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오늘이 기다리던 해외 연수 날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나섰다. 도착을 해보니 이미 교수님들과 몇몇 선배님들이 눈에 보였다. 몇 번의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후라서 그런지 선배님들이 별로 서먹하지 않아 좋았다. 출국 수속을 모두 밟고 떨리는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외국에 처음 나가서 인지 무척이나 설렘과 걱정이 앞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과연 낯선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를 비롯해서 선배님들과 교수님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비행기가 출발하고 1시간도 안되어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에는 몰랐었는데 도착을 해서 짐을 내리다 보니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은 모두 트렁크 가방을 가지고 계셨다. 나 혼자만 어깨에 매는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공항을 나왔다. 이것 때문에 여행중반에 엄청 고생했다. 내가 외국여행을 수학여행 생각하듯이 너무 가볍게 봤나 보다.
공항을 나와 대기 중이던 관광버스 타고 점심을 먹으로 갔다
점심을 먹으러 이동한 곳은 공항근처에 웨스트라는 고기 집이었다. 고기 집으로 들어가 앉았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불 판을 갈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인건비가 비싼 일본으로써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참 구두쇠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새카만 불 판에 그대로 고기를 구워야 하나? 더구나 고기가 너무 얇고 질겨서 잘 구워지지도 않았지만 불 판이 타지 않게 고기를 조심스럽게 구워 먹었다. 또 여기는 밥이 너무 작았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적은 양의 밥을 먹고도 생활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고기를 반찬으로 먹는 일본이라서 그런지 반찬의 가지 수도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고기 집에 익숙한 나는 이곳의 고기 집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웨스트 고기 집에서는 샐러드 바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다 먹은 다음에는 후식으로 샐러드 바를 이용해서 과일과 간단한 샐러드를 맛 볼 수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우리는 벳부로 이동했다. 벳부로 가는 동안 차안에서 선배님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겁고 들뜬 분위기에서 벳부에 도착을 했다.
여기 일본은 온천이 많은 지역이라 곳곳마다 온천이 많다. 그래서 유황 연기가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버스로 오는 길에 이곳저곳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무럭무럭 오르는 온천수의 수증기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다. 마치 산에 불이 나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이제 서야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는 실감이 들었다.
여기 벳부에서 우리가 견학할 곳은 지옥온천이라는 유명한 온천이었다. 이는 눈으로만 봐야 하는 온천인데 그 온도가 거의 98도가 되는 것들이었다. 둘러보는 길 군데군데 파인 홀에는 모두 온천수를 담고있었고 뜨거운 열기로 계란을 삶아내는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참으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바다의 성분이 비슷한 염화나트륨을 많이 가지고 있어 푸른빛을 띠는 해지옥,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피처럼 붉은 색을 띠고 있는 피지옥이란 온천. 정말 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 이렇게 뜨거운 열기 속에서는 아무것도 생존해 있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지만 피지옥 옆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식물원에서는 이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이 이었다. 그들의 생명력에 나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온천을 둘러보고 있을 때 단기벳수대학의 선생님과 학생 4명이 왔다. 우리는 이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우리가 다음으로 온 곳은 피부병에 아주 좋다는 유노하나의 원료인 유황 꽃 재배지였다. 이곳도 그냥 온천과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움집처럼 그런 지붕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유황 꽃이 재배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짚으로 만든 지붕의 크기라든지 바람의 강도, 또한 시간의 작은 차이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유황은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피부병에 좋다고 하니깐 조금은 의아했다. 더구나 이 곳에서 풍겨져 나오는 유황의 냄새는 무슨 음식이 섞는 듯한 냄새였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 의문점과 다르게 여기서 이렇게 생산되는 유황은 정확하게 말하면 유황이 아니라고 한다. 유황의 단계를 걸쳐 다른 물질과 결합한 유노하나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중에 내놓거나 수출을 하는 것들은 독한 냄새를 제거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첨가하여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노하나는 목욕제품으로 쉽게 볼 수 있으니깐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번 써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황 재배지를 빠져나왔다.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피로를 달래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호텔 이름은 풍월호텔 이란다. 방 배정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일본 호텔은 우리나라와의 호텔과는 달리 쓸데없이 넓지 않고 정말 잠만 잘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의 고단함을 풀 수 있는 공간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편안해졌다. 대충 짐을 대려놓고 나서 옷장을 열어보니 유카타라는 일본 전통 옷이 있었다. 입어보니 좀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려웠다. 한참을 낑낑거리면서 유카타를 입어본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일본의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니깐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일본의 호텔은 거의 다가 온천을 끼고 있었다. 아무 곳이나 파면 온천이라는 말이 맞는가 보다. 이 호텔 역시 온천이 있으니깐 휴식시간 때 꼭 가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유카타를 입고 선배님들과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에 들어 가보니 우리나라의 일반 대중 목욕탕과 별반 다를 게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탕에 들어가 보니 그 생각이 너무 성급했단 것을 깨달았다.
