!”
그러는 동안에도 천지를 진동시키는 각종 무기의 포효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제4화
어제부터는 괴뢰군이 들이밀리기 시작했다. 일공사(104) 고지며 송장고개 쪽에서 개미떼처럼 흩어져 동네로 내려왔다. 총을 가진 사람은 헤아릴 정도밖에 없었다. 대개는 군모 군복 상의까지 벗어버리고 내의 바람이었다.
괴뢰군들은 집집에 들러 물을 얻어먹고 처마 밑이나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했다. 그러다 비행기만 얼씬하면 질겁해서 숨어버렸다. 서울을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자도 있었다. 바로 저 산만 넘으면 서울 시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봉산(鳳山)이나 강서 (江西)를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물론 패잔병들은 전투가 멈칫해진 틈을 타서 밀려가기 때문에 재성(在聖)이도 몇 번 대답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첫눈에 도무지 군인같이 보이지 않았다. 군복을 걸쳤을 뿐 그저 우직한 농군들이었다. 말을 해보니 더 그랬다. 고향에서 무슨 회의를 한다기에 나갔더니 그 자리에서 군복을 입혀가지고, 즉시 이리로 끌고 왔다는 것이다. 내처 걸어서 여드레 만에 여기 닿은 것은 사흘 전이었다는 것이다. 훈련도 없이 수류탄 몇 개씩을 나누어주고는 무작정 최전선으로 내몰더라는 것이다. 재성(在聖)은 그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는 동시에, 붙들고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패잔병들은 밤중만 되면 독전대(督戰隊)의 손에서 재편성되어 도로 최전선으로 끌려 나가곤 했다. 바로 어제 저녁때 일이었다. 재개된 맹렬한 전투를 피하여 역시 동네 주민들이 하수도에 피신하고 있을 때였다. 하수도의 맨 윗구멍으로 두 명의 부하를 거느린 괴뢰군 장교가 들어왔다. 그들은 먼지와 땀투성이였다. 장교는 권총을 빼들고 있었다. 사람이 한결같이 충혈된 눈이요, 살기가 등등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하수도를 따라 아래로 자꾸 내려갔다. 그러다가 천장에 뚫린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기어 나가려고 했다.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말렸다. 여기는 위험하니 저 밑으로 내려가서 딴 구멍으로 나가라고 한 것이다. 만일 구멍 밖으로 기어가는 괴뢰군이 유엔군에게 발견되면, 이 하수도는 맹렬한 집중 포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괴뢰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없이 아래쪽으로 더듬어 내려갔다. 이윽고 아래 구멍 쪽에서도 그들이 기어 나가려는 것을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이 개새끼들 너희만 살 테냐? 반동분자다 모주리……”
하는 고함 소리가 울리뎌니 대뜸 몇 방의 총소리가 났다. 거의 동시에 따발총을 난사하는 소리, 절망적인 비명, 울부짖음, 신음 소리가 뒤섞여 쏟아져 올라왔다. 사람들은 일시에 와 하고 출입구 쪽으로 몰켰다. 모두들 사색이 된 채 다투어 밖으로 기어 나갔다. 재성(在聖)이도 다 죽어가는 수옥(秀玉)을 그 오빠와 협력해서 떠메고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뽕뽕 하고 옆뒤를 스쳐가는 탄환은 피해가며, 우선 수옥(秀玉)을 자기 집에 데려다 눕혔다. 그 소동에 하수도 속에서는 비참히도 이십여 명이 사상을 당했던 것이나. 동네 사람들은 이왕 죽을 바에는 집에서들 죽자고 하며, 오늘부터는 아무도 하수도에 피신하려 하지 않았다. 재성(在聖)이도 수옥(秀玉)이가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해서 아침부터 거기 가 있었다. 수옥(秀포)은 영 가망이 없었다. 여태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 같았다. 수옥(秀玉)은 자주 정신이 흐려지곤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맑아지면 수옥(秀玉)은 이내 재성(在聖)을 찾았다. 재성(在聖)의 손을 끌어다가는 자기 가슴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재성(在聖) 이와 부부가 되어보지 못하고 죽는 게 한이라고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래전에 결혼을 했을 것을 하고 후회도 했다. 자기가 먼저 죽어가는 것이 원통하다고도 했다. 재성(在聖)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자기도 함께 따라 죽을 자신이 없는 것이 몹시 미안할 뿐이었다. 날이 어슴푸레해서 였다. 마당에서 수옥(秀玉)의 모친이랑 떠드는 소리가 났다. 마루 밑에 웬 사람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재성(在聖)이도 나가 보았다. 정말 마루 밑에서는 꿈지럭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는 억울하게 인민군에 끌려 나왔던 사람입니다. 정말루 빨갱이가 아니라는 걸 맹세합니다. 저를 숨겨주신다면 죽어두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마루 밑에서는 그런 소릴 자꾸 되풀이했다. 어쨌든 기어 나오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여러 사람이 하도 떠들어대니까 그는 마지못해서 나왔다. 그러자 재성(在聖)은 훔칫 놀라며 자기 눈을 의심했다. 좀더 다가서서 그 청년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냐?”
