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경제논리에 치중한 부동산 개발로 누군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동안 5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은 고유의 색채를 잃고 신도시인냥 현대식 건물로 채워졌습니다. 어느 동네건 땅을 안 파헤치는 곳을 찾기 힘들 지경으로 서울은 지난 50년간 공사판이었고,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특히 가슴이 아팠던 사건은 서민문화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던 골목인 피마골의 재개발이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들어선 풍경 하나 하나가 눈에 선한 갑판장은 지금도 그 자리를 허물고 들어선 건물을 볼 때마다 매번 부화가 치밀고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부러 종로를 피해 다니곤 합니다.
이크...냉동삼겹살 먹은 이야기를 할려다가 시시콜콜 뭔 얘기를 하자는 건지 당최...각설하고 본 주제로 곧장 넘어 가겠습니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애정하는 먹거리인 삼겹살만 해도 그렇습니다. 현재는 브랜드 생삼겹살이 대세이지만 십수년 전 쯤에는 와인이나 녹차를 이용해서 숙성시킨 삼겹살이 유행을 하던 때도 있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패삼겹살이니 솥뚜껑삼겹살 등이 유행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판장이 삼겹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시꺼먼 프로판 가스렌지에 은박지를 깔은 사각의 무쇠판을 얹고 그 위에서 굽던 냉동삼겹살입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삼겹살 하면 거의 그런 형태로 구워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냉동삼겹살/부림식당(봉천동)
요즘엔 지방함량이 많은 삼겹살은 그닥 땡기질 않아서 목살(주먹고기)이나 갈매기살을 즐겨 먹습니다. 어쩌다 삼겹부위가 먹고플 때도 돼지갈비를 먹는 편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삼겹살이 먹고파졌습니다. 그것도 허접한 냉동삼겹살이 말입니다. 아마도 지난 4월 말에 종로3가 한도에서 먹었던 냉동삼겹살이 혀끝에 붙었었나 봅니다. 옻순을 곁들여 먹었던 터라 그 맛이 더욱 각별했었습니다.
갈매기살/석구네 마포주먹고기(신도림동)
한도는 갑판장이 2년에 한 번 꼴로 드나드는 국내산 냉동삼겹살집입니다. 지난 번에 방문했을 때 보니 때 묻은 간판에 '35년 전통'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보다는 더 오래된 식당인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2009년에 방문했었을 때도 그 간판을 봤었기 때문입니다.
암튼 한도는 1970년대부터 영업을 한 집으로 추정이 되는데, 상차림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상추나 콩나물 따위를 섞은 불순한 파무침이 아닌 갑판장이 좋아하는 순수한 파무침을 내줍니다. 한도의 시뻘건 양념이 잔뜩 묻은 파무침에는 생계란 노른자를 하나 얹어 육회마냥 버무려 먹으면 더 맛있지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쉽게도 한도는 강구막회와 마찬가지로 일요일엔 영업을 안 합니다. 고로 강구막회에서 일하는 갑판장이 드나들기엔 쪼께...상당히 곤란한 식당이란 말씀입니다. 거리도 쪼메 멀고...그래도 추억의 냉동삼겹살이 땡기니 어쩌겠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한도와 비슷한 연배의 냉동삼겹살집에라도 찾아 갈 수밖에요.
냉동삼겹살과 옻순/한도(종로3가)
역시나 때 묻은 간판에 '30년 전통'이라 써 넣은 봉천동의 부림식당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한도에 비해 규모도 작고, 국내산이 아닌 벨기에산을 쓰지만 냉동삼겹살집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가산동을 기준으로 종로3가보다 가깝고, 일요일 영업은 물론이고 무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라 시간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 드나들 수 있으니 갑판장에겐 오히려 맞춤인 식당입니다.
마눌님과 딸아이를 꼬득였습니다. 삼겹살에는 소주가 진리인지라 오가는 길은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부림식당의 벨기에산 냉동삼겹살은 1인분에 8천원(2016년 7월 기준)으로 동네식당에서 파는 국내산 브랜드 생삼겹살과의 차액이 발생하니 3인분이면 편도 택시요금은 해결이 됩니다.
냉동삼겹살 주문시의 기본 상차림/부림식당
냉동삼겹살(벨기에산)을 주문하면 계란찜과 된장찌개를 비롯하여 배추김치, 부추김치, 파무침, 상추, 깻잎, 마늘, 고추 등이 따라 나옵니다. 술과 밥은 별도로 주문을 해야합니다. 삼겹살은 약간의 후추와 소금 따위가 뿌려진 채 나옵니다. 맛은 뭐 그냥 저냥...마눌님은 몇 점 먹는 둥 마는 둥...그닥 만족스럽지 않은 눈칩니다. 하기사 맛난 거 꽤나 밝히는 갑판장과 근 20년을 함께 했으니 갑판장이 데려 가는 식당이라 기대치가 높았을 겁니다.
김치도 굽고, 밥도 볶고
갑판장이 이번에 부림식당에 찾아 간 것은 맛난 음식이 먹고파서라기 보다는 옛 향수를 더듬기 위함 이었습니다. 문득 뽀끼나 달고나를 먹던 시절이 그립고, 만화가게에서 사먹던 소라과자의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에서 재생 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엔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냉동삼겹살을 치열하게 굽던 시절이 그리웠고, 그것을 충족시키기에 부림식당은 적당했습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의 '懷古歌 회고가'입니다. 그냥 한 번 읊어 봤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갑판장네 가족이 돼지갈비가 먹고플 때 즐겨 다니던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연탄구이집이 확장을 하면서 그 전만 못 해진 건지 지난 달 방문 때 실망을 했었습니다. 그 정도라도 굳이 거기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샤로수길과 엮어서 갈 만한) 대안중 하나로 부림식당을 끄집어 냈는데 마눌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갑판장만 야금야금 다닐 수밖에요.
마눌님 하고는 전부터 다니던 가산동 최대포 연탄구이(연탄구이 아님)에선 목살과 껍데기를, 올해 새롭게 발굴한 신도림동 석구네 마포주먹고기에선 갈매기살, 항정살, 뽈살을 먹으렵니다.
첫댓글 옛생각이 모락모락...
신도림동 석구네에 가게 한 번 오셔. 거기라면 옛 향수를 흠뻑 느낄 수 있구먼.
추억을 먹고 살아야하조^^
무지 땡기네 ㅋㅋㅋ
아이참, 땡기면 일단 오시라니깐~ 금토 밤 더 환영
피맛골의 추억이 아련히...연탄에 구운 고갈비에 막걸리 한 잔이면 최고였슴다~
전봇대집(와사등), 양재기 가득한 막걸리를 퍼 마시는 재미가 있었구만요. 뻔한 이면수구이지만 그 땐 왜 그리 꼬스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