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정말로 개운하고 상쾌했다. 정말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물도 매우 미끌미끌하고 깨끗했다. 이래서 일본 온천이 유명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온천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식당엘 갔더니 조그만 밥상에 조그만 그릇들 일본 정식이라며 주는데 정말 사람이 이걸 먹고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다. 그것도 무릎꿇고 정좌 자세로 밥을 먹으니 다리도 저리고 불편해서 혼이 났었다. 일본정식이라 그런지 입맛에 맞는 음식이 별로 없어 썩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유카타를 입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무릎을 꿇고 계속 해서 앉아 있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저녁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각자 휴식 시간을 가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선배님들과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를 처음에는 긴장을 하고 자리에 임했는데 이야기 하다가 보니깐 선배님들이 아주 편안하게 해주셔서 긴장감도 풀리고 자연스러워 졌다. 한참 이야기를 나눌 때 교수님들과 선생님께서도 오셨다. 우리는 일본에서의 첫날 무엇을 느꼈는지 서로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께서는 일본의 근검절약이라든지 교통질서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하고 모든지 상업적인 것과 연관짓는 인간미가 없는 행동들은 정이 안 가는 것이라면서 모두들 돌아가는 날까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도 소중히 얻은 7박 8일의 소중한 연수를 단순히 허비할 것이 아니라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더 나누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또 하기로 하고 바쁜 여정으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13일
일본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두 번째 날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모닝콜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모닝콜 덕분에 깊은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호텔 뷔페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뷔페라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자고 일어난 탓에 입맛이 없던 나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골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가 식사를 마친 후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인 벳부 대학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단기벳부대학은 우리 대학과 자매결연으로 맺어진 학교라고 한다. 그러니깐 선배님들의 말에 의하면 교환학생이라는 형태로 우리 대학의 학생이 여기 와서 공부도 하고 또 여기 학생이 우리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단기벳부대학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니깐 벳부대학 학생들이 정말로 기쁘게 우리 연수단을 환영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벳부 대학에는 우리 한국 유학생도 있어 말이 통해 다행이었다. 대학 강의실에 모여 앉아 대학 교수님들 소개와 단기벳부대학을 홍보하는 비디오 시청으로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대학 캠퍼스를 견학하기로 했다. 일본 학생들의 안내로 대학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이 대학은 실습실이 정말 잘되어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실습실은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는 문화원과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진 도서관 건물이었다. 일본의 전통적 건물형태인 낮고 작은 건물이 아니라 이 건물들은 크고 높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 있는 건물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주변의 환경이 너무 깨끗했다. 내가 앞으로 다닐 부산경상대학도 한국의 대학 중에서는 청소도 잘 되고 분리수거도 잘 되는 대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도 참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대학을 다 둘러보고 이곳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대화를 하고 싶은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통역을 해주셔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서로 가지고 있는 선물을 교환해 이날을 기념하기로 하였다. 나는 부채를 선물하고 온천 입욕제를 선물 받았다. 너무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뻐했는데 나중에 100엔 마트에 가서 똑같은 것을 찾았다. 좋은 것을 받았다고 자랑했던 것이 많이 민망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대학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를 위해서 단기벳부대학에서 준비해준 점심이었다. 이날 준비된 4가지 음식들 중에서 내가 먹은 것은 카레라이스였다, 이날 먹은 카레라이스는 정말 못 잊을 만큼 깊은 맛이었다. 맛이 아주 진하고 강하면서도 매콤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끝마치고 일본대학생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약간의 시간을 더 보낸 뒤에 다음 일정을 위해 연수단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소로 향했다.