재성(在聖)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소릴 질렀다. 청년은 충혈된 눈을 크게 프드고 재성(在聖)을 잠시 주시했다.
“아 선생님!”
“봉균(奉均)이 아니야!”
이 년 전 재성(在聖)이가 신변의 위험을 깨닫고 북한을 탈출할 때 여러 가지로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제자였다. 당시 학생민청 간부로 있던 봉균(奉均)은 재성(在聖)에게 불리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시로 연락해주었던 것이다. 너무나 뜻밖의 해후였다. 그들 사제는 어느새 손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잠시 뒤, 재성(在聖)은 봉균(奉均)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다. 우선 옷을 갈아입히고 죽을 끓여 먹였다. 그렇지만 미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사이도 없이 수옥(秀玉)이네 집에서 사람이 왔다. 수옥(秀玉)이가 아무래도 수상하니 곧 와달라는 것이다. 완전히 어두워 있었다. 재성(在聖)은 안심이 안 되어서 봉균(奉均)을 마루 밑 구석 깊이 숨겨놓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누리는 전쟁터답지 않게 고즈넉했다. 도리어 무시무시한 침묵이었다. 그래도 귀뚜라미만은 유난히 울어댔다. 그날 밤 수옥(秀王)은 그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재성(在聖)의 손을 꼭 쥐고,
“난 죽어두 선생님은 살아서 통일되구 평화가 오는 걸 보실 거예요. 그땐 나를 잊으실 거예요!”
그런 말을 남기고 몇 시간 뒤에 죽은 것이다. 재성(在聖)은 같이 죽지 못하는 것이 큰 죄나 같았다. 그것이 수옥(秀玉)에게 대한 배신이나처럼 다자꾸 죄스러웠던 것이다.
제5화
연 닷새나 계속된 치열한 격전은 드디어 끝장을 고하고야 말았다. 오늘 낮 전투를 마지막으로 서울을 사수하던 괴뢰군 최후의 방어선은 무너지고야 만 것이다. 송장고개를 비롯해서 연희대학 이화대학 주변의 괴뢰군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뒤에 남은 것은 여기저기 괴뢰군 시체뿐이었다. 뒤를 이어 송장고개 쪽에서 키가 멀쑥멀쑥한 유엔군이 동네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모두 밖으로 뛰어나가 감격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집집마다 처마 끝에는 오래간만에 태극기가 내걸렸다. 산개한 채 훑어 내려온 유엔군 선봉 부대의 병사들은 밭둑이며 산비탈에 잠시 은신했다가는 전진하고 전진하고 했다. 그러자 이어서 후속 부대가 달려 넘어왔다. 그들은 수풀, 콩밭, 개골창, 하수도 등 패잔병이 숨어 있을 만한 데를 샅샅이 뒤지며 선봉부대를 따르는 것이었다. 통역을 데린⁶ 몇 패는 집들을 뒤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부반장네 집 후원에서 괴뢰군이 한 명 걸려 나왔다. 어디선가 옷까지 척 바꾸어 입은 그는 주인도 모르게 감쪽같이 장독 뒤에 숨어 있다가 발각된 것이다. 그 바람에 의심을 산 주인은 통역에게 한참 동안이나 들볶였다. 패잔병은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콩밭 건너 저쪽 산기슭으로 끌려갔다. 거기에는 이미 네댓 명의 패잔병이 붙들려 와 있었다. 감시병의 지시에 따라 새로 잡혀온 패잔병도 그들에 끼어 앉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감각한 표정들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섰던 재성(在聖)은 아무래도 봉균(奉均)의 일이 켕겼다. 그는 얼른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루 밑을 들여다보며, 자기가 나오라기 전에는 꼼짝 말고 있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가마니때기로 마루 밑을 잘 가려놓고 재성(在聖)이가 밖으로 마악 나가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겁에 질려 쫓아 들어왔다.
“여보 홍(洪)선생 이러다가 우리 식구가 큰일 당하겠소. 얼른 그 사람을 내보냅시다. 얼른요.”
그 음성은 떨렸다. 재성(在聖)은 난처했다.
“아주머니 날 봐서 모른 척해주시오. 발각만 안 나문 되지 않소. 어제도 자세히 말하지 않습디까. 이 청년은 절대 빨갱이가 아니라구.”
“글쎄 빨갱이구 아닌 걸 미군이 안대요. 이 일을 어떡하문 좋아! 들키는 날이면 우리까지 화를 입을 판이니.”
“설마, 들킬라구요. 만일 발각이 되더라도 내가 책임 지구 주인댁에는 절대 폐가 안 되도록 하리다. 아주머니 그저 모르는 체하구 계셔주세요.”
