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바로 애기똥풀 마을이다. 들에는 보리뺑이가 줄지어 핀다. 아이들이 논둑길로 노란 모자를 쓰고 마치 소풍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초록 잎에 노란 꽃이 동심을 자극한다. 애기똥풀은 마을 가까운 곳에 모여 산다. 줄기와 뿌리는 독성이 있어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 독이 있으면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답다. 이는 양귀비과다. 양귀비도 꽃이 아름답다. 독을 잘 풀어 다른 매개물을 통해서 먹으면 약효가 줗은 선한 존재가 된단다. 지상에서 독이 없는 동식물은 없다. 조금씩 독은 갖고 있다. 독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독이 많은 사람은 조금씩 삭히면 선한 존재가 된다. 독은 살아가는 에너지 원천이 될 수 있다. 잘 풀고 다스린다면 이웃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독한 몸을 가졌으나 꽃은 좋은 것 같다. 벌이 자주 오는 걸 보니 누구나 줄 것은 최소한 갖고 있다. 애기똥풀은 사람들 곁에 있기를 좋아한다. 이름이 가장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것도 사람들 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생화 이름들이 다들 인간적이다. 산에는 애기나리가 한창 피어있다. 나리꽃 중에서 키가 제일 작다. 애기붓꽃도 산에서 핀다. 붓꽃 중에서 키가 제일 작다. 이른 봄에 피어 지금도 피어 있는 곳도 있다. 옛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름을 그 형상대로 지었다. 또한 자연 친화적이다. 이름이 추상적이지 않고 부르기 좋게 지었다. 이웃집 언니, 며느리, 할머니 이름들이다. 동네에 애들의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애들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과 같다. 그런데 이제는 조용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애기똥풀만이 무수하게 피었다. 마을로 들려오는 산새 소리는 아름답다. 아마 사랑을 하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노래한다. 자연은 이렇게 오고 가는 데 인간 흐름의 강줄기가 없어지고 있다. 엄마가 일을 나가고 아이는 마을 어귀에 기다리는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애기똥풀의 줄기를 끊으면 노란 물이 나온다. 그 물과 애기 똥과 비슷하여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젠 먼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삶은 야생화처럼 독하게 살 때도 있고 빗대었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보고 스스로 자문자답했다. 친근 야생화 이름을 부르며 현재의 아쉬움을 달랜다. 문명의 절정 시대에서 자기 이성의 본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옛날처럼 변함없다. 순자, 말자, 정자, 춘순, 명자 이름들은 예스럽지만 정겹다. 자연의 흐름 따라 지었기에 거슬림이 없다. 애기똥풀 마을에서 애들의 합창소리를 듣고 싶다. 들판에 줄지어 피는 노란 꽃들을 보면서 애들이 저렇게 많이 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