아소에 있는 사루마와시는 한적한 시골마을 같았다. 일본은 지진 때문에 그리 높은 건물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버스의 창 밖으로 보이는 일본의 풍경은 큰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가 이런 한적한 시골을 연상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사루마와시는 그것보다 좀더 농촌 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사루마와시와 관광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 성도 싶은데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원숭이학교 때문이었다. 원숭이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약 40분 동안 원숭이들의 귀여운 재주를 구경하였다.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서 간단해 보이는 동작부터 시작해서 매우 어려워 보이는 재주를 넘는 원숭이를 보면서 저렇게 훈련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며 조련사의 인내심과 원숭이의 고난이 뒤따랐을지 생각하니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하고 나올 때는 원숭이와 손을 잡는 기회도 주워졌는데 모두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밖의 우리에는 일본 원숭이들이 있었는데 매우 사나워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으로 보기만 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갇혀 지내서 그런지 원숭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해 난폭해지는 것 같아 보여서 불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루마와시를 견학하고 바로 구마모토로 이동해서 구마모토성을 견학했다. 사실 좀 전의 사루마와시부터 구마모토시에 포함되는 구역인데 사루마와시가 구마모토시의 변두리 지역이라면 구마모토성이 있는 곳은 구마모토시의 중심지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사루마와시에서 구마모토성까지 오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을 달려왔다.
사실 구마모토성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장소는 아니란다. 구마모토성은 가등청정(가토우 기요마사)이 1601년부터 7년 간 축성한 일본의 3대 성 중의 하나인데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의 주범격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충복으로써 임진왜란 때 울산의 서생포 지역에 성을 축조하여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줬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나쁜 놈이다. 여하튼 가토우는 전쟁에서 패하고 부랴부랴 도망쳐 와서 한국에서 익힌 성 짓는 기술을 바탕으로 구마모토에서 그의 온 힘을 기울여 성을 쌓으니 그것이 바로 구마모토성이다. 울산성에 갇혀서 물 때문에 고생한 것이 분했는지 구마모토성에는 120개의 우물이 있고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까지도 확보하고 있었다. 120개의 우물이 모두 물을 저장하는 용도만으로 쓰인 것은 아니고 연구에 따르면 몇 개의 우물 밑에는 비밀 통로가 있어서 밖으로 통하거나 다른 건물로 통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막아 놓은 철조망 사이로 우물 밑을 내려다 봤는데 어두워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를 어떻게 내려 갔을지 생각하니깐 까마득하여서 나는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비밀통로인줄 알고 내려갔는데 우물이면 그대로 빠져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옛날 이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궁금해졌다.
구마모토성에서 우리가 올라간 곳은 천수각이라는 곳이었는데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높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구마모토성을 지키는 군수가 살던 곳이라고 하는 천수각은 지금은 그냥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천수각에 오르니깐 내가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이래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항상 크고 넓고 높은 곳에 있는가보다.
아무튼 그렇게 구마모토성에서 경치 감상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 호텔로 이동했다. 오늘 묵을 호텔은 마르코 호텔이다. 이 호텔은 구마모토시의 가장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일본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다른 호텔과는 달리 다다미방으로 되어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서 대충 짐 정리를 해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점심을 너무 일찍 먹어서 인지 저녁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정도 빠른 6시에 먹었다. 이날 저녁 역시 일본 정식으로 차려진 것인데 매번 정식을 먹고 있지만 호텔마다, 지방마다 정식의 형태가 달라져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또 그 입에 안 맞는 일본정식을 먹는다고 정말 고생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조금 쉬다가 시내에 구경을 나가도 좋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계셨다. 100엔 샾 쇼핑도 하고 시내구경도 좀 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학생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는 교수님이셨다.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는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번 연수가 더욱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교수님들과 선배님들과 함께 100엔 샾으로 향했다. 여태껏 차를 타고 다녀서 잘 알지 못했는데 거리를 걷는데 주위에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거라는 듯 곳곳에 떨어져 있을 쓰레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일본에 갔다온 친구들에게 들었을 때는 설마 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 얘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100엔 샾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 솔직히 별로 내키는 물건이 없었다. 왜 싼 지 알 것 같았다. 거의 다 중국산이고 간간이 우리나라 물건도 눈에 보였다.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하나도 못 사고 100엔 샾을 나와 거리 구경을 했다. 아까 호텔에서 나와서부터 느꼈었지만 일본은 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 대부분이 편하고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다녀 신기했다. 또 거리 자체가 자전거를 타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기 손쉽게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점 또한 이곳 사람들이 자전거를 생활화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거리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도 여기저기 돌아다닌 터라 씻고 나자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14일
오늘 아침 기상 시간은 아침 6시 30분이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나로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힘들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일본정식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정대로 시마바라로 가기 위해 구마모토 항구로 향했다. 배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버스는 여기서 헤어지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버스가 배에 같이 타게 되었다. 배 밑 부분으로 버스를 탄 채 배에 탄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배 위로 올라가니 정말 경치가 좋았다. 시원하게 펼쳐진 배 위에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들도 새우깡을 사서 한번 던져 줘 보았다. 그렇게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서 갈매기들은 우리들 코앞까지 날아와 갈매기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았다. 갈매기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보기는 처음이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날은 날씨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바다가 더욱 예뻐 보였다. 잔잔한 물살을 시원스레 가르며 앞으로 향하는 배는 아주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바다위로 쏟아지는 햇살로 반짝이는 바다가 마치 하나의 보석을 보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렇게 갈매기들과 놀고 바다의 풍경에 심취해 있다가 보니 벌써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배에서 내려 다시 타고 온 버스에 올랐다. 시마바라에서는 가바다스돔을 견학을 했다.
