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은 노래를 처음부터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마흔이 넘어 중반에 평범한 직장생활을 뒤로 두고 시작한 그저 '소리꾼'일 뿐이다. 충남 광천 출신인 장사익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선린상고. 제법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고 취직을 하고서도 3년 동안 작곡 사무실에서 노래 공부도 했다. 70년 군 입대를 하고 광주 인근 부대 문선대에서 활동했다. 노래 하나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사회에 나와 취직을 했지만 74년 1차 오일 파동 때 다니던 회사에서 해직당했다. 고졸 학력 때문이었다. 명지대 야간부에 다니면서 그는 정말 뼈저린맛을본다.독서실, 가구점, 전파상, 노점상 등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다.
그는 『다 그놈의 소리 때문이지유. 그것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니 되는 일이 있어야지유』라고 말한다.어릴 적 들었던 동네 할아버지의 새납(태평소를 말합니다.) 소리. 어스름 때가 되면 늘 그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결국 80년 아마추어 국악단체 「한소리회」에 가입한다. 단소를 배우고 피리를 익혔다. 85년에는 대금 명인 원장현씨에게 사사했다. 지방이든 서울이든 놀이판이 벌어지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만큼 배움에 미쳐 살았다. 사물놀이 패에서 김덕수와 이광수를 만났고 그들과 협연도 했다.
92년 그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마흔을 세 해나 넘긴 나이. "앞으로 딱 3년만 내 뜻대로 살아 보자" . 「배터리 가게」를 정리한 장사익은 새납을 챙겼다. 93년 전주대사습 장원 「공주농악」, 94년 장원. 「금산농악」에서 새납을 불었다. 그는 새납 연주자로 2년 연속 전주대사습 장원을 따내는 기록을 세웠다. 그에게 소리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94년 1월부터 8월까지 사물놀이팀 「노름마치」에서 새납을 불 때였다. 가사만 보면 저절로 곡조가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곡이 탄생하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해 11월 임동창(피아노·김자경 오페라단 전 상임반주자), 김규형(북·김연수 명창의 아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소리로는 첫 무대였다.
가슴속에 묻혀있던 음악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의 노래는 부르는 것이 아니고 토해내는 것이었다. 곧 음반제작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얼떨결에 「끌려가」 단 하루만에 10곡을 녹음해 버렸다. 자작곡 「찔레꽃」 등 창작곡 5곡과 「봄비」 등 리바이벌곡 5곡. 피아노도 북도 소리도 악보 없이 진행됐다.앨범은 자작시·곡「찔레꽃」 「국밥집에서」 등 창작곡들을 비롯,「봄비」 등 평소 즐겨 부르는 유행가를 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장사익의 소리 스승은 우리시대 최고의 소리쟁이로 불리는 김복섭(81)옹, 대금과 새납 스승은 명인 원창현, 피리는 강영근 이다. 그가 누구인지 이제야 처음 이름을 듣는 이가 많을 것이다. 누구인지 잠시 겉가지를 쳐보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태평소 연주자에서 가수로 변신한 이다. 선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단지 말과 말로써 음반, 이름이 알려진 이다. 얼마 전 끝난 TV 드라마 '임꺽정'의 주제가까지 부른 이가 그다. 그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하여가를 기억하는가? 느닷없이 튀어나오던 새납소리, 그 소리가 장사익의 소리이다. 94년 전주 대사습에서는 금산 농악에서 새납을 연주하며 장인을 따내기도 한 경력이 있다.
장사익의 노래는 먼저 신명나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울림, 타고난 목청, 가요와 창이 섞인 독특한 노래로 그의 노래는 정말로 신명난다.
장사익의 노래에는 무엇보다 삶의 리얼리티가 넘쳐 귀를 잡아끈다.순대 속 같은 세상살이', '등 기댈 벽조차 없는 한 개 섬' 이나 '밤새 멈추지 않는 메마른 기침' (기침) 같은 구절은 고단하나 부둥켜안아야 할 삶의 조각 조각을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청중의 공감을 산다. 하지만 이 회색빛 일상은 ‘부시시 잠깨어 강아지처럼 기어나오는 아이들’(귀가)이나 ‘하늘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하늘 가는 길)같은 구절에서 따뜻함과 희망을 얻는다. 냉소적이고 삐딱한 20대 록그룹의 절규와는 다른, 관용과 낙관이 호소력 높은 리얼리즘을 빚어낸다.
장사익의 또 다른 무기는 개성. 전통적 씻김새와 록가수의 샤우팅이 혼합된 무정형 창법,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가사 등 음유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개성이 청중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는 삶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살이에서 한번쯤 느껴봄직한 아픔을 애절하게 노래하되 그 아픔 속에서도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신명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반 「하늘 가는 길」에 실린 「찔레꽃」 「국밥집에서」 「귀가」 같은 노래들이 한결같이 그런 예이다. 한편으로는 울부짖고 한편으로는 읊조리는 그의 외침은 그러나 강산에처럼 삐딱한 것도 아니고 삐삐밴드처럼 냉소적이지도 않다. 20대의 공격적인 록 음악가와는 달리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따뜻함과 희망에 닿아있다.
그의 노래는 또 개성적이다. 상투성과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여느 국악가요와 다르다. 물론 양식적으로는 그의 노래 역시 남도 계면조 음계를 대체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부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임동창의 피아노, 김규형의 타악기와 어우러지는 그의 열창은 자유로운 애드립,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우리 만치 깨끗하며 상당한 고음도 무리 없이 처리해내는 목소리 등으로 음악은 결국 연주될 때 그 의미가 완결된다는 말을 입증한다. 창법은 태평소 연주자답게 전통적인 씻김새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록가수의 샤우팅 창법과도 닮았다고 본다. 어쨌든 그의 노래는 「시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