“아이구 이걸 정말 어쩌문 좋아요. 우리 애 아버지라두 있으문 좋으련만 이웃 사람들두 모두 그래요. 어서 내보내라구 큰일 난다구요. 부반장이 혼나는 걸 보니 알구 감추었다면, 영 그냥 안 두겠습디다. 난 자꾸 몸이 떨려 못 견디겠어요. 홍(洪)선생 난 나사서 일러줄 테예요. 홍(洪)선생 이 일을 정말 어떡해요!”
주인아주머니는 발을 구르다시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재성 (在聖)이도 적 이 초조해졌다.
“아주머니 사람이, 어디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빨갱이 아닌 사람을 하나 살려줍시다. 날 봐서 그저 잠자쿠 계시란 말요 네!”
재성(在聖)은 애원하듯 했다. 마침 그때 두 명의 미군과 통역이 쑥 들어왔다.
“이 집 주인이 누구요?”
주인아주머니와 재성(在聖)을 번갈아 보며 통역이 묻는 말이었다. 주인집 아이들 삼남매가 부르르 쫓아 들어와서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저희 어머니에게 매달리듯 붙어 섰다.
“저 올습니다.”
아주머 니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누구요?”
재성(在聖)을 노려보며 묻는 말이다.
“저는 이 집에 하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통역은 주인아주머니를 향해,
“정말요?”
하고 다졌다.
“네 ―”
주인아주머니는 겨우 그러고는 몸을 떨었다. 이미 산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치만 보고 섰던 한 명의 미군이 아주머니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누고 뭐라고 지껄였다.
“바른대루 대요! 이 사람은 빨갱이지? 괴뢰군이지?”
통역이 외치는 소리에 주인아주머니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잠깐 재성(在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이 떨리는 팔을 들어 마루 밑을 가리켰다. 즉시 고함 소리와 함께 몇 방의 공포가 울리고 마침내 봉균(奉均)은 끌려 나오고야 말았다. 통역은 아주머니에게 어째서 괴뢰군을 감추었느냐고 날카롭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정말루 전 반대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 홍(洪)선생이 숨겨두었습니다. 제가 한사코 말리는데 억지로 숨겨주었습니다. 정말예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살려주세요!”
주인아주머니는 거의 우는 소리였다. 통역은 사나운 눈초리로 재성(在聖)을 쏘아보더니 간단한 몇 마디를 물었다. 이어 미군을 돌아보며 뭐라고 설명을 하고 난 통역은 재성(在聖)이와 봉균(奉均)을 밖으로 내몰았다. 재성(在聖)은 당황히 변명을 해보았다. 자기는 이북에서 탈출해온 사람이라는 것과 봉균(奉均) 이와의 관게를 두서없이 주워섬겼다. 그런 말을 통역은 변변히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재성(在聖)은 모든 것을 단념했다. 그리고 닥쳐올 운명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즉시 재성(在聖)과 봉균(奉均)은 역시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건너편 산기슭으로 끌려갔다. 누구 한 사람 재성(在聖)을 위해 감히 변명해주려 나서지 못했다. 좀 뒤에 재성(在聖)이와 봉균(奉均)은 포로를 감시하고 있는 미군의 손에 넘어갔다. 거기서 다시 한 번 몸 검사를 받고 미군이 시키는대로 포로들 속에 끼어 앉았다.
“선생님!”
갑자기 꺼져 들어가는 소리로 봉균(奉均)이가 불렀다. 그래 놓고 입을 실룩거렸으나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대답하노라는 게 채 말이 되지 않았다. 입속으로 중얼댔은 뿐이다. 참말 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성(在聖)은 목이 타는 것을 참고 지그시 눈을 감아보았다.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견디려는 것이다. 그러한 재성(在聖)의 뇌리를 불현듯 어제 죽은 수옥(秀玉)의 모습이 스쳐갔다. 지금 같으면 능히 따라 죽을 수 있었으리라 여겨졌다. 심한 충격과 공포심이 다소 가셔감에 따라 재성(在聖)은 저도 모르게 기다란 한숨을 토하였다. 어느새 거대한 장막을 펴듯 차츰 번져오는 황혼이 주위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작자 부기: 전란 중에 적이 적을 죽인다는 것은 이미 비극이 아니다. 전쟁이 더군다나 동족상쟁이 범하는 비극의 심도란 골육지간의 살육이나 동지간의 살상, 즉 부당한 죽음, 억울한 죽음이 엄연한 객관적 가능성 밑에 긍정적으로 행해지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는 부당한 죽음, 억울한 죽음이 어쩔 수 없는 하나의 긍정적인 행위로서 나타나는 비극의 일면을 천착해보려는 데 태반의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편집자의 남모르는 고충을 헤아려 부득이 제5화의 중요 부분을 비효과적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 독자제씨 앞에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끝-
2016년 5월 16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