가바다스돔은 운젠다케 재해기념관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보연산에서 멈춤 줄로만 알았던 화산이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이 곳의 11가구는 갑작스레 화산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말이 피해이지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리 자연재해라서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러한 모습 앞에서는 모두가 원인 제공자인 마냥 숙연해지고 미안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을 당시 모두들 정신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복원까지 하고 앞으로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어야 할지를 교육시키는 자료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여기서 나는 실제 화염이 지나가는 길을 볼 수 있었고 가부타 형식으로 꾸며진 극도 볼 수 있었다. 돔 형식의 스크린으로 꾸며져 약 10여분간의 영상을 보면서 그 때의 느낌을 조금이나 느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져 볼 수 있었다.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전시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바다스돔을 빠져나왔다.
조금을 달려서 우리는 밥이 너무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꾸며져 있는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원폭 자료관으로 이동했다.
원폭 자료관에서는 정말 처참한 광경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들려오는 시계소리, 다 무너져 내린 성당의 벽, 방사선의 결과 이름도 모를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담은 모습들, 당시의 기록들이 있는 이 곳은 아픔 그 자체 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이 아무리 미운 나라이자만 이런 모습을 보면 인간으로써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라를 이끌고 나가는 공무원들의 괜한 다툼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만 헛되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명의 잘못된 생각으로 죄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토록 공포로 몰고 가는 것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이 현장은 일본의 반성을 조금도 엿 볼 수 없었다. 완전히 미국의 독자적인 죄인 듯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모습을 희생된 사람들이 하늘에서 본다면 두 번 죽는 기분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원폭 자료관을 나와 평화공원으로 향했다.
평화공원은 정말 멋있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특히 중앙에 있던 동상이 자꾸 떠오른다. 처음에는 우스운 자세를 가진 동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다시 보게 되었다. 원폭의 위험과 평화, 기상을 한꺼번에 나타내고자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서 말이다. 또 여기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작은 분수도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분수처럼 평화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갇혀있던 형무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흔적이라고는 추춧돌이 고작이었다. 누가 있었는지 알아 낼 수 있는 조금의 단서도 남기지 못하고 원자폭탄의 위엄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공원 안에는 맑은 날씨 때문인지 놀러온 가족들의 모습과 데이트하러 나온 연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평화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조용하고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지금 공원의 모습처럼 온 세계에 평화가 오래토록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원자폭탄 같은 사건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평화공원을 한번 둘러보고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후쿠오카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기 위해 후쿠오카로 이동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바로 호텔로 가지 않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샤브샤브다. 난 이날 샤브샤브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고기를 물에 삶아먹는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일본 샤브샤브는 4가지 소스 중 입에 맞는 소스에 만두나 완자, 야채, 고기 등을 육수에 삶아내어 먹었다. 처음 먹어본 샤브샤브라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아니 일본에 와서 제일 반가운 음식이었다. 선배님들은 느끼해 입맛에 맞지 않아 했지만 이때까지의 음식 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아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조만간 한국에 있는 샤브샤브도 한번 가볼 생각이다.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샌트럴 호텔로 갔다. 호텔에서 마지막으로 일본 온천을 즐기고 선배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이젠 선배님들과도 많이 친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일본의 마지막 밤도 깊어져 갔다. 일본에 와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고 이제는 우리와 다른 일본만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졌는데 다시 대만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또 어떤 신기한 것들이 있을지 생각하면 또 다른 설렘이 찾아 들기도 한다.
