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신의 한수
신의 한수, 이는 일본 만화 히카루의 바둑(국내 정발명 : 고스트 바둑왕)에서 유래된 신조어로, 작중 후지와라노 사이가 추구하는 바둑의 극의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즉, 이 신수(神手)란 표현이 일본 바둑계에서도 쓰이다가 히카루의 바둑에서 神の一手(신의 일수, 신의 한수)로 활용되었고, 그게 한국에 신의 한 수로 번역돼 건너왔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게 미묘하게 변형, 확장되어 대한민국에서는 기상천외한 묘책 또는 먼 앞을 내다본 행동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활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뜻과 비슷한 고사성어로 선견지명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정작 일본 웹 쪽에서는 '神の一手'로 검색해 봐도 고스트 바둑왕에 관련된 내용밖에 출력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관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 느낌 확 살아난 정말 신의 한수가 되었다.
이번에 문대통령이 택한 어느 인재의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라 할 것이며 삼고초려의 결실이었다. 인사에서의 신의 한 수라 하여 굳이 국무총리나 장관급 정도 높은 직위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 와우! 하는 탄성이면 그것으로 이미 답은 나온 거다. 호명하는 순간, ‘믿음이 간다. 법은 원칙이다. 소명의식, 실력 있다. 개혁은 가능하다. 역시 진실은 살아 있다 ’ 등등 동시에 이런 느낌이 확 당긴다면 그게 바로 신의 한 수가 아닌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윤 검사를 호명했다. 그 순간 춘추관에 있던 기자들은 일제히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찰청 차장, 서울고검장과 함께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자리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주로 처리하기에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윤 검사를 대전고검 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올려 세운 이번 승진이 파격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분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나온 격이다. 아울러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11년 만에 호남 출신인 박균택 대검 형사1부장을 기용했다.
그는 많은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는 현세에 드문 실로 의로운 사람이다. 모든 것이 잘 풀려서 그렇지 그의 정의는 온간 데 없고 사회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니 아무 일도 벌어진 것이 없는 것으로 아주 익숙하게 또 다른 시간을 향해 가기가 보다 더 쉽다. 왜? 사회는 가는 방향의 관성을 이어 달리기 마련이니까. 그의 가슴 저리는 고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3년도던가,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수사팀장과 그 상관 때문에 시끌벅적 온통 나라가 시끄러웠다. 국정원 댓글 수사 팀장이던 당시 여주지청장 윤석열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당시 조영곤 중앙지검 검사장과 부딪히는 장면이 생생하게 생중계됐다.
윤석열 검사는 여론 조작 활동을 한 국정원 직원에 대하여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 체포하고 공소장을 변경해서 법원에 제출...그런데 중앙지검에서 그를 수사팀에서 경질시켰다. '검찰 조직을 사랑하지만,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에 관하여 검찰의 명예를 걸고 전념한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윤석열 팀장과 조영곤 지검장의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팀장은 압수 체포 영장과 공소장 변경에 대하여 중앙지검장의 승인을 받았다고 증언하는 반면 조영곤 지검장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증언했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그때도 정윤회 문건처럼 당시 새누리당 쪽 시각은 윤석열 수사팀장의 절차적 하자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벌어지는 난장판의 본질은 국정원이 댓글로 어느 정도 선거에 개입하였는가와 그 수사에 외부 압력이 있었는가에 대해서가 아니겠는가. 수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상대 후보를 비방한 55,689건의 트윗을 조직적으로 유포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윤석열 팀장은 조영곤 지검장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다고 폭로하면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고 법무장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증언하였다. 대통령 선거에 국가 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이야말로 전대미문의 정치개입이며 깡그리 구속 수사해야 할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그런데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불구속 기소되었다. 게다가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군 사이버 팀도 야당 후보를 비방한 댓글을 달아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정말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국가 권력기관, 즉 국정원, 군이 정치에 관여하고 검찰은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정치개입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하였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권은희 과장의 국정원 수사를 방해하며 압력을 가하였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비열하게 내쫓아 버다.
그리고 윤석열은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그 소신 발언을 안했더라면, 남겨진 것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 자리에 서서 당당히 개인영달에 큰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양심적으로 말을 하였기에 제대로 된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 관료사회는 조직의 내막을 말하는 자들에게는 온당하게 대우를 안 한다. 당시 윤석열 팀장과 함께 부반장 격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을 맡았던 '면도날 수사'로 불리던 박형철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이후 좌천성 인사로 수사 직에 배제되었고, 결국 2016년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윤석열은 검찰의 중징계 방침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역사의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다가온 전 국민이 다 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드디어 본격적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게이트를 수사할 수사팀장에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발탁되었다. 국정원 댓글사건 하면 소신 수사로 그가 떠오르는 상황,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과연 그와 박영수 특검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대 최고라는 찬사와 많은 실적을 거뒀다. 다들 그와 박영수 특검이 새 정권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하였지만 사실 조직상 갑자기 주요직에 오를 수도 없고 특검에 있었던 인사를 현 정부 인사로 뽑게 되면 문제가 지난 특검이 표적수사였다라고 역공을 받을 수도 있는 소지가 다분하여 그래서 피할 것이다 예상들을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결과는 아주 호쾌하였다. 과감한 인사였고, 최상의 묘수였다.
여기에는 문대통령의 신의 한수가 또 있다. 그간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고검장급 자리가 된 이후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고검장급이 임명되는 게 관례다. 그렇다면 올해 검사장 승진 대상인 차장검사급인 윤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다는 것은 적어도 두 계단을 점프하는 것이니 자칫하면 외통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중앙지검장 자리는 요직 중 요직이다. 그를 거기에 앉히려면 자리를 낮추어야 한다. 과거 그 자리에 앉으면 당연 검찰총장도 나왔기 때문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눈치를 보거나 외압에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자리를 낮춘다면 그런 염려는 없다. 윤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히면서 폐단의 고리를 끊어내는. 바로 이번 인사조치는 신의 한수라 할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에 신설한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전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앞서 말했지만 박형철 전 부장검사는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 당시 윤석열 검사와 함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다 결국 옷을 벗은 인물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어떤 타협도 없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되기도 한다. 반면 ‘돈 봉투 만찬’으로 감찰을 받고 있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지방으로 좌천했다. 시기의 전격성이나 내용적으로도 유례없는 파격 인사다. 이 또한 검찰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윤 고검 검사의 검사장 승진은 여러 가지 의미를 띠고 있다. 윤 신임 서울지검장이 전임자보다 다섯 기수나 낮은 점은 고위간부들의 대거 퇴진이나 전보를 통한 검찰 주류의 대대적 교체도 예고하고 있다. 향후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들 솎아내기 등 거센 물갈이 인사가 잇따를 것으로도 보인다. 윤 서울지검장 임명으로 사실상 끝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을 맡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도 청와대 브리핑에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유지를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해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번 인사로 검찰개혁 방향도 윤곽을 드러냈다. 대대적 인적 쇄신과 함께 제도적 개혁도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약인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도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역대 정부의 검찰개혁 시도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정권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검찰개혁은 불가능함이 입증됐다. ‘정치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되돌리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고, 국민 다수도 검찰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비대하고 기형적인 검찰 권력을 정상화할 최적의 기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