일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대만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12월 15일
오늘은 공항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아침을 뷔페로 간단히 해결하고, 대만으로 가기 위해 후쿠오카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도착해 시간이 조금 남아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면서 약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9시 40분. 37번 출구 앞에서 타이페이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짧은 3박 4일의 일본 연수 일정이었지만 가려니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그렇게 작으면서도 큰 나라인 일본을 뒤로하고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타이페이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조금 있으니 기내식이 나왔다. 점심으로 나온 기내식에서부터 대만 음식이 나왔다. 치킨 도시락이었는데 닭을 한 입 베어먹자 느끼함이 너무 강하게 묻어 나서 도저히 먹기가 싫었다. 교수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대만 음식이 일본 음식에 비해서 더욱 입맛에 안 맞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느끼한 기분으로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버스가 있었다. 공항에서 나와서부터 느꼈지만 대만은 정말 더웠다. 기온이 28도나 된다고 한다. 겨울 자켓을 입었던 터라 더워서 땀띠라도 나는 줄 알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일단은 가볍게 한국인이 경영하는 불고기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음식이라 입에도 잘 맞아 간만에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후에도 자주 온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카오슝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카오슝에 도착해 이번에는 두 번째 공식행사를 위해 대만 자매 학교인 정수과학기술대학으로 향했다.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우리 연수단을 열렬히 환영해주어 정말 인상 깊었다.
성대한 환영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캠퍼스 견학을 했다. 학교가 정말 우리나라 대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사방이 유리로 된 도서관은 보면서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의 도서관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높게 올라간 건물의 높이도 만만치 않았으나 건물내부는 마치 우리나라의 공립도서관을 보는 듯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앉아만 있어도 책 내용이 절로 머릿속에 들어올 것만 같은 깨끗함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작은 폭포를 가지고 있는 공원 같은 것이 학교 건물 뒤편으로 갖추어져 있어서 학생들의 복지에 아주 많이 신경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대학에서 가능한 것인지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견학을 끝마치고 이곳 대학생들이 펼치는 환영행사에 참가했다. 환영행사에서는 우리 교수님들과 이곳 교수님들의 환영사와 답례사 그리고 선물교환시간을 갖고 대학생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춤도 추고 국술 시범도 보여주고 노래도 들었다. 정말 우리 연수단을 위해 이렇게 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이런 멋있는 공연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우리 연수단에서 차기 총학생회장이신 김유상 선배님께서 공연에 대한 답가를 불러주셔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강당에서 이곳 대학이 준비한 만찬을 즐기고 서로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이곳 대학생들과도 좋은 추억을 남겼다. 특히 백걸 선배님과 유상선배님은 정수과학기술대학생들과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이곳 대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정수과학기술대학의 교수님들, 학생들과 함께 아이허로 이동하였다. 이 곳에 도착하여 우리는 작은 배에 탑승했다. 아이허는 카오슝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인데 배를 타고 관광할 정도로 멋있었다. 화려한 조명들과 강을 따르는 가로등들 정말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예쁜 야경들을 구경하면서 다리 밑에 집을 짓은 제비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이 너무 길어 조금은 지루했다. 아마도 오늘 이동이 많은 탓에 피곤해서 일 것이다. 배에서 내리고 이곳 경치에 사진을 찍기 위해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9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 가는 호텔은 시티즌 호텔이다. 방 배정을 받고 올라가니 대만 호텔은 일본과는 다르게 조금 넓었지만 온천이 없어서 아쉬웠다. 오늘처럼 이동이 많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날에는 일본의 온천에서 잠깐 몸을 쉬게 하면 피로가 잘 풀리곤 했는데 말이다. 오늘은 정말 많이 피곤한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샤워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12월 16일
6시에 모닝콜을 받고 일어나 호텔 뷔페로 간단히 먹었다. 나는 평소에 호텔 식 뷔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호텔 식 뷔페가 나오는 날이면 식빵을 주로 먹었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다시 정수과학기술대학으로 향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시내구경을 잘 못했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이 곳은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가 생활화 되어있는 것 같았다. 여기도 저기도 모두 오토바이 뿐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만큼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면 폭주족으로 오해받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자전거가 생활화 되어있더니 여기는 오토바이다. 주차하기도 힘들고 연료비도 비싸기 때문에 여기서는 차보다는 오토바이를 더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나이만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보편적이란다. 많은 오토바이들이 다녀서 그런지 매연 때문에 이곳 하늘은 언제나 구름으로 가득해 파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습도까지 높으니깐 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수과학기술대학에 도착해서 우리는 다과를 먹으며 대학홍보 비디오를 시청했다. 비디오를 보면서 간단한 소개를 끝낸 대학 측은 작은 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학 안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어디에 와 있는지 자꾸 다시 생각하게끔 하였다.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이 곳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옥상 비슷한 곳이었다. 대학 주변의 풍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공부하다가 가끔 올라와서 머리를 식히는 장소로 안성맟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것으로 대학관계자들과 작별을 고하고 다시 타이페이로 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곳 대학생들도 우리 연수단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공항까지 우리를 배웅해 또 한번 감격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이 곳에서 이렇게 환영해주고 성심 성의껏 우리를 맞이했다는 것은 잊지 못 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다시 타이페이로 도착해 점심을 먹으러 샤브샤브 전문점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먹던 샤브샤브가 기억나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하지만 나오는 음식을 보니 같은 샤브샤브인데 뭔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식사를 대충 마치고 허기지게 식당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우리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충렬사로 이동했다. 교대식 때의 위병들의 절도 있고 위엄 있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충렬사에는 국안로에 위치한 국민 혁명과 대일 전쟁 중 전사한 애국지사와 장병 등 약 33만의 영령을 모신 성역으로 전사한 군인들의 사진, 동상, 훈장 등을 모아 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위병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깐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간 가량을 약간의 움직임을 빼고 같은 자세로 서있어야 한다니 말이다. 특이나 이날처럼 날씨가 더운 날에는 그처럼 고역이 없을 것 같았다.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대식을 보고 세계 4대 박물관중 하나라는 고궁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아쉽게도 박물관이 개선공사 중이어서 우리가 관람할 수 있는 부분이 박물관 크기에 비해 너무 미약했다. 전시품 대부분이 천년전 송나라 황실의 물건이란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천년 전 물건이 이토록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또 지금까지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너무 많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최첨단 장비도 구할 수 없었을 것인데 무슨 수로 저런 것들을 만들어 냈을까? 나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면서 별관까지 구경을 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 대충대충 본 게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땅이 넓은 대만을 다니다 보니깐 버스로 이동을 한다고 해도 쉽게 피로를 느꼈다.
관람을 마치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먼저 호텔에서 짐을 풀고 다음 일정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부터는 호텔을 이동하지 않고 계속 같은 호텔을 쓰기 때문에 일일이 짐을 모두 챙겨가지 않아도 되 마음이 놓였다. 저녁을 먹으러 대만에 와서 처음 갔었던 그 불고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불고기와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역시 한국음식이 최고다. 저녁을 먹고 바로 용산사로 이동을 했다.
용산사는 재미있게도 한국과 달리 절 안에 모신 신들의 종류가 많으며 원하는 소원에 따라서 비는 곳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절 안에 들어서자마자 짙은 향내가 진동을 했다. 길다란 향을 들고 여기저기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만 사람들 중에는 용산사에 와서 소원 비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여기서 소원을 빌면 다른 곳에서 비는 것보다 잘 이뤄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들도 향을 피워 여기저기서 기도를 드리고 사진을 찍다 용산사를 나와 그 옆에 있는 야시장으로 향했다.
야시장은 새벽 2∼3시까지 개장을 한다고 한다. 아직 별로 늦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많았다. 뱀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어느 가게에서는 코브라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네를 말려놓은 것 자라를 해부해 놓은 모습들은 속을 거북하게 했다. 근처 잡화점에서 다양한 모양의 열쇠고리를 싸게 팔아서 5개정도 골라 샀다. 한국에 돌아가서 기념으로 하나씩 줘야겠다. 야시장에서 주어진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아 얼른 구경을 하고 나와야 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나는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17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뷔페에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오늘 일정은 화련에서 보내는데 화련으로 가기 위해 오늘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다지 멋있지 않았다. 농촌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황무지에 가까운 모습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차의 좌석은 앞, 뒤 간격이 넓고 편해서 3시간 가량을 가는데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화련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 곧바로 대리석 공장으로 향했다. 대리석 공장에서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동상들과 옥으로 만든 시계 반지 등을 구경했다. 화련의 대리석의 품질은 최고라고 했다. 이 일대는 대리석이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한데 특히 화련의 대리석이 수출에 있어서도 최고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공되어 있는 작품들이 더욱 값져 보였다. 이곳에서 나느 사고 싶은 것은 많았는데 호텔에서 돈을 들고 오지 않아 하나도 사지 못했다. 이들의 가공기술은 정말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이런 작업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점심은 공장 내에 있는 음식점에서 먹었다. 여전히 대만음식은 느끼한 게 입맛에 맞지 않다. 점심을 먹고 화련에서 빠질 수 없다는 아미족 민속춤을 관람하러 갔다. 아미족의 인구는 대략 12만으로 원주민 중에서는 세력이 가장 크다고 한다. 의상은 빨간색과 황색 등을 띠고 있고 음악이 경쾌해서 좋았다. 민속춤은 아미족의 생활을 묘사한 춤과 아미족의 결혼풍습 등을 연출하여 보여주었는데 우리 연수단의 선배님 중 한 명이 이 쇼에 참가해 얼떨결에 아미족과 결혼을 해버린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해 버렸다. 우리는 덕분에 즐거웠지만 말이다. 쇼 중간에 아미족 사회자가 우리나라 트로트를 불러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 쇼 막바지에 이르러 관람객들이 모두 참가하여 아미족들과 함께 춤도 추고 즐겁게 보냈다. 마지막에는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데 나도 기념으로 아미족들과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찍은 사진을 선배님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옆에 있는 아미족과 내가 상당히 닮았다면서 잃어버린 형제가 아니냐며 한국에 올 때까지 엄청 놀려댔다. 교수님들 마저 한몫 거들었다.
아미족 민속춤 공연을 다 보고 버스를 타고 장춘사로 향했다. 버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서 보여주는 창 밖의 풍경을 보고 버스 안이 감탄사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이 구름위로 높고 길게 뻗어 있는 대리석 봉우리들. 장춘사에 도착해 장춘사를 보고 있자니 그림에서나 본적이 있는 듯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언덕 위에 장춘사와 그 옆에 흐르는 폭포. 정말 신선놀음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깐 연자구가 나왔다. 연자구의 말에 알 수 있듯이 정말 제비가 집이라도 만들어 놓은 듯한 구멍이 그 큰 바위절벽에 여러 개 뚫어져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했다. 연자구를 지나서 본 것은 구곡동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나는 선배님들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관람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바로 태평양으로 향했다.
태평양에 도착해 바닷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서 선배님들이 파도 가까이 갔다 물세례를 맞고 돌아왔다. 벗어줄 수 있는 옷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래도 옷을 말려가며 잘 적응하고 계셨다. 태평양이라고 해서 그런지 그냥 바다와는 다른 것 같았다. 바다의 짠 내음과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따뜻했다. 시원스레 펼쳐진 태평양을 보면서 내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태평양에서 선배님이 사주신 옥수수는 정말 맛있었다. 날이 점점 저물어 타이페이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가니 날씨가 점점 좋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지금 이대로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나고 비행기는 정말 잘 날아 타이페이에 도착했다. 타이페이에 도착을 하자마자 저녁을 먹기 위해 그 불고기 집을 또 찾았다. 불고기가 질려서인지 오늘 메뉴는 해물탕이다. 나는 해물이 입에 잘 맞지 않아 선배님들과 같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역시 그 맛이 일품이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간 나는 달콤한 잠을 청했다. 일본에 비해서 일정에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만에서의 하루하루는 피곤함이 많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아마도 대만 땅이 넓어서 그런 것 같다.
12월 18일
오늘은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다. 오늘이 끝나면 우리는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7박8일이란 시간이 긴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이곳에서 선배님들과 더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의 일정을 위해 야류해상공원으로 향했다. 기괴 암석으로 유명한 야류해상공원이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암이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아래 부분이 깎이면서 멋진 모양의 암석을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서 보니 정말 기괴하고도 멋진 암석도 많고 경치도 아주 멋졌다. 그곳에 있는 여왕바위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집트의 여왕 네페르티티의 옆얼굴을 닮았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하기에는 정말 좋은 곳 같았다. 나도 여기저기 신기한 게 너무 많아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자연이 스스로 이런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나는 자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의 있는 것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자연에 의해서 변화를 겪고 있고 내가 이 다음에 다시 이 곳에 들렸을 때에는 지금하고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을 하면서 야류해상공원을 다 둘러본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횟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들어 갈 때는 조금 독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을 했지만 막상 들어가서는 여러 가지 생선요리에 밥 한 그릇을 금방 끝내고 말았다. 여기는 그나마 입맛에 좀 맞는 것 같았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대만 노천탕을 즐기러 갔다. 야외에 목욕탕이 있어 정말 추웠다. 유황냄새 때문에 제대로 된 목욕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라면 잊지 못할 경험이다. 유황냄새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대만에서는 처음 하는 온천이라서 그런지 그 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상쾌해진 기분으로 몸을 씻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다들 피로를 푼 뒤라서 그런지 얼굴색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피로가 풀리면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이동하는 동안 잠을 청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갈 곳은 101층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백화점이었다. 101층의 높이를 가진 건물은 어떤 형태이고 관연 서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매우 궁금해하는 동안 우리는 101층 건물 앞에 도착했다. 백화점 입구에 도착해서 정말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그 끝이 보였다. 이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장된 층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백화점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찾지 못해 약간의 고생도 했지만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외부 못지 않게 내부도 정말 예쁘게 잘 되어 있었다. 특히 지하에는 한국 비빔밥 전문점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백화점 안에서도 사진도 찍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이제 단골이 된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이제 이 집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선배님들과 의기투합해 엄청 많이, 또 맛있게 먹었다. 그 식당도 우리가 아주 맛있게 잘 먹으니깐 아주 좋아했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와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대충 짐 정리를 끝내고 교수님들과 선배님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그간 있었던 일들과 느낀 점들을 말하며 밤이 늦도록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밤이 너무 깊어지자 내일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들 자기 방으로 돌아가 마지막으로 잠을 청했다. 이제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잠이 쉽게 들지가 않았다.
12월 19일
오늘이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를 끝내고 버스에 올라타 공항으로 가기 전에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면세점을 잠깐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공항면세점과는 달리 무척 넓고 물건도 다양했다. 이것저것 구경을 끝낸 후 다시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타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고 일본, 대만에서의 시간을 회상해보면 아쉽기도 하였다. 훗날을 기약하며 비행기에 올라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잠들었다.
인천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거의 4시가 다 되어갔다. 이제 한국이다. 라고 생각하며 공항에 나와 모국의 향기를 마음껏 만끽했다. 겨우 일주일 갔다오면서 이런 소리하는 것도 웃기지만 역시 숨쉬기는 우리나라가 제일 좋았다.
인천에 도착해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갈 예정이어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역 안 식당에서 저녁으로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일주일만에 먹어보는 한국에서의 음식이라 숟가락을 들자마자 그릇을 비워버렸다. 역시 외국에서 먹어보는 음식이 맛있어도 우리에겐 우리 입맛이 맞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KTX에 탑승했다. 오늘 독일과 우리나라가 축구시합을 한다던데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부산역에 도착이 가까워지고 두 명의 선배님들이 구포에서 먼저 하차 하셨다. 부산역에 도착해 모두들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인원체크를 하고 28일날 다시 모이자는 약속과 함께 7박 8일 동안 같이 있었던 모두가 하나 둘씩 헤어지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연수를 마치며...
7박 8일의 일정이 시작되면서 나는 걱정이 많이 앞섰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더구나 그것도 낯선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 처음 나가는 터라 긴장이 되기도 하고 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란 걱정과는 달리 어느 한 선배님이 우리를 데리고 다녀주시고 각각 호칭도 하나씩 지어주셔서 가자마자 서먹한 분위기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선배님 때문에 고생한 적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를 챙겨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믿고 항상 잘 따랐다. 그 선배님 덕분에 다른 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선배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교수님들과 선생님께서도 나와 재석이가 막내라서 그런지 항상 관심을 가져 주시고 챙겨주셨던 것이 생각이 난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사소한 것부터 물어봐 주시고 신경 써 주셨다. 이렇게 친절한 교수님들과 선생님, 선배님들 때문에 내가 이 경상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는 셈이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그다지 많지는 않겠지만 그 기회가 나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 것이다. 이번에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부산경상대학과 지금의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다. 아직 입학도 하기전인데 이런 자리에 나를 참가하게 해 주어서 학교에 가기도 전에 많은 선배들을 알 수 있었고 교수님들과 선생님을 알게 해 주었다. 대학이라는 곳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 일인데 이번 연수를 다녀온 이후 나는 2월 달에 있을 입학식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 이유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더욱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미운 나라지만 배울 것이 많은 나라 일본에서 내가 느낀 것들, 작은 중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 대만에서 본 것들. 내가 앞으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잊지 못한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다시 한번 이런 기회가 있어 교수님들과 선배님들 모두 다같이 한번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훗날 교수님들과 선생님, 선배님들을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만 펜을 놓는다.
첫댓글 이많은 글 쓴다고 고생했겠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열심히 공부해라...
옙 선생님 ㅋㅋ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헐, 길댜길어, ㅎㅎㅎ
세줄로 요약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